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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9일 금요일

[커버스토리]지금 검찰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제2 서지현’이 나오는 것

글 장은교·사진 정지윤 기자 indi@kyunghyang.com입력 : 2018.11.10 06:00:03 수정 : 2018.11.10 06:00:10
‘검찰 미투’ 그후… 서지현 검사를 만나다
[커버스토리]지금 검찰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제2 서지현’이 나오는 것
■“내 삶도 세상도 달라졌지만, 검찰만은 변한 게 없다”
미투 촉발 서지현 검사
서지현 검사(45·사진)도 일상을 살고 있다. 2018년 1월29일 이전과는 다른 일상이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고,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응원을 받거나 욕설을 듣는다.
그날 서 검사는 검찰 게시판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안태근 전 검사의 성추행과 직권남용 범죄를 세상에 알렸다. 두 차례 법무부 장관 표창을 받고 정계 로비 사건을 수사하던 빼어난 검사는 그날 이후 검찰청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는 검사가 아니라 범죄 피해자로 9개월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서 검사는 알고 있다. 자신의 삶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서 검사의 삶도, 세상도 달라졌지만 “검찰만은 변한 게 없다”고 그는 말한다. 알면서도 그는 검찰과 계속 싸우고 있다.
서 검사는 지난 2일 안태근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서 검사는 “삶이 제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지만 이왕 시작된 제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려 한다”고 말했다. 비바람이 미세먼지를 잠재웠던 지난 8일, 여전히 장래희망이 ‘정의로운 검사’라는 그를 서울 정동에서 만났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일상을 살아가고 있죠. 어제 친구가 집에 놀러왔는데 마침 전화 온 지인에게 ‘지현이? 지금 내 앞에서 김치찌개 끓이고 있어’라고 하니 놀라더라고요(웃음).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고 시끄러운데 집에서 찌개를 끓이고 있다니까 이상했나봐요. 초등학생인 아이도 돌보고 집안일도 하고 병원도 다니고 있고…. 저는 저의 삶을 살고 있어요. 대체로 집 밖을 나가진 않지만.”
- 미투 이전과는 달라진 점이 많죠.
“처음엔 사람들이 절 알아보고 제 얼굴이 어디에 나오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지난 2월쯤 식당에서 나오는데 한 여고생이 ‘서 검사님 아니세요?’ 하더라고요. 누가 절 알아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 예…’ 하고 피해가려는데 학생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얘기했어요. 자신이 집에서 미투를 했다고요. 아마 집안에서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악수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따뜻하게 위로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싶어요. 그땐 저도 너무 힘들 때라서…. 그 학생이 요즘 더 생각나요.”
[커버스토리]지금 검찰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제2 서지현’이 나오는 것
인터넷에 엄마 얼굴이 크게 나온 걸 보고 놀란 아들에게
‘엄마는 나쁜 놈들 혼내주는 검사니까 그런 거야’ 말해줘
“우리 손주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다”는
시부모님의 말씀 전해 듣고 큰 힘 얻어 

- 지금은 좀 익숙해졌나요.
“여전히 불편하죠. 동네에서도 외출할 땐 마스크를 써요. 저 때문에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도 지장을 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알아보고 응원한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감사하죠.”
- 가족들 삶도 영향을 받았을 텐데요.
“아들이 야구를 보려고 인터넷에 들어갔다가 엄마 얼굴이 크게 나온 걸 보고 놀랐어요. ‘엄마, 왜 엄마가 여기 나와요?’ 하길래 말했죠. ‘엄마가 검사잖아, 엄마는 나쁜 놈들 혼내주는 사람이니까 TV에도 나오고 하는 거야.’ 아이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어요. 나중에 아이가 커서 이해할 수 있을 때 자랑스러운 엄마이고 싶어서 지금 더 힘을 내고 있어요.”
- 처음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에선 ‘남편을 원망했다’고도 표현했는데요.
“사실 남편에게 제가 당했던 일들을 세세하게 말하진 못했어요. 남편은 8년 동안이나 제가 그렇게 고통받았던 사실을 제가 쓴 글과 인터뷰를 보고야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했어요. 지금 저에겐 큰 힘이 되어주고 있어요. 시부모님은 ‘우리 손주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다’고 하셨다 들었습니다.”
- 폭로 이후 검찰청엔 하루도 출근을 못한 건가요.
“네. 방송에 나가고 바로 다음날 통영지청에서 전화가 왔어요. 어떻게 할 거냐고. ‘출근하긴 어렵지 않을까요’ 하고 답을 드렸는데 당일에 바로 제 책상이 없어졌어요. 인사철이긴 했지만, 일종의 검찰식 의사표현이었겠죠. ‘너는 이제 검찰에 돌아올 수 없다’라는. 4월까진 병가를 썼고, 5월부턴 1년 질병휴직 중입니다.”
법무부는 지난 7월 통영지청 소속인 서 검사를 질병휴직 중에 성남지청으로 전보발령냈다. 법무부는 이를 ‘부부장 승진’이라고 알렸으나, 33기 동기 전원이 근무연차에 따라 자동승진된 것이었다.
- 지금 건강상태는 어떤가요.
“좋진 않아요. 공황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렸고, 얼마 전엔 위경련으로 쓰러지기도 했어요. 사실 1년 넘게 하루 1~2시간밖에 못 잤는데 그래도 사람이 죽진 않더라고요. 이젠 내가 잠을 잤나 안 잤나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어요.”
- 최근에 안태근과 국가를 상대로 강제추행과 직권남용에 따른 보복인사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네. 사실 피해를 입었으니 소송을 제기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죠. 그런데 많은 여성들이 ‘결국 돈을 노린 것이다’ ‘꽃뱀이다’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민사소송이나 위로금 요구를 꺼리거든요. 저는 민사소송을 하는 것도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 이후에 용기를 내서 미투를 하신 분들이 행복을 찾으셨다면, 어쩌면 저도 그냥 사표를 쓰고 제 삶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 이후에도 많은 피해자들이 역고소를 당하고 창녀라는 소리를 듣고 온갖 음해와 2차 가해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성폭력 피해자는 웃는 것도 먹는 것도
손가락질당할까봐 두려워해야 해
‘쟤는 다른 목적이 있어, 정치하려고 해, 원래 행실이 그래’
이 세 가지 가해자 프레임이 너무나 잘 먹혀
- 피해자들이 입는 2차 가해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성폭력 피해자는 웃는 것도, 먹는 것도 손가락질당할까봐 두려워해야 하죠. ‘순결을 잃은 더럽혀진 여자다’ ‘먼저 유혹했다’ ‘옷차림에 문제가 있었다’ ‘평소 행실이 나빴다’ 등의 기막힌 말을 들어요. 이걸 피하려면 입 다문 채 죽어가요. 죽을 수만은 없어 입을 열면 그때부턴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 ‘돈을 노린다’는 의심을 받고, 외모가 성욕을 유발할 만한지, 표정과 말투가 피해자다운 처절함을 갖췄는지 엄격한 심사를 당하죠. 그 이후엔 어둠 속에서 비참한 삶을 살기를 강요당해요. 대체 이게 정상인가요? 저는 성폭력은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자가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해 비열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자신이 받아야 할 비난과 고통을 피해자의 몫으로 돌리고 사회는 그 관행을 용인해주고 때로 동조해줬죠. 결국 피해자들만 죽음으로 내몬 사회…. 이제는 바뀌어야 하지 않나요?”
서 검사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불출마선언(?)’이라는 제목의 글에 “정치하려고 폭로했다는 분들께 말씀드린다. 저는 절대 출마할 생각이 없다”며 “제가 죽은 후에도 계속 ‘정치하려고 그랬다’고 하시겠지만…. 부디 저를 음해하려는 그 노력과 정성을 파렴치한 범죄자들을 처벌하고 부패한 조직을 개혁하는 데 쓰셨으면…”이라고 썼다.
- 서 검사님도 여러가지 음해에 시달렸죠. 최근에는 ‘정치 불출마선언’까지 했습니다.
“ ‘가해자 프레임’이라는 것이 놀랍게도 너무나 잘 먹혀요. 쟤는 다른 목적이 있어. 정치하려고 해. 원래 행실에 문제가 있었던 애야. 이 세 가지 프레임을 짜서 뿌리면 딱 먹혀요. 저 역시 임은정 검사가 몇년 전부터 검찰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을 때 주위에서 같은 프레임으로 비판하면 믿었거든요. 제가 이번 일을 직접 당해보니까 많은 것들이 음해였구나 알게 됐어요.”
지난 1월31일 경남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에 안태근 전 검사의 성추행과 직권남용 사실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를 응원하는 꽃바구니가 배달됐다. 연합뉴스
지난 1월31일 경남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에 안태근 전 검사의 성추행과 직권남용 사실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를 응원하는 꽃바구니가 배달됐다. 연합뉴스
- 언론이나 정치권에 서 검사를 음해하는 말을 퍼뜨리고 그런 내용의 글을 올린 간부 검사도 있었습니다.
“시민단체에서 고발까지 했는데 고발인 조사 개시도 없이 지난 인사 때 다들 좋은 자리로 가셨죠(웃음). 검찰에서 저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너를 괴롭힌 사람을 잘 대해주고 있다. 서지현을 다시 검사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우리 조직은 아무 문제가 없다. 서지현이 이상한 애다. 지금 검찰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제2의 서지현’이 나오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막기 위해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는 거죠.”
미투 전까지 검사로서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2009년과 2012년 법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고, 2010년에는 북부지검 최초 특수부 여검사로 청목회 사건을 수사했다. 우수수사 사례로 대검에서 12회 선정돼 상을 받았다. 부당인사라고 생각했던 통영지청 발령 후에도 성과를 올려 미투 직전인 2017년에만 6차례 상을 받았다. 그러나 서 검사의 미투 후, 검찰 내부에선 ‘원래 일을 못했다’ ‘좋은 자리에 가려고 과거 사건을 이용한다’는 식의 음해가 퍼졌다.
- 검찰이 안태근을 직권남용으로 기소한 수사결과 발표를 보면 ‘죄가 없는데 왜 기소를 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이 없었습니다.
“맞아요. 사실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인터뷰를 할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시끄러워졌는데 진실을 밝히겠지, 검찰이 조금이라도 개혁하는 계기로 삼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어요. 그런데 조사단 이름을 보고 그게 아니란 걸 알았죠. 같은 시기에 꾸려진 강원랜드 수사팀은 ‘강원랜드 수사단’이었어요. 근데 제 사건은 ‘여검사 성추행 사건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이었어요. 성추행은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를 할 수 없는 데다 피해자인 제가 자세히 진술했고, 가해자는 술을 마셔 기억은 안 나지만 사실이라면 미안하다고 한 상태죠. 그걸로 사실관계는 끝난 거예요. 중요한 건 안태근이 저의 성추행 문제제기를 이유로 법무부 검찰국장 직권을 남용해 인사불이익을 준 것인데, 성폭력 전담 여검사들로 조사단을 조직했어요. 저는 검찰에서 인사를 문제 삼은 최초의 사람이에요. 어렵고 중요한 수사죠. 조희진 단장이 관련자들이 다 기억이 안 난다고 해서 한계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건 검사가 할 말이 아니죠. 자백하는 사건만 수사하는 게 검사인가요? 최소한 저와 대질조사라도 해야 했는데 전혀 없었어요. 피해회복이라는 말을 넣은 것도 이상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서지현은 인사 문제에 불만이 있으니 좋은 데로 보내주면 된다고 생각한 거죠. 제가 원한 것은 진실규명이에요. 저는 단 한번도 ‘좋은 자리’에 보내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어요.”
- 조사단의 조사 내용은 법정에 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고요.
“법정에 나가서 처음으로 성추행과 직권남용에 대한 검사들의 증언을 봤어요. 그때의 배신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곤란하니까, 자기도 조직 안에서 살아야 하니까 대충 기억이 안 나고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내가 믿었던 검사들이 어떻게 저렇게 새빨간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며칠 동안 잠이 오질 않았어요. 며칠 동안 눈물이 나고 충격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당신들도 나약하고 불쌍한 인간이구나’라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그래도 만나면 정말 물어보고 싶어요. 당신들에게 대한민국 검사란 어떤 의미인지….”
- 동료 검사들과는 일절 연락을 하지 않습니까.
“제가 정말 미안하고 마음 아픈 부분인데요. 조사단에서 저랑 친했던 여검사들을 굉장히 많이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들은 직접적인 목격자도, 관련자도 아닌데요. 아무리 검사라도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건 고통스러운 일인데, 정말 중요한 간부급들은 아무도 소환되지 않고 저와 친하다는 이유로 후배검사들만 불려가 조사를 받았어요. 그 후배들은 제가 신경 쓸까봐 저에게 얘기해주지 않아서 나중에야 알게 됐어요. (서 검사는 이 부분에서 울음을 삼키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학교 때 외웠던 말인데요. ‘벗이 먼 데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어떤 경우에는 벗이 찾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직업을 걸어야 하기도 하고…. 혹시라도 제가 후배들, 선배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연락도 못하고 경조사도 찾아가지 못하고 그런 상황이 참….”
- 시간을 되돌려도 그때처럼 폭로를 할 건가요.
“네. 당연히요. 저는 사실 이 문제를 조직 내부에서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어요. 법무부 장관 면담까지 요청해 지정된 간부와 면담도 했어요. 그런데 그 간부는 몇달 동안이나 아무런 조사도 조치도 취하지 않았어요. 저는 결국 사표를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저 같은 고통을 겪는 후배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게시판에 글을 올렸던 거예요.”
- 왜 8년이 지나서야 문제를 제기했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많이 들었던 질문 중에 하나가, 왜 장례식장에서 성추행 당시 항의하지 않았느냐는 거예요. 제가 2004년 검사가 된 당시엔 동료 검사들로부터 단 하루도 성희롱을 당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그것을 일일이 문제 삼았다간 일상생활은 물론 검사로서의 삶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2004년에 임관 동기 100명 중 20명이 여성이었는데 검찰이 난리가 났어요. 전체 여검사 수가 100명이 넘었다고요. 선배들이 대놓고 그랬어요. 우리 회사도 이제 끝났다. 저는 홍성지청에서 근무한 최초의 여검사였는데, 검찰청 직원도, 민원인도, 범죄예방위원까지도 평생 처음 보는 여자 검사가 저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저 한 명이 여검사 전체를 대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선배들이 수없이 얘기했죠. ‘여검사들이 인정받으려면 술자리 같은 데서 일어나는, 친해지기 위한 친근감의 표현에 예민을 떨어선 안된다’고요. 그래서 일단 제 자신이 검사로서 일상생활을 하려면, 다른 여검사들을 욕먹게 하지 않기 위해선 참고 참고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장례식장에서도 다 남자들, 대부분 상사였고 장관도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그 행동에 바로 항의를 표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2010년 10월30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안태근에게 성추행을 당한 서 검사는 그해 12월 상관에게 강제추행 사실을 밝혔고 조직 안에서 절차에 따라 진상이 규명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내부 감찰은 유야무야됐고,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안태근에게 “추행 소문이 들리던데 술 먹고 사고치지 말라”고 구두경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서 검사는 안태근이 검찰인사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부임한 뒤인 2015년 8월 정기인사에서 천안지청, 부산동부지청, 제주지검, 울산지검을 거쳐 전주지검, 통영지청까지 불과 닷새 만에 임지가 6번 바뀌었다. 제대로 된 조직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매우 이례적인 인사였다.
- 성폭력 재판에서 사건 직후의 행동이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리기도 합니다.
“여성들은 어디서나 늘 착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교육받아요. 그러다보니 피해를 입고도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고 예의바르게 행동하려는 사람들이 많죠. 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고요. 여성들이 살아온 삶의 과정을 봐주지 않고 단지 예의를 갖춰 행동했다는 이유로 피해자답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죠. 사실은 피해자들이 누구보다 그 일을 잊고 싶어 해요. 하루빨리 일상을 회복시키고 싶어 해요.”
[커버스토리]지금 검찰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제2 서지현’이 나오는 것
■미투가 번지는 세상이 아니라 미투가 필요 없는세상을 바란다
- 피해자의 입장에서 검찰과 법원을 경험해보니 어땠습니까.
“성폭력 피해자는 조사를 받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통스럽죠. 검찰청에 나가서 진술하고 언론에 시달리고…. 수사기관에선 어떤 보호도 해주지 않고. 저도 그런 것을 다 겪었습니다. 가해자는 모든 수사기록을 열람등사할 수 있어요.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피해자 증언까지 수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다 보죠. 그런데 피해자는 자기가 한 진술만 복사할 수 있어요. 자기가 한 말은 다 아니까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가해자의 방어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인데요. 수사부터 재판까지 피해자를 전혀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됐어요.”
- 이전에도 문단 내 성폭력 고발 등 미투 운동이 있었지만, 서 검사의 폭로가 폭발력을 가지면서 한국 미투 운동의 상징이 됐습니다.
“수십년에 걸쳐 인생과 목숨을 걸고 싸워오신 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죄송스러워요. 그래도 제가 검사라서 제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시는 분들이 많다면… 제가 말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1월 미투 당시 성추행 피해자들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지금 어디선가 숨죽이고 있을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요. 저는 ‘겁내지 말고 나오세요’ 그렇게 말하고 싶진 않아요. 제가 바라는 세상은 미투가 번지는 세상이 아니라 미투가 필요 없는 세상이에요. 현직 검사가 왜 기존의 법과 제도로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언론에 얘기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기존의 법체계가 피해자를 구해주지 못하고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저는 ‘피해자들이 미투를 외치고 나오세요’가 아니라 ‘약자들, 여성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얼마 전 팟캐스트에 나갔는데 ‘내부고발자들도 즐겁게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저는 그런 거라면 안 하겠다고 했어요. 오히려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그걸 얘기하고 싶다고 했어요. 한 사람이 진실을, 정의로움을 얘기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법정서 검사들 거짓 증언 보고 배신감, 며칠 동안 잠 못 이뤄
만나면 묻고 싶다…‘당신들에게 대한민국 검사는 어떤 의미인지’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왕 시작된 운명 받아들여
잘 버틸 수 있게 힘과 지혜와 용기를 달라고 늘 기도
게시판에 글 쓸 땐 100% 사표를 쓸 생각이었는데…
몸이 나아지면 다시 돌아가 정의로운 검사로 계속 살고 싶어
- 여전히 검찰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건가요. (그는 인터뷰 내내 대체로 담담했으나, 동료들과 검찰의 본령에 대해 말할 때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했다.)
“그게 정상적인 사회 아닐까요. 검찰이 정의로워야 한다, 검찰이 바로 서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희망 아닌가요. 범죄자가 지위, 재산에 상관없이 제대로 수사받고 처벌받는 사회. 그것이 정상적인 사회의 기본 시스템이라고 생각해요.”
서지현 검사가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안태근 전 검사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지현 검사가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안태근 전 검사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관련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 검찰개혁은 사법농단 수사에 가려졌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몇몇 상징적인 분만 나가고 정권에 부역하고 진실을 은폐했던 많은 분들이 여전히 좋은 자리에 있죠. 임은정 검사와 최근에 만나서 이런 얘길 했어요. 우리가 생전에 검찰이 개혁되는 것을 보긴 어려울 것 같다고요. 그래도 이렇게 한 발자국씩 걸음을 내디디면… 한발씩 한발씩 나아가지 않겠나. 그런 발걸음에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이고 우리가 죽은 뒤에 언제라도 검찰개혁이 이뤄지면 보람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 사표를 쓰려던 생각은 바뀌었나요.
“네. 원래 게시판에 글을 쓸 때는 99%도 아니고 100% 사표를 쓸 생각이었는데 바뀌었어요. 제가 사표를 쓰는 것이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주저앉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이 희망과 용기를 잃게 되면 어떡하나 생각하게 됐어요. 제 몸이 나아지면 검찰로 돌아가고 싶어요. 제 꿈은 계속 정의로운 검사로 사는 거예요.”
- 미투를 결심할 때도 이렇게 삶이 달라질 거라고까진 예상 못했을 것 같아요.
“제가 원했던 삶은 조용하고 평온한 삶이었어요. 그냥 순간순간 많이 행복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사는 것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이죠(웃음). 의도하진 않았지만 제 삶의 방향이 이렇게 흘러갔고, 이왕 시작된 이 운명을… 최대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싶어요.”
- 그래도 한 개인이 짊어지기엔 너무 큰 무게가 아닌가요.
“저는 인생이 찰나라고 생각해요. 저의 고통도 언젠가 끝날 거예요. 영원히 살 것처럼 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제가 죽을 것을 알기 때문에. 제 진심을 알고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고 제가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평생을 말하지 않고 그저 현재의 검찰에 만족하며 살았다면 그게 더 부끄러웠을 것 같아요. 저는 늘 기도해요. 부디 제가 잘 버틸 수 있는 힘과 지혜와 용기를 주시라고. 이번 생에 포인트를 많이 쌓을 테니까 다음 생엔 절대로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고요.”
-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게 아니라,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나요.
“네.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 이 삶을 잘 마무리하고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인생은 너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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