신조어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말’을 뜻한다. 그 말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신조어는 매우 유용한 사회학적 분석 도구이기도 하다. 금정연 작가의 ‘그래서…이런 말이 생겼습니다’는 총 24개의 신조어를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본 책이다.
가장 첫 번째로 했던 작업은 ‘어떤’ 신조어를 분석 대상으로 삼을지 정하는 일이었다. 2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금 작가는 “지나치게 좁은 곳에서만 쓰이거나 유행어처럼 쓰고 마는 단어보다는 사회적 의미층이 두터운 것들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비혼’처럼 처음 쓰인 것은 2000년 전후지만 최근 들어 사회적 맥락 속에 자리 잡은 단어나, ‘가짜뉴스’나 ‘사회적 거리두기’처럼 일반적인 조어거나 전문용어에 해당할지라도 특정 기간 폭발적으로 사용된 용어는 신조어로 분류했다.
책은 ‘돈’ ‘문화’ ‘소통’ ‘사회 갈등’의 총 네 부분으로 나눠 신조어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오늘날 한국 사회는 주식과 가상화폐에 투자하며 인생역전을 기다리고(존버, 손절), 취업은 점차 어려워지며(취준생), 불평등을 체념하게 만들고(금수저와 흙수저), 세대 간 격차(틀딱)와 세대 내 격차(인싸와 아싸)가 두드러지며,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지고(시발비용), 차별과 혐오(맘충, 노키즈존, 휴거)가 만연한 곳이다.
“많은 사람이 ‘가성비’가 유행하기 시작한 후로 전보다 더 꼼꼼하게 ‘가격 대 성능비’를 따지고, ‘손절’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된 후로 누군가와의 ‘손절’을 진지하게 고민해" 봤을 거라는 점에서, “이 단어들은 우리가 만든 것이지만, 어느 정도는 우리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고 금 작가는 말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4장에서 설명하는 ‘틀딱’ ‘맘충’ ‘노키즈존’ ‘민식이법 놀이’ 등의 신조어들은 혐오 표현이 어떻게 다시 혐오를 재생산하는지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노키즈존’이다.
“노키즈존과 아이 거부는 길항작용이 있는 것 같아요. 아이를 거부하는 정서가 노키즈존이란 단어를 만들고, 그 단어가 다시 아이 거부의 정서를 확산시키는 거죠.” 그런 점에서 “‘맘충’이나 ‘노키즈존’이라는 단어가 들불처럼 번진 이후의 우리 사회는 그 전과 결코 같을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유독 부정적인 정서와 차별 표현들이 힘을 얻는 것일까? 금 작가는 “‘가시화’가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과거에도 비속어나 은어는 많이 만들어졌어요. 다만 대부분 특정 또래 집단에서만 쓰이다 사라졌죠. 그런데 우리들끼리만 낄낄대며 썼을 말들이 요즘엔 커뮤니티 등을 통해 금방 확산돼요. 그러다 보니 사회 전체의 하향 평준화랄까, 아무도 어른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기도 해요.”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된 단어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미디어다. ‘민식이법 놀이’가 대표적인 예다. “민식이라는 아이가 스쿨존에서 죽었고, 그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자고 만든 게 민식이법이에요. 그걸 두고 수많은 어른들이 실체도 없는 상상의 위협에 몰두하며 자신이 잠재적 피해자인 듯 굴었고, 언론이 조명했죠. ‘민식이법 놀이’는 언론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확산되지 않았을 거예요."
애초 생각했던 책의 제목은 ‘미래사어사전’이었다. “모든 신조어와 유행어는 언젠가 사어가 될 운명과 함께 태어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 작가의 말처럼, “유행이 지나 아무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 단어들을 탄생하게 한 사람들의 마음과, 그 단어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남긴 흔적 같은 것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금 작가는 이렇게 덧붙였다. "개인적으로는 ‘민식이법 놀이’라는 말이 한때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사회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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