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변화론
‘이 세상을 향한 그대의 소망대로 그대 자신이 먼저 그렇게 변하라‘
-간디-
이 세상 모든 만물은 변화한다.
인간은 변화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교육과 환경에 의하여 조금씩 변화 한다.
인간에게 영원한 것도 완전한 것도 없으며
인간의
사랑도, 가치관도, 인간성도, 인간관계도, 전통도, 인생관도,
진리도, 믿음도, 열정도, 사랑도, 종교도, 교리도, 신관도,
불완전하며 계속 변화한다.
변화는
우주의 법칙이며
자연의 질서이다.
변화의 동력은 지식의 발달이며 과학의 발전이며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
세상에 불변하는 궁극적인 진리는 신 하나뿐이다.
모든 종교와 교육은 긍정적인 인간변화를 추구한다.
인간이 변화를 열망하는 이유는 변화는 인간의 성숙과 아름다운 인간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름다운 인간성을 위한 변화가 가장 긍정적인 변화이다.
완전한 사람은 없기에 긍정적인 변화는 누구에게도 해당되며 인간의 변화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누구나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인간의 변화는
우리에게 낡은 사고, 그릇된 전통을 버리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요구하며,
우리의 마음의 태도와 사고(생각)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는 것이며,
나쁜 습관은 버리고 좋은 습관을 기르고,
우리의 그릇된 이기적인 신념, 이념, 인생관, 가치관 등 삶의 모습이 바뀌는 것을 말하며,
궁극적으로 우리를 성숙하게 하며 행복하게 한다.
인간은 성숙성 없이 결코 행복 할수 없다.
우리의 존재적인 가치 즉 우리가 경험하고 배우고 깨달은 것 이 인간을 변화 하게 한다.
우리는 자신을 변화하게 할 수 있지만 타인을 변화하게 할수 없다.
내가 변화하는 것이 타인을 변화하게 하는 길이다.
우리 자신들의 변화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고 인정하면서도 특히 타인의 변화에 대해서
우리는 더욱 조급하다.
우리의 변화는 타인에게 강요, 폭력, 멸시 등이 아니며
사랑, 배려, 소통, 이해, 존중의 표현 이다.
이상적인 인간의 변화는 초월과 성숙으로 향한 변화여야 하지만
우리의 변화는 통상 본능적인 생존이나 자아만족으로 향하게 된다.
인간이 성숙을 향한 변화나 긍정적인 변화를 피하는 이유는
이런 변화는 아픔을 요구하기 때문이며,
인간은 항상 익숙한 것에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의 변화는 삶의 틀과 우리의 근본의식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인간에게 적은 변화, 큰 변화의 2 가지 변화가 있다.
적은 변화는
우리의 옷, 화장 등 외모의 변화 등이며 적은변화는 자아를 만족하기 때문에 원한다.
큰 변화는
이사, 이민, 이직 등 이며
큰 변화는 아픔과 고통이 있기에 저항하는 상반된 심리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변화를 받기 거부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다.
개인의 변화의 단계는
모방의 삶->자각의 삶->자신발견->깨달음->마음의 변화->행동의 변화 이며,
개인의 변화의 과정은
인간의 선택과 결정->가치관 변화->인생관, 세계관 변화->행동의 변화이다.
우리가 갈망하는 변화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무자각 상태에 빠져있으며,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화의 선행조건은
우리가 예민한 이성의 눈을 뜨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발견하고 그릇됨을 인정하는 것,
즉 깨달음 이다.
인간의 깨달음은
다양한 인간관계의 어려움,
다가오는 아픔과 고통, 고민 등 평탄하지 않은 삶의 과정으로 가능하다.
우리는 깨닫고 변화할 때 비로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았던 것 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깨달음이 없으면 변화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20년 30년 전의 인생관, 신앙관을 그대로 가지게 된다.
인간의 변화는
우리의 사고로 시작하여 생각과 마음의 태도를 바꿈으로 현실화되며,
변화를 향한 열망과 확신과 믿음이 있을 때 그리고 누군가의 변화의 눈빛을 보면
우리의 변화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어느 개인도 단체도 변화를 거부하면 정체 되거나 소멸된다.
개인도 민족도 국가도 그리고 종교단체도 예외는 아니다.
긍정적인 변화의 방해자는 우리가 확신하는 이념, 인생관, 우리의 불가침적인 종교적인 신념,
우리는 옳고 완전하다고 확신하는 교만심, 고정관념, 편견, 그릇된 전통 등이다.
우리는 자신이 성인이 됬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타인의 조언을 듣기 꺼려하며, 변화하기 어렵다.
우리에게 변화가 어려운 이유는
우리는
듣고 싶은 것 만 들으며
믿고 싶은 것 만 믿으며
깨닫고 싶은 것 만 깨닫는 <탈 진리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우리에게
아픔과
깨달음과
분노를 요구한다.
개인의 긍정적인 변화의 3 축은
아름다운 인간성, 양심의 회복, 가치관 변화 이다.
사회의 변화는 정의 구현으로 향하고
개인의 변화는 우리의 영혼이 추구하는 것(진리, 행복, 사랑, 자유)으로 향한다.
교회는 변화를 반대 한다.
교회의 변화를 위해서는 마틴 루터 같은 생명을 건 개혁자가 필요하다. 오늘날에도 교회의 변화에는 직책과 아집과 생명을 내건 용단이 요구 된다. 교회는 신앙인들에게 생명을 걸고 전통과 DOGMA를 지키는 것이 신앙인들의 미덕이라고 가르쳐 왔다. 교회는 본의는 아니지만 변화 하지 않는 것이 좋은 믿음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래서 신앙인들의 사고는 보수적이며 그들의 변화는 거의 불가능 하다.
신앙인과 정치인들의 변화는 보다나은 세상과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선행 조건이다.
문제는 신앙인과 정치인들은 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변화의 도구를 우리의 기분과 감정에 두면 우리는 변화에 실패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분과 감정은 쉽게 변화하며 오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변화의 도구를 우리의 의식, 인식구조인 신념이나 이념에 그리고 확고한 인생관에 두어야 한다.
인간의 변화는
처음에 우리에게 거부감 그리고 부담을 주지만 마침내 성취감을 주며,
자성하며 자책하는 모습의 산물이며, 성숙을 선행하며, 기득권을 내놓는 것이며,
아픔과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며, 자신을 진실 되게 발견하는 사람의 상급이며 보상이다.
변화는 거저 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변화를 위하여 아픔을 지불 하여야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에 저항한다. 변화에는 아픔과 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의 기득권층은 사회적인, 정치적인 변화를 두려워한다. 이유는 변화가 현재의 안정된 사회적인 지위와 생업에 위협을 가져 온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은
긍정적인 변화를 위하여 각자의 충격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되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모르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으며,
가치관의 변화를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긍정적인 변화의 선행조건은 열린 마음이며 용기이며 겸손한 마음이다.
긍정적으로 변화한 사람은
새로운 가치관으로 살며-이웃과 더불어 살며,
자신의 존재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살며-행복하게 살며,
자신을 멀리서 보는 사람이며-겸손하게 살며,
자신의 능력을 초월한 삶을 살며-초월자로, 능력자로 살며,
깨달은자의 삶을 살며-삶을 지혜롭게 살며,
이상과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우리의 삶은
변화의 긴 과정이며
깨달음의 긴 여정이며
성숙의 긴 여행이며
가치관이 변화하여 사랑과 공의의 가치관에 근접하는 긴 과정이다.
궁극적인 변화는
인간의 평생의 과업이며,
우리의 의식 및 무의식의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사회의 변화는
용기 있는 지도자들에 의하여 변화되며,
깨달은 사람들에 의해서 변화되며,
항상 민중들의 분노로 시작된다.
인간은
그 동안 변화 하였기에 살아 남았고,
자신의 환경은 변화 할수 없지만 자신의 삶의 태도와 자세는 변화 할수 있으며,
자신이 변화하면 환경이 변화된다.
인간의 최대의 변화는 세대교체이다.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드릴 평온함을 주시고
우리가 바꿔야 할 것들은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바꿀수 없는 것과 바꿔야 할 것들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시 옵소서.‘
-라인홀드 니버-
‘우리세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바꿈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바꿀수 있다는 점이다.‘
-William 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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