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안방 세월호’인 이유
어떤 부서도 피해자 편에 서지 않고 무능과 무책임으로 사고 덮기 급급
정부 관계자 처벌도 전무…피해배상은 피해시민의 힘겨운 노력 덕분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군이1월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피해자 가족 김아련씨의 손을 잡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8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1심 선고공판에서 신현우 옥시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이미 천 명이 넘는 사망자를 포함해서 수천 명에게 건강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고, 그 피해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어처구니없는 사고 원인, 피해의 심각성, 사고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기업과 정부 책임자들의 부도덕성, 무능, 무책임 등 여러 면에서 세월호 사고와 비슷하여 이를 “안방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고”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사실 이런 공통점 때문에 세월호 희생자 유족과 옥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이 서로 강하게 공감하며 지지와 응원 메시지를 교환하고 있다.
»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16일 국회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 규명과 피해구제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주형환 산업통상부 장관, 이석준 국무조정실장, 윤성규 환경부 장관을 상대로 가습기 세정제를 들어보이며 질의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5월 31일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불매운동으로 수거한 옥시레킷벤키(옥시) 제품을 모아놓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83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해 기업인 옥시 불매운동을 결산하고 책임자 처벌과 옥시 관련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런 과정에서 드러난 기업들의 태도는 사과나 배상조차도 가능한 한 미룰 뿐만 아니라 책임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자 하여 사고의 책임을 통감하고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하려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책임인정과 피해보상 과정에서 기업들은 공통으로 거짓과 꼼수, 무책임만을 보여주었다.
» 가습기살균제 손해배상 소송 승소 가습기살균제 세퓨 피해자모임 대표 김대원씨가 지난해 11월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사실상 승소한 뒤 기자들에게 소감을 말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지난해 9월 2일 국회 본청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부분 불참한 가운데, 제4차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6.9.2
» 정부가 국민을 지켜주지 않으니 피해시민은 스스로 구하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제45회 세계 환경의 날'인 지난해 6월 5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2층 바스락홀에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266명을 추모하는 촛불 형상의 엘이디(LED) 266개가 켜져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016.6.5
더욱이 정부 부처의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으니 피해자는 물론이고 이번 참사의 책임을 모두 떠맡아 처벌을 받게 된 기업조차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부족하나마 지금까지 얻어낸 피해배상은 피해자를 포함한 시민들의 힘겨운 노력 덕분이다. 기업들을 고소하고, 외국까지 가서 항의 방문을 해야 했고, 불매운동을 벌여야 했으며 고소까지 해가며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정부를 움직이도록 해야 했다.
국민 보호는 국가가 담당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이 일을 매번 내팽개쳐 피해자가 자구책에 나서서 싸워야 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세월호와 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그 책임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이동수/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정부 관계자 처벌도 전무…피해배상은 피해시민의 힘겨운 노력 덕분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군이1월 6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에서 피해자 가족 김아련씨의 손을 잡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8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1심 선고공판에서 신현우 옥시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이미 천 명이 넘는 사망자를 포함해서 수천 명에게 건강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됐고, 그 피해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어처구니없는 사고 원인, 피해의 심각성, 사고 수습과정에서 드러난 기업과 정부 책임자들의 부도덕성, 무능, 무책임 등 여러 면에서 세월호 사고와 비슷하여 이를 “안방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고”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사실 이런 공통점 때문에 세월호 희생자 유족과 옥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이 서로 강하게 공감하며 지지와 응원 메시지를 교환하고 있다.
1994년에 ㈜유공이 ‘가습기 메이트’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이후 여러 회사가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것이 이 참사의 시작으로서, 그로 인한 건강피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2011년이다. 그해 4월말 기침과 호흡곤란 등 급성 호흡부전을 호소하는 임산부 환자 28명이 연달아 입원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의료진이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고 확인된 이후 접수된 피해사례가 급증하였는데,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2016년 10월 현재 사망자가 1012명, 생존 환자는 3881명이다. 그러나 이조차 피해자의 극히 일부일지도 모른다(1995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 폐렴 사망자 7만 명 중 29%인 2만 명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추가사망자로 추산된다).
이렇게 피해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이 드러나자 5년이나 지난 2016년에 와서야 비로소 이 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유독한 가습기 살균제가 규제 없이 판매되기 시작한 때부터 따지면 20년도 더 지났다.
»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16일 국회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 규명과 피해구제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주형환 산업통상부 장관, 이석준 국무조정실장, 윤성규 환경부 장관을 상대로 가습기 세정제를 들어보이며 질의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직접 책임자는 이를 제조·판매한 기업이다. 그 대표적 기업으로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버터플라이이펙트, 에스케이케미칼 등을 꼽을 수 있다.
엄청난 참사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으로 지목된 옥시 등 기업들은 우선 “인체에 무해”하다거나 “어린이에게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유럽연합(EU) 승인을 받은 최고급 친환경 살균제’라는 광고를 했다. 이 광고는 과학적 근거 없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해 꾸며낸 거짓으로, 결국 수많은 임산부와 어린아이들의 생명과 치명적 육체적 손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나중에 이 광고가 문제가 되니 그 당시에는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을 몰랐다는 거짓 주장이 또 하나 보태졌다. 옥시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나타내주는 독성자료와 회사가 미국과 인도의 연구소에 의뢰해서 얻은 독성실험 보고서들을 은폐하거나 폐기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또한 나중에 검찰수사와 재판에서 책임을 면하기 위해 서울대와 호서대의 독성연구실에 실험을 의뢰했는데, 이때는 기업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방식으로 실험이 진행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실험결과 중 옥시에 불리한 내용은 빼고 자료를 제출한 것이 드러났다. 옥시는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라면 조작과 은폐까지 서슴지 않았다.
2011년에 이미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가 확인되었음에도 피해보상은커녕 기업들은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수년을 버텼다. 2016년 사망을 포함한 피해자의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검찰 조사에 이은 재판 혹은 국회의 국정조사를 앞에 두고서야 옥시 등 일부 기업이 비로소 겨우 사과를 했지만 이미 너무 늦고 그나마 미흡했다.
»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5월 31일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불매운동으로 수거한 옥시레킷벤키(옥시) 제품을 모아놓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83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해 기업인 옥시 불매운동을 결산하고 책임자 처벌과 옥시 관련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더구나 옥시의 경우 영국 본사의 최고경영자는 한국에 와서 사과하길 거부했으며, 전 사장과 본사 책임자들이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옥시 본사는 국정조사 특위와 합의했던 영국 현장조사에 대해 갑자기 비공개를 요구해 무산시켰다고 한다. 국정조사에서도 옥시 한국법인은 “죄송하다”거나 주요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책임을 피했다.
또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최종 배상 안을 발표한 것도 국정조사를 바로 앞둔 때였으며 내용도 피해자·가족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해진 것으로 피해자 간의 분열과 국정조사 물타기를 노린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과정에서 드러난 기업들의 태도는 사과나 배상조차도 가능한 한 미룰 뿐만 아니라 책임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자 하여 사고의 책임을 통감하고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하려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책임인정과 피해보상 과정에서 기업들은 공통으로 거짓과 꼼수, 무책임만을 보여주었다.
정부는 무엇을 했나?
기업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경우 스스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 문제를 해결해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해 왔던 것이 사실이고, 이제 사람들은 기업에 더는 그런 기대를 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기업과 개인의 분쟁이 발생하면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한데, 가습기 살균제 참사 문제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서글프게도 이렇게 정부가 최소한의 구실마저 외면한 일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시민은 세월호 참사의 발생과 수습과정에서 정부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 가습기살균제 손해배상 소송 승소 가습기살균제 세퓨 피해자모임 대표 김대원씨가 지난해 11월 15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사실상 승소한 뒤 기자들에게 소감을 말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정부 부처는 환경부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며 그 외에도 공정거래위원회,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 등도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다.
2006년 첫 어린이 사망자가 보고된 뒤 2007년 비슷한 사례가 나오자 여러 대학병원 의료진이 관심을 촉구했지만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이 아니라며 손을 놓고 있었다. 감염병이 아니라도 유해 화학물질 노출에 의한 폐 섬유화 등 의심할 만한 증상이 있었는데도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난 2011년이 되어서야 조사를 시작했다.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수거하자 2011년 이후 새로운 피해 발생이 급감했다는 사실은 2006년 이후 속히 조사하여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면 지금의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결국 질병관리본부가 2006~2007년께 피해사례를 안이하게 다룬 것이 이 참사를 불러온 치명적인 실책이라 볼 수 있다.
또한 2011년에 조사 및 수거 대상 가습기 살균제 성분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이하 PHMG)와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이하 PHG)에만 국한시켰다는 점도 문제이다. 당시 시중의 가습기살균제 성분들의 유해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조사가 이루어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이하 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이하 MIT)을 포함했다면 피해를 더 줄이고 그 이후의 피해자 구제도 더 신속하고 적절하게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조사·판정위원회를 구성해 2013~2014년 1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361명을 조사하여 이 가운데 104명이 사망하고 64명은 손상 가능성 큰 것으로 2014년에 공식 피해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이러한 판정결과가 실제 피해자들을 배제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 지난해 9월 2일 국회 본청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부분 불참한 가운데, 제4차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6.9.2
환경부도 이 문제의 책임에서 비껴갈 수 없다. 2012년 12월 환경보건위원회는 “제품 안전에서 발생한 문제로 소비자가 책임질 일”이라며 이를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3년 8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정부지원계획’을 확정하자, 2013년 12월 환경보건위원회는 그제야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했다.
2012년 당시 제품 안전에서 발생한 문제는 좁게 보면 법적으로 혹 환경부의 소관이 아니었을지는 모르나 환경부가 아니더라도 정부에 분명 책임이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를 전부 소비자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또한 환경부도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물질들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환경부의 책임도 크다. 1996년 이후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인 PHMG와 PGH에 대해 독성자료도 없이 유독물이나 관찰물질이 아니라 일반화학물질로 분류해 놓았기 때문에 이들의 위험성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중요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환경부는 다른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와 MIT의 여러 인체 유해성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들에 의한 폐 손상 여부만 따짐으로써 다른 손상을 겪은 피해자들의 구제에 소극적이었다. 환경부는 2012년 9월 ‘일반기존화학물질’로 고시돼 있던 CMIT와 MIT를 슬그머니 ‘유독물’로 지정했다. 이와 같은 유해화학물질관리 행태를 무책임, 무능, 혹은 직무 태만 중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됨에 따라 환경부가 보건복지부의 1차 조사에서 폐 손상 인과관계를 판정받은 피해자 168명에 대해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이 2014년 4월이니 2011년에 인과관계가 확인된 이래 2년 6개월 만이었다.
보건복지부의 1차 조사에 이어 환경부가 2차 조사(169명)를 실시한 결과, 2016년 4월 18일 현재 1·2차 조사를 통해 217명이 가습기 살균제와 폐 질환의 상관성이 높다고 판정된 상태이며, 이 가운데 사망자가 92명이다. 이런 피해규모는 같은 기간의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집계결과에 비해 너무 작아서 보건복지부와 마찬가지로 피해판정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환경부는 2016년에도 3차 752명(사망자 75명 포함)의 피해자 접수를 하였지만, 예상보다 접수 사례가 늘어나면서 3차 조사 결과도 아직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2016년에 이어진 4차 접수에서 4월과 5월 두 달 동안에만도 1057명이 접수됐고 이중 사망은 238명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태는 이미 ‘제품사용에 따른 사상 최악의 참사’가 됐지만 5년이 지나도록 정부는 피해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 윤성규 환경부장관이 지난해 5월11일 국회에서 열린 환노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환경부 장관은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해 공식적인 사과를 거부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편, 2014년 4월에 결정된 의료비와 장례비 지원에 더하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생활자금과 병간호비를 지원한다고 정부는 2016년 6월 발표했다. 또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전문의 상담과 치료 지원을 한다 하니 늦었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이는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피해가 확실하다고 판정된 1·2등급 피해자들에게만 한정된 대책인 데다 최저임금(월 약 126만원) 이상 소득이 있는 피해자에겐 적용되지 않아서 ‘생색내기 대책’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피해는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며 게다가 최저임금 소득 이하로 국한한다면 해당하는 피해자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산업통상자원부는 2007년 8월 PHMG를 성분으로 한 코스트코의 ‘가습기클린업’에 국가통합인증(KC)마크를 부여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KC마크는 주로 물리적인 측면에서의 안전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화학물질로부터의 안전은 아주 제한적인 의미밖에는 없다.
당연히 PHMG의 유해성 검사는 빠져 있었지만 소비자는 KC마크를 보고 가습기 살균제를 안전한 제품으로 오해했을 것이다. 이렇게 위험한 가습기 살균제에 모두 7차례의 KC마크가 주어졌는데, 질병관리본부가 폐 손상에 대한 역학조사를 벌이던 2011년 여름에도 2개나 부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부는 안전하지 않은 제품을 걸러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전하다고 공인까지 한 꼴이니 그 책임이 막중하다. 아무리 산업통상자원부가 기업을 위해 있다고 하지만 기업의 편익이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앞설 수는 없는 일이다.
» 정부가 국민을 지켜주지 않으니 피해시민은 스스로 구하기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제45회 세계 환경의 날'인 지난해 6월 5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2층 바스락홀에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266명을 추모하는 촛불 형상의 엘이디(LED) 266개가 켜져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2016.6.5
세월호 사고와 마찬가지로 이 사고와 관련된 그 여러 정부 부서 중 어느 하나도 피해자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무능함과 무책임으로 사고를 덮고 무마하는 데 급급했을 뿐이다. 화학물질 관리와 관련된 법·제도의 미비와 부적절한 법 이행 때문에 참사의 수습뿐만 아니라 발생 자체에도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점이 밝혀졌음에도 환경부 장관이 공식적인 사과를 끝까지 거부했다는 것은 시민의 건강과 안녕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준다.
더욱이 정부 부처의 누구도 처벌을 받지 않았으니 피해자는 물론이고 이번 참사의 책임을 모두 떠맡아 처벌을 받게 된 기업조차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부족하나마 지금까지 얻어낸 피해배상은 피해자를 포함한 시민들의 힘겨운 노력 덕분이다. 기업들을 고소하고, 외국까지 가서 항의 방문을 해야 했고, 불매운동을 벌여야 했으며 고소까지 해가며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정부를 움직이도록 해야 했다.
국민 보호는 국가가 담당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이 일을 매번 내팽개쳐 피해자가 자구책에 나서서 싸워야 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세월호와 가습기 살균제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그 책임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이동수/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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