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착륙 30분쯤 “소독”, 외래종과의 전쟁
'살아있는 진화 실험실' 갈라파고스를 가다 ② 비상 걸린 고유종
에콰도르 과야킬의 호세 호아킨 데 올메도 국제공항을 이륙한 라탐항공 여객기는 곧 구름이 점점이 깔린 파란 태평양 바다 위를 날았다. 목적지인 갈라파고스까지는 1시간 50분이 걸린다. 시차가 1시간이니 시계 침으로는 불과 50분 거리다.
갈라파고스가 ‘생물 다양성의 천국’이 될 수 있었던 건 본토와 1천㎞ 떨어진 격리 덕분이었다. 그러나 비행기와 선박은 그 거리를 급속히 당겨놓았고 수많은 외래종을 옮겨놓았다.
1535년 첫 ‘발견’ 이후 사람 발길
육지 동식물 따라 들어와
경쟁자와 천적이 없는 생태 ‘취약’
염소 3마리가 20여년 뒤 4만마리로
1억8000만마리 쥐 없애기 위해
쥐약 22t을 헬기로 살포도
외래 식물은 800종 넘어
구아버 블랙베리 등 골칫거리
지름 10㎞ 칼데라 화산 고산지대
100년 전 들여온 구아버가 점령
기생파리 등 곤충 최근 큰 문제로
어린 새 구더기 감염되면 100% 죽어
관광객 수 적정 규모보다 20배
반입 식량 채소 과일도 문제
» 분화구만 남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한 섬을 하늘에서 본 모습. 갈라파고스 제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독자적인 생물 진화가 일어났지만 동시에 외래종에 특히 취약하다.
에콰도르 과야킬의 호세 호아킨 데 올메도 국제공항을 이륙한 라탐항공 여객기는 곧 구름이 점점이 깔린 파란 태평양 바다 위를 날았다. 목적지인 갈라파고스까지는 1시간 50분이 걸린다. 시차가 1시간이니 시계 침으로는 불과 50분 거리다.
갈라파고스가 ‘생물 다양성의 천국’이 될 수 있었던 건 본토와 1천㎞ 떨어진 격리 덕분이었다. 그러나 비행기와 선박은 그 거리를 급속히 당겨놓았고 수많은 외래종을 옮겨놓았다.
» 갈라파고스에 착륙하기 전 승무원들이 승객의 수화물보관함을 일일이 소독하고 있다.
착륙을 30분쯤 앞두고 기장의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세계자연유산인 갈라파고스를 외래종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이제부터 소독을 시작합니다.” 스튜어디스가 좌석 위 수화물보관함을 일일이 열고 살균 스프레이를 뿌려댔다. 1990년대 초부터 시행된 세계 최고 수준 검역의 일환이다. 하지만 불평하는 승객은 없었다.
입국심사대에서 외국인은 100달러, 내국인은 6달러의 ‘차별적인’ 입장료를 걷을 때도 갈라파고스의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설명에 순순히 지갑을 열었다. 공항에선 미국에 들어갈 때보다 더 깐깐하게 수화물과 짐을 검색했다. 혹시라도 들여올 외래종을 막기 위해서다.
사람 눈앞에서 한 종이 멸종
» 갈라파고스의 관문인 산크리스토발 섬 항구 근처의 모습. 크루즈형 관광 요트가 여러 척 떠 있다.
이런 노력에도 갈라파고스의 외래종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화산활동 결과로 비교적 최근에 생긴 갈라파고스에는 애초 소수의 생물이 유입돼 독특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종으로 진화했다.
경쟁자와 천적이 없는 상태에서 진화한 이곳 생물은 외래종에 아주 취약하다. 그러나 1535년 파나마의 베를랑가 주교가 페루로 가다 표류해 우연히 발견한 뒤 안장(스페인어로 갈라파고스) 모양의 큰 거북이 있다고 스페인 본국에 보고한 이래 이어진 사람의 발길은 외래종을 불러왔다.
» 1835녀 다윈이 갈라파고스를 방문할 때 타고 간 영국 해군 측량선 비글호. 당시에는 이미 300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이 섬에 이어지고 있었다.
1832년 이곳을 영토로 편입한 에콰도르 정부는 죄인 유배지로 활용했다. 약 300년 동안 갈라파고스 제도는 해적, 포경선과 물개잡이 어선이 드나들며 의도적으로 또는 자기도 모르게 염소와 쥐 등을 풀어놓았다. 섬에 정착한 죄수와 주민들도 돼지, 당나귀 등 동물과 함께 수많은 육지 식물을 들여왔다.
» 핀타섬의 마지막 땅거북 '외로운 조지'. 2006년 산타크루즈 섬에 있는 찰스다윈연구소에서 증식을 시도할 때 모습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2012년 100살의 나이로 숨져 유명해진 갈라파고스땅거북 ‘외로운 조지’는 핀타섬의 마지막 개체였다. 사람의 눈앞에서 한 종이 멸종하는 모습을 지켜본 최초의 생물이었다. 1950년대 어부가 이 섬에 풀어놓은 염소 3마리가 1970년 4만마리로 불어났고, 식물이 황폐해지면서 거북의 서식지는 사라졌다.
블랙베리는 일일이 뽑아내야
» 핀손 섬의 쥐를 퇴치하기 위해 헬기를 동원해 쥐약을 운반하고 있다. 갈라파고스 컨서번시
1960년대부터 에콰도르 당국은 염소, 들개 등 덩치 큰 외래종 퇴치에 나서 규모가 작은 섬에서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쥐는 새와 파충류의 알과 새끼를 포식해 큰 피해를 줬다.
핀손섬의 갈라파고스땅거북은 쥐 탓에 100년 동안 번식을 하지 못하다 2014년 쥐를 박멸하자 처음으로 새끼가 출현하기도 했다. 1억8000만마리에 이르는 이 섬의 쥐를 없애기 위해 쥐약 22t이 헬기로 투하됐고, 쥐를 잡아먹는 희귀종 매는 임시로 모두 포획해 격리했다.
» 지름 10㎞의 거대한 칼데라 호에 검은 용암이 담긴 시에라네그라 화산의 고산지대는 본토에서 약 100년 전 도입한 과일나무 구아버가 완전히 점령했다. 복분자와 비슷한 블랙베리 등 다른 외래종 식물도 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17일 찾은 이사벨라섬의 시에라네그라 화산(해발 1124m)은 외래종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었다. 2005년에도 분화한 활화산으로 꼭대기에 지름 10㎞의 거대한 칼데라가 있는 이 화산의 고산지대는 사실상 외래종인 구아버가 점령했다.
남아메리카 본토에서 약 100년 전 들여온 이 과일나무는 철분 많은 화산토를 좋아해 급속히 번지는데다 뿌리가 깊어 제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고유종인 워블러핀치가 이 나무의 이끼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무작정 없앨 수도 없어 국립공원 당국도 손을 놓은 상태다.
» 외래식물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있는 종의 하나인 블랙베리. 복분자와 비슷한 종이다.
갈라파고스에 사람이 들여온 식물은 800종이 넘는다. 이 가운데 가장 문제를 일으키는 종은 구아버, 스페인 향나무, 키니네, 블랙베리(복분자 딸기의 일종)라고 찰스다윈재단은 최근 연례보고서에서 밝혔다. 현재 박멸에 가장 노력을 기울이는 대상은 블랙베리이다.
섬에 들어와 15종으로 분화한 스칼레시아는 ‘식물의 다윈 핀치’로 불리는 고유식물인데, 이를 복원하려면 반드시 블랙베리를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시가 많은데다 제초제로 제거해도 땅속에 묻힌 씨앗에서 새로 돋기 때문에 여러 해에 걸쳐 나무를 일일이 뽑아내는 수고를 들여야 해 애로가 많다고 국립공원 관계자는 말했다.
» 산타크루즈 섬 고지대의 대규모 화산 함몰지 게멜로스. 이곳에 ‘식물의 다윈 핀치’라 불리는 고유식물 스칼레시아가 대규모로 분포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이 문제 해법
최근 가장 문제가 되는 외래종은 곤충이다. 본토에서 건너온 기생파리의 일종은 갈라파고스 고유종 울새 20종 가운데 16종을 위협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야생에 80마리만 남은 맹그로브핀치도 포함된다.
» 흡혈 기생파리가 얼마나 확산됐는지를 표시한 찰스다윈연구소 홍보 패널의 모습.
이 파리는 과일을 먹고 살지만 구더기는 어린 새의 피를 빨아먹는다. 구더기에 감염된 어린 새의 치사율은 100%에 이른다. 병아리의 혈액을 이용해 이 파리 애벌레를 기르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 고작이라고 찰스다윈재단은 밝혔다.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이 밖에 불개미, 모기, 말벌 등도 심각한 외래종으로 꼽힌다.
»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산타크루즈 섬에 있는 찰스다윈연구소의 파올라 디아스 홍보책임자는 “갈라파고스의 최대 현안은 외래종 문제”라고 강조했다.
늘어난 관광객이 식량과 채소, 과일 등을 대량으로 외부에서 반입하는데다, 관광객의 절반 가까이가 요트 등 선박을 이용하기 때문에 바다를 통한 외래종 도입도 문제다. 일각에선 현재와 같은 대규모 관광으로는 외래종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갈라파고스 섬의 다윈, 다윈주의, 보전>·디에고 키로가 등 펴냄·2017). 외래종 문제의 해법은 지속가능한 발전에서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갈라파고스(에콰도르)/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인터뷰: 왈테르 부스토스 국립공원 관리소장“빠른 관광 대신 느린 관광으로 바뀌어야”
“갈라파고스의 관광산업은 섬 생태계의 수용 능력에 비춰 볼 때 성장의 한계에 근접했습니다.”
왈테르 부스토스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관리소장의 말에는 공원 보전을 책임지면서 동시에 그 비용을 대부분 관광객에게 기대고 있는 공원 당국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갈라파고스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도 그렇지 않으냐”고 그는 얼른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갈라파고스는 면적의 97%가 국립공원이다. 최근엔 해양보호구역을 잇달아 지정했다. 어민 반발은 없나?
“전통어업만 허용해 2500명이던 어민 수가 500명으로 줄었다. 보호구역 안에서 독점적으로 어획하는 혜택을 누린다. 스스로 ‘보전 어민’이라 부르며 자랑스러워한다. 집안이 대대로 어민이어야 보전 어민이 될 수 있다. 어민에게 최고의 보상은 보전이다.”
-가장 우선적인 보전 정책을 꼽는다면?
“외래종 대책이다. 엄격하게 검역을 하는데도 해마다 침입종이 들어오고 있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염소, 쥐, 개, 고양이 등의 퇴치를 시도했는데 섬의 면적이 넓고 자원이 부족해 기대만큼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에스파뇰라 섬에서 처음으로 외래종 없는 섬을 선포했는데, 쥐 등의 퇴치 작업에 20년이 걸렸다.”
-공원 관리 비용은 어떻게 조달하나?
“국립공원 기본 운영비는 행정·인건비 포함해 연간 1500만달러 수준이다. 레인저 등 직원이 350명에 이르고 선박 유지·관리 등 돈이 많이 든다. 거북 관리에만 90만달러가 든다. 예산조달에 가장 비중이 큰 것은 관광객이 내는 입장료이다.”
-보전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관광객이 늘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관광 증가를 억제하려면 (외국인 1인당 100달러씩 받는) 입장료를 올릴 필요가 있다. 관광객은 매년 7%씩 느는데, 입장료는 18년째 동결돼 있다. 아직도 관리 가능한 수준이지만 정상은 아니다. 빠른 관광에서 느린 관광으로 달라져야 한다.”
-관광객 구성은?
“아무래도 에콰도르인이 가장 많고, 이어 미국과 유럽 관광객 차례다. 아시아에선 일본인이 많고 이어 중국인과 한국인도 보인다. 지난해 한국에서 온 관광객은 800명이었다.”
-한국인에게 한마디 한다면?
“한국과 일본 관광객은 행동 바르고 규칙 잘 지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본받을 만하다. 청정에너지 공급 등 한국과 에콰도르의 협력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학생이라면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보전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길도 열려 있다.”
산타크루스(갈라파고스)/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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