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희 기자
- 호수 651
- 승인 2020.03.05 02:52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10년 이상 걸린다. ‘처음 개발된 목적과 달리 효과’가 있는 약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의학계는 ‘렘데시비르’에 기대를 걸면서도 섣부른 기대를 경계한다.
코로나19가 대륙 간 경계를 모조리 뚫었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멀고 아시아 국가를 오가는 직항편도 적어 코로나19 확산 사태에서 비켜나 있었던 남미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브라질 보건부는 2월26일 상파울루시에 사는 61세 남성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을 확인했다. 코로나19 감염이 사실상 지구적인 현상이 되면서 전 세계 관심이 한곳에 쏠리고 있다. 바로 치료제이다.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을 잠재우는 데 큰 기여를 했던 타미플루처럼 코로나19를 잡을 항바이러스제를 애타게 바란다.
하지만 현재까지 사람에게 효과가 증명된 코로나19 치료제는 없다.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심으로 모인 코로나19 중앙임상위원회(중앙임상위)는 2월13일 ‘코로나19 치료 원칙’을 발표하면서 입증된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알려진 지 고작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이고, 당연히 이 신종 바이러스를 타깃으로 한 치료제도 나와 있지 않다. 단기간에 치료제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약이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 물질 발굴부터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거쳐 보건 당국의 승인을 받기까지, 신약 개발에는 통상 최소 10년 이상이 걸린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상용화된 약품 가운데 ‘처음 개발할 때의 목적과 달리’ 코로나19에 효과를 보이는 약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를 ‘드러그 리포지셔닝(Drug Repositioning:약물 재창출)’이라고 부른다. 중앙임상위는 ‘코로나19 치료 원칙’에서 기존 전염병 치료제 가운데 칼레트라(Kaletra)와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 투여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권고했다.
칼레트라는 에이즈 치료 목적의 항바이러스제다. 몸속에 들어온 바이러스는 세포에 침투해 수만 배까지 스스로를 복제한 뒤 세포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리고 배출된 바이러스는 또 다른 세포를 감염시킨다. 바이러스가 증식되는 과정이다. 항바이러스제는 이 증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항바이러스제마다 증식을 막는 방법이 다른데, 칼레트라는 세포에 들어온 바이러스의 복제 단계에서 이를 방해한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모두 RNA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는 유전물질로 DNA 이외에도 RNA를 가질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RNA를 유전물질로 삼는 RNA 바이러스이다. RNA는 DNA에 비해 안정성이 떨어지고 변이가 심하게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돌연변이는 생존에 불리한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숙주세포에 기생해서 살아야 하는 바이러스에는 득이 된다. 바이러스는 사람 세포를 공격해 문을 열고 침투해야 번식이 가능한데, 변이 덕분에 공격 루트가 다양해지는 것이다. 에이즈부터 인플루엔자, 에볼라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우리가 아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많은 수가 RNA 바이러스다.
RNA 바이러스가 복제를 하기 위해서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필요하다. 칼레트라는 단백질 분해효소의 작용을 막아 복제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한편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바이러스가 세포에 정상적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바이러스 증식 사이클에서 비교적 초기 단계에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에이즈와 말라리아를 잡기 위해 개발된 약물이 코로나19에도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답은 ‘알 수 없다’이다. 앞서 언급한 방식대로 코로나19에도 작용하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사실 ‘효과가 있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코로나19 치료제 발굴에 참여하고 있는 한 과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스나 메르스 때도 이미 실험용 세포 수준에서 (두 약물의 효능에 대한) 평가는 되어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효과를 보인다고 약효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코로나19도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종류이니, 쓸 수 있는 약이 없는 상황에서 써보게 된 것이다.”
중앙임상위 역시 이 점을 명확히 했다. “2020년 2월12일까지 발표된 학술자료와 TF 팀원들(확진자 치료 의료진)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출된 것으로 새로운 연구 결과 발표나 경험의 축적에 따라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다.” 치료 원칙은 참고용이고 치료제 선정 등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데에는 담당 주치의 판단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렘데시비르 임상시험 결과 4월에 나올 예정
21세기 들어 한국을 위협한 바이러스성 감염병 가운데 치료제가 있었던 건 2009년 신종플루밖에 없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사태는 맞춤한 치료제 없이 지나갔다. 감염병 약은 수익성이 높지 않아서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에 그다지 매력적인 분야가 아니다. 신종플루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가 탄생할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2009년 신종플루를 일으켰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로 조금씩 바뀌지만 매년 겨울이면 유행이 예상된다. 타미플루는 미국 제약회사 길리어드 사이언스에서 1996년 개발했는데, 1987년에 창업한 길리어드가 그 당시 벤처기업이었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미 자리를 잡은 거대 제약사들이 탐내지 않는 영역을 공략했기 때문이다.
타미플루 같은 확실한 약품이 없으니, 코로나19 치료제로 여러 약품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 가운데 가장 기대를 모으는 후보는 렘데시비르(Remdesivir)이다. 이 역시 길리어드에서 만들었다. 당초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됐던 렘데시비르는 더 나은 효과가 입증된 경쟁 약에 밀려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 그 이후 몇몇 연구자들이 사스나 메르스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이 약을 실험했다. 그 결과 세포 수준에서 렘데시비르의 효능을 확인했고, 그다음 단계인 동물실험에서도 효과가 있었다.
약물 테스트는 크게 세포→동물→사람 순서로 이루어진다.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에서 동물실험까지 약효가 입증된 건 렘데시비르가 유일하다. 사스, 메르스처럼 코로나바이러스인 코로나19에서 효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거는 이유다. 렘데시비르는 세포 내에서 일어나는 바이러스 복제를 막는 항바이러스제이다. RNA 바이러스의 복제에 필요한 RNA 중합효소를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길리어드는 2월부터 중국 보건 당국과 함께 후베이성에서 코로나19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WHO 전문가팀을 이끌고 중국 현지 상황을 조사한 브루스 에일워드 WHO 사무총장보는 2월24일 베이징 기자회견에서 특별히 이 약을 언급했다. “효능이 있을지도 모르는 약이 지금 딱 하나 있는데, 렘데시비르이다.”
잇따른 보도 때문에 코로나19를 극복할 약이 손에 잡힌 것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섣부른 기대를 경계했다. 한 신약 개발 분야 연구자는 “임상시험 3차(약물 테스트 마지막 관문)까지 가서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렘데시비르가 효과를 보였다는 동물실험은 사스와 메르스 바이러스에 써본 것이다. 사스, 메르스와 코로나19는 엄연히 다른 바이러스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 의료진이 써봤더니 효과가 있더라’는 식의 뉴스를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를 치료한 의료진이 발표한 보고서에 ‘어떤 약물을 투여했다. 다음 날 증세가 호전됐다’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해서 효과가 있다는 뜻이 아니다. 환자가 좋아질 때가 돼서 좋아진 건지, 다른 치료 때문인지 모른다. 엄밀하게 통제된 임상시험이 아니면 효과를 알 수 없다.” 중국에서 진행 중인 렘데시비르 임상시험 결과는 오는 4월에 나올 예정이다.
칼레트라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현재 국내 의료진도 사용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김홍빈 교수는 “증세에 따라, 환자마다 달리 치료하고 있다. 일부는 (두 약물을 투여하지 않고) 대증요법으로 증상을 가라앉히면서 지켜본다”라고 진료 상황을 전했다. 중앙임상위도 증상이 심하지 않은 환자에게는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할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권고한다. 환자가 자기면역체계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항바이러스제가 하는 역할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진 면역체계를 지원하는 것이다. 한 바이러스 연구자는 “전쟁이 났을 때 국군이 면역체계라면, 항바이러스제는 유엔군이라고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2월27일 기준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8만2446명 가운데 사망자는 2808명이다. 그리고 완치자는 3만3212명이다.
한국도 치료제 찾기 나선다
국내 연구기관에서도 코로나19 치료제 찾기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화학연구원 신종바이러스(CEVI) 융합연구단은 한국파스퇴르연구소와 함께 ‘약물 스크리닝’에 착수한다. 한국화학연구원과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약물 라이브러리에서 다른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됐지만 ‘혹시 예상치 못하게’ 코로나19를 잡을 약품이 있는지 검사(스크리닝)하는 것이다.
한국화학연구원은 임상 화합물 2500개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 1500개가 허가를 받아 약으로 팔고 있는 제품이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은 약 1800개를 보유 중이다. 만약 이 스크리닝을 통해 코로나19에도 효과를 보이는 약품을 찾으면 신속히 환자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 이미 상용화된 약이기에 안전성이 검증됐기 때문이다. 스크리닝은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실험용 세포에 약물을 주입해서 증식이 억제되는지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간단하게 들리지만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스크리닝을 하려면 우선 실험용 세포를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시켜야 하는데 이때 적당한 양부터 찾아야 한다. 바이러스를 너무 많이 넣으면 실험용 세포가 죽고, 적게 넣으면 실험에 적합하지 않다. 코로나19는 신종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이 작업부터 출발해야 한다. 게다가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직접 다뤄야 해서 위험도가 높다. 음압시설이 돼 있는 생물안전등급 레벨3 실험실에서만 이 실험을 할 수 있다.
CEVI 융합연구단 김형래 팀장(바이러스 치료제팀)은 운 좋게 알맞은 약품을 찾아도 현실적인 문제가 남는다고 말했다. “드러그 리포지셔닝으로 효과가 있는 약을 찾으면 전 세계에서 다 그 약을 구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약이라면 문제가 없고 특허가 끝난 약이라면 만들면 된다. 그런데 해외에서 특허를 가지고 있는 약은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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