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사가인 한돌 타래옷
[1]
동물 가운데 옷을 입는 동물은 사람뿐일 것이다. 아니다, 요즘엔 개들도 옷을 입고 다니지. 그런데 신경 써서 주변을 둘러보면 옷하고 연관이 되어있는 것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낡은 집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도 옷을 입히는 것이고 호박에 밀가루, 달걀을 묻혀 지지는 것도, 도금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옷을 입힌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스팔트길이나 보도블록도 길에다 옷을 입힌 거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내 음반에 ‘노래옷’이라는 말을 쓴다. 편곡이라는 것이 노래에다 옷을 입히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산을 보자. 산은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다. 봄에는 새잎 돋고 여름에는 숲을 이루고 가을에는 단풍 잔치를 하고 겨울에는 하얀 눈꽃을 피운다. 그런가 하면 하늘은 하루에도 서너 번씩 옷을 갈아입는다. 새벽에는 잿빛 옷을 입고 낮에는 파란 하늘에 구름무늬가 박힌 옷을 입고 저녁에는 붉은 노을 옷을 입고 밤에는 별 반짝이는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사람도 산과 하늘처럼 자연이 주는 옷을 입었으면 좋으련만….
[3]
마네킹이 입은 옷은 마네킹한테 어울리는 옷이다. 그런데 그 옷이 자기한테도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옷을 잘 입으면 그 옷이 자기를 대변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옷이란 지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비싼 옷들이 팔리는 이유다. 그래서 옷이 날개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옷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옷만 옷이 아니다. 발을 감싸고 있는 양말과 신발도 옷이고 손을 감싸고 있는 장갑도 옷이고 어깨에 멘 가방과 목에 두른 스카프도 옷이고 모자도 옷이고 심지어는 수염도, 머리 모양도, 얼굴도 옷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예쁘게 보이려고 얼굴을 뜯어고치기도 한다. 마음의 옷을 단정히 입으면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 사람들은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예쁜 것은 마음 옷이 예쁘기 때문이다. 요즘엔 얼굴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고 목소리까지 비슷하다 보니까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4]
올림픽을 치르면서 우리나라도 우리의 모습을 많이 뜯어고쳤다. 그래서 한국을 보러 왔던 사람들은 한국의 참모습을 잘 알지 못한다. 만약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었더라면 한국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올림픽이 열리면 경제도 좋아지고 나라의 위상도 올라간다는 말에 속아 멀쩡한 산을 허물어 허둥지둥 스키장을 만들고 보기 흉한 것은 부셔버리거나 숨기고 해서 잘 사는 나라처럼 꾸몄다. 하지만 경제가 좋아진 것도 아니고 한국이란 나라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아니고 그냥 올림픽 위원회만 좋은 일 시켜 준 꼴이 되고 말았다. 올림픽이 끝나고 세월이 흐른 뒤에야 우리는 올림픽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한테 이용만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5]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발표하자 두 나라 시민이 환호성을 질렀다. 한 나라는 한국, 한 나라는 독일이다. 한국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확정되자 환호성을 질렀고 독일은 뮌헨이 탈락하자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그때 뮌헨 시민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평창 유치위원회는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한 일도 아닌데 무지 창피했다. 독일은 환경이 파괴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축배를 들었고 우리나라는 땅값이 오를 거라는 기대감으로 축배를 들었다. 드디어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올림픽이 어떤 괴물인지 두 눈으로 똑바로 보라. 단 3일간의 스키 경기를 위해 가리왕산의 숲이 사라지고 10만 그루의 나무가 잘려 나갔다. 분노가 치밀었다. 바보 멍청이 같은 내 나라! 뮌헨 시민들은 탈락의 기쁨을 누렸고 우리는 조상들이 물려준 유산을 잃었다. 비싼 옷 입었다고 사람의 지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듯 올림픽 열었다고 나라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이 끝난 뒤에야 환경이 파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쯤 우리도 탈락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 다시는 이 땅에서 올림픽 같은 거 열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6]
나라 전체가 아파트라는 옷을 입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라. 지방마다 고유의 옷이 있는데 그 옷을 벗겨버리고 아파트라는 옷을 입혀 놨으니 정서가 무너지고 강산이 병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겨레의 정서마저도 흐려지고 말았다. 우리 겨레의 옷은 아리랑인데 그 좋은 옷을 벗고 남의 나라 정서가 깃든 옷을 입고 있으니 나는 그것이 참 슬프다. 한국은 국제대회 유치 그랜드슬램(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 FIFA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 대회)을 달성한 세계 5번째 나라라고 자랑하고 있다. 나는 그런 내 나라가 한심하고 불쌍하게 보인다. 앞으로도 이 나라는 온갖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서 열을 올릴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행사를 유치해봤자 이용만 당할 것이고 막상 우리나라를 기억해 주는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아리랑이라는 멋진 옷을 내다버리고 남의 나라 정서를 입고 사는 이런 나라를 어느 나라가 기억해 주겠는가.
[7]
나는 어릴 때부터 머리 모양이나 옷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편하기는 했지만 어떤 때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1987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아내가 밝은 표정으로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밤 꿈속에서 잉어를 잡았다는 것이다. 꿈을 믿는 건 아니지만 만약에 좋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했었다. 저녁 무렵에 음반 제작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문화방송에서 ‘아름다운노래대상’이라는 걸 하는데 거기서 상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아내에게 그 말을 전했더니 그것 보라면서 아주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상을 받는 것보다 텔레비전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 걱정이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그런 병이 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텔레비전에 나가는 날이다. 집에서 떠날 때부터 주눅이 들어있었던 나는 방송국에 도착하자 더 주눅이 들었다. 공개홀에 들어서니 어떤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향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고 제작진들은 피디의 목소리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할 줄을 몰라 지나가던 한 사람을 붙잡고 예행연습 때문에 왔다고 하니까 대기실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하고는 바쁘게 사라졌다. 나는 또 다른 사람을 붙잡고 대기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대기실을 찾아가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썰렁한 방을 지키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대뜸 한돌 씨 못 봤느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못 봤다고 했다. 얼마 뒤 그 사람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혹시 한돌 씨 오면 무대로 나오라고 하세요.”
그는 내 말을 들어 보지도 않고 바쁜 듯이 문을 닫았다. 나는 어리벙벙한 채로 무대로 나갔다.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에게 피디가 다가와서는 한돌 씨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피디는 한숨을 쉬며 주저앉았다. 나는 놀라서 당황했다. 피디가 다시 일어서면서 내게 물었다.
“이렇게 옷을 입고 온 겁니까?”
나는 검게 물들인 야전잠바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옷이 피디 눈에는 거슬렸던 모양이다.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피디가 지휘를 해 보라며 지휘봉을 건네주었다. 내가 지휘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하자 그냥 지휘봉 잡고 시늉만 내라며 악단 앞으로 데려갔다. 나는 주눅이 잔뜩 든 채로 고개를 숙이고 지휘봉을 흔들었다. 그랬더니 내 앞에 있던 바이올린 주자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시늉만 내라고 했다. 예행연습이 다 끝나자 피디는 자기 옷을 벗어서 나에게 건넸다. 나는 피디의 와이셔츠와 넥타이 겉옷까지 얻어 입고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생방송이 시작되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고개를 숙인채 지휘봉을 흔들었다.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긴지 옷도 불편하고 정말 죽을 맛이었다. 조명 탓도 있었지만 긴장한 탓에 땀을 많이 흘렸다.
방송을 끝내고 옷을 돌려주는데 와이셔츠가 땀으로 많이 젖어 있었다. 피디한테 미안하다고 말했더니 오히려 나한테 수고했다면서 미소를 보내 주었다. 나는 내가 입고 왔던 야전잠바를 다시 걸쳐 입고 방송국을 빠져나왔다. 옷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든 하루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를 알게 되었다.
‘내 옷은 이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구나.’
» 한돌 타래의 음반 표지
[8]
우리 동네 미장원에서는 남자 머리 깎는데 15,000원이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미장원에 가서 5,000원 주고 깎는다. 그건 내가 검소한 생활을 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10,000원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10,000원이면 막걸리가 아홉 병이다.
[9]
나는 나들이할 때 주로 바바리에 중절모를 쓴다. 바바리는 안에 무슨 옷을 입든 신경을 쓰지 않아서 좋고 모자는 머리 모양을 대신해 주기 때문에 좋다. 처음에는 생각이 달아날까봐 모자를 쓰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거의 습관적으로 모자를 쓰게 되었다. 어쩌다 모자를 안 쓰고 나가면 사람들이 오늘은 왜 모자를 안 썼냐고 할 정도다. 그랬던 내가 딱 한 번 옷에 신경 쓴 적이 있었다. 1998년 여름, 처음으로 일본 나들이를 할 때였는데 아내는 입을 옷부터 걱정을 했다. 봄가을에는 바바리를 걸치면 되지만 더운 여름에는 딱히 입을만한 외출복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관객들 앞에서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었다. 아내는 여름 한복을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언젠가 국악 공연에서 주최 측이 마련해 준 옷이었는데 생활한복은 아니고 모시한복처럼 가벼운 옷이었다.
한복에 흰 고무신 신고 중절모를 쓴 나는 나리타공항에서 김구 선생의 마음으로 의젓하게 걸어갔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공연하는 날도 그 한복을 그대로 입고 무대에 올랐는데 뭔가 개밥의 도토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관객들 가운데 한복을 입은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고 나 홀로 한복을 입고 폼을 잡는 것 같았다.
공연을 마친 다음날 공연기획사 대표와 함께 공원 구경을 갔는데 공원을 거닐던 나에게 공이 굴러왔다. 나는 공이 굴러온 방향으로 공을 찼다. 그런데 고무신만 멀리 날아가고 공은 내 뒤로 굴러가고 말았다. 공을 기다리던 아이들이 내 모습을 보고 막 웃었다. 고무신을 찾으러 걸어가면서 나는 내가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복을 입고 한국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야 조금은 있었겠지만 결국 폼 잡으려고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무신을 찾고 보니 고무신 바닥이 시꺼먼 때로 얼룩져 있었다.
그날 저녁 기획사 대표와 함께 식당에 갔는데 내 고무신을 본 종업원 여자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자기한테 고무신을 팔라는 것이었다. 식당을 나갈 때 나는 식탁 밑에 고무신을 벗어 놓고 나왔다. 뒤늦게 고무신을 발견한 종업원은 슬리퍼를 들고 내게 다가와서는 고맙다고 하였다. 그 종업원한테는 고무신이 고향의 옷이었으리라.
[10]
대학생이 된 동무들이 대학에 떨어진 나에게 여자 동무를 소개해 주었다. 함박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 청색 모직 코트를 차려입은 그 여자 동무와 함께 명동에 있는 어느 술집에 갔다. 여자 동무는 대학교 일 학년이었고 나는 재수생이었다. 여자 동무가 새로 맞춘 코트라며 자랑을 했다. 그때 나는 싸구려 잠바를 입고 있었다. 술을 마시던 여자 동무가 술에 취했는지 소주잔을 엎질렀다.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새 코트로 엎질러진 술을 닦으면 평생 사랑하겠노라고. 그 아이는 망설임 없이 코트 팔소매로 술을 닦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래도 새로 맞춘 옷인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나는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어디서 무얼 하는지, 잘 살고 있는지 오늘따라 그 동무가 보고 싶다.
[11]
똑같은 옷도 입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옷은 옷의 주인을 닮아 가기 때문이다. 천사는 악마 옷을 입어도 천사이고 악마는 천사 옷을 입어도 악마이다. 하지만 막상 누가 악마이고 누가 천사인지 알 수가 없다. 하얀 마음이 좋고 검은 마음이 나쁘다는 말도 이제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건 사람들이 그렇게 정해 놓은 것뿐, 요즘은 천사 옷을 입고 있는 악마들이 너무 많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
[12]
북쪽 나라 국화는 함박꽃이고 남쪽 나라 국화는 무궁화이다. 꽃들은 다툼이 없는데 사람들이 문제다. 꽃과 새들은 서로 다른 옷을 입고 다른 노래를 불러도 어우러져 평화로운데 사람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다투기만 한다. 그래도 옛날 우리 백성들은 하얀 옷을 즐겨 입고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노래했지. 하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서로 헐뜯네. 잃어버린 우리의 옷, 이제 그 옷을 찾아보세. 아리랑 옷!
하얀 옷에 검은 마음 누가 알리오
검은 옷에 하얀 마음 누가 알리오
천사 옷을 입었다고 천사가 되나
악마는 악마인 것을
외롭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소
착하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소
노래 못할 사람들이 어디 있겠소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있을 뿐이지
빨간 옷을 입은 사람 빨간 얘기를
파란 옷을 입은 사람 파란 얘기를
함박꽃 무궁화 재롱잔치에
누가 누가 더 예쁜가
파란 새가 지저귀며 노래를 하네
빨간 새가 지저귀며 노래를 하네
하얀 새 검은 새도 노래를 하네
서로 다른 옷을 입고 노래 부르네
-「옷」, 1988
위 글은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 2월호에 실린 작사가 한돌 타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