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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2일 목요일

‘귀농·귀촌’ 최대의 난관은 돈이 아니라 ‘아내’였다

해마다 늘어나는 귀농·귀촌 인구, 그러나 대부분 1인 가구
임병도 | 2017-06-23 08:56:01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제주 귀촌 7년차인 아이엠피터의 집에서 바라 본 일출. 아파트나 빌딩의 담벼락만 보고 살았던 예전과 비교하면 풍경화 같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에 일어납니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다가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낮에는 소일거리 삼아 텃밭을 가꿉니다.
저녁이면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텃밭에서 딴 상추와 함께 먹습니다. 밤에는 비처럼 쏟아지는 별빛을 맞으며 잠이 듭니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한 모습입니다. 실제로 이런 낭만적인 삶을 꿈꾸며 귀농이나 귀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되면서 귀농이나 귀촌 인구가 많이 증가하기도 했습니다. 요새는 30대 젊은 세대가 불안정한 직장보다 귀농이 전망이 밝다며 내려오기도 합니다.
제주로 내려온 지 7년이 넘으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도 제주에서 살고 싶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귀농·귀촌은 결코 낭만이거나 인생의 후반기를 즐길 수 있는 도피처만 되기는 어렵습니다.

‘해마다 늘어나는 귀농·귀촌 인구, 그러나 대부분 1인 가구’
▲2015년 귀농어.귀촌인 통계, 귀농인은 농업경영체등록명부, 농지원부, 축산업등록명부에 등록한 사람을 뜻한다. ⓒ통계청

2015년 귀농 가구는 11,959가구로 전년의 10,758가구보다 1,201가구(11.2%)가 증가했습니다. 귀촌도 늘어 전년 대비 18,052가구 증가(6.0%)한 317,409가구로 조사됐습니다.
그런데 귀농·귀촌인의 연령대를 보면 확연하게 다릅니다. 귀농 가구주는 50대가 40.3%로 가장 많았으며, 50~60대가 64.7%를 차지합니다. 귀촌 가구주는 30대가 26.2%로 가장 많았으며, 40대 19.9%, 50대 18.8%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령대는 다르지만, 귀농,귀촌가구는 대부분 1인 가구입니다. 귀농가구를 보면 1인 귀농가구가 전체의 60%, 1인 귀촌가구는 전체 귀촌가구의 70.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귀농·귀촌 가구의 60~70%가 1인 가구이며 남성이 70%에 가깝다는 통계는 결국 남편 혼자서 귀농이나 귀촌을 많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종편 채널에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도 아니고, 혼자서 귀농.귀촌하는 것은 시골 생활에서 그리 썩 좋은 선택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시골 특성상 남성이나 여성이 혼자 내려와 살면,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난다.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사업에 실패했다거나 하는 등의 말은 애교 수준에 속한다. 동네 소문을 우습게 여겼다가는 시골생활이 고난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남편은 낭만, 아내는 뱀과 벌레에 화들짝 놀라는 귀농·귀촌’
▲7년째 제주에 사는 필자의 집 싱크대와 이불 속에서 나온 지네, 욕실 바닥의 도마뱀, 벽과 옷장 속의 거대한 바퀴벌레들. 그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은 자고 있는 이불에서 나온 사인펜 크기만한 지네다.
남편에게 귀농·귀촌은 낭만입니다. 그러나 아내들 대부분은 시골에서 사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있다면 교육 문제도 있고, 낙후된 문화, 편의시설 때문인 까닭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각종 벌레들이 들끓는 시골살이가 도시에서만 살았던 아내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 아파트보다 더 비싼 수억 원 대 고급 전원주택이나 별장에서 사는 사람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2010년 무렵 귀촌이나 귀농은 허름한 농가주택을 개조하거나 소규모 평수로 집을 짓는 일이 많았지만, 요새는 전원주택 단지 등으로 귀촌하는 인구도 늘어났다.
도시에서만 살았던 아이엠피터도 아침에 일어나 이불 밑에 있는 지네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욕실에서 발견한 도마뱀이나 손바닥만 한 나방을 보고 기겁하기도 했습니다.
귀농·귀촌을 결심한 남편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아내를 설득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시골살이의 현실을 아는 아내라면 처음부터 반대합니다. 설사 귀농·귀촌을 했더라도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나가자고 남편을 조르기도 합니다.
주위에 귀농·귀촌을 결심한 남편들이 아내가 찬성하지 않아 포기했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귀농·귀촌의 최대 난관은 ‘아내’인 셈입니다.

‘귀농·귀촌, 도시 농부로 시작하자’
직장을 다니거나 도시의 삶에만 익숙한 아내를 설득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특히 무작정 말로만 귀농·귀촌을 하자면 대부분 반대합니다.
귀농·귀촌을 위해 땅을 구입하기 보다는, 먼저 아내와 함께 도시농부로 살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편입니다.
▲주말농장, 옥상텃밭, 도심 속 자투리텃밭, 상자텃밭 등을 가꾸는 도시농업으로 서울의 도시텃밭 면적은 2011년 29ha에서 2016년(상반기 기준) 143ha로 약 5배 증가했다. ⓒ서울인포그래픽스

도시농부라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텃밭이나 주말농장을 가꾸는 일을 말합니다. 도시텃밭을 통해 자신의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거나 도시농업을 체험하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울의 도시텃밭 면적은 2011년 29ha에서 2016년 143ha로 약 5배 증가했습니다.
도시텃밭 활동 후 변화를 보면 77.1%가 ‘가족과 대화를 많이 한다’라는 응답이 많았습니다. ‘거주지역 이웃과 대화, 만남이 늘었다’라는 응답도 67.9%나 됐습니다.
‘가족과 대화를 많이 한다’는 것은 텃밭 가꾸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귀농·귀촌의 장점을 말할 수 있고, 간접 체험의 기회도 됩니다. 또한, 귀농·귀촌에서 가장 힘든 원주민과의 대화 방식 등도 배울 수 있습니다.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서는 도시농부 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귀농,귀촌 교육과 체험 등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시농업기술센터

도시텃밭은 자기 집 옥상이나 자투리 공간을 이용하기도 하고, 주말농장에서 분양받기도 합니다. 서울시에서도 용산가족공원이나 어린이대공원 등에서 도시텃밭을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하기도 합니다. (서울시 텃밭은 대부분 봄에 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농부나 도시농업 교육은 ‘서울시 농업기술센터’에서 무료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귀농창업 교육’,’티핑-팜귀농교육’,’농기계 안전사용 교육’ 등 다양한 강좌를 통해 사전에 귀농·귀촌의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귀농·귀촌이 무조건 낭만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도시 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얻기도 합니다. 특히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골에서의 삶은 새롭게 부부 관계를 만들기도 합니다.
무작정 귀농·귀촌에 겁을 내거나 시골로 이주하는 문제로 부부끼리 싸우면 내려가서도 힘듭니다. 다양한 귀농 체험과 교육을 통해 사전에 경험하면 훨씬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 생활이 재미없다 느끼지만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떠날 수 없다면, 시간을 내서 도시농부로 살아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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