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이어진 난상토론 끝 가결 당론..."발목 잡을 의사 없다"
이날 본회의는 당초 4시로 예정돼있었으나, 앞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가 길어지면서 민주당의 요청에 따라 두 시간 미뤄졌다.
이날 의총 분위기는 가결론과 부결론이 팽팽하게 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 후보자 인준안에 대한 자유토론은 약 3시 15분부터 약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의총에 참석한 의원들은 취재진에게 "(가결, 부결 의견이) 반반씩 나뉘는 거 같다", "비슷한데 부결 쪽이 좀 더 많은 것 같다"고 실시간으로 논의 분위기를 전했다.
한 당 관계자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질서 있는 분위기 속에 다양한 이야기가 팽팽하게 전개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가결론을 주장한 측에선 "선거 뛰는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부결론을 주장한 쪽에선 "선거를 의식하면 안 된다. 거수기가 되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울먹이며 '자식한테 부끄럽다'면서 부결을 주장한 의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바로 결론을 내지 말고 본회의를 미루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민주당은 결국 당론 결정을 위해 표결 절차를 거쳤고, 그에 따라 가결로 결론이 매듭지어졌다.
의총이 끝난 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과 박홍근 원내대표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소속 의원님들의 총의를 모아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인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윤 위원장은 "총리 자리를 오랜 기간 비워둘 수는 없다고 하는 차원, 새 정부 출범에 우리 야당이 막무가내로 발목 잡기를 하거나 방해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저희가 가지고 있는 공직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에도 불구하고 인준 동의안을 가결시키는 대승적 결단을 하기로 했다"고 당론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제 기억으로는 대통령 취임 10일 만에 총리 임명 동의안이 처리된 것은 가장 빠른 처리가 아닌가 생각한다"면서도 "윤 정부의 인사 참사에 대해 저희가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점은 분명히 밝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적격한 인사들에 대해서는 저희는 끊임 없이 문제제기 할 것이고 윤 대통령의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씀을 드린다"면서 정 후보자 지명 철회를 에둘러 촉구했다.
박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도 더이상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지 말고 진정성 있는 협치와 통합을 실천해주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임명동의안 처리에 협조한 셈이지만, 실제 표결이 진행되기까지의 과정이 아주 매끄럽지는 않았다. 박 원내대표가 본회의에서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한 후보자의 문제점을 거론하자 여당 의원 가운데에선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박 원내대표는 "그러면 민주당이 인준안을 가결하는 데 반대한다는 말씀이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임명 동의 당론 채택에 반발한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에 불참하기도 했다.
민주, 지방선거 패배 위기감에 '부적격' 대세론 접어
한 후보자는 내각 후보자 가운데 민주당에서 가장 반발이 적을 것으로 예상됐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맡았던 만큼 여야를 아우를 수 있는 협치의 적임자라는 평도 나왔다. 그러나 지명 이후 언론 보도, 청문회 등을 통해 이해충돌 의혹, 고액 연봉 문제, 전관예우 문제 등 각종 논란이 불거지면서 민주당은 한 후보자를 부적격자로 판단했다.
의총 전까지만 해도 당내 분위기는 매우 험악했다. 결과적으로는 가결로 의견을 모았지만, 당 지도부부터 연일 '한덕수 불가론'을 피력해왔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오전 대전에서 개최한 충청권 현장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대화와 타협을 거부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행태를 묵과할 수 없고, 정치적 책임을 무겁게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당론을 모을 것"이라고 원내 사령탑인 박홍근 원내대표도 전날 "협치, 신뢰의 버스는 이미 떠났다"며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19일 한 후보자 인준 표결에 앞서 정 후보자의 임명 여부를 결론 내리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당내 분위기는 격앙됐다. 한 후보자 인사청문회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강병원 의원은 '한덕수 인준 반대를 민주당 공식 입장으로 정해야 한다'고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의총이 열리기 전까진 민주당이 부결로 의견 일치를 이루거나, 당론 채택이 어렵다면 최소한 자유 투표에 맡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민주당은 그러나 이런 예상을 뒤엎고 가결로 당론을 정했다.
이같은 결정에는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승리에 대한 위기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출범, 당내 성 비위 사건 등으로 이미 여론 지형이 불리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발목 잡기' 프레임에 빠질 경우 더욱 어려운 선거를 치를 것이란 우려다. 한 당 관계자는 “전날 저녁 지도부는 가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위기감은 특히 선거 출마자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 안 맞고 부족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정부 출범 초기이니 (정부 입장을) 존중하고 기회를 열어주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이 첫 출발하는 상황이라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한 후보자 인준을 가결하자는 입장을 내비쳤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송영길 전 대표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제기됐지만 어떻게 하겠느냐. 인준했으면 좋겠다"며 "'다 하라'고 맡기고 나중에 책임을 묻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재명계 정성호 의원과 조응천 비상대책위원 등도 이러한 의견에 호응하며 '현실론'을 피력했다.
정대철‧문희상 민주당 상임고문 역시 '협치'를 강조하면서 '해줄 건 해주고 할 말을 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취지로 인준을 촉구했다. 박병석 국회의장도 원내에 '가결' 의견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협조로 한 후보자 인준안이 의결됨에 따라, 이제 공은 윤 대통령에게로 넘어갔다. 국회 표결 후 정 후보자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 만큼 판단을 오래 끌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정 후보자 문제에 대해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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