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하면 떠오르는 노동자’, 그들이 거리에 나와 외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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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더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 ‘추석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대번에 들려오는 답은 ‘마트 노동자’, ‘택배 노동자’, ‘백화점 노동자’ 등 서비스 노동자를 비롯해 ‘톨게이트 노동자’, ‘버스운전 노동자’ 등이다.
그들은 명절을 앞두고 더 많은 제품을 진열해야 하고, 더 많은 손님을 응대해야 하며, 더 많은 물품을 배달해야 하고, 명절 연휴가 끝날 때까지 더 많은 귀성객들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며, 이런 운전노동자가 통과하는 톨게이트의 노동자들 역시 더 많은 통행차량과 마주해야 한다.
이렇게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대목’에도 노동자들은 거리에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유는 그들에게 현장은 ‘하루이틀 다니고 말게 될 일터’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마트노동자들은 “명절 물량에 허리가 휜다”며 “박스에 손잡이를 설치하라”고 외친다.
명절을 앞두고 마트의 입고상품 물량은 4~5배까지 늘어난다. 매장을 비롯해 후방창고에서 일하는 마트노동자들은 무거운 박스를 수없이 들고, 나르고, 진열한다. 최소한 박스에 ‘손잡이 구멍’이라도 있으면 옮기기가 수월하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과도한 무게로 인하여 근골격계에 무리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663조). 5kg 이상의 중량물을 들어올리는 작업을 하는 경우, 해당 물품의 중량과 무게중심에 대하여 안내표시를 하며, 취급하기 곤란한 물품은 손잡이를 붙이거나 갈고리, 진공 빨판 등 적절한 보조도구를 활용해야 한다(665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마트노동자들이 접하는 박스에는 대부분 손잡이가 뚫려있지 않다.
마트노동자들은 어깨 들기, 목 숙이기, 허리 숙이기, 쪼그리기, 손목과 팔꿈치를 반복해서 사용해 일하며, 무거운 박스를 들고 나르는 등 비정형 반복작업에 50~55%가량 노출돼 일한다. “근골격계질환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마트노동자는 69.3%에 달한다. 마트산업노동조합(마트노조)이 지난 5월 마트노동자 517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근골격계질환 설문조사’ 결과다.
마트노조는 마트노동자들의 근골격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박스에 손잡이를 설치하고, 포장단위를 소포장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스에 제대로 된 손잡이만 설치돼 있어도 ‘들기 지수’를 10~39.7% 경감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10일 서울고용노동청을 찾아 고용노동부를 향해 “마트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 실태 및 중량물 작업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기로 유명한 택배노동자들은 늘어나는 택배 물량을 두고 “지옥 같은 추석 시즌”이라고 말할 정도다. 택배노동자들은 지난 5일 장시간 노동실태를 폭로하며 개선을 촉구했다.
택배노동자들은 추석 선물 등 배송물량이 급증함에 따라 아침 7시에 출근해 ‘분류작업’을 마쳐도 오후 2시를 넘겨서야 배송을 시작할 수 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가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9월24일)을 전후로 CJ대한통운의 분류작업 종료시간은 평소보다 늦어졌음을 알 수 있다. 분류시간이 늦어짐에 따라 배달 종료시간 역시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추석연휴가 지난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택배노조는 “한국은 2018년 기준 ‘OECD 노동시간 3위’라는 악명을 떨치고 있다. 택배노동자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직종으로 연간 노동시간이 3848시간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택배노동자들은 1인당 연간노동시간(1967시간)보다도 무려 1881시간을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장시간 노동은 우체국 집배원에게도 심각하다. 택배노조가 전한 우체국 집배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4시간(2017년 기준). 보통 토요일까지 일하는 우체국 집배원의 경우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2시간이 훌쩍 넘는다.
반복되는 집배원의 과로사 문제에 이어 명절 연휴를 앞둔 지난 6일, 평소보다 4배나 많아진 추석 택배 물량을 소화하느라 일몰을 넘겨서까지 일할 수밖에 없었던 한 집배노동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우체국 집배노동자들은 ‘명절기간 특단의 대책 마련’과 ‘정규집배인력 충원’ 등을 요구해 나섰다.
그리고 택배노조는 장시간 노동을 만드는 ‘분류작업의 개선’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의 조속한 제정을 요구했다. 이 법엔 ‘종사자의 과로를 방지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휴식시간 및 휴식공간의 제공’의 내용이 담겨 있으며, 집배송업무를 하는 ‘택배운전 종사자’와 분류업무를 하는 ‘택배분류 종사자’를 구분함으로써, 분류업무가 집배송업무와 별개의 업무임을 밝히고 있다. 그동안 “분류작업도 택배노동자의 당연한 임무”라고 주장하며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고 ‘공짜노동’을 강요해왔던 택배사들을 규제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추석을 앞두고 더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 ‘추석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인 이들은 물량이 늘어나는 명절뿐만 아니라 그들이 노동하는 현장에서의 하루하루는 ‘근골격계 질환’, ‘장시간 노동’ 등과 싸우는 일상의 반복이다.
또 다른 노동자, 추석연휴에도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도 있다. 명절 연휴기간 일터에 출근해 수없이 많은 귀성차량의 통행 요금수납을 맡았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지난 6월30일 해고돼 일터를 잃었고, 청와대 앞과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농성을 이어오던 이들은 지금 김천의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도 농성 중이다. 지난달 29일 있었던 대법원 판결대로 한국도로공사가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지 않고, ‘대법원 소송에 참여한 인원만 직접고용’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9일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이 이 고용안정방안을 발표한 직후 노동자들은 ‘이강래 사장과의 직접대화’를 요구하며 본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은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직접 지휘·명령을 받으며 한국도로공사를 위한 근로를 제공하였으므로 이들과 한국도로공사는 근로자 파견관계에 있다”는 대법원판결 이후 도로공사가 ‘고용안정방안’이라고 내놓은 것은 대법 소송 참여인원 304명에 대한 직접고용이었다. 도로공사는 “8.29. 대법원판결이 확정되었으나 상고심(대법) 원고들과 1·2심 원고는 개별적 특성에 큰 차이가 있어, 사법부의 최종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원고들 개개인별로 근로자 파견관계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 ‘해고된 1500명에 대한 직접고용은 못 하겠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8월29일 판결에서, 앞서 “1)기초적인 사실 대부분은 원고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들인 점, 2)전국에 산재해 있는 한국도로공사 영업소를 통일적으로 운영·관리할 필요성, 3)한국도로공사 스스로 외주화 초기에는 통행료 수납업무에 전문성을 가진 업체가 존재하지 않아 한국도로공사에 의하여 교육이 실시되기도 하였다고 인정하고 있는 점, 4)한국도로공사는 그 후로도 계속 외주사업체 소속 근무자들의 업무수행에 관하여 지휘·명령을 하여왔다고 보아야 하는 점” 등을 들어 한국도로공사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서울고등법원의 원심판결이 정당하다고 했다.
민주노총 법률원은 “서울고등법원 원심판결이 지적한 것처럼 전국에 산재해 있는 한국도로공사 영업소는 통일적으로 운영·관리된다. 서울톨게이트 영업소가 불법파견이라면 경기, 대전, 대구, 전남톨게이트 영업소들도 불법파견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라고 꼬집었다. 도로공사가 주장하는 대법소송자 선별복직이 아닌, 자회사 전환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한 1500명의 노동자를 직접고용으로 복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8월29일, 대법원 판결 직후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흘렸던 기쁨의 눈물은 추석 연휴를 시작하기도 전에 ‘분노’로 바뀌었다. 그들은 추석 연휴,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던 일터’도 아니며, ‘가족들의 옆’도 아닌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이강래 사장의 얼굴은커녕 점점 늘어나는 경찰병력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짧았던 ‘기쁨의 눈물’은 ‘분노의 눈물’로 바뀌었고, 경찰의 강제진압 시도에 맞서 온몸으로 격렬히 싸우는 중이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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