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숫자 사이에는 무려 5천 배나 되는 큰 차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 숫자는 우리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 하나씩을 대표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이 두 숫자는 정권의 광기(狂氣)가 사회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해 준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듯, 첫 번째 숫자는 우리 산천의 강들을 모두 망가뜨리기 위해 작심하고 쏟아부은 국민의 혈세를 뜻합니다.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 아까운 돈을 국토를 파괴하는 데 낭비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4대 종단을 위시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발 우리 강들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습니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미친 짓을 꿈조차 꾸지 못했을 텐데요.
두 번째 숫자는 박근혜가 저지른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또 다른 미친 짓에 쏟아부은 국민의 혈세를 뜻합니다. 국사를 국정교과서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습니까? 국사를 연구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은 거의 모두 반대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고집스레 추진한 국정교과서는 결국 휴지통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MB와 박근혜 두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식견을 갖고 있는지 몰라도, 어떤 일을 추진하려면 무엇보다 우선 겸손한 자세로 국민의 의견을 경청했어야 합니다. 거의 모든 국민이 “아니다.”라고 말하면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사회의 대통령이 지켜야 할 자세입니다.
우리는 불행히도 그런 기본 자질을 갖추지 못한 대통령을 두 번 연속으로 갖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 4대강사업을 둘러싼 혼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갈등과 반목을 빚고 있습니다.국사 교과서 문제도 지금은 분위기에 눌려 잠시 소강상태에 있지만 언제 다시 논란이 재연될지 모릅니다.
요즈음 극심한 가뭄을 겪으면서 4대강사업이 얼마나 미친 짓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도 언론 보도를 통해 아시고 계시겠지만, 4대강 댐으로 엄청난 물을 가둬 두었지만 정작 가뭄 해소에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은 새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가뭄 피해가 심각한 곳은 거의 모두 댐에서 먼 데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가뭄 피해가 심한 지역은 과거에도 상습적으로 가뭄 피해를 입었던 곳입니다. 새삼스레 그 지역이 가뭄 피해가 심각한 지역으로 등장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약 MB정부가 가뭄 피해를 막으려는 진정성을 갖고 있었다면 그 지역에 적합한 맞춤 가뭄대책을 중점적으로 실시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 4대강사업은 가뭄 피해를 예방하려는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된 사업이 결코 아닙니다. 한반도대운하사업이라는 희대의 미친 짓에 제동이 걸리자 그 대안으로 졸속 입안된 사업이 바로 4대강사업임은 삼척동자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갑문을 설치해 운하를 만들려는 속셈으로 강바닥을 준설하고는, 그것이 가뭄, 홍수 대책이라고 사후적으로 명분을 갖다 붙인 데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만 해도 4대강사업은 희대의 사기극 반열에 들어갈 정도입니다. 더욱 웃기는 코미디는 댐을 막아 물을 가두면 수질이 정화된다는 거짓말입니다. 이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엄청난 사기극이었는데, 자칭 그 방면의 전문가라는 자들까지 이 사기극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시정잡배라도 그런 거짓말은 감히 할 수 없었을 텐데요.
만약 진정성을 갖고 체계적인 맞춤형 가뭄대책을 추진했다면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훨씬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엉뚱한 4대강사업으로 인해 막대한 예산은 물론 9년이라는 아까운 시간까지 낭비한 셈입니다. 댐으로 물만 가둬 두면 그것이 가뭄대책이 된다고 생각한 그 아둔한 자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가 바로 지금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가뭄 피해입니다.
박근혜의 국정교과서사업도 아둔하기는 4대강사업에 조금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그때 주장했듯, 정권이 바뀌면 뒤집어질 사업은 하지 않는 것이 기본 상식입니다. 한나라당이 백 년, 천 년 집권한다면 모를까, 정권 교체가 되면 국정교과서는 바로 휴지쪽이 되어 버리는 신세입니다.
얼마나 자신만의 세계에 굳게 갇혀 있었으면 아이큐가 100만 되어도 알 수 있는 이 분명한 사실을 몰랐을까요? 주변에서 보좌한 사람들 중에는 자칭 수재들도 많은데, 그 사람들도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뻔히 알면서도 자리에 대한 탐욕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지당하옵니다."를 연발했겠지요.
22조와 44억이란 두 숫자는 이명박근혜 정권이 우리 사회에 저지른 죄악을 상징하는 수치스런 숫자로 두고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철저한 단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땅 위에서 그런 불행한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준구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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