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서울 공덕동하우스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썼다. 왼쪽부터 이영석, 홍주은, 홍혜은, 황희재, 이사임씨.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비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경제력이 있고, 예쁜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화려한 싱글’, 또는 연애도 안 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길 거부하는 사람들. 그러나 실제로 비혼자들은 그저 ‘4인 정상가족’에 포함되지 않을 뿐,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지난달 20일, 비혼을 지향하는 생활 공동체 ‘공덕동하우스’를 만났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다세대주택 5층엔 ‘이상한 가족’이 살고 있다. 결혼을 매개로 한 4인 가구를 ‘정상’ 가족으로 본다면 이들은 비정상이다.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는 이 가족의 구성원은 9명. 이 중엔 혈연관계도 있고 애인 사이도 있지만 모두들 한 커뮤니티를 통해 가족이 됐다. 가족이긴 하지만 9명이 다 같이 사는 건 아니다. ‘공덕동하우스’라고 이름 붙인 곳에서 4명이 살고, 나머지 5명은 자주 이곳을 왔다 가곤 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비혼 지향 생활 공동체’라고 부른다. 구성원은 20~30대의 여성 5명과 남성 4명으로, 홍혜은(별명 혠), 홍주은(쥬니), 황희재(에이미), 김분홍(분홍), 이사임(람지), 이문석(니문), 이영석(영스톤), 홍민기(밍긔적), 홍선종(쫑이) 총 9명이다.
홍주은과 홍선종은 홍혜은의 동생이고, 이문석은 홍혜은의 애인이다. 현재 이 네 사람이 공덕동하우스에 살고 있다. 거주자는 때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지금은 기숙사에 살고 있는 황희재가 공덕동하우스에 살기도 했고, 오는 여름 홍주은이 독일로 유학을 가면 이사임이 공덕동하우스에 들어올 예정이다.
공덕동하우스는 기능별로 공간을 나눴다. 거실은 책 읽고 글 쓰는 등 작업실로 활용하고 큰방은 손님맞이나 모임 공간으로, 작은방은 침실로 쓴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달 20일에도 5명이 큰방에 모여 앉아 상을 차려놓고 김밥과 과일을 나눠 먹고 있었다. 9명의 멤버 가운데 이날 기자가 만나 인터뷰한 사람은 홍혜은, 홍주은, 이영석, 황희재, 이사임 5명이다. 5명 중 홍혜은·홍주은 2명만 공덕동하우스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3명도 ‘손님’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이자 가족이기 때문에 비용과 집안일을 확실하게 분담했다.
“김밥값 3천원씩 나한테 줘.”
홍혜은이 말하자 나머지 네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김밥을 사왔기 때문에 한명은 상 정리를 하고, 또 한명은 쓰레기를 치우고, 다른 한명은 그릇과 컵 등을 설거지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것이 공동체의 규칙이라 했다. 집에 가끔 놀러 오는 손님이라면 앉아서 집주인의 대접을 받겠지만 공덕동하우스를 중심으로 가족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런 규칙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덕동하우스에 거주하는 4명에겐 좀더 세밀한 운영 원칙이 있다. 월세와 생활비는 수입에 따라 차등을 두고 낸다. 차등을 낸 기준과 납부 비용은 회계 담당 홍주은이 매달 엑셀로 정리해 공지한다. 십시일반으로 ‘공덕동 기금’도 모아뒀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거주자가 당장 월세를 내지 못할 때나 수술비 등 목돈이 필요할 때 쓴다.
비혼 지향 생활 공동체 ‘공덕동하우스’ 구성원(왼쪽부터) 황희재, 이사임, 홍혜은, 이영석, 홍주은씨. 공동체의 구성원은 총 9명이고, 현재 4명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함께 독서를 하고 강의를 듣고 계간지를 만들며 집회·시위에도 참석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비혼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결혼 안 할 거라고 혈서 쓴 거 아니거든요.”
공덕동하우스 구성원들은 톤을 높여 말했다. 결혼으로 표상되는 정상성과 정상가족에 끼워 맞춰지고 싶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비혼’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미(未)혼과 달리 비(非)혼은 적극적 의지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1인 가구부터 동거 관계까지, ‘남성 1인과 여성 1인의 합법적 결혼 상태’에 속하지 않는 모든 형태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 건수는 25만7700건으로 1년 전보다 2.6% 줄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최근 10년 사이 가장 많은 결혼 건수를 기록한 2011년(33만1500건) 이후 7년 연속 감소세였다.
공덕동하우스 구성원들이 비혼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이들은 “비혼을 선택한 게 아니라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홍혜은은 설명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그 모든 상태들, 그리고 결혼으로 만들어진 정상가족 밖으로 밀려난 삶들, 그 모든 것이 비혼에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삶들은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제도가 이런 삶들을 없는 것처럼 취급해왔을 뿐이에요. 제대로 된 이름과 제도적 안전망을 얻고 싶어요.”
이들에게 ‘비혼’은 일종의 ‘운동’이자 ‘정치’다. 이사임은 “우리 사회는 결혼한 개인들을 바탕으로 굴러가고 있고, 국가가 제공해야 할 서비스들을 4인 정상가족에게 떠넘긴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이 부분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잘 살고 싶어서 비혼이 아니라 ‘비혼 운동’을 선택했어요.”
황희재도 “단순히 비혼이 ‘결혼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정해진 인생의 트랙, 당연히 언젠가는 결혼할 것이라는 시각, 결혼을 하려면 연애는 끝낼 수밖에 없다는 편견, 신혼부부만을 위한 또는 정상가족만을 위한 정책, 여기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하는 정치적인 입장입니다.”
‘비혼’이란 단어에 물려 한때 유행했던 말이 ‘화려한 싱글’이다.
“요즘도 비혼 하면 스스로를 부양할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여성이 본인의 커리어를 이어나가면서 간간이 친구들도 만나고 반려동물을 키우며 혼자 사는 것을 상상하죠. 하지만 꼭 경제적인 능력이 되어야만 비혼을 꿈꾸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비혼을 선택해요.”(홍주은)
결혼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가족을 원하지 않는 건 아니다. 결혼하지 않는 삶이 연애를 하지 않거나 가족 없이 홀로 사는 삶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덕동하우스는 생활을 함께 하는 공동체로서 ‘다양한 가족’을 실천하고 있다.
시작은 홍혜은이 2015년 7월에 만든 페이스북 커뮤니티 ‘만족하는 사람 유니온’이었다. 온라인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토론을 하고 오프라인에서 만나 독서모임 등을 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2017년 4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폐쇄했을 때 오프라인에 남은 사람이 이들 9명이었다.
공덕동하우스에서 4명이 함께 살게 된 것은 주거 안정성 때문이었다. 홍혜은은 셀 수도 없을 만큼 이사를 경험했다. 기숙사, 고시원, 임대원룸 등을 거치며 수차례 집을 옮겼다. 그러다 홍주은이 서울에서 일하게 되면서 함께 살기로 했고 현재의 공덕동하우스를 얻었다. 모임 구성원 중에서 월세와 생활비를 함께 낼 2명을 더 들였다. 이들은 계속 생활과 모임을 이어나가다가 지난해 9월 마침내 ‘비혼 지향 생활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관련 내용을 담은 계간지 <공덕동하우스>도 만들었다.
공덕동하우스는 1인 가구가 모여 주거를 같이 하는 ‘셰어하우스’와는 다르다. 셰어하우스가 주로 경제적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공동주거 형태라고 한다면 공덕동하우스는 삶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나누고 고민하는 것도 큰 축이다. 이를 위해 계간지를 창간해 글을 쓰고, 책을 같이 읽고, 강연도 듣는다. 기획자이자 저술가인 홍혜은을 주축으로 글쓰기 워크숍을 하기도 하고, 외국어를 잘하는 홍민기에게 언어 과외를 받기도 한다. ‘3·8 세계여성의 날’ 집회 등 각종 집회·시위에도 함께 참석한다.
멤버들은 기계적인 평등을 지양한다. 대신 서로를 좀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형편이 어려운 멤버에게는 경제적·신체적 배려를 해주고 집안일을 덜어주고 돌봐주기도 한다.
“셰어하우스와 다른 점은 명백히 정치적이란 점이에요. 침묵 또한 정치적인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침묵하지 않아요. 우리의 생각을 공유하고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시위, 간담회, 강연에 같이 참여하고 함께 계간지 작업도 합니다.”(황희재)
“결혼, 입양, 혈연이 아닌 형태로 서로를 돌보고, 관계를 지속하는 사이가 있다는 걸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우리에겐 이름이 필요했어요. 단순히 주거만을 같이 한다거나 경제생활만 공유하는 공동체는 아니기 때문에 생활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였죠.”(홍혜은)
그러나 비혼을 선택하고 공동체를 함께 하기로 했다고 해서 고민이 끝난 건 아니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만 13살 이상 3만9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2018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같이 살 수 있다’고 응답한 이들은 56.4%로, ‘결혼을 해야 한다’(48.1%)고 생각한 이들보다 많았다. 통계청이 같은 조사를 실시한 이래 처음으로 과반을 넘어선 수치였다. 남성의 36.3%, 여성의 22.4%만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결혼하지 않은 이들에게 “왜 결혼을 하지 않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결혼해서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같은 ‘훈계’, “아이를 낳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란 비난까지 서슴지 않는다.
“결혼제도 안에 있으면서 그 구조의 문법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해요. 그 구조에서 산다는 것은 불합리함을 견뎌야 하는 괴로운 길인 동시에 순응해버리기 쉬운 길이기도 해요.”(홍주은)
“비혼을 선택하면 가족을 갖기 바라는 원가족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협상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져요.”(이영석)
식구.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다. 지난달 20일 저녁,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공덕동하우스 식구들이 김밥과 딸기, 롤케이크를 올린 소박한 식탁에 모여 그날 있었던 일들을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결혼 건수 해마다 줄고 있지만
“왜 안 하느냐” “이기적” 여전한 편견
주거·의료·금융·복지 등 모든 제도
결혼 중심 가족에 맞춰져 있어
끝이 보이는 관계?
이영석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며 함께 했던 원가족이 ‘문제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저 가족이라는 간판 아래 고정된 역할들에 갇힌 채 관성적 관계로 살아가는 것이 싫었다. 문제가 생기면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얼렁뚱땅 넘어갔다. 서로를 험담하거나 폭력이 오가기도 했다. 아버지가 특히 심했는데, 자신의 권위가 훼손됐다고 생각할 때면 술을 먹고 폭력을 휘둘렀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를 경찰에 신고했고 두 사람은 별거했다. 그의 부모는 이런 일들이 화목하고 단란한 정상가족의 그림에서 벗어난 것이라 부끄러워하며 쉬쉬했다. 영석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가족이란 옷이 맞지 않아서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공덕동하우스의 구성원들을 만나면서 편해졌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가족 역시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질문할 수 있게 됐다.
“누가 내 인생의 보호자이고 동반자인가?”
공덕동하우스는 그가 스스로 선택한 가족이었다.
지난해 9월, 영석은 편도선 절제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했다. 수술 전날, 수술동의서에 보호자 서명을 해주기로 했던 어머니가 돌연 일이 바쁘다며 오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홀로 수술 준비를 마쳤다. 수술 당일, 홍혜은이 병원에 왔다. 그러나 혜은은 영석의 보호자가 될 수 없었다. 현행법은 그들을 가족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혈연으로 이어진 사람만 가족일까요? 저는 이 일을 계기로 가족을 다시 정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혈연과 성애 관계를 넘어선 가족을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이영석)
홍주은은 지난가을 재무상담을 4차례 받았다. 그러나 상담사에게 공덕동하우스는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아무리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해도, 상담사에게 주은은 언젠가는 결혼할 예정인 ‘미혼 여성’으로 취급됐다. 마찬가지로 공덕동하우스는 누군가 결혼해서 나가면 깨질 관계로 여겨졌다.
“현재 법 기준으로 공덕동하우스는 가족이 아닙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가족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꼭 혈연으로, 혹은 로맨틱한 관계로 이어져 있어야만 가족인가요? 주거 공간을 공유하고, 서로를 돌보고, 미래를 함께 계획하는 우리는 왜 가족이 아닐까요?”(홍주은)
“공덕동하우스라는 생활 공동체를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일시적으로 주거지를 공유하는 정도의 관계가 아니에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내 애인이 결혼해서 독립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내 동생이 결혼할 애인이 생기면 동생 쪽이 따로 독립할 것이라고 여겨요. 하지만 우리는 이런 추측이 무례하다고 생각해요.”(홍혜은)
경제적 능력 있어야 비혼 가능?
다양한 조건의 사람들이 선택
“결혼 안 하겠다 혈서 쓴 건 아니지만
정상가족만 강요하는 것에 반대해”
공덕동하우스 거실 책상 위에 협동조합형 청년 공공임대주택 입주 신청서가 놓여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4인 정상 가족’만을 위한 나라
비혼을 택한 이들에게는 주거·의료·재정 문제, 사회적 편견 등 고난과 역경이 지뢰처럼 숨어 그들을 기다린다. 한국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는 1인 가구
(전체 가구의 28.6%로 최다)인데도 이들을 위한 주거공간은 턱없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비싸다. 한국의 집이 ‘정상가족’을 위해 설계돼 있는 탓이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주택청약을 든다 해도 1순위는 ‘신혼부부’ 몫이다. 청년 주거 지원 혜택을 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특히 법적 보호자 기준의 재정립 필요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건 수술 동의 등 의료 행위에 권리행사가 필요한 때다. 현행 의료법상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수술 등을 할 때 의사는 환자 본인 또는 법정 대리인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때 법정 대리인은 법률상 부부, 부모, 자녀, 친지 등으로 한정된다. 현행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형태의 부부는 세금 혜택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건강보험은 각자 가입해야 하고, 연말정산에서 배우자 소득공제도 받지 못한다. 홍혜은은 “국가가 제공해주는 혜택을 누리며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으로 지내고 싶어서 주택청약통장을 대학생 때부터 만들어뒀지만 ‘정상가족’ 세대주거나 신혼부부가 되지 않으면 임대주택에 들어가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들은 현재 공덕동하우스가 쓰고 있는 집이 자신들이 가진 보증금 안에서 채광도 통풍도 좋은 적절한 평수라고 만족하면서도, 언제 계약 갱신을 거절당할지 알 수 없어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공공임대 주택단지 ‘청년미래 공동체주택’에 입주 신청도 해봤지만 기대는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 공공임대주택은 1인 가구와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인데, 1인 가구도 부부도 아닌 가족이 들어갈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1인 가구라도 한 사람씩 각각 신청해야 하므로 그들이 같이 입주할 방법은 없다. 1인 가구를 위한 공공임대주택은 원룸이나 셰어하우스 형태인데, 셰어하우스 설계 도면을 보면 공간만 공유할 뿐 거실이랄 것도 따로 없다. 마치 밥도 같이 먹지 말고 각자 방에 들어가서 먹도록 권하는 것 같다.
“결혼이 매력적인 이유는 기혼자의 지위를 획득하면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제도를 ‘몰빵’ 했기 때문이에요. 고용, 주거, 의료, 보험, 금융, 복지의 영역에서 가족 구성원이 함께 혜택을 받으려면 지금으로서는 꼭 결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하죠. 회사 생활을 하면 가족의 경조사 때 휴가를 사용할 수 있지만, 혼인관계에 있지 않은 ‘가족’의 경조사는 예외죠. 결혼으로 ‘한 큐’에 해결된다고 여겨지는 많은 영역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개인을 중심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홍혜은)
“우리 공동체는 생활동반자법의 입법을 지지해요. 하지만 법이 만들어지
더라도 현행법 자체가 정상가족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우리는 2차적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또 실제 거주를 같이 하는 사람만 생활동반자로 인정되는 것 아닌가 걱정도 되고요.”(이영석)
공덕동하우스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시도를 정상가족에 대비해 ‘대안가족’이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결혼으로 성립된 가족만 정상가족으로 인정해왔지만 이미 제도 밖에는 다양한 가족 형태들이 존재해왔고, 공덕동하우스도 그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공덕동하우스의 목소리가 한사코 획일성을 유지하려 애쓰는 세상 어딘가에 균열이 나고 있다는 작은 신호로 읽히길 바라본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공덕동하우스 거실 게시판. 비혼 지향 생활 공동체 공덕동하우스 사람들은 함께 여러 집회에 참가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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