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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3일 목요일

댐 철거한 미국... 손해 본 건 하나도 없다


[4대강 독립군 미국에 가다] 올림픽 국립공원 엘와강의 교훈
17.04.14 05:23 | 글:이철재쪽지보내기|편집:손지은쪽지보내기
▲ 엘와강댐 ⓒ 올림픽 국립공원

"댐은 장벽(Barrier)이었다. 모든 걸 차단했다. 연어가 강에 오르는 것을 막았고, 연어가 다른 생물들과 만나는 것을 가로 막았다. 또 연어가 우리 부족과 만나는 것을 막았고, 우리 부족의 문화적인 전통 가치를 후대들이 접하는 것을 막았다."  

미국 서북부 워싱턴 주 포트앤잴리스의 원주민 클랄람 부족 프란시스 찰스(France  Charles)부족장은 단호했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올림픽국립공원 내 엘와댐(Elwha Dam)의 흔적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다. 하지만 댐을 허물면서 장벽에 가로막힌 100년 동안의 고통도 함께 허물어 내린 듯했다.   

이날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 취재팀은 엘와강 일대를 조사했다. 비가 오락가락했다. 가는 비가 내리다가 금세 굵어졌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비가 내렸다. 취재팀이 클람람 부족과 함께 찾은 엘와강은 양쪽 경사진 둔치를 사이로 쪽빛이 감도는 물줄기였다. 급경사인 여울에서도 쪽빛 포말이 일면서 시원한 물소리가 쏟아졌다. 

자연스러운 계곡형 강의 모습이지만, 2011년까지만 해도 이런 풍경은 볼 수 없었다. 이곳의 거센 물살을 33m 높이의 엘와댐이 가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댐은 1913년 건설됐다. 1925년에는 엘와댐 상류에 64m 높이의 글라인스 캐니언댐도 들어섰다. 두 댐 모두 하류에 위치한 제지공장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목적이었다. 

어도조차 만들지 않은 댐

▲ 엘와댐 ⓒ 올림픽 국립공원

지난 100여 년 동안 엘와댐과 글라이언스 캐니언댐은 강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원주민과 생물들에게 재앙이었다. 올림픽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만난 브라이언 윈터 감독관은 "댐을 건설할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두 댐은 법률에 규정된 형식적인 어도조차 만들지 않았다. 당시에도 클랄람 부족은 댐 건설을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미국 내무부 소속 인디언국은 이런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아니, 무시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당장 회귀성 어종인 연어들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는 원주민 부족이 연어 50%를 잡을 수 있도록 연방정부와 맺은 조약(Treaty)을 어긴 것이다.

엘와강이 있는 올림픽 반도는 태평양 연어 5종의 주요 산란지이자 서식지였다. 100파운드(약 45kg)에 달하는 시누크 연어가 강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곳이었다. 댐이 들어서자 연어 산란지 및 서식지 90%가 막혔다. 연어들이 급감했다. 핑크 연어는 댐 건설 전 연간 28만 마리였지만, 댐 건설 뒤에는 200~500마리 수준에 머물렀다. 다른 연어도 마찬가지였다.

엘와강은 원주민 부족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프란시스 찰스 부족장은 "강 줄기 따라 우리 선조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며 "방사성탄소 측정 결과 주거지 터는 800년, 조상들의 무덤은 2천 년이 넘게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연어는 주요 먹거리이자 생계수단이었다. 또한 전통 문화 그 자체였으며, 풍요의 상징이었다. 

엘와강 원주민과 낙동강 어민들, 동병상련

▲ 엘와강을 트레킹하고 있는 4대강 독립군과 클랄람 부족 ⓒ 정대희

연어의 감소는 원주민들의 삶과 문화까지도 해체시켰다. 엘와강 생태 시스템이 원주민을 부양할 수 없었다. 수천년간 이어져 온 공동체가 붕괴됐다. 원주민들은 선사시대 이래 삶의 터전이었던 엘와강을 버리고 타지로 가거나 벌목꾼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 4대강 사업이 떠올랐다. 그들의 과거는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였다. 댐을 허물기 전 엘와강 원주민들의 피폐한 삶의 전철을 우리도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해 4대강 사업 논문 등을 준비하면서 낙동강 유역 어민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4대강 사업 전 낙동강 어민들은 고기잡이로 풍요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 않았다. 윗대부터 내려온 경험적 지식은 장어 등 고가의 물고기가 어디에 서식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게 했다. 산란철에는 물고기들의 사랑싸움에 시끄러워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가을이면 튀어 오르는 숭어 떼 때문에 헬멧을 써야 했다. 겨울에는 먹구리 장비로 들어가 맨손으로 고기를 잡았다. 

4대강 사업으로 8개의 '보'라 불리는 댐이 들어서자 이런 일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물에는 고기 대신 썩은 펄과 녹조만 잔뜩 올라왔다. 생계를 위해 젊은 어부들은 도시의 일용직으로 떠나야 했고, '수위 자리도 쓰지 않는' 나이든 어부만 습관적으로 배를 몰고 강으로 나가지만, 돌아오는 건 그저 깊은 한숨뿐이었다. 이렇듯 자연 개조의 피해는 어디서나 힘없는 약자들 몫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낙동강은 여전히 8개의 댐으로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반면, 엘와강은 2011년부터 2년 6개월 동안 두 개의 댐이 철거돼 자연스럽게 회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 환경보호청(EPA) 자료에 따르면, 엘외댐 등의 철거 비용은 2690만 달러(약 305억), 강 복원에는 수력발전소 매입 비용, 어류 산란장 개설 등 총 3억2470만 달러(약 3676억)가 들어간다고 한다. 

엘와강에 댐이 철거되자 연어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클랄람 부족 주민이자 어류 연구 담당관 마이크 맥헨리는 "현재는 수 천 마리에 불과하지만, 30년 후면 20만 마리가 돌아올 것"이라 말했다. 엘와강 상류까지 연어가 올라가 산란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장어 등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생물종도 돌아오고 있다. 

엘와강에서 댐이 철거된 이유는 연어 복원이 가지고 있는 생태계 서비스 이익과 강 복원이 가지고 있는 경제성 때문이었다. 2011년 한국을 방문해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는 국제적 하천 전문가인 독일 칼스루헤 대학 한스 베른하르트 교수는 유럽과 북미 지역의 댐 철거에 대해 "연어는 단지 한 종이 아니라 자연성 회복이 가져올 경제적 이익이 크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엘와댐은 1978년 댐 안전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 철거 논의의 단초였다. 앞서 1963년에는 멸종위기종법이 통과돼 일부 연어가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됐다. 이를 바탕으로 원주민들과 시민단체의 철거 운동이 거세졌다. EPA에 따르면 1990년대에 거의 대부분의 환경 검토 보고서는 댐 철거만이 연어 등 회귀 어류와 강 복원 방법으로 제시됐다. 

이를 바탕으로 1992년 엘와강 생태계와 어장 복원을 위한 법(아래 엘와강 복원법)이 통과됐다. 이어 4가지 복원 시나리오가 담긴 보고서가 미 의회에 제출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1995년 복원 관련 최종 환경영향평가는 두 댐을 철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1996년 평가에서는 댐에 쌓인 퇴적토가 하류의 자연적인 침식에 도움이 될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 

댐이 철거되자 하구가 형성돼

▲ 엘와강 삼각주 ⓒ 클랄람 부족

댐 철거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었다. 댐에 가깝게 살수록 반대 의견이 높았다는 것이 브라이언 감독관의 말이다. 댐이 철거 되면 필요한 전력도 못 얻고, 경제가 낙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댐에서 생산된 전력은 지역의 수요와 발전용량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브라이언 감독관은 "댐 철거 전후 경제성을 자세히 비교하는 자료는 없지만, 지금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 말했다. "필요한 전력은 다른 지역에서 공급되고 있으면서도 강의 흐름이 자연적으로 복원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에 따라 반대하던 주민들도 우려했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도하고 있다는 귀띔이다. 

댐이 철거되고 강이 복원되자 엘와강이 바다로 만나는 지점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댐으로 막혀 있던 퇴적토가 내려오면서 '산 후안  데 푸카(Strait of Juan de Fuca)' 해협으로 이어진 자연스러운 유사 흐름이 복원됐다. 하구에 350만㎥의 퇴적토가 쌓이면서 삼각주가 형성됐다. 

취재팀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는 드넓은 퇴적토에 도요새, 꼬마물떼새, 갈매기 등 다양한 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형성된 삼각주로 자연스럽게 해변이 형성됐고, 조개류 등이 살 수 있게 됐다. 퇴적토가 밀려 내려오면서 일시적으로 탁도 문제가 대두됐지만 2015년 이후부터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는 것이 마이크 담당관의 말이다. 

"댐은 무조건 문제를 몰고 온다"


댐 퇴적토를 인공적으로 준설하려고 했지만, 비용 문제로 이를 포기하고 자연력에 의해 천천히 흘려보내는 계획을 했다. 엘와강 복원의 특징은 침식에 의한 하도 변화를 꾸준히 관찰하고 있다. 댐 철거 이후 만년설에서 내려오는 유량과 유속의 변화에 따라 침식 현상이 활발해졌다. 

엘와댐 상류 8km 지점에서는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강 좌안은 미국 측백나무, 우안은 오리나무 군락지가 형성돼 있는데, 침식에 의해서 나무들이 하도로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이크 담당관은 "침식 과정에서 쓰러진 나무들은 다른 생물들의 먹이 및 서식처 기능을 하는 등 생태적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강 복원은 인간의 과도한 간섭보다 강의 흐름에 맡겨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이다. 

브라이언 감독관은 한국의 4대강 사업에 대해 "자세한 맥락을 몰라 뭐라 하기 어렵다"면서도 "댐은 무조건 문제를 몰고 온다"고 지적했다. 댐을 지을 때 악영향을 경감시킬 수 있는 사전조치가 필요한데, 그것이 잘 안 돼 미국도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내 댐 철거 정책에 대해 "지역마다 다르다. 댐을 필요로 하는 지역도 있다"면서도 "안전과 경제성 등 때문에 최근 대형댐을 짓지 않는 추세는 맞다"고 밝혔다.  

미국의 댐 정책은 탐험, 개발, 복원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서부 개척시대 강은 탐험과 모험의 대상이었다. 이를 통해 금광 등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어 정착민들이 생기자 무수히 많은 댐이 들어서는 개발의 시대가 이어졌다. 1800년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부터 1990년대까지 매일 하루에 하나씩의 댐이 생길정도였다. 

이후 1990년대부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 내무부 연방개척국장 댄 비어드가 "댐의 시대는 갔다(The era of dams is over)"고 말했다. 더 이상 댐을 지을 공간이 없어진 측면도 있지만, 강의 고유한 유황(계절에 따른 유량과 유속 변화)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인식이, 다시 말해 강을 복원하는 시대가 왔다. 유럽도 비슷한 경향성을 보였다. 

사실 한국도 같은 흐름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 한국은 홍수를 강의 일부로 인정하는, 선진국형 물 정책을 계획했다. 그러나 이명박식 4대강 사업은 국제적 하천 정책의 흐름과 정반대로 진행됐다. 4대강 사업을 '강 살리기'라는 것을 두고 국제적 하천 전문가들이 코웃음 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브라이언 감독관은 "엘와강 복원에 관계된 모든 이들의 공통된 생각은 '강은 반드시 와일드 해야 한다' 것"이라 말했다. 때론 거친 역동성과 생명을 품는 안정성이 존재하는 강이 더 많은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이 결국에 사람에게, 자연 그 자체에게도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강 복원의 경제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복원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엘와강 사례처럼 경제적이면서도 강 복원에 따른 생태계 서비스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4대강 사업과 같은 잘못된 정책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면 이를 바로 잡는 복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강을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것이 곧 돈을 버는 일이다. 그것도 건강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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