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법통에 기댄 사회](2)금태섭 “모든 사회문제를 검찰에 맡기면 검찰개혁도 민주주의도 어렵다”
입력 : 2019.09.16 06:00 수정 : 2019.09.16 08:18
민간분쟁을 파헤치는 검찰 - 금태섭 국회의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금태섭 의원은 인사청문회에서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인사청문회에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언행이 불일치한다고 말했지만, 검사 출신 의원이 드는 부적격 사유로는 어색했다. 진짜 이유는 조 후보자의 검찰개혁 방안에 동의하지 않아서라고 법조계는 추측한다. 서울대 박사과정 사제지간인 두 사람은 민사분쟁에 수사기관이 개입하는 문제에 똑같이 비판적이다. 조 장관은 도덕에 형법이 개입하면 안된다는 <절제의 형법학>을 2015년 냈다. 금 의원도 오랫동안 이 문제를 지적해왔다. 유례가 없는 우리나라 검찰의 권한을 손봐야 한다는 생각도 같다. 어디에서 두 사람이 갈리는 걸까. 금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지난 9일 오전 만났다. 인터뷰하는 동안 조국 법무장관 임명이 발표됐다.
사인(私人) 사이의 분쟁에 수사기관이 개입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채무불이행이다.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사기로 고소한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채무자를 불러 겁도 주고 기소해서 돈을 받아준다. 부동산을 팔기로 하고 중도금까지 받으면 더 좋은 조건이 나타나도 포기해야 한다. 위약금을 물고 새로 계약을 하려 해도 불가능하다. 검사가 배임죄로 기소하고 법원에서 유죄가 나오기 때문이다. 부동산 이중매매 처벌이라는 대법원 판례 때문인데 지나치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처벌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질구레한 빚까지 대신 받아주는 일을 검사들이 기꺼워할까. “반반이라고 본다. 채무불이행 같은 민사사건에 수사기관이 개입하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과거에는 민사재판에서 이겨도 돈을 받아내기가 어려웠다. 채무자가 재산 숨기는 것을 막는 장치가 부실했다. 가족 이름으로만 돌려놔도 강제집행이 안됐다. 선진국처럼 신용에 불이익을 줘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형사절차를 통해 채권을 해소했다. 아주 예전에는 선진국도 비슷했다. 채무자 감옥도 있었다. 이런 해결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쓰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채무자 감옥은 1800년대 중반에 사라졌다.
신용제도가 부실한 사회에서는 수사기관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지 다시 물었다. “2002년 신용카드 대란 때 카드대금 갚지 못한 사람들을 검찰이 기소했다. 그런데 신용카드 회사는 전문 금융기관이고 자신들이 가입자의 신용도를 평가해서 카드를 내준 것이다. 이런 부실까지 검찰이 해결해주면 카드사로서는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이 된다. 내가 몇몇 사건에서 불기소 결정문을 써서 사안을 다르게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검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신용거래가 정착되지 못한다’고 하더라. 오히려 그 반대다. 검찰이 다 해결해주니 금융기관이 체력을 기르지 못했고, 그래서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투자은행이 없지 않나.”
검찰이 경영판단과 노조활동에도 관여하고 있다고 금 의원은 지적한다. “금융기관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면 배임으로 처벌한다. 담보를 확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러니 사업 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담보가 없으면 대출을 못 받는다. 성공한 벤처기업이 드문 이유다. 경영판단도 수사 대상이다. 일부 악덕기업도 있지만 실패한 경영판단도 기소한다. 무죄율이 다른 범죄의 2배다. 기업들이 안전한 사업에만 투자하다가 영세 자영업자들 분야까지 진출한다. 노동자 파업을 업무방해로 기소하면서 사용자와 노동자를 합의시킨다. 이렇게 검찰이 처벌을 하고 다니니 경제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다.”
수사기관의 민간영역 개입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검찰은 자기 영역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있다. 지난달 법원은 동대문 흥인시장 상가 분양 사기범이라고 검찰이 기소한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피고인은 상대방에게 민사소송을 당했다가 대법원에서 승소한 사람이다. 보통 민사에서 잘못이 인정되어도 형사처벌까지 받는 경우는 드물다. 어느 나라에서든 형사처벌은 마지막 수단이다. 이 사건에서는 민사에서 잘못이 없다고 대법원이 확정한 사람을 검찰이 기소해 형사법정에 세우고 징역 14년을 구형했다. 검찰이 수사력을 동원해 민사법원을 가르치겠다고 나선 셈이다.
“외국에서는 민사 문제에 수사기관이 개입하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이것은 민사 문제여서 경찰이 다루지 않으니 돌아가라’는 내용이 만화에도 나온다(민사불개입 원칙으로 불리며 불편부당을 규정한 일본 경찰법 2조 2항에서 유추된다). 최근 검찰에서 공정거래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 고발이 없어도 검찰 수사가 가능하도록 바꾸자고 한다.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수사가 시작되는 현행 제도는 수사권 발동을 공정위가 결정해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스스로 수사 개시를 결정하면 너무나 많은 사적 분쟁에 개입할 우려가 있다.”
혼인빙자간음죄나 간통죄는 민사 문제를 형사범죄로 만든다고 오랫동안 비판받았지만 폐지는 국회가 아닌 헌법재판소가 했다. 처벌 대상을 늘리고 법정형을 높여야 여론이 지지하니 국회가 나서지 못한 것이다. 선거를 의식하는 정치권이 처벌조항을 줄이지는 못해도 이용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금 의원은 말했다. “2016년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통과되지 못했다. 참 어렵다. 게다가 법도 법이지만 사회의 분위기, 문화의 문제도 있다. 일본에도 명예훼손죄가 있지만 거의 쓰이지 않는다. 우리는 고위공직자가 나서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
이 대목의 고위공직자가 조 법무장관이다. 금 의원은 청문회에서 이렇게 질의했다. “민정수석 당시 악의적인 뉴스이긴 하지만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법을 다루는 가장 중요한 자리 중 하나인 민정수석이 본인에 대한 이의제기에 고소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뉴스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해명하는 방향을 보여줬으면 어떨까. 공무원들이 자기에 대한 허위 뉴스를 고소·고발하기 시작하면 인터넷에서 댓글 다는 사람들, 카톡을 주고받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처벌된다. 아무리 현행법상 처벌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과연 바람직한 모습인가 싶다.”
금 의원과 조 법무장관의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금 의원은 윤석열 검찰이 조 후보자를 수사해 정치에 개입한 배경에 특수부를 그대로 살려둔 조 민정수석의 잘못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청문회에서 물었다. “윤석열 검찰총장 휘하의 거의 모든 요직을 특수통 검사로 채운 것은 후보자가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다. 후보자가 주도적으로 만든 수사권 조정 정부안을 보면 검찰의 특수수사 기능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금 검란이라고까지 부르는 이번 사태를 통해서 후보자가 검찰개혁에 대해 지금까지 견지해 온 입장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에 조 후보자는 “이론적으로나 원론적으로 금 위원 말에 크게 동의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조국 민정수석과 박상기 법무장관이 재임하는 동안 특수부는 커지기만 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규모가 대검 중앙수사부 시절의 3배를 넘는다. 이는 전임 정권의 국정농단을 처벌하려는 청와대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법조계 사람들 추측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도 조 법무장관은 찬성하고, 금 의원은 반대한다. 찬성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수사 경쟁을 통해 사건 덮기를 막겠다는 것이고, 반대하는 이들의 논거는 안 그래도 비대한 수사기관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조 장관은 취임 이틀 뒤인 지난 11일 특수부 축소를 지시했다).
지금과 같은 검찰을 개혁하려면 기소권과 수사권을 나눠야 한다고, 즉 특수부를 없애거나 줄여야 한다고 금 의원은 설명한다. 그렇지 않으면 검찰이 정치에 계속 관여한다고 본다. “인구가 한국의 2.5배인 일본에도 특수부가 전국에 3곳밖에 없고 그나마 뇌물과 전통적인 범죄만 수사한다. 공무원 직권남용이나 경영상 배임 같은 애매한 영역은 손대지 않는다. 우리는 특수부가 이렇게 크니 고등학생 자기소개서까지 검증한다. 최종적으로 혐의가 밝혀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수사권을 가지고 뛰어드는 것 자체로 정치에 영향을 준다. 수사로 논쟁이 끝나지도 않는다. 반대편은 엉터리 수사라면서 특별검사든 뭐든 다시 하라고 한다.” 금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특수부를 당장 3개로 줄이라고 했다.
특수부가 수색하고 압수하면 범죄가 나오기는 나오는데 어찌 막느냐고 물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은 위에서 원하면 착착 해낸다. 재벌 범죄도 공직자 잘못도 전광석화로 도려낸다. 그러한 조직은 선출도 되지 않았으면서 반드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다른 나라는 왜 이렇게 안 하겠냐. 미국에서 하버드 로스쿨 나온 사람들 다 모아서 파헤치지도 않고, 독일에서 전국의 우수한 인재를 모아 털어대지도 않는다. 우리나라만 초대형 특수부가 필요한 유난히 썩은 사회인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검찰에게 모든 것을 맡기니 다른 해결 메커니즘이 생기지 않는다.”
“국회에서 증인으로 불러도 사람들이 안 나온다. 하지만 국회조차 별달리 비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누군가 검찰의 출석요구를 거부하면 정당에서 목소리를 높여 비판한다. 국회 스스로가 국회의 권능보다 검찰의 수사에 의미를 둔다. 이렇게 정치권이 검찰을 지나치게 이용하고 있다. 우리에게 탄핵이 있었고 촛불혁명이 있었다. 그렇게 들어선 새 정부는 과거를 청산하면서 정답뿐 아니라 과정도 새롭게 했어야 했다. 토론과 합의를 통해 정리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검찰에 너무 많이 의존했다. 적폐청산을 검찰에 맡긴 것은 잘못이다.”
지금과 같은 검찰의 전방위 수사는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금 의원은 말했다. “조직에는 조직의 논리가 있다. 검찰이 보수의 편만 들거나 진보의 편만 들지는 않는다. 조직의 생존과 영향력 확장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검찰개혁이란 말을 외국에서 이해하지 못한다. 범죄를 처벌하는 기관이 무슨 문제냐고 한다. 우리나라 검찰이 손대는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몰라서다. 토론과 합의라는 민주주의가 힘을 쓰지 못한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 절차에는 독립성을 상당히 부여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검찰을 부르고 검찰이 수사해서 해결한다.” 그래서 지금 패스트트랙 문제가 수사로 번진 일에도 부정적이다.
“검찰 힘이 세진 배경은 해방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에 협력한 경찰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엘리트를 전국에 내려보내 시민들의 마음을 달랬다. 젊은 영감(令監)에게 친일 경찰들이 쩔쩔맸다. 6공화국을 거치면서 권력 중심부로 들어갔고 권력의 위로 올라가 이렇게 세졌다. 진보 정부가 검찰을 다루면서 잘못 판단한 것이 강한 검찰을 그대로 두고 좋은 검찰로 바꾸려고 한 것이다. 정의롭고 착한 검찰을 꿈꾸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한다. 민주주의는 신뢰가 아니라 제도에 바탕한다. 지금 특수부나 아니면 공수처가 정의로운 권력기관이 되지 못한다. 힘을 쫙 빼는 것이 방법이다. 사회 문제들을 검찰을 이용해서 해결하려 하면 검찰개혁도 민주주의도 어려워진다.”
■ 글 싣는 순서
1 현대예술을 재단하는 법정 - 남형두 연세대 로스쿨 교수
2 민간분쟁을 파헤치는 검찰 - 금태섭 국회의원
3 정치외교를 좌우하는 사법 -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1 현대예술을 재단하는 법정 - 남형두 연세대 로스쿨 교수
2 민간분쟁을 파헤치는 검찰 - 금태섭 국회의원
3 정치외교를 좌우하는 사법 -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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