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협과 북핵, 서로 다른 범주… 북핵도 성격 확연히 달라져
|
평화협정(평협) 체결운동과 관련하여 일정한 논점이 확인되고 있다. 평협의 주체 문제가 그 하나이며 평협과 한반도 비핵화의 관계 문제가 또 다른 하나다. 하지만 이 논점들은 변화된 정세와 현실, 그리고 평협운동을 벌여나갈 대중을 중심에 놓고 공명정대하게 토론하게 된다면 쉽게 해소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논점이지 쟁점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1. 평협의 주체는 북미가 기본이되 한국 포함
평협의 주체 문제는 사실상 이미 해결된 문제다.
평협 체결 문제는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북·미·중이 체결한 정전협정(정협)을 평협으로 교체하는 법적 측면이 하나며, 또 하나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안보적 측면,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평협이 통일에서 결정적 조건으로 된다는 통일의 측면이다.
평협 문제가 갖고 있는 이런 법적, 안보적, 통일적 내용에 따르면 평협 체결에서 결정적 지위와 역할을 갖게 되는 곳은 북·미다. 정협의 법적 당사자이자 한반도 평화 조성에서 핵심 주체여서다. 종국적으로는 통일의 결정적 조건으로 되는 것이 북·미 정상화이기 때문이다.
평협 체결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은 제한적이다. 형식적으로는 법적 측면에서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어서다. 현실적으로 접근해도 마찬가지다. 군 작전권을 미국에 주고 있는 현실은 평협의 안보적 측면에서 한국의 지위와 역할을 미미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하지만 평협의 법적, 안보적 측면에서와 달리 통일적 측면에서 한국의 지위와 역할은 중요하다. 통일 관련 남북 합의들이 나온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 통일의 주체가 남북이기 때문이다.
북·미·한·중이 평협에서 차지하는 각기 다른 지위와 역할을 고려해 나온 것이 2007년 10.4선언 4항이다. 평화체제와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한다고 돼있다. 이는 평협의 주체가 북·미 2자를 기본으로 하되 여기에 한국 혹은 중국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다.
평협의 주체는 결국 북·미 2자를 기본으로 하되 한국이 포함된다. 이렇듯 평협의 주체 문제는 평협이 갖는 세 가지의 내용적 측면, 그리고 역사적 실천경험에 의해서 익히 해결되었다.
2. 북핵과 북미 평협은 서로 범주가 다르다
평협 문제는 정협을 대체하는 문제이자 한반도의 평화 조성 문제이며 종국적으로는 조국통일문제이다. 하지만 북핵 문제는 이와는 다른 범주다.
북핵 문제는 처음에는 북미 간 문제로 출발을 한다. 6자회담 초기 ‘미국의 한반도 핵 철거’에 조응하는 ‘북핵 폐기’가 북핵 문제였다. 북핵 능력이 일천하던 때였다. 그 이후 북핵 문제는 북미대결전이 심화됨에 따라 성격을 단계적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라. 그러면 핵시험을 중단하겠다.” 북한 리수용 외무상이 지난 4월23일 방미 중 미 AP통신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했던 말이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2014년부터 자주 나왔던 제기다.
북한이 미국의 한미연합군사훈련과 핵시험을 결부시킨 것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는 것을 조건으로 자신은 핵동결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고도화에 기초하고 있는 북미 핵대결전의 새로운 국면이다.
북한은 지난해 5월 처음으로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험을 해 미국을 경악시켰다. SLBM은 현대 핵전략의 정점이다. 미사일방어체계를 무력화하는 것이자 핵 선제공격을 무력화하는 것이 SLBM인 것이다. 북한은 이어 올 1월6일 4차 핵시험을 했다. 수소탄시험이라고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고도화는 더 나아간다. 인공위성 발사를 하고 곧바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고체연료를 비롯해 대출력 로켓엔진, 대기권재진입 기술까지도 선보인 것이다.
변화되고 있는 이런 정세와 현실, 그리고 특히 북핵 성격의 변화에 대해 적지 않은 미국의 전문가들이 주목을 돌렸다. 핵물리학자인 지그프리트 해커 박사가 대표적이다. 해커 박사는 핵무기를 양은 안 늘리고 질은 안 높이고 확산해서는 안 된다는 ‘3No 원칙’을 내놓았다. 여기에 대해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조엘 위트 미 ‘38노스’ 운영자 등이 동의를 했다.
변화된 북핵 성격에 대한 명확하고 체계적인 규정은 북한에서 나왔다. 북한은 제7차 노동당대회를 통해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것에 기초하여 핵경제 병진노선을 항구적 전략노선으로 확정한데 이어 북핵 3원칙을 천명했다. 핵보유국으로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통해서는 핵미사일 능력고도화를 지속하겠다는 것을, 북핵 3원칙을 통해서는 핵 선제불사용과 비확산 의무 이행, 그리고 세계 비핵화 노력 등을 밝힌 것이다. 북한의 핵전략 완성이다.
여기에서 북한이 비확산을 세계 비핵화와 연동 짓고 있는 것은 특별히 돋보인다. ‘세계 비핵화’는 오바마 미 대통령이 2009년 4월5일 체코 프라하에서 내놓은 개념이다. 이는 북한이 미·중·러 등 세계 3대 핵강국들에게 세계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핵군축 계획을 이후 적절한 계기를 통해 제출하게 될 것을 예상케 해주는 대목이다.
북핵 문제, 핵 폐기→ 핵 동결→ 핵군축 ‘진화’
이렇듯 북핵 문제는 처음에는 미국의 한반도 핵 철거에 조응하는 핵 폐기였다가 미국의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에 조응하는 핵 동결을 거쳐 지금에 와서는 세계 비핵화와 연동되면서 비확산 혹은 핵군축 등으로 변화된다.
이는 곧바로 현실에 반영되었다. 지난 4월26~27일 미국 <넬슨 리포트>을 발행하는 크리스토퍼 넬슨 편집장을 비롯한 미국측 인사들이 방한해 아산정책연구원 주최 세미나에 참석해서는 비핵화에 초점을 둔 미국의 기존 북핵 정책을 비확산으로 변경해야한다는 주장을 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의 입에서는 공공연하게 ‘북핵 확산 저지’, ‘비확산’ 등의 말이 직접 오르내리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이것들은 북핵 문제가 북미 간 문제에서 벗어나, 핵강국으로서 핵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미·중·러와 핵강국에 진입하려는 북한이 서로 대결하는 세계 문제로 성격이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평협 문제는 한반도 문제이자 조국통일 문제이지만 북핵 문제는 북미 문제를 뛰어넘어 세계 문제로 전환되었다. 평협과 북핵은 서로 다른 범주의 문제로 위상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범주가 다른 평협과 북핵 문제가 현실적으로 연동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은 4차 핵시험이 있고 난 뒤 자신이 2016년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수소 폭탄과 인공위성)’의 나라가 되었다고 했다. 조엘 위트 연구원이 이를 인정한다. 북한의 4차 핵시험 당일 연합뉴스의 논평 요구에 대해 "충분히 수소탄 실험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내놓은 것이다. 획기적 현실이다.
북한의 양탄일성이 현 시기에 갖는 가장 중요하고 구체적인 의미는 양탄일성과 평협이 같은 격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북한이 핵 폐기와 북미 평화협정과 맞바꾼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전례도 없다. 카다피 시절 리비아가 핵 포기를 한 것은 리비아의 핵이 일천한 수준이어서였다.
양탄일성이 갖는 정치, 경제, 안보적 위력은 역사에서 익히 확인된 바 있다. 중국이 양탄일성을 완성한 때가 1970년이었다. 그 이듬해 키신저 국무장관이 방중을 해 이른바 ‘핑퐁외교’를 성사시키고 이어 72년 미 대통령 닉슨의 방중이 이루어진다. 중국의 양탄일성이 미중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결정적 동력으로 작동한 것이다. 중국의 양탄일성은 아울러 중국이 군사강국, 경제강국, 그리고 정치강국, 즉 G2국가로 부상케 하는 동력이기도 했다.
평협과 북핵 문제는 이렇듯 서로 다른 범주이고 현실적으로 연동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정부는 이것들을 억지로 결부시켜서는 ‘선 비핵화, 후 평협’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전문가들은 없다. 대북 적대정책의 표현이다. 한마디로 북핵 문제로 대결을 하겠다는 것이며 평협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성 서울진보연대 자주통일위원장 news@minplus.or.kr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