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글을 시작하면서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절집이 문을 닫은지도 벌써 한 달을 훌쩍 넘겼다. 예정된 모임·세미나·토론회·행사 등 모든 것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면서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머무는 공간마저 오가는 발길이 뚝 끊어지면서 그야말로 절간같은 고요함이 가득한 적막강산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누려왔던 일상생활과 늘 만나던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알게 한다.
» '기도가 중단됐다'는 제목으로 전세계 각 종교들의 시설 폐쇄를 보여준 독일의 차이트지. 불교로는 한국의 불국사 사진이 실렸다.
2.이야기 하나
자가격리 시간이 길어지면서 중앙재난안전본부는 말할 것도 없고 각 구청마다 핸드폰을 통해 주의사항 전달과 확진자 발생 상황을 속속 알려주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확진판정 보다는 주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고육책인 사생활 동선 공개가 당사자를 더 두렵게 만든다는 의견도 적지않다. 확진자가 될까봐 무서워 집에만 머물렀더니 ‘확찐자(살이 확 찐자)’가 되었다는 농담도 웃픈(웃음+슬픔)현실이다. 또 여기저기서 우울감을 호소하는 문자들이 더러더러 날아온다. 봄이 와도 봄이 아닌 문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 까닭이다. 봄꽃이 아름다운 명소마다 축제를 취소한다. 그럼에도 봄나들이 오는 자연발생적 인파 때문에 급기야 ‘제발 오시지 말라’는 지역주민들의 당부도 뉴스 아닌 뉴스거리가 되었다. 벚꽃으로 유명한 경남 창원시 진해구는 아예 벚꽃명소 자체에 접근할 수 없는 시설을 추가하는 극약처방까지 내렸다. 조지훈 시인은 ‘꽃이 지기 때문에 울고싶다’고 했는데 올봄에는 ‘꽃이 피니 차라리 울고 싶다’로 바꾸어야 할 것 같다.
» 벛꽂치 한창인 경남 진해에 사람이 없이 벚꽃만이 홀로 피어있다.
3.이야기 둘
사회적 거리는 어쩔 수 없이 멀리 할지라도 심리적인 거리는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글과 사진 그리고 그림들이 수시로 올라온다. 그 가운데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한 코로나 퇴치부적도 등장했다. 때로는 의학적 지식보다는 주술이 더 위로가 될 때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저기 퍼날랐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했던가. 스스로를 가두고서 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다면 이 시간도 결코 나쁘지는 않겠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밀쳐두었던 책에도 손이 간다. 지인들에게 문자도 친절하고 길게 그리고 자주 보내게 된다.
4.이야기 셋
TV뉴스는 방송사마다 시작도 중간도 끝도 오로지 코로나 이야기 뿐이다.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국제적 공식명칭인 ‘코비드19’를 우리나라는 ‘코로나19’로 명명했다는 기사를 만났다. 명칭변경을 통해 이름 속에 위기체감지수를 더하려는 지혜로움이 알게 모르게 투영된 것이다. 그 와중에 의도하지 않는 곳으로 유탄이 날아가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코로나’ 라는 이름으로 인하여 애궂은 ‘코로나맥주’가 울상이라고 한다. 차라리 다른나라처럼 ‘코비드’ 라고 불렸으면 한국시장에서 이 정도로 죽을 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온다. 코로나 맥주의 원산지가 멕시코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나름의 소득이라면 소득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름도 시운을 잘 타고나야 한다.
5.이야기 넷
졸지에 코로나19 매개체로 지목된 ‘천산갑(穿山甲)’도 억울하긴 매한가지다. 활과 칼로 전쟁하던 시절에 갑옷을 만들 때 가장 선호하던 재료였다. 등껍질은 얼마나 단단한지 화살도 뚫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품갑옷 덕분에 무협지에나 그 이름이 등장하던 희귀동물이다. 그런데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느닷없이 ‘코로나 범인’이라는 모함을 뒤집어 씌운 것이다. 코로나 덕분에 아는 사람이나 알던 동물이 졸지에 유명해졌다. 갑옷입은 고슴도치 같이 생긴 사진까지 올라왔다. 식도락가들의 보양식품이래나 뭐래나.
6.이야기 다섯
한동안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로 인하여 전국민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마스크는 이제 생활패션으로 자리잡았다. 얼굴을 가리는 것이 일상화되다보니 상대적으로 눈이 도드라지게 보인다. 여성들의 눈 부위 화장품이 많이 팔리는 때아닌 호경기를 누린다고 한다. 이제 눈매만 보고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멀리서도 알아봐야 한다. 그런 신통력을 갖추어야만 실례와 실수없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복면시대’가 온 것이다.
7.이야기 여섯
절집의 전염병 얘기에는 경허(1849~1912)선사가 빠질 수 없다. 계룡산 동학사에 머물 때 충남 천안지역을 지나가게 되었다. 콜레라(호열자)가 번지면서 곳곳에 시체가 즐비한 모습을 목격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자 혼비백산하여 그 지역에서 도망쳤다.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수자상(壽者相)’이라고 금강경은 말한다. 이런 참담한 체험을 통해 진정한 구도자로 거듭났다. 죽음에 대한 명상을 통해 인생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계기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 선의 중흥조 경허선사
8.마무리를 지으며
자가격리로 인하여 주변에 수도 없이 많은 ‘코로나19 데카메론’ 이야기가 쌓여간다. 중세시절 페스트(흑사병)가 유행할 때는 격리 말고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이탈리아 피렌체 교외에 있는 별장에 모인 10여명의 격리자들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심심함을 달래기 위하여 썰을 풀었다. 그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데카메론』이다. 전염병의 어려움을 함께하면서 나눈 대화가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 시절 보카치오(1313~1375)처럼 주변에서 듣고 경험한 ‘코로나 데카메론’ 몇 편을 정리하고 나니 코로나 발생지인 중국 우한(武漢)의 봉쇄가 풀릴 예정이라는 외신이 뜬다. 이제 4월이 되면 모든 일상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 중세 페스트를 피해 피렌체 외곽 별장에 모여 데카메론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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