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무노조 경영’ 고집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창립 50년 만에 상급단체에 가입한 노조가 생겼고, 지난 3일엔 삼성화재에도 68년 만에 처음으로 노조가 출범했다. 삼성디스플레이에서도 노조 설립 논의가 한창이다. 삼성은 정말 변한 걸까? 3대째 이어지는 무노조 경영에 맞서 ‘저항의 물꼬’를 튼 진윤석(38)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은 3일 <한겨레>와 만나 “삼성은 변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진 위원장이 언론과 별도로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조 출범 이후에도 최근까지 언론에 개인 정보와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았다. 조합원 조직 활동을 하는 데 회사가 어떤 방해를 할지 몰라 조심스러웠던 까닭이다. 실제로 회사는 지난달 6일과 29일 두 차례, 노조가 전 사원에게 보낸 노조 가입 독려 전자우편을 일방적으로 삭제했다. 그는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포기했다면, 우리가 보낸 노조 가입 독려 이메일을 삭제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2019 한국노총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진윤석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연합뉴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감시위)도 “삼성이라는 회사가 여태까지 걸어온 길을 보면, 이것 역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쇼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준법감시위는 법원이 주문해 지난달 꾸려진 기구로, 삼성 계열사의 준법 경영 여부를 감시한다. 하지만 이들은 회사의 전자우편 삭제에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진 위원장은 “준법감시위가 진정성 있는 기구라면 전자우편이 삭제됐을 때 얘기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의견도 밝히지 않았다”며 “준법감시위가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걸 내놓은 게 없어서 그 구실에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 위원장은 회사 창립 50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 단위의 상급단체를 둔 노조가 생긴 뒤 일어난 가장 큰 변화로 “‘노조’란 단어가 직원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한 점”을 꼽았다. 공개적인 오프라인 공간에선 여전히 노조를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지만, 3개월 사이 사내 인트라넷 등에서 노조 관련 글이 자주 등장하고, 댓글도 많이 달린다고 한다. 노조 누리집은 7차례나 다운됐다. “호스팅 업체에서 ‘회사 역사상 이렇게 접속자 수가 많은 적이 없었다. 무슨 사고가 났느냐’고 연락이 왔더라”며 그는 웃었다.
이렇게 큰 관심은 2013년께부터 노조 설립을 준비해온 데 따른 결과다. 뜻을 같이한 여러 사람들이 “어설프게 만들면 삼성에서 큰일 날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구는 법 공부, 누구는 정치인 조력 얻기, 누구는 시민단체 만나기 등으로 할 일을 나눠 준비했다.” 노조를 만든다는 말은 안 했지만, 양대 노총과 가맹 산별노조 관계자들도 두루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상급단체로 한국노총을 선택하게 된 것은 “조합원 투표의 결과로, 에스케이(SK)하이닉스, 엘지(LG)전자 등 동종업계 노조들이 가입돼 있었기 때문에 쉽게 (처우 등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결과 같다”고 말했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는 “교섭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교섭력을 확보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은 노조의 이름으로 회사의 잘못을 공론화하고, 법적 대응도 하면서 최대한 조합원을 모아야 할 때”라며 “조합원이 많아야 회사가 불성실하게 나올 경우 쟁의행위 등으로 압박할 수 있다”고 했다. 당장 회사에 교섭을 요구하기엔 힘이 모자라고, 교섭을 하더라도 제대로 대응할 수 없으니 ‘때’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진 위원장은 삼성전자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데 무슨 노조를 만드냐며 ‘귀족노조’로 바라보는 게 ‘오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급여를 더 달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노동자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우리의 의견을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노조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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