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아이를 사업가로 키울 계획인데 왜 노동교육을 받아야 하느냐?”
작년 11월 21일 서울시교육청 학교 노동인권교육 포럼에서 어느 학부모가 했던 질문이라고 한다. 저 질문을 보니 2012년 봄에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서 노동법을 학부생 대상 교양과목으로 개설하기 위해 준비하느라 정리한 내용들이 떠올랐다. 왜 노동법이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보편적인 교양과목이 되어야 하는가? 과목 개설 여부를 결정하게 될 학교 행정담당 부처에 대해서, 과목이 개설되면 당장 수업을 해야 하는 교수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향후 강의를 듣게 될 학생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논리적인 답이 필요했다. 당시 필자가 교양과목 개설신청서에 기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다양한 직업세계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크게 분류하여 보면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 누군가를 고용하여 임금을 주고 일을 시키면서 자신의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있거나 누군가를 고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사업을 경영하거나 일을 하는 사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일하는 이른바 ‘임금근로자’이다. 이러한 점은 2012년 1월 현재 우리나라 취업자 수가 2373만2천명인데 이 중 72.4%에 해당되는 1718만4천명이 임금근로자라는 공식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의 일상생활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노동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혹은 노동법의 적용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임금근로자가 아니라 창업을 통해 사업주가 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타인을 고용하여 임금을 지급하고 일을 시킨다면 결국 근로자와 법률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사업을 경영하면서 법을 준수해야 함은 물론이고 특히 근로자와의 관계에 적용되는 노동법을 준수하여 합법적이고 안정적인 인사노무관리를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오늘날 노동법은 직업세계에서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할 필수적인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내지 취업자 수 대비 임금근로자가 약 70%에 해당된다는 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렇게 거친 수준의 통계로만 보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임금근로자로서 생활을 영위하고, 사업주가 되면 임금근로자를 고용하게 될 수 있으며, 설령 1인 사업주라 하더라도 오늘날에는 1인 사업주가 노동법상 근로자에 해당될 수 있는지 아닌지도 자주 다투어진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70%가 임금근로자
사업주라 해도 노동인권교육 필요
노동과 노동인권에 대한 존중 교육해야
한편, 노동인권교육이라는 것이 단지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권리에 대해서만 다루는 것으로 생각하며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노동자의 법적 권리에 관한 내용이 중요한 교육 내용으로 포함된다. 그렇지만 노동인권에 대해 배운다는 것은 단지 지식을 배우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역시 필자가 교양과목 개설 신청서에 썼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노동법은 본래 ‘일하는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데에 그 근본적인 바탕을 두고 형성, 발전되어 왔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시작된 이후 오랫동안 근로자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적정한 임금 지급, 적정한 근로시간 보장 등을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고 그 산물이 오늘날의 노동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도 여성, 비정규직, 청소년, 고령자, 장애인과 같은 이른바 취약계층 근로자들에 대한 보호와 노동인권 향상을 위한 문제의식과 개선노력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노동법 교육은 인권의식 함양의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오늘날 국가 간의 교류와 거래가 긴밀하고 활발해짐에 따라 유사한 경제수준에 있는 국가들의 노동법은 어느 정도 유사한 수준으로 맞추어져 가는 통일적, 세계적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설립된 이후 적정한 수준의 국제노동기준 마련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 왔고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국가 간 무역과 노동기준을 연계시켜야 한다는 이념이 발전됨에 따라 이제는 보편적인 국제노동기준을 준수하지 않고는 국제거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FTA협상에서도 상대국의 노동법문제가 중요한 이슈로서 다루어지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다국적기업의 국내진출과 우리나라기업의 해외진출 등이 활발해짐에 따라 국경을 초월하는 인력이동과 그에 따른 국제노동법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도 보편적인 국제노동기준과 우리나라 노동법의 관계에 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개설 과목이 노동법이다보니 ‘노동법’만 언급하기는 했지만, 결국 노동법이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는 노동에 대한 존중, 노동인권의 존중이다. 많은 학생들이, 더 나아가 학생이 아니라도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노동법과 노동인권에 대해 배우고 생각해볼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필자의 소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노동인권을 배우는 것은 단지 법 조항 내용과 같은 지식만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인권이 형성, 발전되어온 역사 속에 깃들여 있는 인간에 대한 존중, 아름다운 연대의 의미 등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노동인권교육 내용 안에는 노사협상 과정에서의 대화와 타협, 노동자의 입장과 사용자의 입장에 대해서 두루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자세 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여 노사자치와 대화의 중요성을 배우는 계기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노동인권교육은 일방적인 권리주장만이 아니라 권리의 이면에는 의무가 있다는 점, 일터에서 상급자와 하급자간의, 동료 상호간의 존중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두루 배울 수 있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인권교육은 단지 노동자가 될 아이들만이 아니라 사업가가 될 아이에게도 필요하고, 더 나아가 끊임없이 노동자들의 노동을 통해 생활을 유지해 갈 수 있는 사람들 모두가 노동인권의 의미와 내용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몇 년간 ‘노동존중사회’라는 용어를 내세워 왔지만, 진정한 노동존중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단지 법과 제도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자세가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과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 노동인권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얼마 전 “노동인권교육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2108658, 제안일자:2021. 3. 9, 제안자:이수진 의원 등 10인)이 발의되었다. 이 법률안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노동인권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시책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는 점, 고용노동부장관은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학교 교육과정에 노동인권교육에 관한 내용을 포함될 수 있도록 교육부장관에게 요청할 수 있으며, 요청을 받은 교육부장관은 이를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점, 사업주는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노동인권교육을 실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점 등이 명시되어 있다. 법안 검토와 법제화 과정, 향후 법이 통과된다면 그 적용 과정 등을 통해 노동인권교육의 진정한 의미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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