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0.03.24 07:18 수정 2020.03.24 07:18
▲ 맨하튼 5번가에 배달용 자전거 한 대만이 지나고 있다. ⓒ 최현정
1만5793명. 22일(현지시각) 일요일 밤 10시에 발표된 미국 뉴욕주의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다.
이는 미국 전체 3만3276명의 절반이 넘고 전 세계 확진자의 5%에 해당하는 수치다. 뉴욕주 한 곳의 확진자가 한국(8961, 23일 기준)은 물론이고 프랑스(1만6018), 스위스(7014), 영국(5683)보다 많다. 벌써 417명이 사망했다. 그 중 뉴욕주의 사망자 수는 117명이다. 3월 1일 첫 번째 환자가 나온 뉴욕의 코로나19는 불과 20여 일 만에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집에 머물라, 영업을 중단하라
▲ 지하철에서 만난 뉴요커. ⓒ 최현정
"9.11 때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것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일요일 아침 브리핑에서 뉴욕주 주시자 앤드류 쿠오모가 주민과 기자들에게 사태의 위중함을 설명했다. 뉴욕이 미국의 바이러스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비상 상황을 선포했음에도 가파르게 올라가는 환자 수에 주지사는 더 강력한 행정 명령을 내렸다. 22일 오후 8시부터 모든 비필수 사업장에 대한 재택근무를 명령한 것이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비필수적 비즈니스 종사자는 반드시 집에 있어야 한다. 비즈니스를 이유로 외출할 수 없다.
2. 차량등록국은 문을 닫을 것이고 면허증 갱신은 온라인 처리한다.
3. 모든 비필수적 개인 모임은 숫자에 상관없이 금지된다. 허용되는 야외활동도 반드시 1.8m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4. 공원도 문을 닫을 것이다. 모든 야외 집단 운동은 금지된다. 자전거나 조깅은 가능하나 반드시 1.8m 룰을 지켜야 한다.
5. 대중교통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이용하고 반드시 위생과 1.8m 룰을 지켜야 한다.
6. 환자의 경우 병원 치료 등 아주 제한된 외출만 가능하다.
7. 젊은이들도 반드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위에 나열한 비필수적 모임은 할 수 없다.
여기에 더해 뉴욕주는 늘어나는 환자 수용에 대비한 병상 확보를 위한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맨해튼에 위치한 하비스 컨벤션센터를 비롯해 주립대인 스토니 부룩 대학 등 뉴욕 주 네 곳이 임시 병원 부지 건설 장소로 지정됐다. 이 곳엔 각 각 250개, 총 1000개의 병상이 지어질 것이고 이 '작전'엔 육군 공병대가 투입될 예정이다. 이 곳의 장비와 직원은 미국연방비상관리국(Fema)이 지원한다고 밝혔다.
뉴욕주는 현재 5만여 개의 병상만이 확보됐다고 했다. 하지만 쿠오모 주지사가 예상한 필요 병상은 11만 개다.
불과 몇 달 전, 중국 우한에서 실시된 통행금지와 초스피드 병원 건설 등의 모습이 지금 미국 뉴욕주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중국과 한국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두 달 가까이 전염병의 '쿠션' 역할을 해줬음에도 이제야 부랴부랴 그 전철을 밟고 있는 현재 뉴욕의 모습이 안타깝고 불안하다.
"하루 종일 눈물만 나요"
▲ 맨해튼 거리에 비치된 공공 자전거. 평소 비어있던 데크가 가득 차 있다. ⓒ 최현정
뉴욕주의 '외출금지' 명령 하루 전날인 3월 21일 토요일 맨해튼의 풍경은 낯설었다.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했던 브로드웨이며 아메리카 거리는 한산했다.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인파로 가득했던 타임스 스퀘어가가 썰렁했다. 모든 뮤지컬과 연극도 중단됐다. 박물관과 도서관도 문을 닫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전광판 광고들이 화려하게 불을 밝히고 있지만,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34번가의 메이시 백화점도 문을 닫았다. 언제 열릴지 기약할 수 없는 폐점이다.
▲ 문 닫은 메이시 백화점. 전세계 가장 큰 매장을 자랑하는 34번가의 백화점도 문을 닫았다. ⓒ 최현정
▲ 문 닫은 MoMA 입구. 뉴욕의 모든 박물관이 일시 휴관했다. 유리엔 두터운 방호벽이 설치되어 있다. ⓒ 최현정
길가의 상점들도 굳게 셔터가 내려가 있고 쉑쉑 버거를 비롯한 음식점들도 매장 조명을 낮추고 의자를 탁자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포장이나 전화 배달만 받고 있다. 그나마도 예전의 1/30도 안 돼 보인다.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주에 위치한 모든 비필수 사업장에 영업 중단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급작스런 명령에 스몰 비즈니스 운영자들은 날벼락이 떨어졌다. 세포라(Sephora, 글로벌 화장품 체인)나 스타벅스 같은 대기업 매장은 물론 수십만 개의 소규모 가게들도 강제로 다음 조처가 있을 때까지 문을 닫아야 한다. 렌트비와 인건비, 기본 유지 비용 등 고정비 지출은 그대로인데 가게 문은 닫아야 하는 것이다. 중단 명령을 어길 시 엄청난 벌금이 부과될 수 있기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렌트비를 지불하고 있는 이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지침에 따라야 한다.
▲ 식당은 실내 조도를 낮추고 의자를 탁자에 올려 놓은 채 테이크아웃이나 배달 손님만 받고 있다. ⓒ 최현정
며칠 전 맨해튼 너머 저지시티의 한 1달러(1277원) 샵엔 1만 달러(한화 1277만원) 벌금 티켓 9장이 날아왔다. 총 9만 달러(1억 1496만원),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1억이 넘는 금액이다. 이 가게는 평소 2.99달러(3800원)에 팔던 소독용 알코올을 6.99달러(8900원)에 팔았다. 뉴욕시가 비상시국을 선포했는데도 영리를 취하기 위해 가격을 올린 것이다. 결국 인상된 상품 당 1만 달러씩 총 9장의 벌금 청구서가 날아왔다.
▲ 음식 배달하는 파스칼. 일주일에 200개 정도 배달했는데 요즘엔 750여개로 늘었다고. 하지만 그도 22일 8시부터 뉴욕 식당의 영업중단이 되면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한다. ⓒ 최현정
사재기 정국에 폭리 방지와 다른 상점에 대한 반면교사라는 면에서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하루 매출 1000달러도 되지 않는 스몰 비즈니스 업자들에겐 전대미문의 힘든 시기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이들의 속풀이를 풀어놓는 사이트엔 눈물겨운 사연들이 많다. 어렵게 식당이 자리 잡아가려는 찰나에 날벼락같은 요즘이라는 얘기나 렌트비며 외상 재료비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하소연, 코로나19 때문이라면서 오늘 아침 해고통지 통보를 받았다는 등의 사연들이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게 문 닫고 하루 종일 눈물만 흘리고 있다는 이도 있고,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 소식을 여기저기 묻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도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해주지 못한다. 그건 전염병 확산에 당황하고 있는 미국 연방 정부나 각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지금이 시작? 불안한 시민들
▲ 총기판매 급증를 보도하는 NBC News 화면 ⓒ 최현정
사재기가 정부 조치에 대한 불신과 불안함에 대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총기 구입은 두려움의 표현일 것이다. 뉴스에선 화장지 구입자들처럼 총기상 앞에 줄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평소 유명 체인점의 경우, 목수를 고용해 매장 입구와 쇼윈도를 두터운 나무판자로 막는 공사를 하고 있다. 폭동 발생 시 유리를 깨고 물건을 훔쳐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오늘 뉴스에선 현재 발표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보다 실제 환자 숫자는 11배가 많을 것이라는 콜롬비아대 논문이 인용됐다. 이 사태를 정부가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한 지표다. 총기 허가증 발행은 지난 1~3월 사이 무려 223% 늘었다.
물자가 풍부하기로 세계에서 첫 번째였던 미국의 병원에선 연일 마스크와 방진복, 하다못해 면봉의 부족을 호소 중이다. 방송에 나온 미국연방비상관리국(Fema) 대표는 부족분의 숫자를 비롯해 가시적인 대책이나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 뉴욕 브라이언 파크의 청소부. 가스 마스크로 무장했다. ⓒ 최현정
매일 기자 브리핑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이 전염병의 이름을 "차이니즈 바이러스(Chinese Virus)"라고 부른다. 기자들이 문제를 제기해도 그는 코로나나 코비드-19가 아닌 '차이니즈'를 강조한다.
이미 곳곳에서 아시아인들을 향한 폭행과 폭언 소식이 들리고 있다. 하지만 이 사태가 더 악화되어 비어버린 슈퍼 매대와 그것조차 살 돈 없는 이들, 거기에 공권력의 공백이 시작되면 어떠한 아수라장이 될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미 교도소에까지 옮아간 전염병 대책으로 경범죄자들을 풀어주고 있다는 소식에도 마음을 다잡게 된다.
2001년 9/11 당시 뉴욕은 엄청난 충격의 한 복판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그 상처는 회복되었다. 민·관·군 모든 이들이 일치단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20년 3월 뉴욕의 상황은 가늠할 수 없는 칠흑 속이다. 과연,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대통령과 주가 폭락 전 소유 주식을 매도한 의원들이 있는 의회가 전대미문의 상황에 부딪친 지자체들과 함께 시민들을 다독여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묻고 싶다. 재직 당시 가장 인기 없던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가 트럼프 당선 이후 재평가되는 기이한 현상은 트럼프의 위험한 언행에 대한 우려와 불안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뉴욕이 멈춘 첫날, 절로 기도가 나온다.
▲ 맨해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노숙자들. 전염병과 통행금지, 추위까지 이들을 위협한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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