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를 담다①] 작품 완성도 좌우…역할 커지는 드라마·영화 속 사투리
입력 2022.05.18 07:05 수정 2022.05.18 07:05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우리들의 블루스’·‘파친코’ 실감 나는 제주 사투리 호평
“주물딱거리지맙서! 몬딱 살 거 아니면예”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가게를 찾은 손님이 흥정을 시도하자 거침없이 생선을 손질하던 정은희(이정은 분)는 걸쭉하게 말을 내뱉는다. 이는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속 한 장면으로, 제주 시장의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삶의 끝자락과 절정 혹은 시작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의 달고도 쓴 인생을 담아내는 작품이다. 제주를 배경으로 때로는 아름다운 풍광을 통해 힐링을, 때로는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통해 공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장면의 주인공인 이정은은 물론, 이병헌과 김우빈, 고두심, 김혜자 등 대다수의 배우들이 걸쭉한 제주 사투리를 실감 나게 구현하면서 현실감을 높였다. 남녀 구별 없이 어르신을 부르는 호칭인 “삼춘”을 친근하게 내뱉는 그들의 모습에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제주 푸릉마을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전달됐다. 가끔은 자막까지 동원해 설명하지만, 이를 통해 제주 문화를 간접 경험하는 생생함까지 안겨준다.
지금은 드라마 작품 속 배역들의 ‘사투리 대화’가 자연스럽지만, 불과 20여 년 전까지는, 사투리 또한 방송위원회의 심의규정 대상이었다. 지난 2004년 방송위원회의 심의규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사투리나 외국어를 사용할 때 국어순화 차원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항목이 명시돼 있어 활용에 제약이 있었다. 그러나 2004년부터 규정에서 사투리 부분이 제외되면서 점차 사투리가 활용이 잦아졌다.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뀐 것은 지난 2012년과 2013년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주요 캐릭터들이 각 지역 사투리를 맛깔나게 사용하면서부터다. 영화에서는 배경에 따라 사투리가 전면적으로 사용됐지만, 드라마에서는 조연 캐릭터, 또는 주연 중 일부만이 사투리를 사용했다. 그러나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각 지역의 말투들을 거침없이 담아내면서 사투리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거칠고 촌스러운 것이 아닌, 자신이 살던 지역의 언어와 말투를 사용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담기면서 사투리가 캐릭터의 색깔 또는 개성을 드러내는 한 방식이 됐다. 이후 ‘톱스타 유백이’, ‘땐뽀걸즈’ 등 다양한 드라마에서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최근에는 사투리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일조하면서, 극중 역할을 키우기도 한다. 생존과 번영을 향한 의지로 고국을 떠난 한국 이민자 가족의 희망과 꿈을 4대에 걸친 연대기로 풀어낸 애플TV+ ‘파친코’에서 사투리는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다. 고국을 떠나 여러 나라를 거쳐야 했던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한국어부터 일어, 영어까지. 다양한 언어가 담기는데, 이 과정에서 그 시절 부산·제주 사투리까지 고스란히 반영하면서 시대적 감성을 표현해냈다.
나아가 지역 사투리를 쓰며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려 애쓰는 과정에서는 사투리의 이질감이 이민자들의 아픔을 부각했고, 시기별 사투리의 변화를 절묘하게 포착해 시대적 흐름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완성도 높은 사투리 구현이 작품의 완성도까지 높일 수 있다는 것을 ‘파친코’가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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