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현 기자 cjh@vop.co.kr
‘131주년 세계노동절’을 앞두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문재인 정부 하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라는 배경 속에서 이번 노동절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총파업이 추진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짚었습니다. 올해 양 위원장이 취임한 후 민주노총이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사업과 풀어야 할 과제도 소개합니다.
[인터뷰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노동자 지위 향상돼야 한국사회 불평등 해소”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전국을 돌며 각자의 일터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는 ‘총파업 대장정’을 한 지 열흘이 넘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가진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도 가까스로 잡은 일정이었다. 양 위원장 자신도 비정규직 노동자였지만 그보다 더 처참한 노동의 현장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곳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한 광업사업소였다.
“60년대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어요. 모든 노동자들이 정말 온몸을 숯검정으로 뒤집어쓰고 있었고, 여성 노동자가 망치질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최저임금을 주고 있었고, 석탄공사 소속인데도 사양 산업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비정규직 직접고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어요. (노사간) 교섭조차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고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핑계로 노동자들을 한순간에 해고한 곳도 있었다. 더 기막힌 건 코로나19 이전에도 고용이 굉장히 불안정했다는 것이었다. 그곳은 한국조폐공사였다.
“공공기관인 조폐공사에서 여권 발급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과거에 어떻게 일했는지 얘기를 들어보면 깜짝 놀랍니다. ‘네이버밴드’(모임 어플리케이션)를 통해 다음날 출근자 명단이 올라오면 그 사람들만 출근하는 방식이었던 거예요. 실제 고용돼있지만 마치 일용직처럼 일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여권 발급 업무량이 줄어들자 이들을 아예 해고했어요.”
양 위원장은 “이런 잔인한 일들이 한국사회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이번 ‘총파업 대장정’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가슴이 많이 아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현장 조합원들은 이 사회가 이대로 지속되어선 안 된다는 분노를 굉장히 많이 표출하고 있고, 그래서 총파업 투쟁을 하자고 제안하니 모두가 ‘당연히 해야 한다’며 흔쾌히 동의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불평등, 갈아엎자’ 구호 내걸고 거리로 나서는 노동자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지난해 노조를 결성하고 생활임금 지급을 요구하다가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게 됐다. 원청인 S&I코퍼레이션이 지난해 12월 31일부로 청소노동자들이 소속된 하청인 지수I&C와의 계약을 종료하면서도 청소노동자들의 고용승계는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청소노동자들이 한파 속 점거농성을 벌였는데, LG트윈타워 측이 전기를 끊고 음식물 반입을 막았다가 큰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도 모자라 청소노동자들의 구심점인 노동조합 와해 시도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
민주노총이 5월 1일 전국 동시다발로 ‘131주년 세계노동절’ 대회를 개최하면서도 LG트윈타워 앞에서 이를 집중하기로 한 이유다. 양 위원장은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은 올해 1월 1일부로 해고된 노동자, 여성 노동자, 최저임금 노동자”라며 ‘코로나19로 고통을 받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양 위원장은 “100년이 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차별과 착취를 당하고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고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 일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바뀌고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의 삶이 변한다는 것”이라며 “노동절을 계기로 사회적 인식 자체도 많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노동절을 맞아 민주노총이 내건 핵심 구호는 ‘불평등, 갈아엎자’이다. 민주노총은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자는 전 세계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들은 불평등 문제에 직면한 당사자들이다. 그런 만큼 노동자들이 앞장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양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바라는 ‘포스트 코로나’는 불평등이 해소되는 사회”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재난이 불평등을 가속화시킨다는 공식을 깨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재난은 아직도 불평등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 위원장은 해소해야 할 불평등의 대표적인 문제로 소득, 교육, 자산의 불평등을 지목했다. 이중 소득의 불평등은 비정규직 차별 문제에서도 기인한다.
그는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온전히 노동의 기본권을 보장받고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며 “그래야 노동자들의 지위와 권한이 향상될 수 있고, 한국사회 불평등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평등에 맞서 싸우려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용이 잘못되면 옳은 방향이라고 할 수 없다”
“사회구조 전환, 어느 방향이냐가 중요한 문제”
이에 민주노총은 오는 11월 총파업을 결의했다. 양 위원장은 전국을 돌며 조합원들을 직접 만나 총파업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총파업은 내년 초에 치러질 대선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하나로 모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선의 의제로 올려놓겠다는 구상이다.
양 위원장은 “지금은 정부도 그렇고 사용자도 그렇고 모두가 사회구조가 전환되는 시점이라고 이야기한다”며 “그 전환이 어느 방향으로 될 것인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IMF 시기에 정리해고, 구조조정, 파견법이 생기면서 비정규직이 대량 양산되고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사례를 들면서 “이번에도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이 투쟁을 통해 관철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또다시 수십 년간 고통 속에 살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런 문제들을 제기해 대선에서 의제화하고, 그것을 정책화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총파업에 힘이 붙는 건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정부’를 표방해놓고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탓도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조약 비준 등 문재인 정부 공약만 봐도 그렇다. 양 위원장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사실상 중단됐고, (원청이 아닌) 자회사로 (비정규직을 직접고용하는 것으로) 왜곡됐다”며 “ILO 핵심 조약 비준을 위해 노동법을 개정했지만 독소조항이 많이 들어간 ‘개악’을 했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공약도 마찬가지다. 양 위원장은 “최저임금은 문재인 정부 임기 초반 두 해에는 가파르게 올라갔지만 4년간 평균을 내보면 과거 보수정부와 인상률이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시간도 우리 사회는 주 40시간을 요구해왔는데 주 52시간으로 돼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들어 탄력기간, 단위기간이 확대되면서 오히려 노동시간을 늘린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방향을 올바르게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내용이 잘못되면 옳은 방향이라고 할 수 없다”며 “문재인 정부가 이야기한 ‘노동존중 사회’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고 본다”고 성토했다. 또 “스스로 과거에 진보적이었다며 지금도 진보적이라고 믿어 달라고 하는 건 오만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민주노총이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즉 노사정 대화에 합류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노동자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 그럴 수 있다는 신뢰도 없다는 것이다.
양 위원장은 “노사정 대화가 가능하려면 적어도 정부가 균형감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신뢰가 축적돼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지금 정부는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균형감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그는 “국회도 일정 정도 노동자 편에 있는 국회의원들이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구조여야 할 것이고, 시민사회의 역량도 지금보다 훨씬 더 커져야 한다고 본다”며 “그래야 사회적 대화라는 틀 자체가 균형감 있는 논의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렇지 않고 기울어져 있는 자리에서 노동자가 들어가 이야기를 하면 한두 가지를 얻고 일고여덟 가지를 빼앗길 수밖에 없을 상황”이라며 지금은 노사정 대화가 아닌 노정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노동자와 정부가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사용자를 끼워 같이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양 위원장은 “교섭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며 “우리는 노정교섭을 요구하고 있고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만남도 요구했다. 지난 3월 15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과의 만남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혀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민주노총이 대화를 거부한 게 아니라 정부가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의 투쟁은 노정교섭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노정교섭 자리에서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양 위원장은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남기고 싶은 성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민주노총이 다시 잘 싸우는 조직이 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는 “민주노총이 결심하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만들어지면 굉장히 좋을 것 같다”고 부연했다. 단결된 노동자의 위력을 전방위에 알리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단 10명이 모여 시위를 하는 것조차 쉽게 허용되지 않고 있다. 실제 민주노총은 5월 1일 노동절 대회를 위한 집회신고를 마쳤지만,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경찰로부터 제한 통고를 받은 상태다. 민주노총은 단결된 노동자의 위력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양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코로나 확산 방지해야 한다는 데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과도하게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문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밀폐된 공간에서의 회의는 허용하고, 열린 공간에서의 집회는 그보다 적은 인원으로 제한하는 것은 굉장히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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