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살겠다"고... 집 구해야 하는 임차인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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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일대 아파트 단지. | |
ⓒ 권우성 |
세입자로서 가장 서러운 순간은 재계약 시점이다. 5개월 전쯤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일찍부터 안내해주는 '친절한' 집주인이었다. 집주인은 본인이 사용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리며 연신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전세 세입자는 본인 의사로 집을 이사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2년마다 계약을 해야 하는 도시 유목민 신세다. 서울은 수요가 많고 부동산 시장 변화가 크기도 하여 유목민들의 상황은 지역에 비해 더욱 열악한 상황이다.
그나마 나와 같은 신혼부부는 나은 편이다. 서울시에서 보증해주는 전세대출을 저금리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세대출을 보증해주는 것뿐이지, 실질적으로 서울시에서 임차인에게 주거비용을 지원하는 건 아니다.
7월 전세 대란? 임차인은 눈앞이 깜깜하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오는 7월 말 '전세 대란'을 예상하고 있다. 2020년 7월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때문이다.
먼저, 계약갱신청구권은 기존 2년 계약이 만료되면 2년 동안 계약 갱신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다만 주택임대차 보호법에 따르면 임차인이 차임을 연체하거나 건물을 파손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임차하는 등에 해당한다면 임대인은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임대인이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도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의 경우가 딱 이에 해당한다. 임대인이 주택을 사용하겠다고 해서 우리는 새로운 집을 알아봐야 한다.
다음으로, 전월세상한제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재계약의 경우 임대인은 약정한 차임이나 보증금의 5% 이하로만 올릴 수 있는 제도다. 예를 들면, 전세 1억 원의 집이라면 재계약 시 보증금은 1억 500만 원을 초과할 수 없다. 세입자는 적어도 4년 동안 동일한 집에서 비슷한 금액으로 거주할 수 있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법이지만 현실에서는 임대인과 세입자 모두를 난감하게 만들기도 하는 법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오는 7월 이후부터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끝난 매물들이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다. 이 매물들을 가지고 새로운 계약을 맺을 때, 전세가를 올리는 움직임이 있을 거라는 우려 섞인 예측도 나오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청문회에서 '임대차 3법'에 관해 "폐지에 가까운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말 임대차 3법은 폐지에 가까운 개선이 필요한 걸까?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상한제는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일찍부터 시행된 제도다.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진희선 특임교수가 쓴 <블랙홀 강남 아파트 나라>에 보면 두 제도에 관한 해외 선진 사례를 소개한다. 프랑스, 독일, 미국, 영국의 사례다. 각 국가 별로 기간과 내용은 다르지만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맥을 같이한다.
그럼에도 현실 속에서 정작 나와 같은 임차인은 눈앞이 깜깜하다. 집주인이 거주 목적으로 들어오는 경우 주거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슷한 조건의 주택 전세 매물은 현저히 감소했다. 2개월 전 정도부터 3개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집을 보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포털사이트의 부동산 페이지와 카페를 드나들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다.
부동산 시장에 나온 매물마저도 2년 전과 비교하면 앞자리가 바뀌어 있다. 우리가 알아보고 있는 지역들의 경우, 과거와 달리 체감상 적게는 5000만 원, 많게는 1억 5000만 원가량 상승한 것 같다. 얼마 전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계약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지금 같은 구조의 집을 구하려면 3억 원은 넘는다"라고 말하며 "최대한 매물을 찾아보겠다"라고 전했다.
씁쓸한 현실이다. 월세로 옮겨볼까 생각하면서도 월세 매물들의 가격과 조건을 보면 금세 마음을 접게 된다. 빽빽하게 들어선 주택 단지 숲을 보면서 이토록 집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 힘이 빠지는 요즘이다.
주택공급률과 자가보유율을 높이면 주거는 안정될까
'그러니까 집을 사!'
'주택을 공급해야 해!'
정치인과 언론들은 자가보유율을 높여야 하고 주택 공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내 집 마련을 위한 '영끌'을 부추긴다. 집을 가지면 주거권이 불안정하지 않을 거라는 논리다. 하지만 자가보유율이 높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자가보유율이 90%가 넘는 루마니아는 주택 노후화가 심각해졌고 양질의 주거로 이동도 불가한 상태라고 한다. 중국과 슬로바키아도 마찬가지다. 내 집 마련만이 해답은 아니다.
반면 자가보유율이 38%에 불과한 스위스의 경우 세입자의 주거권은 훨씬 안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The Economist'가 만든 영상을 보면, 스위스에 사는 Diyana는 20년 간 한 집에서 임대해서 거주하고 있다.
한 번은 기준 금리가 하락하여 그가 집주인에게 임대료 조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집주인에게 호의를 베풀어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다. 법적으로 임대료 조정을 정식으로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스위스 임대법이 매우 특별하다"라며 "다른 나라였다면 이와 같은 주거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임차하려는 부동산 상태가 좋지 않거나 이전 세입자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조정 절차를 통해 민간 시장에서 부과되는 임대료에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국내에도 장기전세공공주택과 같이 주거권 안정을 위한 공공주택이 공급되고 있지만 지원 대상이 한정적이고 무엇보다 물량이 적다. 국내 민간임대주택 비율은 31.3%로 공공임대주택 비율 7.7%에 비해 높은 편이다.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앞선 루마니아와 스위스 사례는 내 집 마련이 해답은 아님을 보여준다. 주거 점유에 따른 '자가 혹은 임대'라는 이분법적인 구분보다는 주거 안정이라는 과녁 안에 자가와 임대를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각 국가별로 재정적 상황, 주택 시장, 주택에 대한 국민 심리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주택 정책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인구감소 시대에 주택공급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머나먼 미래는 보지 못하고 당장의 문제에 급급해 억지를 부리는 꼴이라는 생각도 든다.
임대차 3법 부작용?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산
2020년 10월, 리얼미터는 임대차 보호법 개정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48.1%, '효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응답이 38.1%. 물론 설문 표본에 임대인이 포함되었겠지만, 임차인 입장에서도 임대차 보호법 개정 후 시장 변화에 따른 임대료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임차인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된다. 2022년 5월, 현재도 여전히 힘든 상황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늦게라도 제정된 임대차 3법은 환영할 일이다.
진희선 교수는 책 <블랙홀 강남, 아파트 나라>에서 "이러한 법(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은 임대시장 안정기에 도입하여 시행하는 것이 좋다"라며 시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주택임대시장 안정을 위해 임대차 3법에 따른 당장의 부작용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산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진희선 교수 의견에 동의한다. 개선이 필요하지만 폐지해서는 안 된다. 이 시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덧붙여 한 가지 제안해보자면 소득 기준 임대료, 주택 조건 등에 따라 일시적으로나마 주택 바우처를 확대해보는 건 어떨까? '친절한' 임대인 호의에 기대하기보다는 임차인의 '주거권' 보장을 외치는 방향이 덜 서럽지 않겠는가.
다음으로, 전월세상한제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재계약의 경우 임대인은 약정한 차임이나 보증금의 5% 이하로만 올릴 수 있는 제도다. 예를 들면, 전세 1억 원의 집이라면 재계약 시 보증금은 1억 500만 원을 초과할 수 없다. 세입자는 적어도 4년 동안 동일한 집에서 비슷한 금액으로 거주할 수 있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법이지만 현실에서는 임대인과 세입자 모두를 난감하게 만들기도 하는 법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오는 7월 이후부터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끝난 매물들이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다. 이 매물들을 가지고 새로운 계약을 맺을 때, 전세가를 올리는 움직임이 있을 거라는 우려 섞인 예측도 나오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청문회에서 '임대차 3법'에 관해 "폐지에 가까운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말 임대차 3법은 폐지에 가까운 개선이 필요한 걸까?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상한제는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일찍부터 시행된 제도다.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진희선 특임교수가 쓴 <블랙홀 강남 아파트 나라>에 보면 두 제도에 관한 해외 선진 사례를 소개한다. 프랑스, 독일, 미국, 영국의 사례다. 각 국가 별로 기간과 내용은 다르지만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맥을 같이한다.
"프랑스처럼 보호기간을 정하는 경우(개인 최소 3년, 법인 6년 보장)도 있지만, 정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계약기간이 끝났다고 무작정 나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계약해지가 불가능하게 하여 임대기간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
- <블랙홀 강남, 아파트 나라>, 77p
"임대료는 물가상승률과 주택 유지관리 수선비, 리모델링 공사비 등을 고려하여 임대료 상한 지수를 정하고 이를 넘지 못하도록 하거나, 지역마다 공정 임대료를 산정하여 이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만약 임대료에 분쟁이 있을 경우는 임대료사정위원회 등을 통해 분쟁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 <블랙홀 강남, 아파트 나라>, 77p
그럼에도 현실 속에서 정작 나와 같은 임차인은 눈앞이 깜깜하다. 집주인이 거주 목적으로 들어오는 경우 주거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슷한 조건의 주택 전세 매물은 현저히 감소했다. 2개월 전 정도부터 3개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집을 보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포털사이트의 부동산 페이지와 카페를 드나들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다.
부동산 시장에 나온 매물마저도 2년 전과 비교하면 앞자리가 바뀌어 있다. 우리가 알아보고 있는 지역들의 경우, 과거와 달리 체감상 적게는 5000만 원, 많게는 1억 5000만 원가량 상승한 것 같다. 얼마 전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계약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지금 같은 구조의 집을 구하려면 3억 원은 넘는다"라고 말하며 "최대한 매물을 찾아보겠다"라고 전했다.
씁쓸한 현실이다. 월세로 옮겨볼까 생각하면서도 월세 매물들의 가격과 조건을 보면 금세 마음을 접게 된다. 빽빽하게 들어선 주택 단지 숲을 보면서 이토록 집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 힘이 빠지는 요즘이다.
주택공급률과 자가보유율을 높이면 주거는 안정될까
'그러니까 집을 사!'
'주택을 공급해야 해!'
정치인과 언론들은 자가보유율을 높여야 하고 주택 공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내 집 마련을 위한 '영끌'을 부추긴다. 집을 가지면 주거권이 불안정하지 않을 거라는 논리다. 하지만 자가보유율이 높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자가보유율이 90%가 넘는 루마니아는 주택 노후화가 심각해졌고 양질의 주거로 이동도 불가한 상태라고 한다. 중국과 슬로바키아도 마찬가지다. 내 집 마련만이 해답은 아니다.
반면 자가보유율이 38%에 불과한 스위스의 경우 세입자의 주거권은 훨씬 안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 'The Economist'가 만든 영상을 보면, 스위스에 사는 Diyana는 20년 간 한 집에서 임대해서 거주하고 있다.
한 번은 기준 금리가 하락하여 그가 집주인에게 임대료 조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집주인에게 호의를 베풀어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다. 법적으로 임대료 조정을 정식으로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스위스 임대법이 매우 특별하다"라며 "다른 나라였다면 이와 같은 주거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임차하려는 부동산 상태가 좋지 않거나 이전 세입자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조정 절차를 통해 민간 시장에서 부과되는 임대료에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국내에도 장기전세공공주택과 같이 주거권 안정을 위한 공공주택이 공급되고 있지만 지원 대상이 한정적이고 무엇보다 물량이 적다. 국내 민간임대주택 비율은 31.3%로 공공임대주택 비율 7.7%에 비해 높은 편이다. 민간임대주택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앞선 루마니아와 스위스 사례는 내 집 마련이 해답은 아님을 보여준다. 주거 점유에 따른 '자가 혹은 임대'라는 이분법적인 구분보다는 주거 안정이라는 과녁 안에 자가와 임대를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물론 각 국가별로 재정적 상황, 주택 시장, 주택에 대한 국민 심리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주택 정책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인구감소 시대에 주택공급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머나먼 미래는 보지 못하고 당장의 문제에 급급해 억지를 부리는 꼴이라는 생각도 든다.
임대차 3법 부작용?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산
2020년 10월, 리얼미터는 임대차 보호법 개정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48.1%, '효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응답이 38.1%. 물론 설문 표본에 임대인이 포함되었겠지만, 임차인 입장에서도 임대차 보호법 개정 후 시장 변화에 따른 임대료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임차인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된다. 2022년 5월, 현재도 여전히 힘든 상황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늦게라도 제정된 임대차 3법은 환영할 일이다.
진희선 교수는 책 <블랙홀 강남, 아파트 나라>에서 "이러한 법(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은 임대시장 안정기에 도입하여 시행하는 것이 좋다"라며 시기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주택임대시장 안정을 위해 임대차 3법에 따른 당장의 부작용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산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진희선 교수 의견에 동의한다. 개선이 필요하지만 폐지해서는 안 된다. 이 시기를 극복해야만 한다. 덧붙여 한 가지 제안해보자면 소득 기준 임대료, 주택 조건 등에 따라 일시적으로나마 주택 바우처를 확대해보는 건 어떨까? '친절한' 임대인 호의에 기대하기보다는 임차인의 '주거권' 보장을 외치는 방향이 덜 서럽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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