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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MBC 취재진과 함께 미얀마 안다만해역을 세 차례 탐사해 KAL858기 동체 추정 물체를 발견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 대표가 탐사 중 포즈를 취했다. [사진제공 - 이종인] |
“세 번째 간 이유는 찍힌 영상 자체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서 설명이 돼야만 객관적인 자료가 되는 정도의 영상이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만족을 못했다.”
19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채 사라진 대한항공(KAL) 858편의 동체로 추정되는 물체를 미얀마 안다만해역 해저에서 찾아낸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근성이 드러난 말이다. 3차 현지 탐사까지 밀어붙인 것은 그였다.
이종인 대표는 대구MBC 심병철 기자(국장)가 일본군‘위안부’ 관련 취재차 미얀마를 방문해서 KAL858기 잔해 관련 결정적 제보를 얻은 뒤 현지 탐색에 나서자 김성전 항공 전문가와 함께 동행해 추정 물체를 찾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종인 대표는 17일 오전 10시 30분 인천부두에 자리한 알파잠수기술공사 사무실에서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가지면서도 “MBC하고 했기 때문에 지금 이 인터뷰도 심 국장한테 승낙을 받고 응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천안함과 2014년 세월호에 이어 1987년 KAL858기 사건까지, 해난구조 전문가인 그의 인생역정이 결코 순탄치 않게 된 사건들의 연속이다.
그는 “내가 해난구조를 쭉 하다 보니까. 천안함도 우연히 끼게 됐다”며 “참 있어서는 안 될 사건들이었다. 해결이 안 되니까 굵직한 느낌으로 남아있는 건데, 단순한 사고들”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단순한 사고들’ 치고는 우리 사회를 뒤흔든 영향력은 너무나 컸다. 특히 KAL858기 사건은 미국이 양자제재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고, 천안함 사건은 한국이 양자제재로 북한에 대해 5.24조치를 취했다. 두 사건 모두 유엔에서는 북한을 명시한 제재 결의안이 나오지 않았지만.
KAL858기 사건은 13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발생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이 사건을 북괴의 폭탄테러 사건으로 규정하고 대선에 이용한 이른바 ‘무지개 공작’을 추진했고, 북괴 공작원 김현희, 김승일을 폭파범으로 발표했다.
그는 “김성전이라는 전 민항기 조종사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대구MBC에서 이런 탐사를 가는데, 그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형님이 가야할 것 같다. 도와달라”는 말에 그냥 “오케이”했다고 했다. 역사적 사건에 얽히는 것 치고는 싱거운 듯 싶지만.
대구MBC가 파악한 미얀마 안다만해역의 3개의 좌표는 매우 정밀한 것이었고, 특히 육지로부터 가장 먼 곳에 있는 좌표는 어부가 그물로 엔진을 들어올리다가 그물 째 물에 빠뜨린 뒤 기록해둔 좌표로, 그곳에서 KAL858기 비행기 기종인 보잉707로 보이는 비행기 잔해들을 1차 탐사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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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MBC의 세 차례 취재 영상은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공개됐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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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MBC 탐사 취재의 세 주역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김성전 항공 전문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 심병철 대구MBC 기자. [사진제공 - 이종인] |
취재진은 지난해 11월 29일부터 12월 4일까지 1차, 12월 29일부터 1월 7일까지 2차, 1월 31일부터 2월 6일까지 3차, 세 차례에 걸쳐 미얀마 현지취재를 통해 안다만 해안에서 30km 정도 떨어진 곳 수심 50m 지점에서 KAL858기 추정 물체들을 수중촬영하는데 성공해 지난달 23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단독 보도했다. [관련기사 보기]
그는 ‘KAL858기 동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건 100%라고 본다”며 “(보잉) 707 엔진하고 날개다”고 단정하고 “858하고 전혀 관계없는 대서양이나 태평양 가서 한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가서 한 거니까”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 차례 현지 탐사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낚시 허가’를 받은 외국인으로서 장비의 한계나, 현장 조류의 세기 등 “진짜 한 마디로 끈기와 지혜로써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그는 “향후 조사는 여태까지 밝혀진 해상 상황, 해저 상황, 그리고 장애물이 놓인 상황, 이런 것을 잘 분석해서 거기에 걸맞는 조사장비와 인양장비를 현지에서 조달하든 여기서 가져가든 해서 일을 해야 될 거라 생각한다”면서도 “국가가 나서서 세우면 세월호 짝이 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그런 일은 정부가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말 그대로 그냥 전문가들 옆에서 예산 지원하고 도와주는 정도, 교통정리해 주고”라고 바람을 밝혔다. “구급차 가는데 길만 터주고 빨리 병원에 도착해서 환자가 살게만 해주면 되는 거다”라는 것.
아울러 “우리가 우려했던 것은 30여년 전의 어떤 끈이 아직도 연결이 돼서 정부기관의 방해를 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면서 “지금 할 수 없이 또 기대야 되는 게 지금 정부”라며 “지도자한테 성품이 좋고 나쁘고는 별로 따지는 사람이 없다. 일을 제대로 하는지 안하는지 따지는 거다”라고 말했다.
오는 4월 21일이면 알파잠수기술공사가 30주년을 맞는다는 그는 “이걸 잡고 있는 것은 구조체계가 아직도 현실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국가가 전문업체를 육성해서 구조요원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2의 세월호 사건이 나도 크게 달라질 것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사건이 날 때 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국민들이 속고 있고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라며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좀 슬픈 이야기다. 하지만 책임감 같은 걸 크게 느껴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게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다음은 세 차례에 걸친 수중 탐사 과정 등에 대해 이종인 대표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단순한 사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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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는 17일 오전 통일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KAL858기 동체 추정 물체 발견 과정을 소상히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 통일뉴스 : 천안함과 세월호에 이어 KAL 858기 사건까지 맡게 됐다. 우연인가 필연인가?
■ 이종인 대표 : 내가 해난구조를 쭉 하다 보니까. 천안함도 우연히 끼게 됐다. 해군본부에서 건져달라고 연락이 왔고, 우리가 그 당시에 인천항 앞에 침몰한 천안함 두 배 만한 걸 건지고 있었다.
그래도 국가에서 동원령을 내리면 우리는 나가야 된다. 왜냐면 국가비상 동원업체이기 때문이다. 또 그럴 능력도 있었고,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을 하면 수익도 괜찮았다.
그런데 해군에서 하는 행태가 (수심) 45미터 되는 것을 달랑 5분 들어갔다 나오고 이런 식으로 한다. 스포츠 다이버들 하는 식이고, 전문가들이 하는 잠수 작업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까 거기에 대해서 내가 좀 반감이 있었다.
해군들은 뭐하고 달랑 줄만 걸어달라는 일을 우리한테 시키느냐. 국가에서 예산 좀 아껴서 간단한 일 같으면 너네들이 하면 되지 않느냐. 그랬더니만 해군이 수색, 구조하는데 여력이 없다는 거다. 그 많은 잠수인력이. 화가 확 나더라. 나도 여력이 없다고 보이콧 해버렸다.
□ 천안함과 세월호에 이어 KAL858기 사건까지 엮일 줄은 몰랐다. 오랫동안 이 사건을 취재 온 나도 이 대표가 미얀마에 가는 줄도 몰랐다.
어쨌든 천안함과 세월호, KAL858기 사건이라는 가장 굵직한 사건에 연계가 된 건데, 우연이라 하기엔 그렇고, 해난구조를 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 건가?
■ 그렇다. 해난구조라는 이게 참 복잡한 건데, 일반사람들이 어떤 사건이 나고 거기에 대해서 같이 말을 섞고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기는 쉬운 거다. 그런데 막상 “네가 가서 뭘 해봐라.” 이런 상황 같으면 할 사람이 없다는 거다.
왜냐하면 박사, 교수, 전문가라고 나오는 사람들이 말은 섞었지만 실제로 가서 해본 적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런 사건에 연관이 돼서 사람들한테 알려져 있다. 진짜를 이야기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냐는 거다.
사실 연못에 빠진 것도 아니고 강에 빠진 것도 아니고 그런 망망대해에 빠진 걸 탐사, 조사를 하러 간다고 나한테 연락이 왔다. 뭔가 나한테 기대하는 것이 있을 텐데, 내가 줄게 있나 생각해 봤다. 생각하니 그 사람들은 바다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해줄 게 많더라. 그래서 승낙을 하고 가게 된 거다.
김 기자가 굵직 굵직한 사건이라고 표현했는데, 참 있어서는 안 될 사건들이었다. 해결이 안 되니까 굵직한 느낌으로 남아있는 건데, 단순한 사고들이다. 그런데 뭔가 원인이나 결과를 속이려 덤비고, 포장이 됐던 사건들이기 때문에 좀 답답한 사건이지 굵직한 사건은 아닌 것 같다.
□ KAL858기 사건은 미국이 양자제재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고, 천안함 사건은 한국이 양자제재로 북한에 대해 5.24조치를 취했다. 두 사건 모두 유엔에서는 북한을 명시한 제재 결의안이 나오지는 않았다. 역사적 의미가 큰 사건이라고 본다.
어떤 계기로 이번 대구MBC의 KAL858기 현지취재에 참여하게 됐나?
■ 김성전이라는 전 민항기 조종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 번 만난 적이 있고 서로 주장하는 게 비슷하고, 내 이야기에 공감을 갖는 사람이랄까. “대구MBC에서 이런 탐사를 가는데, 그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형님이 가야할 것 같다. 도와달라.” 나야 오케이 했다.
그전에 작년 4월에 신성국 신부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민간탐사를 한다고 했다. “가족들하고 조사를 간다. 그러니까 좀 도와 달라. 민관합동조사다.” 그래서 합동조사는 나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합동으로 가게 되면 정부 요인도 있을 거고, 관리도 있을 거고, 뭐 또 딴 잠수하는 사람들, 교수 이런 사람들이 와서 사실은 수색 방해 요소다. 한 배에 선장이 여럿이 있는 것과 똑같다. 조금 어떤 분야에 안다고 와서 말을 거기다 섞고 했을 경우에는 굉장히 주최하는 측에 폐가 된다.
이런 수색은 단순한 거다. 어떤 슈퍼바이저(supervisor), 감독이 하나 있어서 일관된 조사방법으로, 일정으로 진행이 돼야 단시간에 효율적으로 되는 거다. 그래서 배가 산으로 가든, 강으로 가든 한 사람의 지휘 하에 가는 게 낫겠다 싶어서 “나 아니면, 딴 사람을 시켜라.”라고 말했다. 그렇게 연합으로 가는 건 안 된다고 했다.
그런 조건으로 4월쯤에 비행기표를 끊을 것 같았고, 한 달 전에도 연락이 오고 막 그랬다. 그러다가 갑자기 4월에 연락이 온 게 “정부에서 도와주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건은 취소다.” 이렇게 통보를 받았다.
그 이후에 대구MBC에서 연락이 와서 그렇게 수락을 해서 가게 됐다. 11월 거의 말경, 11월 29일에 갔다.
“3개의 좌표를 정해 놓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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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파탐지기를 이용해 해저에서 KAL858기 동체 추정 물체를 확인한 이종인 대표. [캡쳐사진 - 통일뉴스] |
□ 일단 미얀마 현지 수색 일정부터 소개해 달라. 언제 몇 차례 다녀왔나?
■ 작년 11월 29일부터 12월 4일까지 갔다 왔고, 보통 한 번에 1주일 정도 갔다. 12월 29일부터 1월 7일, 그 다음에 1월 31일부터 2월 6일, 3차까지 했다.
수색 자체는 가서 3일, 4일, 2일 정도 했다. 하루 중의 작업시간은 3시간에서 4시간 정도다. 그러니까 전체 수색시간은 얼마 안 된다.
□ 처음 막상 가서 보니까 가능해 보였나?
■ 처음 갔을 때 좌표를 세 군데를 주더라. 좌표단위가 동경 몇도 몇분, 그리고 분을 천분의 1까지 소분을 해서 나온 좌표라 굉장히 정밀하다. 그 정도면 뭐 그 위치에서 4,5m 오차다. 망망대해에서도 그 좌표를 가지고 가면 항상 찾을 정도로 정밀성 있는 좌표더라.
그래서 3개의 좌표를 정해 놓고 떠났다. 3개 좌표 중에 어떤 걸 먼저 볼 것인가. 랜딩기어가 나오고, 엔진이 나오고, 장애물들이 많이 나오고 이런 식으로 대강 구분돼 있더라. 세 군데 중에 출발지점에서 가장 먼데를 먼저 보기로 했다. 먼데 보고 오면서 나머지를 보기로 했다.
거기에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제일 먼데를 간 곳부터 장애물이 나오더라. 장애물은 형태를 보면 침몰선 같은 것은 몇 백년이 돼도 배의 형태가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건 말 그대로 엔진 같은 형태, 날개 같은 형태, 동체 같은 형태, 그런 식으로 거기에 한 반경 200m 안짝에 잔해물들이 흩어져 있는 게 발견됐다.
□ 처음부터 말인가?
■ 첫 지점에 갔는데. 그래서 “야, 이거다!” 하고선 소나(SONA, 수중음파탐지기)로 물표들을 확인하고 돌아온 게 첫 번째다.
그리고 나머지 두 군데를 지나오면서 본 결과 나머지 두 지점에서는 발견된 게 없다. 어떤 물체라고 보이는 것 한두 개는 있었지만 비행기가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1차가 끝난 거다.
□ 2차 때는 준비를 잘 해서 갔나?
■ 방송국이 수중드론을 샀다고 해서 가져간다고 하니까 가져가는데, 나는 일단은 도움이 될만한 소나만 가져갔다. 소나를 따로 구입한다고 해서 우리 쓰던 것 쓰자고 했다.
1차 날짜를 정한 것도 방송국 측에서 정한 것이다. 1987년 11월 29일에 사고가 났으니 32주기 날짜 때문에 그렇게 정한 건데, 거기 바다의 상태는 조류가 엄청났다. 조류가 5노트, 6노트로 웬만한 것 넣으면 날아가는 거다.
그런데 조류가 세도 음파는 상관이 없고, 오히려 바다의 오르락 내리락하는 게 소나 신호에는 영향이 있었기 때문에 1차에 나온 소나 영상은 뚜렷하게 잡히지 않았지만 분명히 물체의 분포는 알 수 있었다.
2차에 드론을 집어넣는데, 트러스터(thruster) 소위 추진장치가 작동을 해서 조류를 이기거나 어떤 방향을 유지하는데 쓰이는데 조류 때문에 트러스트가 힘을 못 쓰는 거다. 바닥을 못 내려간다.
그래서 무거운 폐밧데리 40kg 정도 되는 것 하고 같이 매달아서 바닥에 내려가게 했다. 나는 확인을 못 했는데 방송국 측에서는 동체로 보이는 어떤 게 잠깐 카메라에 찍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아, 뭔가 있다”라고 눈으로 확인을 한 거다.
그리고 2차 때는 내가 갖고 있던 카메라가 필리핀 쪽의 수리가오 해협에 200m 아래 가라앉은 일본 전함을 찍었던 카메라다. 200m 밑에 찍을 때 방법은 카메라를 쭉 내려서 조류 따라서 흐르다가 물체가 있으면 물체에 부딪쳐서 툭툭툭툭 찍고 말았는데, 여기는 수심이 애매한 거다.
54미터 이렇게 되니까 물 위에 파도의 영향이 밑에까지 그냥 간 거다. 카메라가 들었다 놨다 이런 현상이 있는 거다. 그러니까 좀 지나면 뻘에 가서 박히고 좀 들면 안 보이고. 그물 같은 거나 찍고 뭐 이런 거다.
그래서 썰매를 만들었다. 카메라를 썰매 상단에 붙여서 끌고 다니면서 찍고, 그물에 썰매가 걸리니까 뜯어지고. 그렇게 뜯어져서 걸려서 카메라를 포기할 만큼 그런 상황까지도 갔었다. 잡아당기면서 다이버가 내려가서 그물에 걸린 것 칼로 자르고.
또 카메라 틀을 개조해서, 부두 철공소 가서 고쳐서 찍었다. 그래서 결국은 비행기 날개 하고 엔진을 찍게 된 거다.
□ 다이버가 내려가서 그물에 걸린 것 잘랐다고 했는데, 아주 깊이는 안 들어갔나?
■ 바짝 당겨서 올렸으니까 한 30여미터 된 것 같다. 그 당시도 잠수를 준비한 게 아니기 때문에 탱크가 압축공기가 가득 들어 있던 게 아니다. 어느 정도 들어 있는데 계산상으로 내려가서 칼질만 하고 바로 올라오면 되겠다 싶어서 다이버가 내려갔다.
모르는 나머지 사람들은 불안한 거다. 공기도 얼마 안 남았다는데 저것 가지고 될까. 그런데 계산상으로 나오니까. 그리고 분명히 시킨 것도 “이것만 분명히 하고 와라”.
□ 두 번째에 찍었으니 성공한 것 아닌가.
■ 그렇다.
“내 입장에서는 만족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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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MBC가 수중 촬영에 성공한 곳은 안다만 해안에서 30km 정도 떨어진 곳 수심 50m 지점으로 현지 어부가 제보한 정밀한 좌표와 일치했고, KAL858기 운항 예정노선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은 지점이었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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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병철 기자가 현지에서 리포트하고 있다. 조류가 강할 때는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고 한다. [캡쳐사진 - 통일뉴스] |
□ 그러면 세 번째는?
■ 세 번째 간 이유는 찍힌 영상 자체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서 설명이 돼야만 객관적인 자료가 되는 정도의 영상이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만족을 못했다.
객관적인 영상, 누가 봐도 “이건 뭐다, 뭐다”라고 나와야 되는데, “이런 걸로 볼 때 858기라고 추정할 수 있다”라는 식의 것은 내가 관계된 한은 내 스스로 좀 용납이 안 되더라.
그래서 한 10m 위에서 떠서 카메라를 비추면 분명히 객관적인 영상이 나올 거다. 왜냐하면 2차 했을 때 자연광으로 비췄을 때 10m 정도 시계(視界)가 나왔다.
방송국에 이야기해서 “한 번 더 갔다 옵시다.” 내가 이야기했다. 그래서 거의 안 되는 것을 방송국에서 오케이해서 최소인원으로 갔다 온 게 3차였다.
그런데 3차는 시간이 없었다. 그것도 이틀이다. 첫 날 가서 3시간인가 하고 둘째 날 그것도 시간 끌어가지고, “조금만 더 하자, 더 하자” 해서 밤늦게 왔다. 함께 나간 사람들은 상당히 불편해 하고, 어거지로 했다.
그런데 세 번째 갔을 때는 조명을 좀 강화했다. 그랬는데도 큰 성과는 없고 수중드론이 동체를 찍었다. 그건 내가 영상을 확인 못 했다. 그리고 엔진, 멀리서 8미터 이상 떨어져 있던 엔진 형태를 좀 가까이서 찍은 것이 3차에서 얻어진 결과다. 한 2,3미터 정도로 가까이서.
세 번째는 어떤 식의 작업을 하려고 했냐면 배를 목표물 위에 고정시키는 작업을 하려고 했다. 동서남북에 앵커를 떨어뜨려서 줄을 쭉 배에다 잡아서 한쪽은 당기고 줄이고 해서 배를 그 목표물 위에다 고정시키는, ‘온탑’(on top)시키는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파도가 너무 센 거다. 너울성 파도가 2미터 이상 오니까. 심 국장도 현장보도를 하는데 배에 서있지 못할 정도로 배가 그렇게 흔들리니까 온탑 작업도 실패를 했다.
□ 수색팀은 어떻게 꾸려졌나?
■ 방송국 관계자들하고, 그냥 나하고, 현지에 다이버로 구성됐다. 현지의 다이버가 40m 정도는 내려갈 수 있어서 비상시에는 써먹을 수 있고, 아니면 내가 내려가도 된다.
□ 해상 전문가는 한 명이었나?
■ 그렇다. 처음에 6명이 갔고, 3차에는 4명, 방송에서 3명 가고 나 하나 갔다.
□ 3차에 걸쳐 찍은 영상을 봤다. 앞서 설명이 나왔지만 제일 어려웠던 것은 역시 현지 여건이었나?
■ 역시 해상 상태, 그리고 현지의 실정이었다. 현실적인 문제가 뭐냐면, 우리는 탐사를 나가면 몇박 몇일 나갈 수가 있다. 그런데 거기는 야간 항해 자체가 안 된다. 무조건 나갔다가 들어와야 하는 것이 규칙이다.
그러니 실제로는 3시간 밖에 없는 거다. 2시가 넘으면 빨리 출발해야 한다. 3시가 데드라인이다. 조금 늦으면 야간 항해를 하게 되니까 굉장히 불안해 한다. 그리고 또 위험하다. 야간에 어로작업을 해서 중간 중간에 어망들이 있으니까 배가 가다가 걸리면 거기서 애 먹는다. 그 다음에 해상 상태.
□ 실제로 수색 작업을 하다가 경찰이나 이런데 문제가 되기도 했나?
■ 그런 건 없었다. 그건 다 허가 맡고 나간 것이기 때문에. 허가도 낚시 허가다. 그래서 우리는 불법적으로 한 게 없다.
왜냐하면 이게 밑에 있는 장애물을 조사하는 건데, 우리가 이야기할 때 인공어초, ‘아티피셜 리프’(artificial fish reef)라고 하는데, 암초, 어초를 조사하는 목적이 낚시다.
고기를 잡으로 가는 거 아니냐. 그런데 고기가 어디 사느냐. 그냥 망망대해 평평한 데는 고기가 많이 살지 않는다. 생태계가 형성되려면 장애물이 있어야 된다. 바위라든가 산호라든가 아니면 침몰선이라든가. 그런 고기를 찾다 보니까 암초를, 수중 장애물을 찾은 거다.
그래서 장애물이 뭔가 하고 사진을 찍는 거다. 거기서 실제로 그물 사이에 나와 있는 장어가 숨을 쉬는 것도 근접촬영하고 그랬으니까. 그런 식으로 해서 ‘외국인이 배를 타고 낚시 나간다’가 허가 조건이다.
낚시 나가서 촬영하고 그거야 상관 없지 않나. 고기 잡으면 사진 찍지 그럼 뭐 사진 찍는 게 금지되는 나라가 어디 있겠나. 그 정도면 뭐 가서 숨도 못 쉬지.
□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번 대구MBC 취재 때 두 번이나 경찰 제지를 받았고, 경계가 강화됐다고 이야기하더라.
■ 아니, 그것은 안 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어렵게 만들어서 탐사 자체를 안 하겠다는 거다. 지금 32년 동안 못 한 걸 우리는 달랑 가서 했지 않나. 몰래 가서 한 것도 아니고 낚시 허가 내서 자연스럽게 가면 된다.
그게 순리적으로 푸는 방법이다. 현실적인 방법이고. 그게 지혜라고 그럴까. 그런데 “33년 전에 추락해서 실종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런 항공기와 거기에 유해가 있는데 그것을 탐사하기 위해서 허가를 내주쇼.” 그러면 세상 어떤 공무원이 내줄 수 있겠나.
우리나라도 자기가 허가는 단순히 내줄 수 있지만 혹시라도 이거 내서 와라가라 괜히 책임소재 같은 것에 휘말리지 않을까 하는 그런 우려가 있지 않나. 우리 공무원들도 다 마찬가지다. 내가 그 입장이 되더라도. 그러면 “아, 알았어요. 내가 위에 알아보고 해줄께요.” 그러면 위에서는 책임지겠나.
우리 천암함 사건도 마찬가지다. 단순하게 아주 뻔한 사고를, 판검사들이 배가 좌초되고 부셔진 것에 대해서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이걸 좌초라고 하면 “너 잘못이다.” 그렇게 주장한 사람은 범인 취급하고, 그렇게 하다가 어느 시간되면 딴 검사나 판사한테 넘기고 넘기고. 10년을 끌고 오지 않나.
그런데, 그렇게 거창한 타이틀로 들어와서 허가를 내달라는데 어떤 사람이 단순하게 허가를 내주겠나.
“우리가 우려했던 것은 30여년 전의 어떤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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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다만 해역을 누빈 '낚시 배'. [사진제공 - 이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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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차례 현지취재에 동행한 이종인 대표의 밝은 표정. [사진제공 - 이종인] |
□ 그러니까 이번 대구MBC 취재 과정에서 제지를 받았나?
■ 우리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11월 29일 나간 게 처음인데, 제지를 받았다는 게 아니고 배를 타고 나가면서 해군 초소에 들러서 “너네들 뭐하러 가는 거냐” 하고 검문을 받았다. 두 번 씩이나. 그러면서 “너무 멀리 나가지 말라.” 낚시니까 당연히. 우리가 낚시 장비들 가지고 가니까. 이렇게 보더니 보내줬다.
그래서 우리는 바다 쪽으로 안 가고 섬 쪽으로 쭉 올라가서 그 초소에서 멀어진 다음에 바다 쪽으로 나갔다. 그러니까 해군이 쫒아오더라. 그래서 감시의 대상이 됐고 우리 입장에서는 좀 초조했다. 왔을 때 낚시 담그고 있고 이런 식으로 해서 액션도 취하고 그랬는데 이렇게 악의적으로 의심하고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 쉽게 말해서 낚시배 보호 차원 정도의 신경을 쓴 건가?
■ 그렇다. 우리나라 해군 같으면 뭐 고속정 갖고 와서 “왜 나가지 말랬는데 나가?” 그러면서 저쪽으로 인도하고 그랬을 텐데, 그 정도까지 관심이 없었다.
그 다음서 부터는 그냥 신고해 놓은 자체로 아무 제지 없이 왔다갔다 했다.
□ 별 문제가 없었다니 다행이다.
■ 우리가 우려했던 것은 30여년 전의 어떤 끈이 아직도 연결이 돼서 정부기관의 방해를 받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 제일 궁금한 것은, 이 대표는 해난구조 전문가인데, 직접 잠수해 내려가서 사진을 찍거나 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못 내려갔을까 궁금하다. 인터뷰에서 혼합기체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 일단은 거기 잠수 장비가 압축공기로 하는 잠수이고, 혼합기체는 소위 테크니컬한 ‘텍 다이빙’(Tec Diving)이라고 구분이 되는데, 50m 보다 깊은 수심에서는 혼합기체를 사용해야 한다.
물론 공기를 가지고 100m도 내려갈 수 있다. 그것은 장시간 연습이 돼야 한다. 몸이 거기에 숙달이 돼야 한다. 그런 식의 준비는 전혀 안 돼 있고, 리스크가 크다.
그리고 혼합기체 잠수를 할 수 있는 설비가 미얀마에는 전혀 없다.
□ 여기서 가져갈 수는 없나?
■ 가져갈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문제가 커진다. 장비를 가져가는데 왜 가져 가느냐? 일단 고압가스를 가지고 가야 한다. 고압가스는 비행기로 나를 수가 없다. 배로 가야 한다.
결국 잠수가 가능하려면 정부의 허가 아래 그런 잠수장비나 인양장비가 준비가 돼서 하는 수밖에 없다.
욕심을 내서 만약에, 50m 그냥 압축공기로 한번 들어가 봐? 그런데 들어가 보는 건 좋다. 그게 대구MBC에서 샀던 수중드론과 같다.
최첨단 수중드론인데 100미터까지 촬영이 되는 거라고 하더라. 이걸로 충분히 촬영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잘 됐다. 그러면 그거 가져가자.” 그런데 포항 바다에 가서 테스트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테스트 하지 않은 게 좋다. 기왕 테스트 하는 거면 실제로 현장 가서 한번 쓰고 못 쓰는 게 났다”고 말했다.
왜 그러냐면 그물이 많아서다. 드론이라는 게 영상을 찍으면 위로 송출이 된다. 잘못 되더라도 영상물은 갖고 있을 수가 있지 않나. 그래서 리스크가 있어서 연습 절대 하지 말고 현장에서 쓰고 마는 걸로 하자고 했고, 현장에서 써서 결국 잘못됐다. 나중에 수리해서 3차에 가져갔다.
다이버가 54m, 60m 이렇게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드론하고 똑 같다는 거다. 들어가는데 이건 사람이지 않나. 그물이 굉장히 많다. 그물이 우리 눈으로 보는 것은 굵은, 코가 큰 저인망 그물이었지만 때에 따라서는 망사 같은 눈에 안 보이는 게 잡는 것 같은 그물들도 있다. 그런 것은 걸리면 답이 안 나오는 거다.
그러면 둘이 들어가면, 둘이 같이 걸리면 어떡할 건가. 그리고 급상승했을 때, 거기서 탈출해서 올라왔는데 치료할 수 있는 감압, 제압 설비도 없다. 일단은 다이빙벨이 없다. 그러면 거기서 죽는 거다. 거품 토하고.
그러면 제2의 사고가, 인명사고가 거기서 나면, 사후에 정부에서 거기에 작업을 허락하겠나 안 하겠나. 접근도 못하게 하지.
그래서 이것은 위험도가 어떻고 상황이 분석됐고, 거기에 걸맞는 작업준비를 해서 시도해야 한다는 거다. 크레인도 가져가고 바지(barge)도 준비해야 한다.
□ 수중 촬영 결과물들을 공유했을 텐데, 물론 항공전문가도 봤겠지만 이종인 대표가 보기에 그것이 KAL858기 동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나?
■ 그건 100%라고 본다.
□ 왜 그렇게 보나?
■ 들은 바에 따르면, 거기가 비행기가 뭐 몇 년에 한 번씩 추락하는 데도 아니고, 그 해역에 보잉707이라는 비행기가 가라앉은 것은 그게 유일한 거다. 그러니까 그거 밖에 없는 것 아니냐.
□ 딱 봤을 때, 이건 비행기 동체고, 보잉707에 가까운 거다?
■ 707이다. 707 엔진하고 날개다. 프로펠러 비행기도 아니고. 그래서 방송하는 사람들은 “858로 추정되는 동체가 발견됐습니다”, “858 것으로 추정되는 날개 및 엔진이 발견됐습니다”, 추정이라는 말을 쓰더라.
내 입장에서는 그러면 그냥 858이다. 딴 게 있을 수 없지 않나. 우리가 수색한 데가 858하고 전혀 관계 없는 대서양이나 태평양 가서 한 것도 아니고 그 자리에 가서 한 거니까.
□ 그러면 좌표가 굉장히 정확했다고 봐야겠다.
■ 그렇다. 대구MBC 측에서 미얀마에 가서 위안부 취재를 하다가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난 건데, 그 사람은 엔진을 건지다 떨어뜨렸다. 배에 올리려고 하다 보니까 너무 무거워서 그물이 찢어져서 그물째로 떨어진 거다. 그래서 다시 건지려고 위치를 적어놓은 게 그 좌표다. 그래서 그물에 쌓인 엔진 자체만 촬영이 된 거다.
□ 1차 수색에서 찾았나?
■ 초장에 찾았다. 그물로 들어 올렸던 그 엔진도 찍고 그 다음에 날개 밑의 엔진하고 아직 온전하게 날개랑 같이 동체로 붙어있는 그 상황도 찍었다.
□ 그 어부가 말했던 엔진은 다른 쪽 엔진인가? 여기에는 좀더 큰 엔진과 날개가 붙어 있고 꼬리 같은 것도 보이고.
■ 그렇다. 날개와 엔진이 붙어있고 꼬리도 뒤에 보이고.
□ 정리 해보면, 대구MBC 기자가 결정적 제보를 접수해서 전문가를 동행하고 가서 확인을 한 거니까 실제로 대구MBC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이해된다.
■ 그렇다. 왜냐하면 내가 “대구MBC, 대구MBC” 그러는 게, 이런 사건을 언론사가 돈을 들여서, 시간을 들이고 취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거다. 물론, 언론사에서는 특종을 위해서 뭔가 하고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런데 남 힘들여서 취재한 것에 대해서 “뭐라 뭐라 하더라”, 아니면 뭐 자기가 갖고 있는 의견을 갖고 반박이나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방송국에서 이런 취재를 할 때는 방송국 자체 지휘계통 전체에서 허가가 나니까 하는 것 아니냐. 일심동체가 돼서. 그래서 이렇게 추진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 국민의 한 사람으로 볼 때 굉장히 고마워해야 될 일이다.
나야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서 내가 할 일 했을 뿐이고 주 역할은 대구MBC라는 데서 크게 한 거다. 뭐 국정원이나 국가보다 앞서 있는 거다. 국가를 대신해서 한 거다. 의혹이라든지 이런 건 나중에 풀어야 되는 것이고.
“정부가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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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인 대표는 정부 주도 수색, 인양 보다는 정부의 지원 아래 민간전문가들의 수색, 인양을 선호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 향후 조사와 인양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나?
■ 향후 조사는 여태까지 밝혀진 해상 상황, 해저 상황, 그리고 장애물이 놓인 상황, 이런 것을 잘 분석해서 거기에 걸맞는 조사장비와 인양장비를 현지에서 조달하든 여기서 가져가든 해서 일을 해야 될 거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 것은 소규모로 완전히 약식으로 한 거다. 진짜 한 마디로 끈기와 지혜로써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하지만 인양은 거기에 금덩어리가 있는 게 아니고 일단 거기에 중요한 사건 단서가 있고, 그 다음에 거기에 남아 있을 유해에 대한 회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밀하게 짜서 가야 한다.
그 다음에 예산이 들 텐데, 국가가 나서서 세우면 세월호 짝이 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세월호 짝이라는 건 인양할 수 있는 시간, 예산 이런 게 턱없이 부풀려져서 했다. 그런 게 조금 걱정이 된다.
예산이 부풀려져서 보이기 위한 것이 되면, 예산 많이 들어 못한다는 공식적인 핑계가 나올 거고, 그렇게 되면 국민들의 반대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돼서 해결이 되는 계기가 없어질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 이런 걸 걱정해야 되다니 서글프다. 민간이 이 정도 해 놓았으면 정부가 알아서 잘 해야 되는 것 아닌가.
■ 알아서 해야 하는데, 알아서 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턱없이 경우가 많다. 천안함도 합조단을 꾸며서 관계없는 사람들 초대해서 밥 먹이고 돈 줘서 보내고, 책을 얼마나 찍었는지 모르지만 합조단 보고서 찍고...
세월호도 바로 배를 세워서 안전하게 했어도 금방 할 것을 옆에다 장치해서 돈 들여서 시간 들여서 거의 2년 만에 건지지 않았나. 그렇게 해서 또 육지에서 돈 들여서 옆으로 세우는 작업 하고.
그런 일은 정부가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전문 분야는 진짜 정부가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 그대로 그냥 전문가들 옆에서 예산 지원하고 도와주는 정도, 교통정리해 주고. 진짜 급하게 갈 때 교통경찰이 길 좀 터주고 신호 같은 것 조작해주고, 이런 식의 지원이 필요한 거다.
구급차가 가는데 국무총리가 나서서 “아, 이 구급차가 가는데 우리 정부에서...” 이러면서 시간 끌고, 무슨 행사하고, 그런 식으로 해서 환자 다 죽이는 식의 어떤 그런 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급차 가는데 길만 터주고 빨리 병원에 도착해서 환자가 살게만 해주면 되는 거다. 그거 한다고 무슨 특별기구 만들고 시간, 돈 들이고, 참 답답한 거다.
물론, 공적인 일이 그렇게 쉽게 개인 일처럼 끝나는 게 아니고, 책임이 있고 나중에 기록이 있어야 된다. 그런데 일의 종류가 있지 않나. 그렇게 할 일과 안 할 일이. 먼저 처리하고 나중에 그런 서류적인 것은 처리하면 된다. 그게 싸고 효율적이다.
□ 그런데 그렇게 될까?
■ 하하하. 문재인 정부가 바뀐 것은 뜻이 크다. 이 정부에서 이런 일을 해결해 줬으면 하는 것들이 전혀 해결이 안 되고 있으니까 실망한 사람도 많고. 하지만 딴 선택권이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또 과거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 그 정도의 장점을 가진 정부다.
기왕 재임 기간 동안은 일을 좀 해줬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지금 할 수 없이 또 기대야 되는 게 지금 정부다. 지도자한테 성품이 좋고 나쁘고는 별로 따지는 사람이 없다. 일을 제대로 하는지 안하는지 따지는 거다.
예를 들어서 대통령이 갖고 있는 고유의 스타일을 주장하기 보다는 스타일에 위배되더라도 국민이 원하는 일 처리를 해줬으면 좋겠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라도 할 계획을 차곡차곡 수립을 해서.
지금 남아있는 과거 정부와의 끈들, 지난 박정희 정부 때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있는 공무원들의 끈을 과감하게, 강제로 하라는 건 아니고 어떤 의식개혁을 통해서 과거 범죄를 좀 정리를 해주면 그나마 후진국에서 헤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좀더 차별성 있는 정치를 해줬으면 하고 바란다.
□ 천안함, 세월호, 이번에 KAL858기 사건까지 쭉 진행했는데, 개인적으로도 화재사건도 있고 다이빙벨로 큰 상처도 받았는데, 소회가 어떤지 듣고 싶다.
■ 이번에도 내가 온 게 아니고 그쪽의 요청에 의해서 온 거다. 그러다 보니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된다는 어떤 길에 대한 제시도 해야 될 것 같고, 여러 가지 책임감이 크다.
어떤 사건이 날 때 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국민들이 속고 있고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래서 좀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좀 슬픈 이야기다. 하지만 책임감 같은 걸 크게 느껴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게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 요즘 알파잠수는 계속 운영하고 있나? 일거리는 계속 들어오나?
■ 하고 있다. 일은 가끔 들어오고. 올해가 4월 21일이면 설립 30년이 된다.
□ 30년 세월이면 짧지 않은데, 바람이 있다면?
■ 허허허, 맞다. 이제는 접고 어디 돌아다니면서 도움 필요한데 카운슬링이나 하고, 그냥 몸으로 때울 수 있는 거나 하고, 나 하고 싶은 다이빙이나 다니고 하는 게 금전적으로는 이익이 된다.
그런데 이걸 잡고 있는 것은 구조체계가 아직도 현실화 되지 않았다는 거다. 국가에서는 국가대로 겉핥기 식의 선전용으로,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영전의 발판으로 삼고.
또 다른 제2의 세월호 사건이 나도 크게 달라질 것 없다는 생각에, 방법은 내가 정부에 제시했다. 이런 전문 업체를 육성을 해서 지원을 해라. 조건 없이 10명이고 20명이고 전문 잠수부 구조요원을 키울 수 있게끔 1년에 10억이고 20억이고 지원을 해서 유지하고 있으면, 사고 나면 역할을 하지 않겠나.
예를 들어서 안다만 KAL858기도 그런 식으로 유지했으면, 10명 20명 그 팀이 가는 거다. 장비는 가까운 데서 빌린다. 인도나 방글라데시나 미얀마도 있을 거고. 바지하고 크레인, 그렇게 해서 하면 되는 거다.
□ 신성국 신부나 가족들과의 접촉은 있었나?
■ 전혀 없었다. MBC하고 했기 때문에 지금 이 인터뷰도 심 국장한테 승낙을 받고 응한 것이다. MBC의 요청에 의해서 같이 가서 결과물를 얻고 상황이나 정보를 알게 된 것 아니냐. 그런데 내가 전문가라고 어디 가서 막 떠들고 그러면 그것은 도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천안함 때문에 이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데, 누군가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취재를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가치를 쳐줘야 된다.
□ 현재로서는 민간으로부터 새롭게 요청받은 것은 없고 정부가 나서주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까지 온 것 같다.
■ MBC도 원하는 게 그것이다. 여태까지 재조사, 특별조사, 특위 이런 걸로 봤을 때 제대로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진 것이 없기 때문에 정부한테 조사작업을 촉구하지만 과연 정부에서 조사하면 그게 납득할만한 결과가 나올까 의심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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