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스피치 반대운동의 주역들인 최강이자(왼쪽)씨와 미우라 도모히토가 지난 9일 오후 <한겨레>와 인터뷰를 마친 뒤 가와사키 사쿠라모토에 있는 후레아이관(어울림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다문화 종합시설인 후레아이관은 조례를 만드는 데 앞장선 ‘헤이트스피치를 허용하지 않는 가와사키 시민 네트워크’의 산실이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 “누구든지 인종, 국적, 민족, 신조, 연령, 성별, 성적 지향, 성자인(性自認), 출신, 장애 및 그 밖의 사유를 이유로 부당한 차별적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 규정(차별적 언동 해소)에 따른 시장의 명령을 위반한 자는 5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일본 가와사키시의 ‘차별없는 인권존중마을 만들기 조례’의 핵심 내용이다. 모든 종류의 차별 금지를 명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초이며, 재일한국인에 대한 헤이트스피치를 억제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조례를 만든 힘은 가와사키 시민들이었다. 우리나라는 차별금지법이 2007년부터 매번 발의되고 있지만, 여태 국회 문턱을 못 넘었다. 인권 조례 역시 장애인 차별 금지 조례 등 특정 사안에 한정돼 있거나, 보수적 종교단체 등의 반대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 부분은 빠진 경우가 있다.
가와사키 조례를 만드는 데 앞장서온 4명을 만났다. 최강이자 후레아이관(어울림관) 관장과 미우라 도모히토 시민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지난 9일 후레아이관에서, 간바라 하지메와 송혜연 변호사는 8일 가와사키시 자신들의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사실 저도 되게 무서웠어요. 무서워서 공개적으로 헤이트스피치(혐오발언)에 맞서기가 힘들었죠. 그런데 일본 시민들이 먼저 나서서 힘차게 도와주니까 저의 작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어요.”
차별 발언을 처벌하는 내용의 가와사키시 조례(‘차별없는 인권존중마을 만들기 조례’, 이하 ‘가와사키 조례’)를 만든 주역 중 한 사람인 최강이자(46·존칭 생략) 후레아이관(어울림관) 관장은 시민들에게 공로를 돌렸다. 차별적인 언동을 하는 사람에게 최고 50만엔(약 540만원)의 벌금을 매길 수 있도록 한 가와사키 조례는 일본에서 최초일 뿐 아니라 세계 인권운동사에도 기록될 내용이다. 일본에서는 그동안 ‘헤이트스피치 해소법’(2016)이나 오사카시 조례(2016년) 등 차별금지와 관련된 법률이나 조례가 여럿 있었지만, 선언적인 내용이거나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약했다. 처벌 규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넘기 어려운 장애물로 여겨졌다. 가와사키시는 숱한 토론과 심의 끝에 혐오발언을 제어할 수 있는 처벌 조항을 조례에 담았다. 주저하고 고심하는 시 당국과 시의회를 움직인 힘은 시민들이었다.
“2013년에 헤이트스피치가 가와사키역 앞에서 처음 열렸어요. 그때 거기를 우연히 지나다가 집회와 마주쳤는데 너무너무 무서웠어요. 200명 가까이 모인 사람들이 ‘한국 사람을 죽이라’고 외치는 것을 현장에서 보고 들으니까 정말 두려웠죠. 도쿄에서 그런 혐한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언론 보도로 접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그래서 그 후로는 집회가 열리는 장소를 피해 다녔어요.”
연좌농성으로 마을 진입 막아
그러나 그러한 외면이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혐한 시위를 주도하던 우익단체는
2015년 11월8일 헤이트스피치 집회를 조용한 주택가인 사쿠라모토로 바꿨다. 가와사키시 남쪽 바닷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쿠라모토는 재일동포들이 많이 사는 코리아타운이다. 일자리를 찾아 가와사키 공업지대로 몰려든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이 일제강점기부터 자리잡아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다. 재일동포 3세인 최강이자도 여기서 나고 자랐다. ‘일본 정화 시위 제1편’이라고 내건 집회 명칭이 말해주듯, 이 지역에 사는 재일동포들이 이들 우익의 공격 목표임이 더 분명히 드러났다.
재일동포 3세 최강이자씨는 가와사키시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헤이트스피치 반대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는 2015년부터 자신이 사는 사쿠라모토로 쳐들어오는 우익들의 집회를 앞장서 막아냈으며, 일본 국회에서 헤이트스피치 피해 상황을 진술해서 2016년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제정되는 데 주요한 구실을 했다. 최씨가 2016년 6월5일 가와사키시에서 열린 헤이트데모를 막아낸 뒤 동료 시민들에게 얘기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사쿠라모토를 지키자고 나선 사람은 당시 후레아이관 관장으로 있던 미우라 도모히토(65)였다.
그는 1978년부터 사쿠라모토의 사회복지법인 세이큐샤(청구사·이사장 배중도)에서 일하고 있다. 1970년대 초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취업을 거부당한 재일동포 2세 박종석의 ‘히타치 투쟁’ 재판을 도우면서, 세이큐샤를 만든 고 이인하 목사와 인연을 맺은 것이 계기였다. 1973년에 설립된 세이큐샤는 보육원을 운영하면서 재일동포뿐 아니라 일본 노동자 등 지역주민들의 자녀를 함께 돌보는 등 처음부터 공생을 실천했다. 가와사키시가 1988년 다문화 종합교육시설인 후레아이관을 세워 세이큐샤에 위탁 운영을 맡긴 것은 이러한 경력 때문이었다. 후레아이관 역시 출범 때부터 재일동포와 일본인, 중국인, 필리핀인 등 지역에 거주하는 다양한 시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일본에서도 유례가 드문 다문화 공생 공간이다. ‘누구나 힘껏 살 수 있도록’이 후레아이관의 슬로건이다.
“헤이트스피치 데모대가 사쿠라모토를 타깃으로 삼은 계기는 2015년
9월에 있었던 재일한국인 할머니들의 전쟁 반대 집회였어요. 그 시위가 인터넷으로 널리 알려진 뒤에 훌륭하다는 반응이 많았으나,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공격도 있었어요. 우익들은 할머니들이 사는 동네를 공격 대상으로 삼은 거죠. 저는 그들이 사쿠라모토로 쳐들어온다는 얘기를 집회 사흘 전에 들었어요. 아이들과 할머니들을 지키기 위해서 우선 시위대가 마을에 들어오는 것부터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할머니들 시위에 응원 나왔던 시민 200여명에게 연락해서 사람들을 모았어요. 할머니들을 도와왔으니 마을을 지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죠.”(미우라)
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던 재일동포 할머니 40여명은 2015년 9월 가와사키에서 아베 정권이 당시 추진하던 집단 자위권 관련 법안에 대해 ‘전쟁은 정말 싫다’ ‘평화가 제일이다. 아이들을 지켜라’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반대시위를 벌였다. 일본 전역에서 평화시위가 한창일 때였지만, 전쟁을 경험한 할머니들이 벌인 이 시위는 화제였다. 미우라는 20년 전부터 할머니들과 여러 활동을 함께 해왔다.
그날 극우 시위대 15명 정도가 사쿠라모토 입구에 왔을 때 미우라의 부름에 호응해 거리로 나온 시민은 150명이 넘었다. 이들의 반대시위로 헤이트시위대는 진로를 바꿔야 했다. 1차 대결에서 패배한 극우 시위대는 두달 남짓 지난
이듬해인 2016년 1월 말 전열을 가다듬어 ‘일본 정화 시위 제2편’이라며 다시 사쿠라모토로 쳐들어왔다. 이번에는 극우 시위대가 60여명으로 늘었지만, 미우라와 최강이자 등이 이끄는 반대시위에 참여한 시민은 1천명에 이르렀다. 반대시위대는 어깨를 서로 껴안고 도로 한복판에 드러누워 이들의 마을 진입을 다시 막아냈다.
2016년 6월5일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나카하라구 평화공원에 모인 일본 시민 수백명이 도로 건너편에 있는 일본 우익들을 향해 “혐오집회를 그만두라”고 외치고 있다. ‘함께 살아요’라고 쓴 대형 펼침막과 ‘헤이트스피치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쓴 팻말들이 보인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데모대가 첫번째로 사쿠라모토에 왔을 때 바로 눈앞에서 ‘죽여라’, ‘죽인다’고 하는 말을 보고 들었는데 그 자체가 큰 충격이었어요. 두번째 데모가 예고됐을 때는 이것을 미리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에 시위 장소 허가를 하지 말 것을 요구했어요. 그랬더니 법이 없어서 못 도와준다고 하더라고요. 당일 현장에서는 경찰이 ‘이 데모는 허락을 받았으니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를 막는 너희가 불법이다’라며 우리를 꾸짖었어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우리를 지켜줘야 하는 대상으로부터 지킴을 못 받는구나 싶어서 정말 충격이 컸죠.”(미우라)
“룰이 없으면 만들어야” 아이들의 요구
최강이자와 함께 큰아들(당시 중1)도 우익들의 1차 및 2차 사쿠라모토 공격 때 반대시위에 합류했다. 부모의 만류에도 현장에 나온 아들은 재일동포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옆에 서서 “차별은 그만하고 함께 살아요, 사쿠라모토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말아주세요, 부탁입니다” 하고 울면서 외쳤다. 최강이자 모자가 눈물로 호소한 헤이트스피치 반대 투쟁은 일본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을 심의하던 참의원 법무위원회는 2016년
3월22일 최강이자를 도쿄로 불러 가와사키의 헤이트스피치 피해 상황을 청취했다. 최강이자의 진술은 ‘헤이트스피치 해소법’(‘본국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대책 추진에 관한 법률’) 통과(2016년 5월24일)에 큰 힘이 됐다.
“
헤이트시위를 하는 사람들의 양심을 믿고 차별을 그만두고 함께 살자고 러브콜을 보냈어요. 하지만 그들은 많은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한 사람도 남김없이 일본에서 나갈 때까지 차분히 목 졸라 줄 테니’라고 시위를 선도하는 사람을 따라 사쿠라모토를 향해 왔습니다. ‘남한, 북한은 적국이다, 적국인에 대해 죽어라, 죽여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러분 당당하게 말합시다, 조선인은 나가라, 바퀴벌레 조선인은 나가라, 조선인은 공기 오염되니 공기 좀 마시지 마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우리 거리로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달려왔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죽임을 당했던 거나 다름없었습니다.”(최강이자, 2016년 3월22일 참의원 증언)
헤이트데모와 인터넷에서의 혐오발언이 아무리 심해도 시나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최강이자와 미우라는 시민의 힘에 기대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들의 요구에 165개 단체가 호응해 ‘헤이트스피치를 허용하지 않는 가와사키 시민 네트워크’(2016년 1월, 이하 ‘시민네트워크’)가 결성됐다. 저명한 원로 인사인 세키타 히로오(91·아오야마학원대 명예교수)가 선뜻 회장을 맡아줬으며, 미우라 도모히토와 야마다 다카오가 사무국장을 맡았다. 야마다 다카오는 ‘히타치 투쟁’ 때부터 재일동포 인권 개선에 힘을 보탰다.
“두번째 헤이트스피치 공격을 받고 대응하면서 결국시민의 힘으로 받아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바깥 공격에 대해서 마을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하나가 돼서 대응을 해야겠구나, 그러자면 모두를 묶을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이 운동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게 아니라 ‘올 가와사키’(All Kawasaki) 정신이 중요하다고 봤어요.”(미우라)
시민네트워크는 2016년 6월5일 3차 사쿠라모토 공격 등 여러 차례 가와사키에서 벌어진 헤이트스피치 시위와 극우인사 강연회 등을 대부분 막아냈다. 이런 실력 행사뿐 아니라 시민네트워크는 처음부터 차별금지를 막아내는 조례 제정이라는 더 큰 목표를 세웠다.
“헤이트시위대가 사쿠라모토로 쳐들어올 때 ‘
여기 사는 사람들이 헤이트데모는 오지 말아달라고 하는데 왜 그들이 오느냐’고 우리 지역 청년들과 아이들이 물었어요. ‘그것을 막을 룰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그러면 어른들이 룰을 만들면 될 것 아니냐’고 되묻더군요. 그 말을 들으면서 ‘그래, 우리가 룰을 반드시 만들게’라고 약속했지요.”
(최강이자)
차별 발언을 처벌하는 내용의 가와사키시 조례를 만든 주역 중 한 사람인 미우라 도모히토(왼쪽)와 최강이자씨가 지난 9일 오후 일본 가와사키시 사쿠라모토의 후레아이관(어울림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시민 의견 64%가 ‘처벌 조례’ 찬성
조례를 만들기 위해 시민네트워크는 2016년 출범 초부터 시민 학습회를 조직했다. 학습회에는 한 번에 200명가량의 시민들이 참석해서 국제인권법이나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공부를 했다. 이를 돕기 위해 전문가인 변호사들도 여러 명 시민네트워크에 참여했다. 인권변호사로 유명한 간바라 하지메(53)와 송혜연(47)이 대표적이다. 간바라 하지메는 2013년 2월 도쿄 신오쿠보에서 열린 혐한시위를 목격한 뒤 카운터스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으며, 한국에서도 번역된 <노 헤이트스피치>를 썼다. 송혜연도 간바라와 함께 2013년 6월부터 헤이트스피치 시위의 불법을 감시하는 현장 활동을 벌였다. 두 사람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송을 돕고 있다. 간바라는 고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증언을 일본에서 처음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우익 논객을 상대로 한 소송의 변호도 맡고 있다.
“사쿠라모토에 우익들이 와서 시위를 벌일 때 우리는 그것을 직접 막으러 간 게 아니라 참관하러 갔어요. 변호사들은 그런 현장에 완장을 차고 가요. 물론 우리가 완장을 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기 변호사도 있구나 해서 조심하게 되죠. 우익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죠.”
(송혜연)
일본인 미우라 도모히토도 주역
시민네트워크 결성 및 운영 주도
“경찰의 헤이트시위 보호에 충격
마을 스스로 지키려 조례 운동”
간바라 하지메, 송혜연 두 변호사
“차별 발언 처벌 사례가 쌓이면
불법 인식 퍼져 억제효과 낼 것”
초안 공개 뒤 헤이트데모 없어
다른 조례로 트위터 협박범에
지난 연말 30만엔 벌금 부과도
헤이트스피치 반대운동에 앞장서온 일본의 인권변호사 간바라 하지메가 지난 8일 오후 가와사키시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간바라와 송혜연은 우익들의 세번째 사쿠라모토 집회
(2016년 6월)를 앞두고 다른 변호사 3명과 함께 사쿠라모토 반경 500미터 이내에서 헤이트스피치 데모를 금지하라는 내용의 접근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요코하마지방법원 가와사키지부는 그해 6월2일 “헤이트스피치 데모는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에 위반하는 행위이며, 표현의 자유를 넘은 위법행위”라며 시민들의 손을 들었다. 시민네트워크의 활동에 힘입어 후쿠다 노리히코 가와사키 시장도 세번째 집회를 앞두고 헤이트스피치 시위대의 공원 사용을 불허했다. 시위대는 집회 장소를 사쿠라모토에서 한참 떨어진 나카하라구의 평화공원 앞 도로로 바꿔야 했지만, 이마저 시민들의 힘으로 가로막혔다.
“ 2016년 5월에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만들어져 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 시작했지만, 그 법은 이를 금지시키는 강제 조항이나 처벌이 없는 이념법이었어요. 오사카시 조례에도 처벌 규정은 없었고요. 우리는 가와사키 조례에 벌칙 규정을 꼭 넣어야 한다고 봤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차별이나 혐오 발언은 불법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거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서 실질적인 억제 효과를 낼 수 있거든요.”(간바라)
시민네트워크는 조례 내용에 처벌 규정이 들어가야 한다는 내용으로 4만명의 서명을 받아 2018년 11월 시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시는 조례 개요를 발표(2019년 3월)할 때도 “실효성을 확보할 조치를 강구”한다고만 언급했을 뿐 벌칙 규정을 포함시킬지 여부에 대해서는 추후 검토를 진행하겠다며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이에 시민네트워크는 차별 발언에 대한 처벌 규정을 포함하고, 인터넷에서의 헤이트스피치 대책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시에 제출했다. 며칠 뒤 가나가와현 변호사회도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6월24일 발표된 조례 초안에는 처벌 규정이 들어갔다. 조례 발표 후 가와사키시에 제출된 시민 의견 1만8천여건 중 64%가 이 초안에 찬성했다. 마침내 지난해 12월12일 가와사키 시의회는 자민당 의원까지 포함한 전원 찬성으로 조례를 통과시켰다. 벌칙 조항은 올해
7월부터 시행된다.
“협박에 외출 땐 아이와 떨어져 걸어”
‘올 가와사키’를 내세운 시민네트워크가 시민들의 호응을 얻는 만큼 일본 우익들의 방해도 거셌다. 이들은 ‘가와사키가 뚫리면 일본 전체가 뚫린다’며 헤이트스피치 반대운동의 핵심 인물들에 대한 공격에 초점을 맞췄다. 첫번째 타깃은 가와사키의 구심점이자 전국적인 상징으로 떠오른 최강이자였다. 우익들은 사쿠라모토 지키기에 나섰던 그의 아들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이들은 익명 뒤에 숨을 수 있는 인터넷을 주로 활용했다. 트위터와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바퀴벌레” “구더기”라며 혐오발언을 하는가 하면 “정원에 사용할 손도끼를 살 거야” “가와사키의 레이시스트가 칼을 사니까 통보하길”이라는 내용으로 노골적인 협박도 했다. 이들의 집요한 협박에 최강이자는 현기증과 난청, 불면증 등에 시달렸다. 그는 집 앞 문패를 뗐으며,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아예 받지 않았다. 또 쇼핑 등 외출할 때는 아이와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세해서 차별주의자의 공격이 있더라도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인터넷 댓글 등에 신경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을 받은 적이 있지만, 신경쓰지 않을 수 없어요. ‘죽어라’는 댓글이 있을 때는 밤새 잠을 못 자기도 했어요. 건수가 아무리 많아도 익숙해지는 일은 없고, 한 건 한 건 확실하게 상처받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의 피해는 현실 사회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해서 나타납니다. 인터넷에서 프린트한 제 얼굴에 바퀴벌레 일러스트를 붙여서 우편으로 보내오기도 합니다. 또 바퀴벌레 시체가 집으로 배달돼 오기도 해요.”(
최강이자, 2018년 6월2일 가와사키 자치단체 직원조합 강연)
살해 협박을 했던 ‘극동의 메아리’라는 이름의 트위터 사용자는 경찰 수사로 후지사와시에 사는 50대 남성임이 드러났다. 그는 한때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듯했으나, 가나가와현의 ‘민폐(迷惑)행위 방지조례’ 위반 혐의로 지난해 12월27일 결국 법원에서 30만엔(약 33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큰아들을 공격했던 규슈 오이타현 거주 60대 남성도 지난해 1월 9천엔(약 1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집요한 인터넷 공격에 솔직히 사는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그러나 아무리 많은 공격을 받아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모두의 희망이었기에 중간에 넘어질 수도 그만둘 수도 없었어요. 앞만 바라보고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죠. 반드시 일본의 양심이 통할 거라고, 사회정의가 통할 거라고 믿었거든요.”
(최강이자)
간바라 하지메와 송혜연도 우익들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우익들은 일본변호사협회에 두 사람을 징계해달라는 청구를 3천건 넘게 냈으며, 이 중 720명은 지난해 초 두 사람을 상대로 7억2천만엔짜리 소송을 제기했다. 두 사람은 720명을 상대로 맞소송을 제기해 싸우고 있다. 또 사쿠라모토의 헤이트스피치 시위(2016년 1월)를 주도했던 우익 인사 4명은 지난해 11월 간바라가 자신들의 집회를 방해했다고 주장하며 총 440만엔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7월16일 가와사키시 평화공원 인근 도로에서 시민들이 ‘함께 행복하게’라는 펼침막을 든 채 길 건너편의 헤이트스피치 시위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날 헤이트스피치 시위대는 시민들에게 막혀 곧 해산하고 말았다. 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149명 변호인단의 변호 받는 변호사
“간바라를 반헤이트스피치 운동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우익들이 그를 깨부수려 하고 있죠.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가만히 두면 안 된다고 해서 많은 변호사들이 도와주면서 함께 대응하고 있어요. 결국 우리가 이길 거예요.”
(송혜연)
동료 변호사 149명이 간바라를 응원하기 위해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린 영화 <변호인>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일본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현상이다. 이 소송의 1차 변론이 지난 21일 요코하마지방법원 가와사키지부에서 열렸다.
“처음에는 헤이트스피치에 반대하는 일을 하다 보니까 한-일 간의 역사 같은 것을 공부하게 돼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됐죠.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를 알았고, 한-일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이 식민지 역사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재일한국인이 받는 차별을 없애는 일이나 반헤이트 운동도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죠.”(간바라)
가와사키 조례 초안이 발표된 이후 가와사키에서는 헤이트스피치
시위가 한 번도 없었다. 후레아이관으로 걸려오는 비난 전화도 협박 연하장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한 번도 없었다. 인터넷상의 혐오발언은 그동안 워낙 많아서 아직 그 효과를 느끼기 힘들지만, 벌금 사례가 쌓여가면 이 역시 많이 줄어들 것으로 이들 반헤이트스피치 전사들은 예상하고 있다.
“가와사키 지역 자체가 특별해요. 재일한국인들이 40여년에 걸쳐 사회활동을 해왔고, 그런 경험이 쌓여서 공생과 협력의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어요. 반헤이트스피치 운동 과정에서도 보면 피해 당사자들이 발신을 하면 이들과 교감한 사람들이 모여서 결과물을 만들어냈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고리의 힘이 가와사키에는 확실히 있어요.”(미우라)
연하장 협박 사건이 알려지자, ‘인종차별 철폐 기본법을 요구하는 의원 연맹’ 소속의 여야 의원 7명이 지난 23일 저녁 도쿄에서 달려와 후레아이관을 방문했다. 이들은 경찰의 신속한 수사와 시의 적절한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가와사키 시민의 연결된 힘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가와사키/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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