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준·전현진 기자 seirots@kyunghyang.com
입력 : 2021.04.07 06:00 수정 : 2021.04.07 06:01
디지털 수사를 어떻게 해야할까
한국의 수사기관들이 하고 있는 전자정보 압수수색 방식에
인권침해 논란이 이는 이유는 관련 법률과 법원 판례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국회는 아날로그 정보 시절의 낡은 형사소송법을 방치하고 있고,
법원도 범죄 처벌 여론에 밀려 제대로 된 감시자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전자정보 압수수색의 개선 과제를 정리했다.
수색영장과 압수영장 분리
수색영장과 압수영장을 분리해 발부하자는 제안이다. 현재 검찰은 혐의를 두루뭉술하게 적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고 법원도 그대로 발부한다. 이렇게 광범위한 전자정보를 확보하게 되는 수사기관은 자그마한 혐의라도 찾아내 별건수사를 벌일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뇌물죄로 수사받는 피의자의 카카오톡 메시지 전체를 압수해, 당초 혐의와 관계없는 세금포탈이나 성범죄 혐의도 수사할 수 있다. 특히 범죄와는 무관한 사적인 정보도 모두 수사기관 손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전자정보에 대한 수색영장을 다소 넓게 발부하고, 여기서 찾아낸 혐의 관련 증거만 압수토록 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현행 형사소송법에도 수색 과정(제106조)과 압수 과정(제109조)은 나누어져 있다. 그래서 검찰도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수사에서는 수색영장만, 정보위치가 공개된 공공기관에는 압수영장만 청구해서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 수사에서는 압수수색영장으로 묶어서 청구하고 받는다. 통째로 압수하고 그다음에 수색하는 식이다.
대법원이 형사절차 개선 작업을 벌이던 2007년 서울중앙지법이 수색영장만도 발부하기로 결정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수색영장과 압수영장 분리를 정착시키려면 수색 이후 보존명령을 내리도록 제도를 바꾸는 게 좋다고 법조계는 설명한다.
수색영장과 압수영장이 분리되면 수사가 수월해진다는 견해도 있다. 지금도 언론사, 정당, 노동조합 등은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실력으로 막는다. 이 기관들은 언론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가 포괄적인 압수의 필요성보다 크다고 주장하고, 학계도 이를 지지한다. 수색영장과 압수영장이 분리되면 이러한 주장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디지털 별건수사 사전봉쇄
법원 영장 발부에 문제 제기 못해
범죄와 무관한 정보는 보호 마땅
‘수색 후 보존’식으로 제도 바꿔야
수사기관이 압수한 정보를 근거 없이 저장하고 이를 향후 별건수사에도 활용하고 있어 법으로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경찰청과 대검 등 수사기관은 피의자나 참고인 등에게 압수하거나 임의제출받은 스마트폰과 하드디스크 등의 전자정보를 복제(이미징)해 보관하고 있다. 검찰은 2012년 4월 전국디지털수사망(D-NET)을 구축해 전자정보 이미징 데이터 14만1739건을 저장해왔다. 이 가운데 35.2%인 4만9942건은 지난 2월 기준으로 여전히 서버에 있다. 남아 있는 데이터 중에는 2012년에 저장돼 9년째 보관 중인 자료도 439건이나 된다. 한번 저장된 자료는 다른 검찰청이나 검사 개인 저장장치에 복제되기도 한다.
검찰이 압수한 전자정보를 D-NET에 저장하는 법률적 근거는 없다. 대검 내부 예규가 있는데 2017년에야 폐기사유를 정했다. 하지만 폐기를 결정하는 주체는 검사 자신이고 예외도 지나치게 넓다. 가령 “재심청구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하여 형이 확정된 때로부터 10년간 보존할 수 있다”는 특례 규정이 있다. 하지만 데이터 보존이 정말로 재심청구를 위해서라면 데이터가 삭제된 사건은 재심청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재심청구는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근거로 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특례 규정은 데이터를 통째로 남기려는 구실에 불과하다”고 했다.
대검은 이에 대해 “D-NET에 저장되는 전자정보는 권한을 부여받은 수사팀만 접근할 수 있을 뿐 그 외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등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검사들이 D-NET의 정보를 압수해 재판에 증거로 내는데, 어떻게 정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체포 상태에서 임의제출 불법화
휴대전화는 ‘칼·몽둥이’와 달라
체포 상태서 임의제출 못하게 해야
데이터 복제·저장도 ‘제동’ 필요
긴급체포나 현행범 체포 등 특별한 경우에는 영장 없이 사람을 체포할 수 있다. 그리고 피의자가 임의제출하는 칼이나 몽둥이 등 범행도구는 증거로 쓸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영장 없는 체포 상황에서 임의제출이 가능한 범행도구에 휴대전화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판단은 수사기관이 피의자에게 휴대전화 잠금장치 암호를 대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합법으로 만든다. 수사기관이나 하급심 법원이 휴대전화는 진술과 관련된 기억장치가 아니라 범죄에 사용되는 칼이나 몽둥이라고 대법원 논리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휴대전화 임의제출을 가능케 하는 대법원 판결이 바뀌어야 한다는 비판이 법원 안에서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은 2019년 필로폰 거래 수사에서 긴급체포된 피고인이 임의제출한 휴대전화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주거지 압수·수색도 시간 제약 등으로 무제한 수색은 어려운 반면 휴대전화에는 범죄와는 무관한 개인의 삶 전반에 관한 정보가 있다. 휴대전화의 무제한 탐색은 주거지를 아예 수사기관에 내어주어 수사기관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몇 번이든지 수색을 허용하는 것에 비견된다. 휴대전화에는 종전에 수사기관이 아무리 피의자의 주거를 샅샅이 수색하더라도 발견하지 못하였을 것임이 분명한 민감한 사생활이나, 수사기관이 쉽게 체계화할 수 있는 전자정보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도 높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고법에 올라가 있다.
대법원 판례에 대한 하급심 판사들의 문제 제기는 불법촬영 사건에서 많이 나온다. 증거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하면 여론이 강하게 비난한다. 의정부지법 관계자는 “적법절차 원칙은 진보·보수 관계없이 모두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인 만큼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제3자 통한 우회압수 통제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를 통한 개인정보 압수수색은 법률과 법원의 통제를 우회한다. 이 때문에 미국과 독일 등에서는 위헌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의 이름, 주민번호 등 통신자료가 수사기관 요청만으로 제공된다. 사정이 비슷하던 독일은 지난해 이러한 정보 획득에 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구체적 위험이나 혐의가 없으면 통신자료를 받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가입자의 실시간 위치 자료는 영장이 아닌 허가로 확보가 가능하다. 영장은 헌법에 정해진 형사절차이지만 허가는 민사·가사 등 여러 절차에 쓰인다. 2018년 한국 헌재는 위치추적을 허가하는 게 합헌이라 했고, 같은 해 미국 연방대법원은 위헌이라고 했다. 법원 명령(Court Order)이 아닌 영장(Warrant)을 받으라고 했다.
e메일이나 메신저 대화 내용은 판사의 영장을 거쳐 압수되지만, 피압수자의 권리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게만 적용된다. 압수수색 과정에 참여할 권리나 무엇이 압수당했는지 파악할 권리가 당사자(가입자)에게는 없다. 당사자는 나중에야 압수 사실을 알게 되는데, 검찰이 기소나 불기소 결정을 내린 뒤이고, 그것도 수사기관이 통지해준다.
박용철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 서버에 대화 내용이 있는 경우 당사자가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사전에 통지받지 못할 뿐 아니라 집행절차에도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결코 적법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면서 “당사자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실무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렌식과 수사 과정 분리
압수수색 현장에서는 수사기관이 변호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검사들은 포렌식 전문가와 함께 압수수색을 하지만 변호사들은 기술 전문가를 참관시키지 못한다. “압수수색 현장에 로펌 디지털 전문가가 있으면 검사가 나가라며 소리를 지른다. 변호사만 있으라고 한다. 다른 층에 가 있는 전문가에게 전화로 물어봐야 한다.” 로펌 변호사들 설명이다. 그나마 디지털 전문가가 있는 로펌은 손에 꼽힌다. 2009년 미국 제9연방항소법원은 포렌식과 수사 과정을 분리하라고 판결했다. 수사를 직접 담당하는 수사관은 증거분석 과정에 개입할 수 없고, 디지털 포렌식 요원에 의하여 분리된 증거에만 접근하도록 했다. 한 전직 대법관은 “압수수색 현장에 오히려 변호인이 디지털 전문가와 함께 참여토록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법원의 압수수색영장 발부에 이의를 제기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현재는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가 없다.
구속영장은 여러 차례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영장심사, 구속적부심사, 보석청구 등에서 가능하다. 이와 달리 압수수색영장은 발부되면 그걸로 끝이다. 이에 대해 전자정보 압수가 인권침해 우려가 큰 만큼 이의제기를 인정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다만 증거인멸 등을 막기 위해 수사기관이 증거를 보존하도록 해주자는 전제를 달 수 있다.
조성훈 변호사는 “본안 재판에 가서 위법한 증거라고 주장해도 범죄의 중대성 등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고, 그 전에 압수수색이 영장 범위를 벗어났다고 준항고를 해도 이미 정보가 검찰 손에 들어간 다음”이라며 “압수수색영장의 적정성 여부도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다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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