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 이를테면 악령 같은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현대인들 역시 보이지 않는 세계에 신경을 많이 쓴다. 현대인들은 병원균이나 전자파 같은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옛날 사람들은 성직자나 주술사에 주로 의존했다. 반면, 현대인들은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많이 의존한다.
그런데 현대인과 전문가의 접촉이 직접적인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언론매체의 중개를 통한다. 매스컴이 전달해주는 전문가들의 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은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는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저마다 하는 일이 다르고, 무엇보다 시간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도는 언론매체의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대중과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언론매체가 있기에, 현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그에 대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인과 전문가의 접촉이 직접적인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언론매체의 중개를 통한다. 매스컴이 전달해주는 전문가들의 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인은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는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저마다 하는 일이 다르고, 무엇보다 시간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구도는 언론매체의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대중과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언론매체가 있기에, 현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그에 대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이 점에서 도덕적 결격 사유가 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보여준 보수 언론의 태도는 이들이 대중의 생명과 건강에 대해 얼마나 무책임한가를 보여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미국산 쇠고기로 인해 한국인들이 광우병에 걸리기 쉬운가'에 대해 정확한 의학적 판단을 제공할 책임이 언론매체에는 없다. 언론매체에 그것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땅히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독자들이 정확한 정보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합리적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분야들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이지만, 광우병 역시 과학적으로 충분히 해명된 분야가 아니다. 전문가들도 모르는 부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영역으로부터 대중이 정보를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 역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을 전달해줄 책임이 있다.
광우병 전문가들의 주장, 충분히 전달하지 않았다
광우병 논란이 한창일 때인 2008년 5월 30일 KBS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에서 '세계적 광우병 전문가들에게 듣는다-미국산 쇠고기의 진실' 편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광우병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갖는 국제프리온학회에 논문을 발표한 220여 명의 학자를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광우병은 전염병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문가 62%가 그렇다, 38%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미국에 광우병 소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에는 48%가 그렇다, 36%가 아니다, 16%가 모르겠다고 답했다. '육류의 뼈나 내장까지 먹는 한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에는 56%가 그렇다, 28%가 아니다, 16%가 모른다고 답했다.
프리온단백이란 것이 있다. 인간 두뇌에 존재하는 단백질을 지칭한다. 이 단백질의 구조 변형이 광우병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변형된 유전자형으로 MM형, MV형, VV형이 있다. 이와 관련된 위 프로그램의 설문조사 항목이 'MM형 유전자가 많은 한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가?'였다. 이에 대해 54%가 그렇다, 27%가 아니다, 19%가 모른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위기가 같은 시기 보수 언론의 보도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보수 언론이 광우병에 대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주장을 충분히 전달해주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파헤친 박희제 경희대 교수의 논문 '과학기사 속의 과학자와 과학의 정치화 - 2008년 광우병 논쟁 사례'에서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사회역사학회가 2011년 발행한 <담론 201> 제14권 제2호에 수록된 이 논문은 광우병 논쟁이 뜨겁던 2008년 4월 18일부터 7월 26일까지의 <한겨레><조선일보><동아일보>, KBS <9시 뉴스>, MBC <9시 뉴스>를 대상으로 한다. 다섯 매체의 보도에 어떤 전문가들이 등장했고 그들이 어떤 발언을 했는가를 조사한 논문이다.
전문가 선정에서도 중대한 문제점 노출한 조선·동아
이 논문에 따르면, 미국산 소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에 대해 <조선일보>에 소개된 전문가 중 13.6%가 위험하다는 견해를 피력했고 <동아일보>에 소개된 전문가 중 10.7%가 동일한 의견을 나타냈다. 이 수치가 <한겨레>에선 88.3%, KBS에서는 76.0%, MBC에서는 64.9%로 나타났다. 광우병 위험성을 놓고 조선·동아와 한겨레·KBS·MBC가 현격한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국제프리온학회 논문 게재자들의 경우에는 '미국에 광우병 소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은가?'란 질문에 대해 48%가 그렇다고 답했고, '육류의 뼈나 내장까지 먹는 한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에는 56%가 그렇다고 답했고, 'MM형 유전자가 많은 한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54%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 조선·동아의 보도는 광우병 감염 가능성을 낮게 보는 전문가들의 발언을 훨씬 많이 인용한 반면, 한겨레·KBS·MBC는 감염 가능성을 높게 보는 전문가들의 발언을 많이 혹은 약간 많게 보도했음을 알 수 있다. '한겨레·KBS·MBC와 국제프리온학회 게재자들의 차이'보다 '조선·동아와 국제프리온학회 게재자들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더 컸다.
이에 더해, 조선·동아는 전문가 선정 과정에서도 중대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광우병 논쟁에서 중립성을 고수하기 힘든 전문가들을 상당수 등장시킨 것이다.
광우병 논쟁은 민간 대 민간의 논쟁이 아니었다. 이것은 민간 대 정부의 논쟁이었다. 국민들과 이명박 정부 사이의 논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기관에 근무하는 학자들이 '미국산 소가 광우병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언론매체에서 발언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선·동아는 정부 소속의 전문가들을 많이 등장시켰다. 위 논문에 따르면 <조선일보>에 소개된 전문가 22명 중 6명(27.3%)과 <동아일보>에 소개된 전문가 28명 중 10명(35.7%)이 정부기관 소속이었다.
당시 정부기관 학자들은 여타 분야 학자들과 확연히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 위 논문에 따르면, 대학에 속한 학자들의 51.6%, 시민단체에 속한 학자들의 82.7%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강조한 반면, 정부기관 학자들은 33명 중 1명(3.0%)만 위험성을 인정했다.
정부가 논쟁의 당사자이므로, 광우병 논쟁에서만큼은 정부기관 학자들을 배제하는 게 공정했다. 하지만 조선·동아는 이들의 의견을 비중 있게 소개했다. 이것부터가 보도의 공정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이 반대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반(反)국민적 태도
이 같은 불공정을 우연의 결과로만 볼 수는 없다. 취재 과정에서 발생한 의도치 않은 실수였으리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우연의 실수가 아니라는 점은 이들의 또 다른 보도 태도에서 유추된다.
보수 언론들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과 반발을 반미감정으로 몰아세웠다. 2008년 4월 24일자 <동아일보> 사설 '누굴 위해 미국 소를 광우병 소라 선동하나'는 "어느 모로 보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국민 건강권 포기'라는 주장은 반미 선동에 불과하다"고 한 뒤 "이들의 목적이 식품의 안전성 확보나 농업 보호를 빙자한 반미운동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한 이들은 평범한 일반 국민들이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무조건 반대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반대한 것은, 국민 안전은 생각지도 않고 한미동맹만 우선시해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기준을 완화하는 이명박 정부의 반(反)국민적 태도였다. 그런데도 보수 언론들은 광우병 촛불집회를 반미운동으로 몰아세웠다. 전통적인 색깔론을 시민들의 촛불집회에까지 적용하려 했던 것이다.
보수 언론들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론자들에게 '위선자'라는 굴레까지 뒤집어씌웠다. 2008년 5월 5일자 <조선일보> 사설 '정부는 쇠고기를 미선이·효순이처럼 키울 셈인가'는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녀들에게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이고 있을 거라는 가상의 전제하에 이렇게 주장했다.
'광우병 촛불집회 참가자 중에서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 중인 자녀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말도록 신신당부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를 근거로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자기 자녀들에게는 광우병 쇠고기를 먹이고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다.
생명에 관한 사안까지 정치적 이해관계 우선시한 보수 언론
사실 보수 언론들도 그전에는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했었다. 일례로, 2003년 12월 30일자 <동아일보>는 '광우병 쇠고기, 협상 대상 아니다'라는 사설에서 "외국에서 수입되는 식품에 불안 요인이 있다면 단호하게 수입을 금지해야 옳다"고 말했다. 이랬던 보수 언론들이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친미노선 강화에 보조를 맞추느라 광우병 위험성을 축소해서 보도했던 것이다.
보수 언론들은 광우병 촛불집회를 상대로 색깔론을 제기하면서 근거 없는 흑색선전을 했다. 이는 중립성이 결여된 정부기관 학자들의 주장을 비중 있게 소개한 그들의 행위가 어떤 동기에서 이뤄졌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정책에 보조를 맞출 목적으로 전문가들을 선별적으로 섭외했을 가능성을 농후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이는 보수 언론들이 대중의 건강과 생명에 관한 사안에서까지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중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정치적 목적을 추구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성직자나 주술사에게 의존했던 옛날 사람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언론매체에 상당히 많이 의존한다.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그 같은 신뢰를 보수 언론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뢰 관계가 쌍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로 인해 한국인들이 광우병에 걸리기 쉬운가'에 대해 정확한 의학적 판단을 제공할 책임이 언론매체에는 없다. 언론매체에 그것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땅히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독자들이 정확한 정보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합리적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분야들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이지만, 광우병 역시 과학적으로 충분히 해명된 분야가 아니다. 전문가들도 모르는 부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런 영역으로부터 대중이 정보를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론 역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을 전달해줄 책임이 있다.
광우병 전문가들의 주장, 충분히 전달하지 않았다
▲ 2008년 5월 30일 방영된 KBS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 "세계적 광우병 전문가들에게 듣는다-미국산 쇠고기의 진실" 편 | |
ⓒ KBS |
광우병 논란이 한창일 때인 2008년 5월 30일 KBS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에서 '세계적 광우병 전문가들에게 듣는다-미국산 쇠고기의 진실' 편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광우병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갖는 국제프리온학회에 논문을 발표한 220여 명의 학자를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광우병은 전염병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문가 62%가 그렇다, 38%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미국에 광우병 소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에는 48%가 그렇다, 36%가 아니다, 16%가 모르겠다고 답했다. '육류의 뼈나 내장까지 먹는 한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에는 56%가 그렇다, 28%가 아니다, 16%가 모른다고 답했다.
프리온단백이란 것이 있다. 인간 두뇌에 존재하는 단백질을 지칭한다. 이 단백질의 구조 변형이 광우병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변형된 유전자형으로 MM형, MV형, VV형이 있다. 이와 관련된 위 프로그램의 설문조사 항목이 'MM형 유전자가 많은 한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가?'였다. 이에 대해 54%가 그렇다, 27%가 아니다, 19%가 모른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위기가 같은 시기 보수 언론의 보도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보수 언론이 광우병에 대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주장을 충분히 전달해주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파헤친 박희제 경희대 교수의 논문 '과학기사 속의 과학자와 과학의 정치화 - 2008년 광우병 논쟁 사례'에서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사회역사학회가 2011년 발행한 <담론 201> 제14권 제2호에 수록된 이 논문은 광우병 논쟁이 뜨겁던 2008년 4월 18일부터 7월 26일까지의 <한겨레><조선일보><동아일보>, KBS <9시 뉴스>, MBC <9시 뉴스>를 대상으로 한다. 다섯 매체의 보도에 어떤 전문가들이 등장했고 그들이 어떤 발언을 했는가를 조사한 논문이다.
전문가 선정에서도 중대한 문제점 노출한 조선·동아
▲ 광우병 위험성에 대한 각 매체의 보도태도. | |
ⓒ 박희제, 한국사회역사학회 |
이 논문에 따르면, 미국산 소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에 대해 <조선일보>에 소개된 전문가 중 13.6%가 위험하다는 견해를 피력했고 <동아일보>에 소개된 전문가 중 10.7%가 동일한 의견을 나타냈다. 이 수치가 <한겨레>에선 88.3%, KBS에서는 76.0%, MBC에서는 64.9%로 나타났다. 광우병 위험성을 놓고 조선·동아와 한겨레·KBS·MBC가 현격한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국제프리온학회 논문 게재자들의 경우에는 '미국에 광우병 소가 더 있을 가능성이 높은가?'란 질문에 대해 48%가 그렇다고 답했고, '육류의 뼈나 내장까지 먹는 한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에는 56%가 그렇다고 답했고, 'MM형 유전자가 많은 한국인이 외국인에 비해 인간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54%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 조선·동아의 보도는 광우병 감염 가능성을 낮게 보는 전문가들의 발언을 훨씬 많이 인용한 반면, 한겨레·KBS·MBC는 감염 가능성을 높게 보는 전문가들의 발언을 많이 혹은 약간 많게 보도했음을 알 수 있다. '한겨레·KBS·MBC와 국제프리온학회 게재자들의 차이'보다 '조선·동아와 국제프리온학회 게재자들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더 컸다.
이에 더해, 조선·동아는 전문가 선정 과정에서도 중대한 문제점을 노출했다. 광우병 논쟁에서 중립성을 고수하기 힘든 전문가들을 상당수 등장시킨 것이다.
광우병 논쟁은 민간 대 민간의 논쟁이 아니었다. 이것은 민간 대 정부의 논쟁이었다. 국민들과 이명박 정부 사이의 논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기관에 근무하는 학자들이 '미국산 소가 광우병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언론매체에서 발언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선·동아는 정부 소속의 전문가들을 많이 등장시켰다. 위 논문에 따르면 <조선일보>에 소개된 전문가 22명 중 6명(27.3%)과 <동아일보>에 소개된 전문가 28명 중 10명(35.7%)이 정부기관 소속이었다.
▲ 각 매체에 소개된 전문가들의 소속기관. | |
ⓒ 박희제, 한국사회역사학회 |
당시 정부기관 학자들은 여타 분야 학자들과 확연히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 위 논문에 따르면, 대학에 속한 학자들의 51.6%, 시민단체에 속한 학자들의 82.7%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강조한 반면, 정부기관 학자들은 33명 중 1명(3.0%)만 위험성을 인정했다.
정부가 논쟁의 당사자이므로, 광우병 논쟁에서만큼은 정부기관 학자들을 배제하는 게 공정했다. 하지만 조선·동아는 이들의 의견을 비중 있게 소개했다. 이것부터가 보도의 공정성을 저해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이 반대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반(反)국민적 태도
이 같은 불공정을 우연의 결과로만 볼 수는 없다. 취재 과정에서 발생한 의도치 않은 실수였으리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우연의 실수가 아니라는 점은 이들의 또 다른 보도 태도에서 유추된다.
보수 언론들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과 반발을 반미감정으로 몰아세웠다. 2008년 4월 24일자 <동아일보> 사설 '누굴 위해 미국 소를 광우병 소라 선동하나'는 "어느 모로 보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국민 건강권 포기'라는 주장은 반미 선동에 불과하다"고 한 뒤 "이들의 목적이 식품의 안전성 확보나 농업 보호를 빙자한 반미운동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2008년 4월 24일자 <동아일보> 사설 | |
ⓒ 동아일보 |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한 이들은 평범한 일반 국민들이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무조건 반대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반대한 것은, 국민 안전은 생각지도 않고 한미동맹만 우선시해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기준을 완화하는 이명박 정부의 반(反)국민적 태도였다. 그런데도 보수 언론들은 광우병 촛불집회를 반미운동으로 몰아세웠다. 전통적인 색깔론을 시민들의 촛불집회에까지 적용하려 했던 것이다.
보수 언론들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론자들에게 '위선자'라는 굴레까지 뒤집어씌웠다. 2008년 5월 5일자 <조선일보> 사설 '정부는 쇠고기를 미선이·효순이처럼 키울 셈인가'는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녀들에게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이고 있을 거라는 가상의 전제하에 이렇게 주장했다.
이 많은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론자 가운데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 가 있는 자녀들에게 '쇠고기를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소식은 여태 한번도 없다. 자기 자식들에게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먹이면서도 다른 국민들에게만은 먹이지 않겠다면서 쇠고기 수입반대운동에 팔을 걷어붙인 대한민국 위선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광우병 촛불집회 참가자 중에서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 중인 자녀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말도록 신신당부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를 근거로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자기 자녀들에게는 광우병 쇠고기를 먹이고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다.
생명에 관한 사안까지 정치적 이해관계 우선시한 보수 언론
사실 보수 언론들도 그전에는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했었다. 일례로, 2003년 12월 30일자 <동아일보>는 '광우병 쇠고기, 협상 대상 아니다'라는 사설에서 "외국에서 수입되는 식품에 불안 요인이 있다면 단호하게 수입을 금지해야 옳다"고 말했다. 이랬던 보수 언론들이 2008년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친미노선 강화에 보조를 맞추느라 광우병 위험성을 축소해서 보도했던 것이다.
보수 언론들은 광우병 촛불집회를 상대로 색깔론을 제기하면서 근거 없는 흑색선전을 했다. 이는 중립성이 결여된 정부기관 학자들의 주장을 비중 있게 소개한 그들의 행위가 어떤 동기에서 이뤄졌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정책에 보조를 맞출 목적으로 전문가들을 선별적으로 섭외했을 가능성을 농후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이는 보수 언론들이 대중의 건강과 생명에 관한 사안에서까지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그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중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정치적 목적을 추구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성직자나 주술사에게 의존했던 옛날 사람들과 달리 현대인들은 언론매체에 상당히 많이 의존한다.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그 같은 신뢰를 보수 언론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뢰 관계가 쌍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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