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최대한 덜 만들고 자연에 최대한 부담을 덜 주는 환경친화적 삶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유해할 수 있는 화학물질로 매끈하게 정돈된 편리를 거부했으니, 그 대신 따라오는 불편함은 문제가 아니다. 자연스럽게 사는 데 필요한 정확한 정보는 찾아보기 힘들고, 생활에 필요한 제품엔 불필요한 쓰레기가 1+1, 어떨 땐 1+2, 1+3처럼 딸려오고, 재활용 쓰레기라고 해서 분리배출하면 재활용이 안 된단다. 언제까지 ‘뜻있는 개인’만 이렇게 발을 동동 굴러야 할까. 이런 구조를 만든 정부와 기업에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을까. 사진은 지난 3월16일 오전 제주시 회천동 제주시환경시설관리소에 모인 재활용 쓰레기들. 글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제주/사진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 결정적 한 방은 소프넛이었다.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 세제 대신 소프넛을 선택했지만 나에게 닥친 현실은 인터넷 속 후기와 달랐다. 하지만, 진짜로 소프넛이 문제인지 아니면 내 사용 방법이 잘못됐는지 객관적인 사실을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확신하게 됐다. 음료를 마시면 페트병을 세척해 말리느라 하루이틀을 보내고, 비닐이나 라벨지를 뜯어내느라 낑낑대다 결국 본드가 많이 묻은 부분은 깨끗하게 못 떼어내 이를 어쩌나 마음 졸이다 ‘에이,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런 고생 안 하게 만들면 되잖아!’ 화내며 병을 발로 꾹꾹 밟는 걸로 분풀이하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잘못은 다른 데 있었다.
지난해 봄, 세탁세제가 다 떨어져 새 제품을 사야 해 검색을 거듭하던 어느 날이었다. 물에 잘 안 녹는 가루세제보다 더 좋다는 광고에 혹해 오래전부터 액체세제를 써왔는데, 언제부턴가 “왜 돈 주고 물을 사냐”는 말이 귀에 박히던 참이었다. 액체여서 무겁고 부피가 커 쓸 때도 보관할 때도 불편할뿐더러, 세탁 성분이 응축된 가루보다 비싸다는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인터넷 블로그엔 얇은 종이처럼 눌러 만든 종이세제를 추천하는 글도 많았다. 하지만 가격이 꽤 비싸 선뜻 사야겠단 마음이 안 생겼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게 ‘소프넛’이었다.
소프넛은 무환자나무의 열매 껍질로, ‘소프베리’(soapberry)라고도 부른다. 재앙이나 근심·걱정을 막아준다, 자식에게 화가 미치지 않는다 등의 의미로 무환자(無患子)라는 이름이 붙었다는데, 이 때문인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뒤 수행의 도구로 염주를 만들 때 사용한 게 이 나무 열매에 든 씨앗이었다고 한다. 열매 껍질엔 천연 계면활성제인 사포닌 성분이 들어 있어 물에 적시면 거품이 나는 덕에 소프넛(soapnut)으로 불리며 오래전부터 비누처럼 사용됐다.소프넛을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이나 친환경 생활을 추구하는 블로거들의 설명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세탁세제는 물론 섬유유연제, 주방세제, 청소용으로도 쓸 수 있고 목욕이나 세안, 머리 감을 때도 쓸 수 있는 ‘만능 세정제’였다. 자연에서 온 열매이니, 합성세제처럼 화학 성분이 인체나 환경에 유해하거나, 빨래·식기에 잔여물이 남아 있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헹구는 데 물과 시간이 덜 들고, 여러번 재사용할 수 있어 경제적이기도 했다. 다 쓴 소프넛은 퇴비로 활용하거나 일반쓰레기로 버리면 된다고 하니, 합성세제를 사용하고 난 뒤 플라스틱이나 비닐을 버리는 죄책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내돈내산’으로 몇달씩 썼다는 후기까지 읽은 마당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수작업 공정을 거쳐 제품화했다는 인도산 유기농 소프넛 한 꾸러미를 주문했다. 이틀 뒤, 소프넛을 실물로 영접한 날, 유리병 안에 물과 소프넛을 넣고 흔들어 거품을 낸 뒤 설거지를 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기름기가 잘 지워졌고, 미끄러움이 덜해서인지 헹굼도 재빠르게 뽀드득하게 잘 됐다. 그 주 주말, 만족스러운 설거지의 기억을 품고 빨래를 했다. 빨랫감과 함께 면 주머니로 싸서 묶은 소프넛을 세탁기에 넣었다. 평소엔 세제 잔여물이 걱정돼 헹굼을 다섯번이나 했는데, 소프넛은 그런 부담이 없으니 그냥 표준 코스가 정해주는 대로 두번만 헹궜다. 혹시라도 냄새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그날 빨랫감이 크게 더럽진 않아서 세척력이 좋은지 나쁜지는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건 합성세제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으니, 전기 덜 쓰고 물 아끼는 소프넛의 점수는 당연히 합격점. 그렇게 나는 새롭고 안전하고 환경친화적인 세계에 정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가. 한달여쯤 지났을까, 수납장에서 새로 꺼낸 수건이 그날따라 유난히 칙칙해 보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피부에 많이 닿는 부분이 손때가 탄 것처럼 약간 얼룩덜룩했다. 다른 수건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다시 폭풍 검색에 돌입했다.
무환자나무의 열매 껍질인 소프넛은 친환경 만능 세제로 주목받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소프넛을 써보니, 다른 건 몰라도 빨래할 땐 때가 잘 안 진다는 여러 경험담이 그제야 보였다. 아니, 도대체 이 극과 극의 실사용 후기는 뭐지? 그래서 소프넛이 세탁용으로 적합한 건가, 아닌 건가? ‘팩트’를 알 수 없어 답답했지만, 객관적인 국내 자료는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제로 웨이스트 실천법을 알리고 있는 ‘리유저블 네이션’(Reusable Nation)이라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단체 누리집에 여러가지 실험 결과를 근거로 소프넛 사용 찬성과 반대 의견을 소개한 글을 보게 됐다.이 글을 보면, 우선 세탁에 효과가 있다는 결과는 2018년 미국 앨버타대학 등 연구진, 2011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대학 연구진 등의 실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연구는 옷을 만들기 전 옷감(편직물)의 불순물을 제거해 표백이나 염색 등의 후속 작업이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전처리하는 “정련제로서 합성세제보다 지속가능하고 값싼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일반적인 세탁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크로아티아 연구에선 세탁에 사용한 물의 온도가 섭씨 90도로 보통 빨래하는 온도는 아니었다.반대로 오스트레일리아 소비자단체인 초이스가 2020년 2월 공개한 실험 결과에선, 맹물로만 빨래를 할 때보다 소프넛을 사용할 때가 더 효과가 없었다. 그보다 2년 앞서,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영국 기반의 천 기저귀 사용 장려 단체인 ‘클린 클로스 내피스’(Clean Cloth Nappies)는 기저귀 세탁에 소프넛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3년 독일 본대학 연구진은 물의 온도를 섭씨 30도와 60도 두가지로 설정해 실험한 결과, 어떤 온도에서도 소프넛의 세척력은 맹물과 다를 바 없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런 부정적인 결과 역시 한계가 있었다. 초이스의 실험은 소프넛 지지자들한테서 ‘찬물로, 통돌이보다 뒤섞임이 적어 사포닌 성분이 충분히 우러나오기 힘든 드럼세탁기에서, 품종이나 원산지를 밝히지 않은 소프넛으로’ 진행돼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초이스는 물론 다른 실험이 일반적인 세탁이 아니라 얼룩 제거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그 결과로 소프넛의 세척력을 평가할 순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세제 대용이라는 소프넛 써보니
인터넷 후기와 달리 ‘기대 이하’
정확한 정보 알고 싶었지만
국내에선 제대로 찾기 힘들어
리유저블 네이션의 이 글에 소프넛이 빨래에 적합한지 아닌지 결론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논문 또는 발표자료 링크까지 일일이 첨부해 소개한 찬반 양쪽의 풍부한 정보만으로도 충분했다. 똑같이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빨래를 하려 해도, 누군가는 빨래가 좀 안되는 걸 감수하고 그냥 소프넛을 쓸 수 있고, 다른 누군가는 세탁을 깨끗하게 하는 게 중요해 또 다른 환경친화적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그러려면 어떤 선택이든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내가 소프넛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늘어놓은 핵심은 소프넛의 세척력 자체가 아니라 이와 관련한 어떠한 객관적인 자료도 한국에선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최근 몇년 사이 친환경적인 삶은 개인의 윤리나 도덕, 어떨 땐 세련된 유행으로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런 삶을 뒷받침할 정확한 정보는 많지 않다. 오히려, 마치 민간요법처럼 개인적인 경험이나 입소문을 통해 ‘이런 게 좋더라’고 알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같은 물건을 두고 정반대의 주장이 공존하지만, 사실이 무엇인지 파악하긴 쉽지 않다.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국민 삶을 뒷받침하는 정부 어느 쪽도 ‘고작 이런 것’의 정보를 제공하는 덴 관심이 없다.진통·해열제로 개발된 아스피린이 뜻밖에 심혈관계 질환 예방 효과도 있다는 사실이 개발된 지 약 100년 뒤에 확인된 것처럼, 어떤 물건은 원래 알려진 것과는 또 다른 성질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한다. 친환경 생활 쪽에선 아크릴 수세미가 그런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아크릴 수세미는 세제를 쓰지 않아도 가벼운 기름기 정도는 제거할 수 있어, 안 쓰는 집이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5년 전, 나는 대안적인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이걸 ‘친환경 수세미’로 소개했다. 그 기사를 쓴 뒤 나는 색색의 아크릴 실을 사다 직접 수세미를 떠 사용한 것은 물론 가족, 친구, 친한 회사 동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몇년 전 우연히 접하게 된 글에서 아크릴 수세미가 미세플라스틱의 원인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아크릴 자체가 석유 등에서 뽑아내 가공한 합성수지 즉 플라스틱이기 때문에, 쓸수록 여기서 작은 실 조각이 떨어져 나가 쪼개지면서 미세플라스틱이 된다는 것이다. 아, 10년 넘게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현타’가 왔다. 누구를 탓하기도 멋쩍은 일이지만, 애초부터 원재료인 아크릴 실을 이렇게 사용해도 괜찮은 것인지 과학적으로 접근한 사람이나 집단이 있었다면 아크릴 수세미가 이렇게까지 널리 사용될 수 있었을까?
다행인 건, 나 같은 수동적인 소비자만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소비자 모임 ‘지구지킴이 쓰담쓰담’이 지난해부터 펼치고 있는 반납 운동은 ‘우리 이런 거 필요 없으니 팔지 말라’고 기업에 보내는 제안 또는 경고다. 시작은 지난해 2월 빨대 반납 운동이었다. 새활용 디자이너이기도 한 이 모임 대표 클라블라우(활동명·본명 허지현)는 오랫동안 두유를 즐겨 마셨는데, 포장에 붙어 있는 빨대가 늘 마음에 걸렸다. 쓸 수도 없고 버리는 것도 내키지 않아 그냥 모아뒀는데, 몇년이 지나니 “끔찍하게 양이 많아졌다”. 도무지 이 쓸데없는 게 왜 있어야 하냐는 고민을 주변에 말했더니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유제품 빨대, 스팸 뚜껑 등의 반납 운동을 했던 클라블라우가 조각천으로 손수 만든 수저집. 조혜정 기자
디자이너의 특기를 살려 ‘빨대는 반납합니다’라는 문구로 카드뉴스를 만들어,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모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올렸다. 음료에 달린 빨대와 함께, 이런 빨대 없는 음료를 마시고 싶다는 편지를 이면지처럼 버려지는 종이에 써서 해당 음료 생산업체나 매일유업에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매일유업이 서울우유, 남양유업과 함께 3대 유업 중 하나인데다 이 회사 제품군이 제일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반향은 작지 않았다. 한 참가자가 매일유업 고객최고책임자(CCO)한테 받은 두장짜리 손편지 답장을 트위터에 공개했는데, 거기엔 “저희 또한 하나하나 변화하고자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7월 한 요구르트 제품에서 빨대를 뺐고, 올해는 빨대 없는 멸균우유 한 종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쓰담쓰담이 남양유업을 상대로 벌인 2차 빨대 반납 운동, 지난해 9월 씨제이(CJ)제일제당을 상대로 벌인 스팸 뚜껑(스팸의 플라스틱 뚜껑은 밀폐력이 없어 남은 스팸 보관용으로 쓸 수 없다. 이 뚜껑은 유통 과정에서 캔이 받을 수 있는 충격 완화용이다) 반납 운동, 올해 1월 진행한 요구르트 이중 플라스틱 뚜껑(쓰담쓰담은 줄여서 ‘요굴껑’이라 부른다) 반납 운동도 기업의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켰다. 남양유업은 이 모임과 지속적인 협업을 시작한 가운데, 서울새활용플라자의 도움을 받아 빨대 반납함 27개를 아파트, 도서관, 학교 등 전국 19곳에 설치했다. 씨제이제일제당은 지난해 추석 선물세트 2종에 노란 뚜껑을 씌우지 않은 스팸을 넣었고, 점차 플라스틱 뚜껑 없는 스팸을 늘려나가겠다고 밝혔다.이런 일을 진행하고 겪으면서 클라블라우는 “대기업이 설마 그러겠어? 하고 무조건 믿고 넘어갈 게 아니라, 따져보고 잘못된 게 있으면 고쳐달라고 얘기해 바로잡는 게 소비자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생각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뭘 살 거냐’는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와 연관된다. 그냥 주어진 대로 받아들일 거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거냐가 곧 기업이 파는 대로 살 거냐, 필요한 걸 요구하면서 주체적으로 소비할 거냐와 일맥상통한다. 빨대 없는 제품을 요구하고 그 제품이 나오면 열심히 사 먹어야 지구를 지키는 소비자로서 다 같이 공존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나?”
‘공존을 요구하는 주체적인 소비자’의 움직임은 최근 꽤 활발하다. 제로 웨이스트 가게인 서울 망원동 알맹상점을 중심으로 꾸려진 ‘브리타 필터 재활용 캠페인에 함께하는 사람들’(브함사)은 지난해 8월 정수기 회사 브리타코리아에 필터 회수와 재활용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였다. 브리타는 전기 없이 필터만 끼우면 되는 정수기로, 이 회사는 생수를 사 먹을 때처럼 플라스틱 쓰레기가 안 생긴다는 점을 매력으로 강조하고 있다. 본사인 독일 등 유럽과 미국 등에선 다 쓴 필터를 회사가 회수해 재활용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간혹 개인적으로 필터를 회수하지 않느냐고 문의하는 소비자에겐 “(플라스틱 통 안에 활성탄 등이 들어 있으니) 일반 쓰레기로 버리라”고만 답했다. 하지만 브함사가 진행한 ‘브리타 어택’에 1만5천명 가까운 이들이 서명하고 사용한 필터도 1500개나 수거되자 결국 브리타코리아는 올해 안에 수거·재활용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친환경이 민간요법인가’ 좌절하다
“두유 빨대·스팸 뚜껑 없애달라”
“화장품·배달 용기 재활용 책임지라”
당당히 요구하는 소비자들 알게 돼
화장품 제조업체와 음식 배달 플랫폼업체를 상대로 ‘플라스틱을 사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녹색연합 등은 소비자들한테서 빈 용기를 수거해 화장품 제조업체에 전달하는 ‘화장품 어택’을 2월과 3월 두차례, 음식 배달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수거해 배달의민족 본사에 전달하는 ‘배달 어택’을 지난 20일 벌였다. 각 업체와 환경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서명도 함께 전달했다.화장품 어택의 계기는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 표시제’였다. 2018년 12월 개정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음식료품·세제·화장품 등을 제조·수입하거나 판매하는 업체한테 포장재가 얼마나 잘 재활용되는 소재인지 평가하고(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의 4단계) 그 결과를 제품 겉면에 표시하도록 한 제도로, 3월25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제품 생산업체 스스로 쓰레기를 덜 만들고 재활용의 효율도 높이려는 시도인데, 주무부처인 환경부가 지난해 화장품 업계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면서 사달이 났다. ‘2025년까지 생산된 제품 포장재의 10% 이상을 회수해 재활용하겠다’는 내용의 ‘자율협약’에 참여하면 포장재 재질이 ‘재활용 어려움’이어도 등급 표시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행정예고를 한 것이다.환경부가 한국환경공단 자료를 분석해 내놓은 결과를 보면, 2019년 국내에 출고·수입된 화장품 7806종 가운데 ‘재활용 어려움’은 64.2%(5011종)나 된다. 심지어 녹색연합 등에선 재활용이 어려운 화장품 용기 비중이 그보다 더 많은 90%가량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이런데도 화장품 업계에 재활용 등급 표시 ‘면제 혜택’을 주겠다는 환경부의 방침에 화장품 어택이 시작됐다. 결국 환경부는 ‘포장재 회수율이 2023년까지 15%, 2025년까지 30%, 2030년까지 70%를 충족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가 능동적인 소비자들의 노력으로 조금이나마 바로잡힌 것이다.
녹색연합 등은 시민들한테서 수거한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와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서명을 배달의민족에 전달하는 ‘배달 어택’을 진행했다. 사진은 4월20일 행사에 참석한 활동가들이 행위극을 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배달 어택은 코로나19로 더욱 크게 성장한 음식 배달 플랫폼업체에, 코로나19로 더욱 심각하게 늘어난 일회용 용기를 줄이도록 책임을 지우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배달 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17조3828억원으로 한해 전(9조7328억원)보다 78.6% 폭증했다. 월별로 보면, 코로나19 2차 유행 때인 지난해 8월 거래액이 전달보다 23.8%, 3차 유행으로 음식점 영업시간마저 단축됐던 12월엔 34.2%가 늘어나는 등 ‘집콕’으로 배달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여기다, 원래도 배달원을 직접 고용해 음식 배달과 그릇 수거를 하는 식당은 일부 중국집 말고는 별로 없는데, 코로나19로 위생 문제에 민감해지다 보니 일회용 용기 선호까지 늘었다. 그 덕에 버려지는 일회용 배달 용기는 하루 최소 830만개에 이른다.만약 배달 앱이 일회용기와 다회용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제공한다면 어떨까? 나아가 배달 앱이 다회용기 사용 식당의 수수료를 깎아주거나, 검색 시 상위에 노출해주는 혜택을 주거나, 포장 고객이 개인 용기를 갖고 와 음식을 담아갈 경우 할인을 해 준다면 어떨까? 적어도 일회용기 사용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거다. 게다가 음식 배달 플랫폼을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는 또 다른 쇼핑 플랫폼을 통해 배달에 필요한 일회용품도 판매하는데,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라도 이 정도의 지원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배달 어택은 바로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구현한 행사였다.
따지고 보면, 쓰담쓰담의 반납 운동이나 시민들의 여러 어택은 ‘왜 제품이나 포장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질문과 맥락이 닿는다. 맞다. 더 큰 책임은 이런 환경을 조성한 정부에 물어야 한다. 애초부터 쓰레기가 덜 나오도록, 그리고 재활용하기 좋게 만들었다면 소비자의 불편을 덜고 생산비도 줄일 수 있을뿐더러, 환경에 부담도 덜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애초부터 쓰레기가 덜 나오도록
제품을 ‘잘’ 만들게 하기는커녕
재활용 안 되는 재활용품 표시처럼
허술하고 구멍난 제도만 곳곳에
한가지 원인은 허술한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EP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는 생산자에게 제품 생산·판매뿐만 아니라 다 쓴 제품의 수거·재활용 의무를 함께 지우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재활용에 드는 비용 이상의 부과금을 물리는 제도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한국에선 2003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적용 대상이 연매출 10억원 이상 제조·수입 업체, 종이팩·금속캔·유리병·합성수지 등의 4개 포장재군, 윤활유·전지류·타이어 등 7개 제품군에 불과하다. 또 생산한 제품 전부가 아니라 품목별로 다르게 정해진 비율만 재활용 의무가 있고, 그마저도 업체가 직접 수거해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량에 따라 분담금을 내 재활용업체에 지원금을 주도록 하고 있다(이 재활용 분담금이 우리가 구입하는 제품의 가격에 포함돼 있다).이런 구조에선 음식 배달 용기 재활용엔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식당이나 일회용기 생산업체는 연매출 기준에 미달하기 십상이고, 수천억원대 매출을 자랑하는 배달 플랫폼업체는 제조·수입 업체가 아니어서 재활용 의무 대상에서 빠진다. 독일이 2019년부터 ‘신 포장재법’을 시행하면서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유통업체, 온라인 유통업체로까지 재활용 의무 대상을 대폭 확대한 것에 견주면 할 말이 없어지는 대목이다. 심지어 이 법은 독일 정부에 설치된 ‘중앙 포장재 등재 재단’에 생산자가 포장재 재질과 수량,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 이행을 위해 계약을 맺은 재활용업체 이름과 계약 내용 등까지 등록하고, 미등록된 포장재의 상품은 판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반쪽짜리 ‘에너지 회수’도 문제다. 합성수지의 재활용 방법은 원래의 기능을 살려 쓰는 물질 재활용, 연료로 만들어 쓰는 에너지 회수, 화학적으로 분해해 다시 원료로 만드는 화학적 재활용 세가지다. 에너지 회수는 주로 쓰레기 분리배출 표시가 ‘기타’(OTHER)로 돼 있는 것들로 고형연료(SRF)를 만들어 이뤄진다. 기타는 두가지 이상의 재질이 섞여 있거나 신소재라는 뜻인데, 같은 기타여도 비닐은 에너지가 될 수 있지만 플라스틱은 그렇지 않다. 화장품 용기가 ‘예쁜 쓰레기’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대부분 플라스틱 기타여서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의 설명은 이렇다. “생산자 책임 재활용 제도를 시행하면서 비닐, 플라스틱을 분리배출 하도록 한 것은 이 제도를 통해 재활용을 늘리려는 취지였다. 그런데 고형연료는 비닐로만 만든다. 재활용 지원금은 기타 플라스틱과 기타 비닐 양쪽 모두에서 걷는데, 분리배출되는 비닐이 지원금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많으니 플라스틱에서 나온 지원금으로 이걸 충당한다. 정부에선 비닐이든 플라스틱이든 따지지 않고 재활용 의무 실적을 평가하니, 생산자도 신경을 안 쓴다. 시·군·구에서 돈을 더 내 비닐 재활용을 책임지고, 기타 플라스틱도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회수, 중장기적으로는 열분해 등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통업체에도 재활용 의무 부과하고
등록된 포장재만 쓰게 하는 독일
‘재활용 페트’ 활용 권고하는 EU처럼
정부도 개인의 노력에 응답해야 할 때
분명 재활용품으로 표시돼 있는데도 실질적으로 재활용이 되지 않는 건 정부 스스로 제도의 신뢰를 흔드는 일이다. 홍 소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분리배출 표시는 운전할 때의 표지판과 마찬가지로 소비자가 의심 없이 따를 수 있게 해야 혼란이 없다. 그런데, 기타의 경우 표시는 분리배출인데 정부는 분리배출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건 이미 재활용 비용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매한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다. 세척 등 의무를 다했다면 소비자는 분리배출을 하고, 이후 책임지고 재활용하는 것은 생산자의 몫, 생산자가 그런 역할을 하도록 관리하는 게 정부의 몫이다.사실 기타라는 표시 자체도 무성의하다. 요즘 재활용품으로 버려야 되냐 아니냐 논란이 되고 있는 즉석밥 용기는 재활용이 잘되는 피피(PP·폴리프로필렌)가 95%다. 피피에서 다른 재질(EVOH·에틸렌비닐알코올)을 떨어지게 하는 기술도 이미 개발돼 있다. 그러면 피피로 분류하되 재활용 분담금을 올리든지 해야지, 1%라도 다른 재질이 섞여 있다고 기타로 분류해 재활용이 어렵게 만드는 게 옳은 일인가.”
포장재에 재활용 페트를 30% 사용했다는 표시가 있는 스위스의 생수병. 국회입법조사처 ‘1회용 포장재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보증금 제도 도입 방안’ 갈무리.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1회용 포장재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보증금 제도 도입 방안’(김경민 환경노동팀 입법조사관) 보고서를 보면, 유럽에선 일회용 포장재에까지 빈 용기 보증금을 내게 한다. 한국은 소주병 등 재사용이 가능한 유리 용기 일부에만 이를 적용하고 있고, 내년 6월10일부터는 자원순환보증금으로 이름을 바꿔 일회용 컵으로도 확대할 예정이다. 유럽에선 포장재를 만들 때 재활용 페트(R-PET)를 현재 30%, 2025년 65%, 2030년 70%까지 반영하도록 권고하고 이를 포장재에 표시하고 있지만, 한국엔 그런 제도가 없다. 이 차이는 무엇을 뜻할까?“생수병을 만들 때 들어가는 재질에 재활용 페트 할당률을 정해주면, 생수를 파는 업체는 다 쓴 생수병을 찾고 모아 재활용하는 데 힘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환경 보호에 동참하지 않는 업체의 제품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도록 국가가 방안을 마련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겐 무역장벽도 될 수 있다. 아무리 우리 생수가 품질이 좋아도 생수병의 재활용 페트 할당을 지키지 못하면 수출을 못 하거나, 일본에서 폐페트를 사와야 한다. 환경부를 비롯해 정부가 환경을 환경만이 아니라 경제로도 이해하고 지금까지 해온 정책 대응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이유다.” 국회입법조사처 쪽의 설명이다.나는 꽤 고된 혼자만의 ‘정보전’ 끝에 소프넛으로 빨래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베이킹소다 등 천연 분해 성분으로 만들었다는 친환경 세제를 선택했다. 나처럼 조금씩 노력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그들은 오늘도 플라스틱 튜브 치약과 기타 칫솔 대신 고체 치약과 대나무 칫솔로 양치를 하고, 미세플라스틱이 떨어져 나오는 샤워타월 대신 삼베 타월을 쓴다. 선별이 어려워 재활용도 어렵다는 병뚜껑 같은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모아 ‘플라스틱 방앗간’에 갖다주고, 스티커 대신 레이저로 과일·채소 껍질에 글씨를 새겨 ‘라벨링 프리’를 실천하는 기업이 한국에도 생기길 소망한다. 자, 이제 ‘트렌드’에 촉각을 세우는 기업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들이 답할 차례다.
스티커를 붙이는 대신, 채소나 과일의 표면에 레이저로 상표 등을 새기는 ‘라벨링 프리’ 고구마를 네덜란드 식품 기업 ‘네이처 앤드 모어’ 직원이 들어 보이고 있다. 네이처 앤드 모어 누리집 갈무리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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