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조국사태'에 대한 두가지 교육적 성찰
조국 사태가 일단락이 되었다.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는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여진은 아마 상당히 오래갈 것이다. 그동안의 과정에 대해서 ‘안타깝고 아픈 마음’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사태가 일단락된 지금, 이번 사태의 교육적 의미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된다. 미래 세대인 학생들에게 이번 사태의 교훈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번 사태를 통해 ‘정치란 천사와 악마의 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재인식하는 것이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쟁투(爭鬪)의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여야 간, 보수 대 진보 간, 좌파와 우파 간에 쟁투, 정치경제적 자원의 배분이거나 혹은 국가적 의사결정을 둘러싼 쟁투의 과정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과정이 치열해지면, 대체로 우리 편은 천사가 되고 상대방은 악마가 된다. 자기 편은 ‘과잉’ 천사화하고, 반대편은 ‘과잉’ 악마화하는 관성이 작동한다. 더 넓혀서 이야기하면, 20세기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십자군 전쟁도 그랬다. 종교 등 다양한 요인이 결합되면서 정치는 천사와 악마의 싸움으로 신념화된다. 정치를 바라보는 이런 과잉인식을 우리가 극복해야 한다(여기서 나는 정치라고 할 때 ‘여의도정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여성주의가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 삶 속에 정치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광의의 생활정치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단순히 정치적·사회적 갈등이라고 치환해도 좋겠다).
이런 시각에서, “우리 편이라고 해도 천사가 아닐 수 있다”, “우리 편도 70%만 옳다”, “나도 70%이상 옳을 수 없다”, “적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30%는 동지에게 적용하자”는 인식을 가지고 우리가 정치를 바라보면 좋겠다(조국 사태에 대해서 나는 상대방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비판들의 30%는 경청하게 된다. 현 정부 집권 이후 낙마한 다른 사례들과 비교해서도 그렇고, 현재의 여당이 야당이었던 시절의 비판 기준을 적용할 때도 그러하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쟁투로서의 정치는 ‘70%의 천사 대 70%의 악마’의 싸움으로 바라봐야 한다. 아니 ‘악마적 천사 대 천사적 악마’의 싸움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나도 70% 이상 옳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치열한 쟁투의 과정에서 그래야 상대방을 100% 미워하지 않고 70%정도로 미워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 나머지 30%로 상대방과 공존할 수 있는 심리적 기반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점을 아래에서 조금 자세하게 서술해보자. 먼저 나는 사회학적 측면에서 정치를 광의로 해석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말해두어야 할 것이다. 여성주의에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할 때, 협의의 정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 혹은 우리들의 사회적 삶의 전 과정에 정치가 내재되어 있다. ‘교육정치학회’라는 학회도 존재한다. 교육의 과정이 -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 정치의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판단 위에서 이런 명칭이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정치, 의회정치와 같은 협의의 정치만이 아니라, 생활정치, 삶의 정치, 사회적 정치 등 광의의 정치 개념이 존재하고 나는 그런 개념을 선호한다.
얼마 전 서대문구의 청소년의회에서는 교육감을 불러서 ‘교육감사’하듯이 질문을 하고 교육감이 응답하는 행사가 있었다. 감사 전에 잠깐 서울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어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거기서 나는 학생인권은 ‘안중에도 없던’ 시대를 지나, 학생을 배움과 학교생활, 개인 삶의 독립적 주체로 대우하고 교육하는 학생인권시대, 그리고 민주시민교육 시대로 이행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 민주시민으로서의 학생, 나의 표현을 빌린다면 ‘교복입은 시민’이 세계(민주)시민으로 되어야 한다는 점, 나아가 ‘다원성의 사회’에서 다양한 차이를 차별로 접근하지 않고 존중하는 ‘다원적 민주주의’ 시대의 배려와 존중, 공존의 시민미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우리 사회는 87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권위주의시대에서 선거민주주의시대로 이행한 이후 30여년 간, 과거의 권위주의 유산을 극복하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질적 민주주의로, 국가 수준의 민주주의를 지자체 수준 및 생활세계 수준의 민주주의로 심화시키기 위한 쟁투의 과정을 거쳐 왔다. 이 과정에서 모든 국민들은 자신의 권리와 이해가 부당하게 침해받으면 안 된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한 부당한 침해상황에서는 바로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이런 ‘행동하는 시민’과 ‘깨어있는 시민’의 적극성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휘되어야 하고, 또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투쟁이 아니라, 우리가 일궈놓은 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어떻게 다원성이 인정되는 공존형 정치의 기반을 확대할 것인가하는 과제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투쟁의 정치’와 ‘공존의 정치’로 구성된다
민주주의에는 2개의 정치가 내포되어 있다. 투쟁의 정치와 공존의 정치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투쟁의 정치가 필요하다. 87년 이후 지난 30년 동안 한국민주주의는 투쟁의 정치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역동적인 민주화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30% 공존의 정치를 확대해가야 한다. 물론 정치는 쟁투의 과정이기 때문에 투쟁의 정치가 부재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투쟁의 정치와 공존의 정치를 어떻게 배합할 것인지가 문제다. 나는 투쟁의 정치 대 공존의 정치가 ‘7대 3’정도로 배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에게도 이런 과제가 주어졌으나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공존의 정치를 실현해내는 것 자체도 정치적 역량이다). 적폐청산의 강렬한 국민적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섣부르게 공존의 정치를 시도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 또한 보수가 과거의 프레임을 충분히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고, 때로는 촛불시민혁명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경향도 표출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어차피 승자를 정하는 쟁투는 전개된다
종종 이런 예를 든다. 어차피 정치라는 것이 다수의 지지를 받는 승자를 결정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쟁투는 불가피하다. 쟁투가 무찌르기 식이나 사생결단식이 아니더라도 승자는 결정된다. 예컨대 87년 대선을 돌이켜 보자.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각각 여의도 광장에 100만명 이상을 동원하기 위한 쟁투를 펼쳤다. 사실 100만명 이상을 동원하는 정치는 얼마나 많은 정치자금이 들었겠는가. 그런데 그 이후 TV토론 등이 활성화되면서, 그리고 정치적 쟁투의 형식의 변화하면서, 지금은 여의도 광장에 100만명을 동원하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승자를 결정하는 과정이 진행된다(그러면 지금의 정치는 87년 보다 덜 치열한가?).
이런 견지에서 천사 대 악마의 싸움으로 정치를 규정하지 않아도 선거민주주의의 특성 상 쟁투가 있고 쟁투의 결과 승자를 결정하는 치열한 싸움이 진행된다. 단지 그 방식을 현대화해야 하고 더욱 합리화해가야 한다. 투쟁의 정치와 공존의 정치를 배합해 가야 한다.
쟁투의 상대방을 존재론적으로 긍정하는 사고
이를 위해서는 쟁투의 상대방을 존재론적으로 수긍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조국 사태'에서 내가 주목하는 점이 이것이다. 쟁투의 과정에서 우리는 100% 옳은 존재로, 그리고 우리 동지는 천사로, 우리의 대표적인 인사는 100% 도덕적 존재로 상정하고 쟁투한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국은 사법개혁의 상징적인 존재이고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앙가주망’이 아니라 사회개혁을 위해 희생적으로 헌신해온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참여연대의 사법개혁센터의 초기 주역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헌신성을 가까이 지켜볼 기회도 있었다. 당시 초기 시민운동의 과정에서 이른바 일류대학의 교수들이 자기 시간과 돈을 내서 참여하는 것이 흔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헌신적으로 초기 사법개혁운동의 중심인물로서 활동했다.
조국이 진보적 사법개혁의 아이콘이지만, 그를 100% 도덕적 존재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번 사태에서도 그것이 잘 드러났다. 그렇지만 100% 완전한 존재로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할 필요는 없다. 사실 9월 6일 치열했던 조국 청문회에서 ‘목소리를 높힌’ 의원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 음주운전, 운전자 바꿔치기, 돈으로 합의 시도 등을 동반하는 사건에 휘말린 걸 청문회 다음 날 목도하였다. 조국 장관 딸의 논문에서 '제1저자'로 등재한 것에 분노하여 촛불을 든 서울대 학생이 역시 제1 저자로 등재된 것이 드러났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는 조금은 정치적·사회적 쟁투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에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박정희는 ‘공3과7’ 혹은 ‘공7과3’?
민주화 세대가 ‘악마화’한 박정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박정희시대에 대해 ‘공7 과3’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공(功)을 7로, 과(過)를 3으로 평가하자는 말이다. 나는 이에 반대한다. 굳이 한다면, 박정희 시대의 정책에 대해 공(功)을 3으로, 과(過)를 7로 평가하고 싶다. 7:3이라는 언어 자체가 한 시대를 평가하는데 7:3이라는 비율적 표현 자체가 부적절하겠지만, 그런 공존의 기반을 갖자는 취지이다. 나는 자사고 폐지를 주도하면서, 이것이 ‘제2의 고교평준화’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 박정희 시대였던 70년대 고교평준화를 시도했다면, 지금 하는 자사고 폐지 정책은 그런 정신을 현대적으로 구현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그가 취했던 정책 중에서 그린벨트 정책, 의료보험 제도 도입,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시기에 취했던) 한글 사용 확대 정책에 대해 계승하는 입장을 갖는다.
끝없는 악순환을 넘어 일반적 규칙을 만들면
우리 편에 대한 과잉천사화와 상대편에 대한 과잉악마화는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그런 점에서, 공존의 정치라는 견지에서, 일반적 규칙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회선진화법’ 같은 것도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현재의 야당이 여당이었을 때 현 여당이 된 당시의 야당도 동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 역사가 되어버렸는데, 박근혜정부는 직권 남용, 공적 권력의 사적 이해를 위한 활용, 사인에 의한 공적 권력의 무력화, 정경유착 등으로 탄핵되었다. 탄핵의 사유들의 향후 운용에 대해서도, 일반적 규칙을 만드는 작업의 필요성을 느낀다. 즉 박근혜 정부의 그러한 극단화된 적폐적 행태를 단죄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과 동시에, 그 극단성에 내포된 행위 중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 탄핵 이후의 높아진 국민들의 눈높이를 감안해서 - 새로운 규칙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야당은 ‘그것 보아라’하면서 박근혜의 탄핵 이전의 행태 모두를 정당화하는 식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여당은 이를 도외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실 ‘직권남용’이라는 것을 광의로 적용하기로 하면, 정권 교체 이후 선거에 나타난 민심을 반영하는 방향에서의 정부의 인적 구성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미국처럼 정권 교체 이후의 고위직의 교체 범위를 정의하는 식의 여야간의 합의된 규칙을 만들 수도 있다. 정권 교체 이후 자신의 정치적 지향에 맞는 인적 구성을 만들려는 시도는 언제든지 상대방에 의해서 직권남용이 되고, 그것이 정권의 주체가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악순환을 방지해야 한다.
또한, 조국이 페이스북 상에서 던진 강렬한 메시지는 이번 사태에서는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한일무역갈등 국면에서의 페이스북 글에서도 큰 기조는 동의하지만 미묘한 국가 간 갈등의 복잡성을 과도하게 단순화 한 점에 대해서는 일부 우려를 가지고 있다. 또한 조국을 둘러싼 폴리페서 논란도 그러하다. 나는 천사와 악마의 대립이 아니라는 전제 위에서, 교수의 현실 참여에 대한 여야, 보수와 진보가 합의하는 ‘일반적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의 어떤 참여가 폴리페서이고 어떤 참여는 앙가주망이 되는가. 사실 폴리페서와 앙가주망을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서울 법대 정종섭(자유한국당 의원)의 박근혜 정부 시절 장관직 수락과 조국의 장관직 참여는 동일한 것이다. 단지 맥락과 참여의 정치적 성격이 다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에 대한 ‘내로남불’ 비판을 생각하면서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자사고-외고 폐지를 주장하면서 자녀들이 외고에 다녔다며 '내로남불'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다. 나는 한편에서는 여러 가지 마음 속으로 항변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주장을 상대방이 할 수 있다고 본다. 인정한다. 바로 그러한 도덕적 결함을 갖는 존재로서의 조희연 교육감이 자사고 폐지의 선봉에 서 있다고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2014년 선거 과정에서 내 아들이 쓴 편지와 고승덕 후보 딸이 쓴 편지가 대비되어 선거의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나는 사실 이 점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원래 내 아들이 나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쓴 편지를 선거본부 실무자들이 가지고 왔을 때, 나는 ‘낯 뜨거워서’ 안 냈으면 내지 말라고 했다. 내가 반대해서, 2-3일간 발표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거본부의 강력한 주장을 존중해서 발표를 허용했고 그것이 어떤 점에서는 고승덕 후보 딸의 편지와 대비되는 반응이 나왔던 것 같다. 선거 이후에 나는 여러 차례 이런 이야기를 공식적·비공식적으로 했다. 고승덕 후보에게도 했다. “사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선거국면이 치열한 쟁투의 현장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저는 ‘도덕적 아버지’로 과잉 표상되고, 고 후보는 부덕한 아버지로 과잉표상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대비해서 생각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현대 철학에서의 다수자와 소수자
내가 철학에 대해 과문하지만, 이런 인식과 사고가 근대 ‘이후’ 철학의 핵심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근대 철학과 정치경제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양분법적 사고 양식이 존재했다. 예컨대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자본가와 노동자,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의 양분법적 구분 말이다. 이 때 후자는 인간과 사회 해방의 천사로서 인식되고, 상대방은 악마로 인식된다. 20세기의 1차, 2차 전쟁을 포함하여, 에릭 홈스봄이 말한 ‘극단의 시대’가 20세기에 펼쳐진 것도 이런 사고 위에서였다. 그러나 이 양분법적 인식의 강을 횡단하는 것이 근대 이후 철학의 한 특징이다. 영화 <색계(色戒)>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민족해방을 위해 성을 도구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내재되어 있다. 사실 자본가와 노동자는 하나의 순수일체적 존재로 단일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단일범주로의 인식은 역으로 피억압민족 내의 모순과 균열을 숨기는 것이 된다. 다수자와 소수자가 있다고 할 때, 소수자 역시 자신 속에 다수자적 속성이 있다. 남성과 여성, 여성과 레즈비언의 관계가 다를 수 있다. 현실에서 악마와 천사는 없다. 악마적 천사와 천사적 악마가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런 시각을 제기하는 이유가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 みんな どろぼうです)’ 식의 냉소주의를 부추기거나, 근대 이후 철학이 갖는 상대주의로 가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주의를 취하려 해도 정치의 영역에서는 ‘적과 동지’의 구분은 너무도 확연하게 된다(그래서 칼 쉬미트는 정치를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기술’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단지 적과 동지의 싸움이 ‘무찌르기’ 식의 극단적 절멸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최소한의 공존의 바탕 위에서 싸움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조국 사태에서 ‘계급’의 문제를 본다?
둘째로, 이렇게 다원적 시선을 갖는다고 할 때, 그냥 공존하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조국 사태'의 고민 지점은 여기서 새롭게 시작된다. 조국은 분명히 87년 이후 '민주개혁 대 반개혁'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개혁의 선도적이고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조국 사태'를 통해, 부모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동원할 수 있는 교육 자원의 격차, 교육의 영역을 통해서 드러나는 불평등의 문제가 투명하게 드러났다(서민들의 자녀와 조국의 자녀들이 어떻게 다른 ’생애의 기회‘를 갖는지도 드러났다). 명문대생들은 명문대생대로 불공정을 성토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피땀으로 이룬 성취를 조국과 같은 기득권의 자녀들이 부모의 인적·물적 네트워크라는 지름길을 이용해 손상했다고 주장한다. 한편에서는 이런 비판마저 배부른 소리라고 지적한다. ‘구의역 김군’과 함께 일했던 동료의 발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와 엘리트 인생 사이에 어찌 출발선이 같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여기서, 향후 쟁투의 내용을 새롭게 재정식화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일부에서는 이를 ‘계급적 문제’로 보고자 했다. 사실, 조국은 대표적인 ‘강남좌파’라고 불리웠는데, 이때의 강남성(性) 혹은 강남적 성격은 현존하는 질서 내에서도 일정한 ‘혜택받은 집단’이나 ‘기득권적 지위’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어떤 의미에서 조국의 강남성(性)은 그가 서울대 교수라는 점과 '사학 오너'의 자녀라는 점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두 가지는 강북이나 지방의 좌파와 달리 기존의 질서 내에서 동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 역량이 현저하게 다르고 다양한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 상의 일’들에 연루될 가능성이나, 현재의 달라진 공직자의 기준에서 쟁점이 될 수 있는 과거의 관행적 일들에 연루될 가능성도 클 것이라고 판단된다. 강남 좌파는 그런 점에서 그러한 계급적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만큼 그가 참여한 개혁적 운동의 저변이 넓어지게 했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많은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었다. 그러나 '조국 사태'를 통해서 드러난 불평등 접근권의 문제를 단지 ‘조국 특수'적 문제로가 아니라 일반적인 문제로 포착하고 다음 단계의 쟁투의 의제로 삼아야 한다. 개혁주의자로 살아온 ‘강남좌파’ 위에, 더욱 심대한 불평등 접근권의 격차가 존재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새로운 사회와 정치(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쟁투라 해도 좋다)를 생각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조국 너머’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만들어낸 ‘민주사회’에서 민주화를 주도했던 386세대는 -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 우리 사회의 주류, 특별히 정치적 주류로 진입하였다. 이 점은 유럽의 68혁명세대도 마찬가지이며, 미국의 60-70년대 저항세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87년 이후 체제, 97년 체제에 의해 이른바 신자유주의적으로 구조화된 새로운 체제 내에서 주류가 된 셈이다.
조국을 통해서 우리가 본 것은 강남좌파의 두 측면이다. ‘강남이면서도 좌파’인 그의 인간적 헌신과 87년 체제 하에서의 개혁성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87년 체제 하에서 강남적 존재가 갖는 불평등한 접근권의 모습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인식하면서 우리는 조국을 넘어가야 한다. 조국에서 느끼는 실망으로 87년 6월 민주항쟁과 촛불시민혁명 이전으로 돌아가려 해서는 안 된다. 강남좌파의 강남성에서 발생하는 특권적 모습을 도덕적 비판하면서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시도와는 달리 우리는 미래의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새로운 미래를 바라봄에 있어 ‘세대갈등’으로 치환할 필요는 없다
또한 나는 이런 미래를 개척함에 있어 ‘세대갈등’으로 가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이번 조국 사태에서 중도층이나 젊은 세대가 좌절과 분노에 공감한다. 나는 젊은 세대가 이야기하는 ‘기회의 공정성’을 넘어서서, ‘결과의 평등성’까지 실현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386세대나 586세대 전체와 젊은 세대의 갈등으로 치환하는 것은 올바른 시선이 아니다. 민주개혁의 선도에 섰던 386세대, 아니 586세대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함께 가야 한다. 386세대나 586세대를 정치 영역에서의 국회의원이나 주류화된 중상층만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에도 다양한 사회영역에서 젊은 세대가 분노하는 불평등과 격차, 비정규직의 문제에 대해서 싸우고 있는 사람 중에는 386세대 혹은 586세대가 다수 존재한다. 이런 연대 위에서, 386이나 586의 세대적 한계까지도 당연히 쟁점화되어야 한다.
또한 그들 중의 강남좌파가 된 존재들의 강남성에 의해서 주어지는 구조적 접근권의 격차까지도 개혁하는 새로운 쟁투로 가야 한다. 예컨대 이번 - 지금은 일정하게 개혁되고 한 단계 높은 개선을 목적에 둔 - 과거의 ‘학생부 종합전형’ 제도에서의 계급계층적 접근권의 차이에 분노하는 것을 넘어서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적했지만 서열화된 고교 체제와 대학 입시 개혁으로도 가야 한다. 당연히 사회경제적 개혁의 더 높은 단계를 상상해야 한다. 청년, 일자리, 여성, 다문화, 비정규직 등 386이냐 586이냐를 넘어서 험악해진 우리 사회의 균열을 치유하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주지하다시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와 소득 및 자산의 양극화는 무한 입시경쟁의 불평등의 토대가 된다. 그래서 당연히 사회경제적 개혁은 지속되어야 한다. 대입과 고입을 준비하는 교육 현장은 사회경제적 격차를 교육 격차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약육강식 무한경쟁의 장(場)이다. 따라서 당연히 제도 내에서의 도덕성에 분노함과 동시에, 서열화된 고교체제과 대학체제, 그 관문으로서의 입시제도를 한 단계 높은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시켜 가야 한다. 그것이 - '조국 사태'를 보면서 '조국 너머'의 -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사회를 향한 새로운 쟁투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당연히 386세대 그리고 586세대는 바로 이러한 변화된 구조적 현실을 성찰적으로 대면해야 한다. 이미 주류화된 존재로 그 구조 내에서 비루하게 자신의 자식의 문제로 고군분투하지만 ‘태어난 집은 달라도 배우는 교육은 같은 교육제도’를 만들기 위해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직시해야 한다. 강남좌파는 그 강남성의 구조를 넘어서기 위하여 젊은 세대의 분노와 만나야 한다. 교육에서는 강남성이 특권으로 작용하지 않는 제도개혁, 더 나아가 더 큰 틀에서의 학벌-학력 차별을 타파하기 위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 젊은세대를 노동시장에의 진입 조차 못하게 하는 현재의 ‘의도하지 않은’ 배제의 구조를 극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에서의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더욱 대의될 수 있는 구조를 만나야 한다(현재 계류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과 그것이 미래세대에게 대의 공간을 열어주는 식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하여). 386세대와 586세대는 자신이 투쟁했던 체제에 스스로가 주류로 진입하는 동안 그 구조는 여전한 불평등구조로 구조화되어 있음을 직시하고 새로운 개혁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예컨대 대학등록금을 신입생에게 적용하던 과거의 대학등록금 인상에 대한 대학당국의 정책을 생각해보자. 최초의 민주노조를 가능하게 한 386세대는 그들이 비지니스 영역에서 성공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지만, 그들이 97년 체제의 도전 속에서 민주노조의 조직력으로 자신들의 이해를 힘겹게 방어하는 사이, 기업주들은 신규진입자에게 새로운 불이익 조건을 강제하는 식으로 대처하였다. 그 결과 이중노동시장이 아니라 아예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부노동시장과 외부노동시장의 격차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글을 마치면서, '조국 사태'는 이제 법무장관 임명 이후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하고 있다. 이후 상황은 나는 지켜보는 입장이다. 이 글은 단지 임명 이전까지의 사태 전개를 보면서 이 '조국 사태'를 교육적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우리 학생들이 토론할 때 내가 참여자라면 어떻게 토론할 것인가를 고민해온 작은 생각들이다. 한달 동안 '조국 사태'에 매달려온 많은 분들의 사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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