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목격자-과학수사](3)이 장어가 어디에서 왔는지…NDFC는 알고 있지
입력 : 2018.11.13 06:00:05 수정 : 2018.11.13 06:03:01
법생물·화학 감정
DNA 분석팀, ‘짝퉁 국내산’ 감별·식약품 성분도 조사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은 특정 성분 함량까지 확인
자칫 악덕 업체로 몰릴 뻔한 백수오 제조사 무혐의 밝혀
필로폰 DB 구축 20년…연간 마약 감정 1만여건 처리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은 특정 성분 함량까지 확인
자칫 악덕 업체로 몰릴 뻔한 백수오 제조사 무혐의 밝혀
필로폰 DB 구축 20년…연간 마약 감정 1만여건 처리
국내산(극동산) 장어에 유럽산·미국산 장어를 섞어 판매한 도매업자, 횟집에서 주로 내놓는 메로 대신 가격이 6분의 1 수준인 기름치를 섞어 납품한 유통업자, 처방과 일치하지 않는 성분을 넣거나 건강식품에 이용할 수 없는 원료를 넣은 무허가 한약 제조·판매업자….
박근혜 정부에서 처벌된 먹거리 관련 범죄사범들이다. 박근혜 정부는 불량식품을 ‘4대 사회악’(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 중 하나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먹거리 종류만큼 범죄 유형은 다양했다. 처벌 정도도 벌금형부터 구속 기소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먹거리 사건 수사에 첨단 과학수사 기법인 ‘법생물감정’이 동원된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법생물감정은 동식물마다 존재하는 유전자(DNA)를 분석해 생물의 종(種)을 식별하는 방법이다.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의 디엔에이화학분석과는 사건 현장에서 피의자나 피해자의 DNA를 찾는 DNA감정(경향신문 10월30일자 1·5면 보도)과 함께 법생물감정을 맡고 있다. 마약 등 범죄와 관련된 화학적 성분을 찾는 화학감정도 실시한다.
■ 불순물 ‘얼마나 있느냐’까지 확인
검찰이 식품 관련 수사도 과학적으로 지원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 결정적 사건은 2015년 ‘가짜 백수오 사태’다. 백수오는 다년초인 은조롱의 뿌리로 갱년기 장애 개선, 면역력 강화, 항산화 작용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중·장년 여성들의 건강기능식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관련 제품을 판매하던 내츄럴엔도텍 등도 높은 매출 실적을 기록했다.
2015년 4월22일 한국소비자원이 백수오 제품 대부분이 가짜라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소비자원은 시중에 유통 중인 백수오 제품 32개를 조사한 결과 백수오를 원료로 한 제품은 3개뿐이고 21개 제품은 이엽우피소를 전량 또는 혼합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엽우피소는 넓은잎큰조롱의 뿌리로 백수오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가격은 3분의 1 수준이고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연구 보고 때문에 식용이 금지돼 있었다. 8개 제품은 백수오를 사용했다고 표기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 결과 백수오 성분이 확인되지 않았다.
내츄럴엔도텍은 “같은 해 2월 식약처에서 동일 샘플을 유전자 검사했지만 이엽우피소가 검출되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같은 회사 제품을 두고 소비자원과 식약처가 다른 결과를 낸 셈이다. 식약처는 소비자원 발표 후 재조사에 들어갔다. 8일 후 “내츄럴엔도텍 원료에서도 이엽우피소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최종 판단은 검찰 몫이 됐다. 수사기관으로서는 백수오 제품에 이엽우피소가 섞여 있다 하더라도 제조 과정에 고의로 넣었는지를 가려내야 했다. 단순 실수는 처벌할 수 없다. 백수오 제품에 이엽우피소가 단순히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 ‘얼마나 있느냐’를 가려야 했다. 혼합량에 따라 피의자가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고의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원과 식약처 모두 정교한 분석 기술은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NDFC는 처음으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NGS 또는 MPS)을 이용했다. 통상적인 DNA 분석법은 DNA를 증폭해 그 결과만 확인한다. 생물의 특정 구간 염기서열을 분석해 어떤 종인지 확인할 수 있는 ‘DNA 바코드 정보’로 구별하는 방식이다. 백수오 제품에서 백수오뿐 아니라 이엽우피소나 당귀의 DNA까지 확인했다는 식이다. 절반이 들어 있든, 0.1%만 들어 있든 분석 결과는 같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을 사용하면 검출된 불순물이 어느 정도 포함됐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NDFC는 검찰 의뢰를 받아 감정한 결과 내츄럴엔도텍이 보관 중이던 8개 입고분 백수오 샘플 각 300g 모두에서 이엽우피소가 발견됐지만 혼입 비율은 약 3%뿐이고 절반 이상은 1%를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원지검 형사4부는 “이엽우피소 혼입 비율이 미미하고 이 같은 수준은 제품 단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해 경제적 동기가 부족하다”는 점 등을 종합해 그해 6월 내츄럴엔도텍 김모 대표와 법인을 모두 혐의없음 처분했다.
NDFC는 백수오 사건 이후 인간뿐 아니라 동식물 DNA에 대한 전문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보고 DNA감정실에 법생물실을 새로 설치했다.
생물 종이 방대해 NDFC가 모든 생물의 DNA 데이터베이스(DB)를 확보해 분석할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전문기관과 협조한다. 최근 디엔에이화학분석과는 ‘경마자라는 저가 약재를 동규자라는 약재로 속여 국내로 들여온 관세 사건’에 대한 정밀감정 의뢰를 받고 한국한의학연구원에 약효의 차이를 문의한 후 감정하기도 했다.
오혜현 연구관은 “동식물 DNA DB 구축은 유관기관끼리의 협력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국내 연구기관과 감식기관 17곳이 ‘한국법생물연구회’에 참여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일선 수사팀이 의뢰했지만 NDFC가 하기 어려운 사건은 다른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 마약에도 지문이 있다?
사람과 동식물의 DNA감정이 생물학적 영역이라면 마약지문감정은 화학적 영역에 속한다. 마약지문감정이란 수사기관이 압수한 마약의 고유한 물리·화학적 특성을 마약지문이라는 고유 지표로 재구성해 원료물질, 제조법 등을 구별하는 감정 기술이다.
NDFC는 1998년 마약지문감정센터를 설치했다. 이곳에 메스암페타민(필로폰) DB를 구축했다. 메스암페타민은 1888년 일본 도쿄대의 나가이 나가요시 교수가 천식치료제인 마황에서 에페드린을 추출하면서 처음 발견한 물질이다. 합성 방법에 따라 특이하게 생기는 불순물로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적발되는 마약 종류다. NDFC는 지난 30년간 확보한 메스암페타민 시료 1268점을 특성별로 80여개로 분류했다.
지난달 208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으로 국내 소매가격 2080억원 상당의 메스암페타민 62.3㎏을 압수한 사건도 마약지문감정이 빛을 발한 사건이다. 지난 8월 대구지검 강력부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메스암페타민을 판매하려던 대만인 3명을 붙잡았다. NDFC는 검찰이 압수한 28.5㎏이 앞서 인천지검 강력부가 4~7월 공항 등에서 확보한 메스암페타민 33.8㎏과 유사한 성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일한 제조원에서 만들어진 메스암페타민이 국내에 밀반입돼 여러 경로로 유통됐다는 사실이 화학 분석을 통해 드러나 공범, 상선(상위급 마약 판매상) 등에 대한 추가 수사가 가능했던 사례다.
NDFC 디엔에이화학분석과 법화학실은 마약지문감정을 연간 수십건씩 의뢰받고 있다. 김진영 법화학실장은 “대검 내규에 따라 수사팀이 확보한 일정량 이상의 메스암페타민은 마약지문감정을 위해 NDFC에 보내야 한다”면서 “수십년간 데이터를 쌓은 덕분에 연간 1만여건에 이르는 단순 마약감정뿐 아니라 마약별 제조원, 동일성 유무, 순도 등을 정밀하게 감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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