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한 고시원(3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 |
ⓒ 권우성 |
"여러분 타지 생활의 따뜻한 반려자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9일 새벽 갑작스런 화재로 7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다친 서울 종로 한 고시원 홈페이지에 있는 홍보 문구다. 스스로 "최고급 원룸형 주거공간", "품격 높은 호텔형 고시원"이라고 자랑했지만 실제 1.5평(약 5㎡) 비좁은 방은 성인 혼자 생활하기엔 열악했다.
▲ 9일 새벽 화재가 발생한 종로 관수동 고시원 홈페이지. 내부 사진들과 함께 "최고급 원룸형 주거공간, 품격높은 호텔형 고시원"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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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고시원 화재로 이른바 '지옥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옥고'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을 일컫는 말로, 학생뿐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 등 주거취약계층이 주로 머무르는 곳이다.
이날 새벽 화재가 발생한 종로 고시원 역시 젊은 고시생들보다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했고, 사상자도 대부분 40~60대였다. 이날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이 고시원은 그나마 종로 한복판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하루 세 끼 식사도 함께 제공하는 등 주거 여건은 다른 고시원에 비해 양호한 편이었다고 한다.
40여 평 공간에 26명 살아가는 '호텔형 고시원'
▲ 9일 새벽 화재로 사망자 7명을 비롯해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종로 한 고시원 내부 모습. 좁은 공간에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복도도 성인 2명이 지나다니기엔 좁다.(사진 출처: 고시원 홈페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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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가 난 고시원은 2층 24실, 3층은 29실, 옥탑방 등으로 구성돼 있다. 화재가 난 3층 43평 공간에는 모두 26명이 살고 있었고, 사상자도 모두 이곳에서 발생했다.
고시원 홈페이지에는 "진흙 속에 살짝 감춰진 숨은 진주 같은 고시원"이라면서 "한번 찾아와서 안에 들어오면 깔끔한 내부 시설과 너무나도 청결한 주방 그리고 차별화된 식사 서비스, 그리고 보통 고시원이 갖추고 있는 것은 다 있는 기본 시설에 다들 놀란다"고 스스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우리 고시원의 최대 장점은 24시간 제공되는 따뜻한 밥과 김치를 포함한 7가지가 넘는 반찬 및 따뜻따뜻한 국"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이날 대피소에서 만난 2층 거주자 이아무개(56)씨도 "원장이 식사 3끼를 직접 만들어 제공하는 등 이곳에서 오기 전에 생활했던 고시원 두 군데보다는 여러 가지로 세심했다"고 말했다.
▲ 9일 새벽 화재로 사망자 7명을 비롯해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종로 한 고시원 내부 모습. 원룸은 1.5평 규모로 1인용 침대와 책상, 의자가 간신히 들어가는 규모다.(사진 출처: 고시원 홈페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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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에는 고시원 내부 편의시설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었다. 중앙 냉난방시설을 갖췄고 각 방에는 침대와 책장, 의자, TV, 냉장고 등이 설치돼 있었다. 공동으로 쓰는 화장실과 샤워장, 세탁기, 개인 신발장 등은 2층 여성, 3층 남자 층으로 구분돼 있었다. 주방에 대형 공용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정수기 등과 함께 '화재 걱정 없는 전기레인지'가 있다고 강조한 게 눈에 띈다. 입실료는 보증금 없이 창문이 있는 방은 월 30만 원, 창문이 없는 방은 월 25만 원 정도를 받고 있었다.
▲ 9일 새벽 화재로 사망자 7명을 비롯해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종로 한 고시원 내부 모습. 2층에서 3층을 통하는 계단이 유일한 출구여서, 출구쪽이 막힐 경우 마땅한 대피로가 없었다. (사진 출처: 고시원 홈페이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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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편의시설을 잘 갖췄더라도 고시원은 어쩔 수 없는 고시원이었다. 원룸방 넓이는 1.5평 남짓으로 1인용 침대 하나와 책상, 의자가 들어가면 이미 가득 찰 정도여서 성인이 장기간 거주하기엔 열악했다.
통로도 성인 두 명이 동시에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았고 비상구도 출구 쪽에 있는 계단 한 곳뿐이라 이번 화재처럼 출구 쪽에서 불이나 통로가 막히면 마땅히 대피할 곳도 없었다. 건물이 1980년대에 지어져 현재 고시원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돼 있는 간이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고시원, 화재에 취약... 올해 들어서만 46건 발생
▲ 9일 오전 5시쯤 서울 종로구 관수동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다. 고시원 근처 골목에 "무사고 기원" 현수막이 걸려있다. | |
ⓒ 신지수 |
이처럼 고시원은 좁은 공간을 쪼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복도도 좁다보니 화재 발생시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는 299건에 이르고, 올해 들어서도 46건이 발생했다.
주거 환경도 열악하다. 한국도시연구소에서 지난해 발간한 '최저 주거기준 미달 가구 및 주거 빈곤 가구 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으로 고시원과 같이 주택으로 분류되지 않는 기타 거처에 사는 가구는 39만 1245가구로 5년 전 12만8675가구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반지하나 옥탑방조차 얻지 못한 주거취약계층이 고시원이나 원룸텔로 하향 이동하고 있었다.
▲ 한달에 22만원하는 영등포의 한 고시원 방은 한평이 되지 않는다. 겨우 발을 뻗고 누우면 방이 가득 찬다. | |
ⓒ 이희훈 |
고시원과 원룸은 국토교통부 최저 주거기준 적용도 받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지옥고에 산다' 취재팀이 지난해 겨울 찾은 서울 신촌에 있는 한 고시원 방의 경우 길이 180cm, 폭 1m 이하 침대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난방도 되지 않아 전기장판에 의존하고 있었다. 영등포에 있는 월 22만 원짜리 고시원의 경우 난방은커녕 전기 장판도 제공되지 않아 겨울이면 옷을 잔뜩 껴입고도 추위에 떨어야 했다.
정의당 서울시당은 9일 논평에서 "최근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고시원 등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와 서울시는 소방법과 건축법 등에 대한 철저한 안전점검을 더욱 확대 강화하고 화재에 취약한 노후 고시원 등에 스프링클러 설치 지원 등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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