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의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 변경을 계기로 당시 경찰 책임자 등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20개월 넘도록 이 사건 수사를 미적거리고 있는 검찰에도 따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백 농민 사망 사건뿐 아니라, 지난 정부에서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미루고 또 미뤘던 정치적 사건들이 이제 검찰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친박근혜계’ 핵심 인사들이 특정 후보를 겁박해 공천에 개입한 사건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사건은 지난해 1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친박계 좌장 서청원 의원의 공천을 위해 수도권 김아무개 예비후보에게 지역구 양보를 종용하며 “까불면 안 된다니까. 형에 대해서 내가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다”며 협박성 발언을 한 것이 핵심이다. 이런 내용의 녹취파일이 총선 뒤인 7월에 공개돼 파문이 일었고, 또 다른 친박 핵심인 최경환 의원과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공개됐다. 당시 참여연대와 인천평화복지연대 등은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이들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이성규)는 수사 착수 넉 달 만에 “이들이 (김 예비후보와) 사적으로 친해 ‘사이좋게 지내라’고 조언한 것으로 보인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녹취 내용이 피의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아니라고 봤다. 검찰은 지난달 23일 참여연대 등이 낸 항고 사건을 기각했고, 참여연대는 22일 이 사건을 대검에 재항고했다.
검찰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고소·고발만 접수해놓고 아예 처리를 미루거나 방치한 사례도 있다.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2014년 <한국방송>(KBS)의 세월호 참사 보도를 통제했다는 의혹으로 고발된 사건은 지난해 5월 이후 1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등이 이 전 수석을 고발했지만, 검찰 공공형사수사부(부장 박재휘)는 아직 피고발인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대 자금 지원을 강요했다는 혐의로 시민단체가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안종범 경제수석 등을 고발한 사건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지난해 6월 이후 1년째 붙들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해킹프로그램을 이용해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의혹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고발된 사건과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집회 당시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교통정보수집용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현장을 감시하며 경찰 대응을 지시한 사건도 고발 이후 2년째 답보 상태다.
이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대개 사안이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 정치적 고려로 지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검찰 간부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득달같이 처리하면 국민이 보기엔 ‘정치 검찰’을 자인하는 것이어서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권력과 교감했던 일부 간부들 때문에 후배들이 곤란한 상황에 내몰리는 악순환이 사라져야 한다”고 씁쓸해했다. 검찰로서는 총장을 비롯해 대검 공안부장, 서울중앙지검 1차장 등이 공석이어서, 예민한 사건 처리에 당장 나서기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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