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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8일 일요일

고등학생 눈에 비친 ‘강제징용과 한일 갈등’

[현장] 광주 상무고, ‘일본 경제침략·역사왜곡 바로알기’ 계기수업
6일, 광주 상무고등학교. 4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이정훈 선생님이 2학년 7반 학생들과 특별한 수업을 마련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 뉴스가 넘쳐나지만, 간간이 들리는 한일갈등에 대한 소식도 잘 알아야 한다”는 이 선생님의 말로 수업이 시작됐다.
‘강제징용과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한 한일갈등’ 이날 수업의 주제다. 수업 주제와 관련된 ‘읽기자료’,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적을 수 있는 ‘학습지’가 학생들에게 전해진다.
이 선생님은 먼저 ‘최근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 적어보세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2분이 주어졌다. 시험시간도 아닌데, 무언가 (정답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적어내야 한다는 것에 약간의 긴장감이 돈 듯도 했다.
잠시 후 2분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알람이 귀엽네요.” 긴장감을 날리듯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웃음이 터진다.
학생들이 적어놓은 답은 이랬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뺀다고 해 ‘사지 않습니다, 가지 않습니다’라는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역사를 잊지 않고, 우리 스스로 우리나라를 키우고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의미다.”
‘강제징용’ 역사의 진실을 알아보는 것부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됐다. 먼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들어볼 시간이다. 영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영상 보면) 울 것 같아”라는 한 학생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린다.
일제 강점기 하시마탄광에 강제로 끌려가 노역한 최장섭·김형석 할아버지의 증언을 보면서 “일할 수 있다고,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해놓고 강제로 끌고 가고, 거짓말로 속여 데려가서 사람대접도 하지 않고 강제노동을 시킨” 강제징용의 과정과 진실이 학생들의 학습지에 한 자 한 자 채워진다.
다음은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을 다 했다’고 주장하는 일본과의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해 알아본다. ‘청구권’을 두고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양국의 입장에 대해 설명을 들은 학생들.
선생님으로부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은 사라진 것일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지난해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고,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 한국지사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 한 판결, “국제법 관점에서 보면 인권침해를 당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국가 간의 협정에 의해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라며 ‘개인 청구권은 살아있다’는 일본 변호사들의 의견이 담긴 영상 자료와 학생들의 생각은 같았다.
학생들은 그 근거를 이렇게 적어냈다.
“한일청구권협정, 누가 맺었던 협정인가? 누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가! 아무도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고, 강제징용 피해자분들은 개인의 인권을 침해당했기 때문에 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청구권은 사라질 수 없다. 말 그대로 개인청구권인데 국가가 인정하더라도 개개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존재해야 하고,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 진실된 사과를 받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사과는 피해자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것, 피해자가 그 사과를 받았을 때 진정한 사과가 이뤄진다는 상식을 학생들은 강조했다.
귀 기울여 보던 영상이 기술적인 문제로 잠시 멈출 찰나. “뒤에도 보고 싶어요.” 학생들의 아쉬움과 선생님의 미안함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한일갈등의 주요 전개 과정을 정리해본 학생들.
▲ 김윤정 학생이 적어낸 한일갈등 사건의 주요 전개과정
다음은 불매운동에 대해 토론해 본다.
“자신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이 손해를 보게 되는 건 아닌지. 대한민국 국민 전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도 하고, ‘불매운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어 앞·뒤에 앉은 친구들과 모둠 토론을 한다.
“(불매운동은) 강제징용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뜻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멈추라는 항의다”,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수출규제에 나선 일본의 태도가 문제다. 앞으로 일본의 태도에 더 항의하고 관심을 갖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소신을 담기도 하고, “문구 제품이나 옷들에 일본제품이 많아서, 버리면 사용할 게 없어지고 아깝다”는 현실적인 이야기, “우리나라 회사들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는 걱정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다.
이런 학생들의 마음은 ‘수업을 통해 느낀 점을 적어보세요’라는 학습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한일 상황을 자세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선택적인 불매운동이지만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고 싶다.”
“일본의 빠른 사과와 반성, 우리나라의 강인한 공동체 정신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양국이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불매운동으로 인해 한일 사이가 더 악화될까 걱정이다.”
수업 막바지에 이르자 맨 뒷줄에 앉은 한 학생이 작은 목소리로 기자를 부른다.
“기자님, 수업 끝나고 제 것(학습지) 좀 사진 찍어 주세요”라며 당찬 제안을 한다.
학생의 학습지엔,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나로서는 일본이 참 괘씸하다고 느낀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정중히 사과해야 한다.” 단호한 주장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전.
이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글귀를 띄우며 말했다.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 과거의 사실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비춰보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수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거였다”면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를 던졌다.
“한일갈등 속에서 우리와 일본의 입장에 대해 알고, 생각하고, 모두가 함께 평화롭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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