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부터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를 실시해온 오마이뉴스는 오는 2월 22일 창간 20주년을 맞아 '[연쇄 인터뷰] 차기 주자에게 듣는다, 당신이 꿈꾸는 20년 후'를 선보인다. 여야 차기 주자들에게 현안에 대한 생각 뿐 아니라 앞으로의 꿈을 묻는다. 개인의 꿈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꿀수록 그들은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갈 것이다. 세번째 순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다.[편집자말] |
박원순 서울시장은 조심스러웠다. <오마이뉴스> 창간 20주년 기념 차기주자 연쇄 인터뷰였기 때문이다. 그럴만도 하다. 유력 대권주자이긴 하지만, 현직 서울시장이기에 적극적으로 대권 의지와 구상을 밝히기 어려운 처지다.
▲ 박원순 서울시장 ⓒ 이희훈
그럼에도 박 시장의 답변 행간에는 대권주자의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다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는 사상 첫 3선 서울시장으로서 "시민의 삶을 바꾸는 변화를 가져왔고, 서울은 글로벌 도시로서의 성취를 이뤘다"고 자평한다. '사람특별시'라는 기조 아래 혁신과 협치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지방 자치와 분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박 시장은 답답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경우 대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 분배가 5:5인데 반해, 한국은 8:2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지방정부는 권한 제약과 예산 부족이 심각하다는 거다.
박 시장에게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지방분권은 확실히 할 것 같다"고 묻자, 그는 "며느리로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 시어머니가 돼서 그걸 고치는 사람도, 고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며 우회적으로 답변했다. 곧 이어 박 시장의 '아픈 손가락'인 대선주자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묻자, 미국 대선을 빗대 속마음을 내비췄다.
-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지방자치와 분권만큼은 확실히 할 것 같은데.
"며느리로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 시어머니가 돼서 그걸 고치는 사람도, 고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사람 나름이고 비전 나름이지만, 지방분권은 국가를 위해서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미국만 하더라도 연방정부가 하는 일은 적다. 국방과 외교, 큰 틀의 안전망 정도 가져가고 나머지는 지방정부가 맡는다."
- 지난 2018년 8월 리얼미터의 첫 대선주자 정례 조사 결과, 박원순 시장은 범여권 지지층에서 당시 이낙연 총리를 오차범위에서 앞서며 1위를 차지했다. 이후 횡보와 하락을 거듭했다. 여론조사 1위였을 때 사람들은 박원순의 무엇에 큰 점수를 줬고, 지금처럼 지지율이 계속 미끄러지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금 미국의 대선을 한 번 보라.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세였는데, 막상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되니까 순위가 떨어지고 있다. 저는 지지율이 좋게 나올 때도 '여론은 깃털 같은 존재'라고 얘기해왔다. 국민의 마음과 시대적 상황은 얼마든지 바뀐다.
앞으로도 (대선주자) 지지율은 엄청나게 변할 것이다. 제가 서울시장 재선할 때도 (언론에서는) 정몽준씨에게 여론조사에서 밀린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결국은 16%P 차이로 이겼다. 지금까지 선거를 보면 (여론은) 특정 시기마다 달라졌고, 특히 대선에서 국민들은 (후보들 지지도 순위가) 바뀌는 재미를 느끼지 않았나."
대선까지 몇 차례 계절의 변화가 찾아오듯, 대권주자들의 지지도도 등락을 거듭할 것이다. 박 시장의 참모들은 때가 되면 '박원순의 계절'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한다. 9년 동안 '작은 대한민국' 서울을 이끌어왔던 박 시장의 능력과 양질의 콘텐츠가 아직 평가절하돼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해서 봄이 오지 않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박원순 시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3일(목) 오후 5시 40분께 서울시장실에서 40분가량 진행됐다.
"제가 서울시장 재선할 때도 밀린다고 하지 않았나?"
▲ 박원순 서울시장 ⓒ 이희훈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기자가 악수를 청하자 박 시장은 살짝 웃으며 '팔꿈치 인사'를 제안했다.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악수를 하지 말도록 권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언에 따라 박 시장은 요즘 악수 대신 팔꿈치 인사를 나눈다.
- 사상 첫 3선 서울시장이다. 초선과 3선, 어떤 것이 변함없고, 어떤 것이 달라졌나.
"만물은 유전하고,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사람은 경험과 역사의 축적 위에 살아가는 존재다. 1000만이 사는 글로벌 도시를 운영하면서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또, 그 기반 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도시행정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됐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됐다.
동시에 제 정책과 행동을 규정하는 기본 철학과 원칙, 비전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서울은 '사람특별시'라는 기초 위에 서 있다. 내가 처음 서울시장에 취임할 당시 4조 원이었던 사회복지 예산이 지금은 12조5000억 원으로 3배가 넘는다. 그만큼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화했다.
사람을 바탕으로 한 정책의 두 가지 핵심은 혁신과 협치다. 영국 <가디언>이 세계 5대 시장으로, 일본 NHK가 '인상파 시장' 4명 가운데 한 명으로 저를 뽑았다. 영국 잡지 <모노클>이 선정한 베스트11에서는 제가 미드필더로 올랐다.
그런 것들이 (서울의) 혁신 시정을 평가한 것이라고 본다. 물론, 이런 변화와 발전이 혼자 힘으로 된 것은 아니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서울은) 글로벌 도시로서 성취를 이뤘다."
- 행정가이자 정치인인 박원순의 '코어밸류(core value)'는 무엇인가.
"제가 처음 시장이 될 때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제안들을 했지만, 저는 '서울시장 자리는 시장이 아니라 시민의 꿈을 실현하는 자리다, 시민들의 목소리 하나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마인드로 임했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서울시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 삶을 바꾸는 변화'를 가져왔다. 서울시장 재선 때 경쟁했던 정몽준씨는 '잠자는 서울을 깨우겠다'고 했다. 뭔가 새로운 사업을 벌이자는 얘기였지만, 우리가 빅데이터 돌려보니 시민들에게서는 '힐링', '도서관', '카페' 같은 단어들이 나오더라.
이른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큰 시대적 흐름을 그 분은 알아채지 못한 거다. 시민들은 '이제 잠 좀 자자'고 하는데, 잠을 깨워서 큰 토목공사를 하자고 한 셈이다. 그런 걸 요청하는 시대는 지났다. 시대 변화를 제대로 통찰하는 힘이 지도자에겐 무척 중요하다.
과거를 돌아보고, 주변을 둘러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 있으면, 우리 시대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있다. 그런 가치와 통찰력으로 지금까지 서울을 이끌어왔다."
박 시장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처럼 큰 거 한 방 해서 다음 자리로 가는 기반으로 삼으라고 하지만, 나는 기존과는 다른 문법을 써왔다"고 말한다. 서울을 새로 디자인하는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만의 방식으로 서울시민들 삶의 질을 바꾸는 행로를 걸어왔다는 것이다.
'어려운 박원순'에서 '쉬운 박원순'으로?... "뼈 아프게 받아들인다"
▲ 박원순 서울시장 ⓒ 이희훈
- 박원순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어렵다'는 애기를 많이 한다. 쉽게 대중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고 느끼는 거다. 박 시장이 시도하는 일은 새롭지만,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어려운 박원순'을 '쉬운 박원순'으로 돌려놓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지적은 제가 뼈 아프게 받아들인다. 실제로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혁신을 얘기할 때, 우리가 새롭게 시도하는 게 굉장히 많았다. 서울시가 하면 전국 표준, 세계 모델이 됐다. 차기 인도네시아 대통령으로 거론되는 서자바주 주지사인 리드완 카밀(Ridwan Kamil)이 반둥시장 시절에 서울을 여러 차례 방문해 배워갔다.
이런 선도적 실험과 혁신을 하면 초기에는 사람들이 이해를 잘 못한다. 서울시가 '소셜 임팩트 본드(social impact bond)'라는 혁신적인 보조금 제도를 시행했는데, 시의회가 초기에는 조례 제정을 거부한 적도 있다. 물론, 새로운 것을 좀 더 쉽게 대중에게 알리고 다가가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 박원순은 예전에는 시민단체 대표로서 소셜 디자이너였고, 지금은 서울시장으로서 소셜 디자이너다. 둘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둘은) 너무나 다르다. 시민단체 대표가 관중석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라면, 서울시장은 그런 문제제기를 받아서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늘 혁신을 말씀드렸는데, 시민은 서비스의 대상이면서 이런 혁신을 이끌어가는 주체다. 서울의 중요한 변화는 시민이 이끌어가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어느 도시도 이렇게 (시민들이) 활발하게 참여한 적이 없다."
- 서울시는 '작은 대한민국'이라고 할 정도로 상징적인 지방정부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울시장이 결심하고 움직이면 부동산 문제 등 현안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서울시장의 권한이 어느 정도인가.
"우리나라는 너무 지나친 중앙집권 국가다. 우리시대의 큰 화두가 자치와 분권이다. 온전한 지방자치와 분권을 시행한다면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두 배로 올라간다. 왜냐하면, 자치단체장은 시민의 삶에 대해 굉장한 감수성을 가지고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방정부에) 예산과 권한을 더 준다면 그만큼 시민의 삶이 (더 좋게) 바뀔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경우 대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 분배가 5:5인데 반해, 한국은 8:2다. 지방정부의 권한과 예산 모두 부족하다.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투기를 잡아서 가격 안정을 이루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집을 갖지 못한 전·월세 거주자에 대한 대책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이 두 가지 모두에서 권한이 없다. 나는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건 중앙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이다.
그래서 임대정책 권한만이라도 서울시(지방정부)에 달라고 했다. 그러면, 각 구청의 형편에 따라 다른 정책을 펼 수 있다. 독일 베를린만 해도 굉장히 뜨는 도시라 임대료가 너무 올라가니까 5년 동안 임대료를 동결해버렸다. 서울도 임대료가 너무 올라서 곳곳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시장에게 권한을 주면 지역맞춤형 족집게 방식으로 임대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포스트 문재인의 시대정신은 불평등 해결"
▲ 박원순 서울시장 ⓒ 이희훈
- 2018년 지방선거 직후 당선 인터뷰에선 대권에 대한 질문에 "당선증에 잉크도 안 말랐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젠 당선증에 잉크도 말랐고, 더이상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도 없으니 여쭤보겠다. 사람들은 박원순 시장의 대선 출마를 상수로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이후의 시대정신이 무엇이며, 국민들이 박 시장을 호출한다면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국민들의 바람은 '내 삶이 바뀌는 것'이다. 거대지표라든가 비전도 중요하지만, 고도성장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나라는 위기사회로 접어들었다. 저출산고령화나 저성장에 뉴노멀(New Normal)이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성장의 모멘텀을 만들고 위축된 사회를 활성화해야 하는 과제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런 사회가 나에게 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다.
며칠 전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은 불평등사회를 상징한다. 제가 올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핵심은 '공정한 출발선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99 대 1이라는 불평등을 계속 누적시켜온 것이 주거와 교육 문제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올해 청년 정책, 신혼부부 주거, 돌봄 문제, 그리고 이것을 떠받치는 혁신창업에 집중하려고 한다. 진보정권도 제대로 대응 못하고 있는 불평등 해결이 시대정신이라고 본다."
-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왔다고 보는가.
"박정희 시대 이후 고도성장사회를 유지해왔는데 1980년대 이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경제적 성장만큼이나 큰 부작용이 있었고, 그것을 뛰어넘는 새 흐름을 만들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역량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동안 큰 방향과 비전을 세우지 못하고 어려움이 계속 누적돼 오늘의 위기를 낳았다. 끊임없는 혁신과 비전이 필요하다."
- 박원순이 꿈꾸는 앞으로 20년 후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인가.
"낡은 과거와 결별하는 파괴적 창조가 필요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낡고 병든 조선을 새롭게 하자'며 각 분야의 개혁 방안을 만들었다. 그는 <여유당전서> 서문에서 '나의 낡은 나라를 새롭게 바꿔야 한다, 어디 한 곳 썩지 않은 곳이 없다'고 썼다.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가 지난 세월 동안 영광의 성취도 있었지만, 낡고 병든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새로운 위기들이 계속 가중되고 있다.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지금이야말로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결정적 시기다."
- 그런 대한민국의 환부를 도려내고 제대로 치유시킬 명의가 박원순이라고 생각하나.
"(잠시 침묵한 뒤) 한 사람의 미래를 보려면 그의 과거를 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을 봐라. 공약은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그러나 그가 살아온 것을 보면 본질은 땅 파는 건설업자다. (대통령이 돼서는) 실제로 땅을 팠다.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는 뭐였나? (대통령이 돼서도) 과거처럼 한 것이다. 사람은 연속적 존재라서 그의 과거는 미래로 이어진다. 박원순의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박원순의 과거를 보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거다."
- 올해 <오마이뉴스>가 창간 20주년을 맞았다. 축하 메시지를 부탁한다.
"나는 <오마이뉴스>가 (지난 20년 가운데) 세계 10대 혁신에 들어간다고 본다. 모든 시민을 기자로 초청한 것이다. 나랑 친한 영국의 한 연구소장의 책에도 <오마이뉴스>가 인용돼 있다. 그런데 앞으로 20년 지난 후 <오마이뉴스>는 어떤 혁신을 거쳐 새로운 미디어로 재탄생할 지 고민하는 시기가 왔다. <오마이뉴스>가 20년 후에도 새로운 전환과 도약을 했으면 좋겠다." ◆
※ 다음은 박원순 시장 인터뷰 전문이다.
[인터뷰 전문] "'부동산 불로소득 국민공유제' 서울부터 실천하겠다"
글 : 이한기, 손병관
사진 : 이희훈
영상 : 김윤상, 홍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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