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4차 산업혁명 이전의 미래 자동차
"(GM이) 10년간 한국에서 생산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는 계약이 확정됐다. 이 기간 동안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10년 뒤 철수할 것인가를 논하는 건 낭비적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월 10일, 국회 산자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증언이다. 그래, 무턱대고 10년 뒤 얘길 묻는다면 그건 ‘낭비적 논쟁’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1년이 10번을 반복해 10년을 이루는 법! 1년 뒤 어떻게 될 것인지는 박 터지게 논쟁을 하면서, 10년 뒤 얘기는 아예 하지 말자고 빗장 걸 문제는 아니다.
10년 뒤의 자동차산업?
<인사이드경제>는 '4알못'이다. 솔직히 4차 산업혁명이 뭔지, 뭔 뜻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자동차산업에서 벌어질 변화들, 이를테면 10년 뒤의 자동차산업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해 있을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안다.
물론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봐도 엄청난 변화가 느껴진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소비자들 텅 빈 호주머니 사정으로 말미암아 소형차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사이 다시 중·대형차와 크로스오버가 떠오르더니 이내 SUV가 대세를 차지하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독자들도 잘 아시다시피 CO2를 배출하는 내연기관차가 아니라 전기차·수소차가 도로 위를 누비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내연기관과 배터리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Hybrid) 단계를 거쳐, 배터리만을 사용하는 순수 전기차가 떠오르는 중이다.
하지만 지난 10년보다 앞으로 10년의 변화가 훨씬 거대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지난 10년의 변화는 자동차산업의 '구성' 자체를 크게 흔들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완성차·부품사의 관계, 공장에서의 생산 시스템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10년간은 '자동차산업'의 개념 자체가 달라진다. 10년 뒤에는 전기차·수소차의 시장 점유율이 30% 안팎에 이르면서 배터리 효율 등 부품산업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게 된다. 상대적으로 완성차업체의 중요성이 줄어들면서 권력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예를 들면 배터리업체의 경우 배터리를 납품하는 일개 '부품사'가 아니라, 핵심 부품을 공급하며 완성차 생산을 주문하거나 최소한 완성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기차·수소차 개발에 참여하는 수준으로 뛰어오르게 될 것이다. 전형적인 갑-을 관계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업의 개념, 고용규모에도 거대한 변화가
이러한 산업의 변화, 권력관계 변화는 아마도 고용 규모의 변화도 가져올 것이다. 현재 완성차 업체들의 친환경차 생산은 하이브리드, 또는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하나의 라인에서 혼류생산(병행생산) 하는 수준이다. 즉, 엔진·연료탱크도 집어넣고 배터리·모터도 장착하고 있다. 따라서 내연기관차만 생산하던 시절에 비해 고용규모가 크게 줄어들진 않는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기차·수소차 시대가 열린다면 테슬라(Tesla)처럼 전기차 전문업체도 늘어나고 주요 완성차업체에서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도 생길 것이다.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의 경우 내연기관차에 비해 조립해야 할 부품 수가 절반 가까이로 떨어지기 때문에 고용 규모가 상당히 줄어들 것임에 틀림없다.
부품사 역시 엔진·변속기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구조조정의 물결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다. 차체·공조·서스펜션 부품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전기차·수소차에 최적화시키기 위한 기술 개발의 선도자가 되려는 경쟁이 격화된다. 10년 전부터 미래를 내다보고 배터리·감속기·모터 등 전기차 부품을 개발해온 업체들은 상당 규모로 팽창할 것이다.
무엇보다 '산업'의 개념을 바꾸는 것은 자동차 관련 '서비스업'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우선 차량을 소유하기보다 '빌려서 사용하는' 카쉐어링(Car Sharing)·카헤일링(Car Hailing) 서비스가 빠른 속도로 확장 중이다. (혹자는 이를 '공유 경제'라는 이름으로 부르던데, 빌려서 사용하는 차량들은 죄다 자본가 또는 개인 소유이다. 이걸 '공유'라 부르는 건 상당히 오버인 듯)
여기에 요즘 떠오르는 자율주행차(Autonomous Car)가 더해지면 자동차산업에서 부품업계와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늘어나게 된다. 최근 주요 메이커들과 부품사들이 완전한 자율주행차가 아니더라도 부분 자율주행 기능을 선보이고 있는데, 여기에는 텔레매틱스(Telematics)나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등 정보통신산업을 자동차산업에 접목시키는 다양한 기술 발전이 녹아 있기도 하다. 즉, 정보통신산업을 자동차산업의 부품·서비스업으로 포섭한 것이다.
사양산업과 신흥산업 사이
인간의 역사로 보자면 자동차산업은 마차산업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올라온 산업이다. 그럼 마차산업에 종사하던 장인·숙련공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부는 신흥 자동차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실업자가 되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해야 했다. 다시말해 마차산업은 사양산업이 되어갔다.
그럼 마차의 동력원이었던 ‘말(馬)’을 대체한 것은 무엇일까? 초기 자동차산업의 주요 동력원은 전기, 그러니까 전기자동차가 대세였다. 전기차 개발은 벌써 150년 전 일이며, 1900년에는 미국에서만 3만 대의 전기자동차가 주행하고 있었다. 유명한 발명왕 에디슨이 개발한 에디슨 전지를 포드(Ford)의 ‘모델T’에 탑재한 전기차도 출시되었다.
하지만 '모델T'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든 것은 전기가 아니라 휘발유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로선 너무 오래 걸리는 배터리 충전시간, 엄청나게 높은 가격 등으로 전기차의 성장은 뒤쳐졌다. 하지만 1920년대 텍사스에서 석유가 쏟아지며 휘발유 가격은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헨리 포드는 '컨베이어 시스템'이라는 대량생산 체제를 도입하며, 낮은 휘발유 가격을 활용해 내연기관을 탑재한 모델T를 대박 상품으로 만들어낸다. 이번에는 전기차가 사양산업으로 퇴장하고 내연기관차가 패권을 차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마찬가지로 전기차 개발과 생산에 종사하던 기술자·노동자들은 상당한 구조조정을 겪었을 것이다.
튼튼하고 오래 가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밑창에 철제 프레임을 깔고, 그 위에 자동차의 외양을 디자인하고 프레스를 찍어 덮개를 씌우는 전통적인 '프레임(body-on-frame) 타입' 설계기법은, 자동차 외곽 전체를 하나의 몸체(uni-body)로 보고 마치 비행기처럼 설계하는 '모노코크(monocoque) 타입'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다양한 설계기법이 교차하긴 했지만 내연기관차는 20세기 2차례의 석유 파동도 견뎌내며 자동차산업을 견고하게 지탱했다. 하지만 내연기관차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유가가 아니라 달라진 경제 시스템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소형차가 각광받기 시작했고,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며 점차 중·대형차와 SUV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2008년과 같은 시기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금융위기’라고 이름 붙여진 것처럼, 개별 자본가들이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이러한 위기는 이미 ‘구조적 위기(organic crisis)’로 자리잡으며 세계 곳곳에서 시한폭탄처럼 터지고 있다. 전기차의 성장을 막기 위해서라면 테러라도 동원할 것 같았던 석유 자본가들도 이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미래자동차가 몰고 올 변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PHEV)을 몰고 심리치료사를 찾아 상담을 받았다. 상담 시간 동안 건물에 플러그를 꽂아 배터리를 충전했다. 그렇다면 이 전기값은 누가 지불해야 할까?"
전기차·수소차 시대가 열리면 맞닥뜨려야 할 수많은 새로운 질문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내연기관차라면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머플러와 그릴이 전기차에는 없다. 그런데 머플러와 그릴은 내연기관에 필요한 부품일 뿐만 아니라 자동차 외관 디자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들이다. 역설적으로 자동차 디자인에 훨씬 많은 상상력과 변화를 줄 수 있게 된다.
엔진과 달리 배터리와 모터는 소음이 거의 없다. 요즘 판매되는 전기차가 옆을 스쳐가 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알 것이다. 자동차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 자체를 귀로는 거의 느낄 수가 없다. 운전자 입장에서도 엔진의 떨림이 차체에 전해지는 것을 느끼며 속도감을 체감하는데 전기차는 떨리지도 않고 소음도 내지 않는다. 신기하기도 하고 위협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봐야 전기차는 아직 점유율 1~2% 아닌가? 너무 앞서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팔린 '순수전기차'는 150만 대 남짓이다. 현재 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1억 대에 육박하므로 점유율이 1~2%에 불과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점유율은 지난 5년간 10~20배 이상 상승한 결과이다. 다시말해 전기차는 현재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전기차 시대'라는 말을 사용하려면 최소한 20~30%대의 점유율 정도를 기록해야 한다. 아마도 그런 시점은 대략 2025~2030년 사이가 될 것이다. 하지만 10년 뒤의 일이라고 제쳐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거의 모든 완성차업체가 10년 뒤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지금 “앞서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니?
4차 산업혁명은 몰라도 자동차산업이라면…
게다가 이런 변화는 소비자나 시장이 아니라 사업장과 생산 현장에서 가장 빠르게 체감하는 법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이 늘어나면서 완성차업체의 고용 규모가 줄어들고, 부품산업은 구조조정과 팽창이 겹쳐지면서 정보통신산업이 포섭되어 전체적으로는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카쉐어링 등 서비스업이 자동차산업에 추가된다고 보면, 산업 전체의 고용 규모는 무조건 줄어든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고용 위기가 자동차산업에선 다르게 나타난단 말인가? 앞서 고백했지만 <인사이드경제>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다. 그러니 자동차산업에 대해서만 얘기할 수 있을 뿐이다.
미래자동차가 몰고 올 고용과 노동조건의 변화? 자본가들은 당연히 이윤 늘리는 데에만 신경을 쓸테니 고용규모는 무조건 줄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산업의 개념 자체가 달라지게 되며, 부품산업과 서비스업의 팽창으로 일자리 수는 심지어 늘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달라진 조건에서 고용을 늘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노동조합의 역할이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역할은? 이것 역시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미래자동차 관련 여러 산업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에는 ‘수소경제’처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도 있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처럼 산업과 고용, 노동조건을 연계시킨 정책도 있다.
물론 현재 우여곡절 끝에 추진되는 광주형 일자리는 현대차 자본의 이해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정책이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이 이에 대당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산업과 고용, 노동조건을 연계시킨 정책 대안을 고민하되, 이를 완성차·부품사 현장 노동자들과의 토론·공감 속에서 대중적 요구로, 대중운동으로 승화시키려는 전략·전술이 필요하다.
앞으로 <인사이드경제>는 미래자동차와 관련한 몇 가지 얘기를 쏟아낼 작정이다. 일국의 산업은행 회장은 10년 뒤를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얘기하지만, 웬만한 중소 자본가들도 떠드는 ‘미래자동차’가 바로 10년 뒤의 일 아니던가. 게다가 고용과 노동조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건 금융전문가에 맡길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달려들어야 할 사안이다.
경제도, 자동차도 모두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인사이드경제>가 추구하는 게 바로 그런 것 아니었던가. 전문가 아니면 말도 못하나? 전문가라고 떠드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오히려 이해가 안 되던데 말이야. 우리가 틀리면 전문가가 아니라고 핑계대면 되고, 반대로 맞으면 대박이 터지는 거 아니겠나. 그러니 독자들도 전문가들에게 주눅들지 말고 함께 토론에 뛰어들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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