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책 <지방부활시대> 쓴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야 한다'는 속담은 옛말이 아니다. 전국 223개 기초자치단체 중 절반 가까운 97개 도시가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서울로, 서울로 향한다. 텅 빈 마을을 보고 '골다공증 걸린 한국'이라는 한탄과 자조가 쏟아진다.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펴낸 <지방부활시대>는 지방소멸시대에 대한 역설이다. 지난 1일, 한 시간여의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먼저 한국 사회가 매우 희소한 질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농어촌 지역은 점점 더 위축되고 대도시 지역은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건 전 세계가 공통적이에요. 하지만 한국처럼 수도 서울이라는 한 곳에 모든 권력과 자본과 문화가 모두 집중된 그런 나라는 없습니다."
장 교수의 지방소멸 핵심 처방 "서울에 기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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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은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오른쪽은 장 교수가 펴낸 책 <지방부활시대> 앞표지 | |
ⓒ 장호순/당진시대미디어협동조합 |
'지역사회'와 '언론'을 주제로 한 우물을 파온 장 교수의 '지방분권론'은 놀랍지 않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지방소멸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신선하다. 그는 '왜 지방부활을 위한 수많은 대안이 실현되지 못하는가'를 한참 동안 설명했다.
그가 내놓은 핵심 처방은 '서울에 기대지 말라'는 것이다.
"왜 지방분권이 실현되지 않았을까요. 지역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게 아니라 서울 사람들이 해결해 줄 거라는 의식이 가장 큰 요인입니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의 문제를 해결해줄까요? 역사를 보면 한 국가 내에서 한 지역의 문제를 이웃 지역에서 해결해 주지 않아요. 다른 나라의 문제를 옆 나라가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서울 사람들이 해결해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면 지방은 소멸하지 부활하지 않는다는 게 이 책의 핵심 주제입니다."
그는 지역 인재를 서울로 많이 보내는 학교가 '좋은 학교'로 평가되는 현실을 예로 들었다.
"무작정 서울 상경하거나 서울에 정착해 성공한 모델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죠. 지방의 엘리트들도 '지방은 소멸하지만 나는, 내 자식들은 서울 가서 성공할 수 있어' 하고 생각하죠. 지방에서 '좋은 학교'의 기준은 아이들을 서울로 많이 보내는 학교죠. 지방정부에서는 그런 학교에 수많은 지원을 하고, 서울지역 대학에 다니는 학생을 위한 기숙사도 만들어주고 장학금도 주죠. 지역에 남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열등감을 주는 일인데도 말이죠."
역대 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장 교수는 정책 주도 세력이 누구인가를 중심으로 주제를 풀어냈다.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 지역균형발전, 지방분권 정책은 핵심 공약으로 항상 등장했고 추진됐죠.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요. 왜일까요? 노무현 정부는 정책을 주도한 사람들이 지방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니 내용도 진정성이 있었고 일정한 성과도 있었죠. 노무현 정부 이후에는 진정성이 없는 정치적 수사와 속 빈 공약으로 채워졌어요. 그러다 보니 지방 사람들도 큰 관심이나 기대를 하지 않게 됐죠."
"지방대학=문화적 열등감 상징... 청년이 가장 큰 희생자"
그는 문재인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대해서도 "지방자치법 개정과 자치경찰제 도입 등으로 진전이 있긴 하지만 근본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고 진단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인해 훼손되긴 했지만, 과거 노무현 정부가 뿌려놓은 씨앗이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 때에는 '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죠. 하지만 기대가 현실화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방자치법 일부를 개정하고 자치경찰제도 도입했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서울과 지방의 구조를 바꾸는 것까지 이르지 못했어요. 새롭고 안정적, 효율적, 경쟁력 있는 지방분권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어요. 지방분권 개헌조차도 추진이 되지 않았어요."
▲ 서울 도심에 밀집해 있는 아파트의 모습들 | |
ⓒ 이희훈 |
장 교수는 <지방부활시대> 책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 문제를 예로 들며 '서울에 있는 진보 좌파들의 지방에 대한 배신' 또는 '자해성 정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부동산 문제만을 보면 여러 가지 정부 대책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한민국 사람들 누구에게 물어봐도 얻을 수 있는 답변입니다. 서울의 아파트값이 왜 그렇게 과도하게 비쌀까요? 투기, 금리에 핵심이 있는 게 아니라 서울에 너무 집중돼 있기 때문이죠. 돈도, 문화도, 직장도, 학교도 서울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서울에 몰릴 수밖에요.
근본 대책은 뭐냐. 결국은 서울을 분산시켜서 지방의 청년들이 서울로 가지 않도록 정책을 만들어 주는 정책이 병행돼야죠. 그런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죠. 해법으로 내놓은 게 수도권에 신도시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니 자해하는 거예요. 너무 비만해서 건강이 나빠지고 있는데 더 비만해지는 거죠."
그는 "지방소멸시대의 가장 큰 희생자는 청년"이라며 청년들을 지역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학문화 복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가능성은 회의적"이라고 전망했다.
"지방대학 육성과 좋은 일자리를 지역에 만드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빠진 게 있어요. 지금 청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돈 없고 배고프고 집이 없는 것보다, 주류에서 멀어져 비주류가 되고 사회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정부에서 많은 돈을 들여 재래시장에 청년 창업하게 하는 사업을 많이 했는데 성공한 게 거의 없어요. 문화적인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문화정책을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각 지역에 있는 대학들이 문화적인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이미 지방대학이 문화적 열등감의 상징이 돼버렸거든요."
"미디어 권력 분권 위해 '지방 독립투쟁' 나서야"
▲ KBS 여의도 사옥 전경 | |
ⓒ KBS |
그가 내놓은 지방소멸 원인과 지방부활 방안은 모두 '언론'이다. 그는 대한민국을 서울공화국으로 만들어 지방소멸을 부른 주원인으로 주저 없이 언론을 꼽았다.
"한국의 언론은 지방분권에, 지방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서울 대 지방을 보면 인구는 1대 4로 지방에 사람이 더 많아요. 인구로만 보면 지방이 훨씬 유리하죠. 80%의 사람들이 지방 사람들인데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대부분 언론이 서울의 기득권 수호에 매몰돼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주민들을 대변하고 지역의 이익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언론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언론들이 없다는 거예요. 서울 중심 언론이 서울공화국 체제를 호위해줬죠."
그는 이 책에서 미디어의 분권을 제2의 민주화운동, 독립투쟁이라고 썼다.
"지금 전국의 모든 시민이 언론에서 서울시장 선거 뉴스를 보고 있어요. 충남이나 대전에 살면서 충남도지사나 대전시장 이름은 몰라도 서울시장 이름은 대부분 알고 있죠. 한국에서 민주화 투쟁이 있었지만, 미디어 영역에서는 지방 사람들이 자기 주권을 n분의 1만큼 행사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 표를 다 서울 사람들이 행사하고 있어요. 이제 독립운동을 할 수밖에 없어요."
미디어 분권을 어떻게 실현하자는 걸까?
"미디어 권력 구조를 지방분권 구조로 바꿔야 정치 권력도 지역 중심 권력으로 바꿀 수 있어요. 이를 위해 우선 KBS, MBC 방송 정도만이라도 지방분권을 할 필요가 있어요. 방송국 이사회와 각종 미디어 정책 기구 이사회부터 지역 인사를 배치하라는 겁니다. 고향만 지역 출신인 사람 말고요. 또 포털 사이트에 일정 비율의 지역 뉴스 게재를 의무화하라는 겁니다."
장 교수의 책은 '당진시대 방송미디어협동조합'에서 펴냈다.
"이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은 지난 5년간 지역 언론에 쓴 칼럼을 수정·보완해 새로 정리한 겁니다. 그래서 책도 지역 주간지와 같이 만들고 싶었는데 마침 당진의 지역 언론 미디어협동조합에서 출판업을 하고 있어 이곳에 책을 맡겼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제 편리함을 위해서 서울 출판사를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언론 분야도 서울 집중도가 높지만, 출판업도 서울 또는 수도권과 다름 없는 파주에 쏠려 있더군요."
그의 지방부활 시대를 위한 마지막 당부의 말은 지역주민들을 향했다.
"지방민들의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바꿔야만 기대하는 지방부활 시대가 가능합니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의 지방분권 청사진도 필요하긴 하죠. 궁극적으로는 지방 사람들이 자기 지방의 문제를 나를 위해서, 내 후손을 위해서, 내가 사는 지역을 위해서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방독립투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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