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부터 보도 행진, 단식투쟁까지 할 수 있는 거 다 했다…국회가 이 다음길 내야”
- 남소연 기자 nsy@vop.co.kr
- 발행 2022-05-19 17:47:44
- 수정 2022-05-19 17:49:37
19일로 단식 49일째인 미류 활동가가 발언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미류입니다……. 작년에 30일을 같이 걸었고, 39일째 단식을 같이했던 이종걸 활동가가 방금 병원에 갔는데요……. 정말 묻고 싶습니다. 차별하지 말자는 법을 만드는데, 이렇게 사람이 쓰러져야 할 일입니까. 정말 누가 좀 대답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국회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39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미류 활동가가 눈물을 꾹 참으며 힘겹게 내뱉은 말이다. 매번 힘찬 목소리로 발언을 이어가던 그가 이날만큼은 절절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단식농성을 함께 이어온 그의 동지, 이종걸 활동가가 의료진의 강력한 권유로 단식 중단을 결정하고 병원에 실려 간 뒤였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는 19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회를 향한 마지막 요구로 지방선거 전까지 차별금지법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했다. 당초 이종걸 활동가도 참석해 미류 활동가와 함께 발언할 예정이었지만 간담회가 열리기 40여분 전 병원에 급히 이송됐다.
미류 활동가는 "가깝게는 작년 국회 국민동의청원부터 도보 행진과 단식투쟁까지 시민들은 할 수 있는 걸 정말 다 했다"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해 국회 앞까지 시민이 길을 내온 15년이었다. 이제 국회가 이다음 길을 내야 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종착지는 분명하다. 차별금지법 제정이라는 상식은 아무도 거부할 수 없다"며 "지금 당장 종착지에 이를 수 없다면, 최소한 그 종착지에 갈 수 있는 길은 국회가 만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패스트트랙'을 요구하는 이유는 답답한 국회 상황과 연결돼 있다. 법안 처리의 키를 쥔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패배 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공언해 놓고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당 지도부는 최근까지도 '공론화하겠다'는 얘기만 반복할 뿐이다. 더욱이 이날부터 6.1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본격 시작되기 때문에 사실상 국회에서의 차별금지법 논의가 진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될 경우, 법으로 정한 심사 기한이 지나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해서는 소관 상임위원회 재적 의원 중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구성상 민주당 의원 전원과 무소속 의원 1명만 동의하면 가능하다.
차제연은 지지부진한 차별금지법 논의가 속도를 내기 위해선 민주당이 책임을 지고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민주당은 국민의힘 전신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도입과 검경 수사권 조정, 선거법 개정, 유치원 3법 등을 패스트트랙 제도를 활용해 통과시킨 바 있다.
미류 활동가는 "(패스트트랙 지정 시 법안을 논의할) 8개월 동안 국회 안에서는 법안을 어떻게 만들면 될지 토론을 하면 되지 않나. 국민의힘 의원도 반대 의견이 있다면 토론에 참여해서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그래서 더 나은 대안은 무엇인지 찾아가면 되지 않겠나"라며 "누구도 혼자 남겨두지 않기 위해, 모든 사람이 나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차제연은 기자회견을 통해 "활동가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단식농성은 법 제정을 이루기 위한 의례적인 퍼포먼스가 아니다. 이것은 생존을 건 투쟁"이라며 "차제연과 시민들은 15년을 기다려온 차별금지법을 지방선거 전에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라"고 재차 요구했다.
현재 미류 활동가의 건강 상태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미류·종걸 활동가를 진료해온 오춘상 한의사는 "가장 중요한 게 체중 변화다. 원래 체중에서 10%정도 감량돼도 경고를 하고, 단식농성을 하는 경우 체중이 15% 이상 빠지면 안 된다"며 "오늘로 단식을 매듭지은 종걸 활동가의 경우 몸무게가 많이 빠졌었고, 미류 활동가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오 한의사는 "육체적인 한계를 정신적인 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라며 "아직 국회에서 응답하고 있지 않은데, 결국 이 두 사람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다. 빨리 국회가 응답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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