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까치 둥지서 번식한 새끼, 10여m 높이에 올라가기도 힘든데…
땅에 떨어진 어린 새는 건강 상태 등 고려해 둥지에 올리거나 신고해야
» 긴 장대를 이용해 땅에 떨어진 황조롱이 새끼를 둥지에 올려놓는 모습. 어린 새를 구할 때는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동영상 갈무리.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새끼 동물의 삶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직 나약한 이들에게 세상은 온통 처음이라는 두려움 그 자체니까요.
둥지에서 벗어나 처음 날갯짓을 하거나 하늘에 몸을 던지는 것 역시 꼭 필요하고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아직은 서투른 그들에게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요즘 구조센터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새끼의 구조를 원하는 신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조류의 경우 둥지에서 떨어지거나 둥지를 벗어나 이제 막 세상의 품으로 향하는 ‘이소’ 과정에서 미숙함으로 다소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 갓 이소한 황조롱이 새끼의 모습. 앉아있는 장소의 선택이나 움직임이 꽤 어색한 모습입니다. 이 모든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겠지요?
둥지에서 떨어져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못한다면 서서히 도태되거나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겠지요. 사람이 일부러 벌인 일이 아니라면 이렇게 되는 것이 사실은 꽤 자연스러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발견한 이상 그냥 모른 척 지나가자니 윤리적인 갈등에 직면하게 되죠. 많은 분이 이런 일을 당하면 감사하게도 관심을 가지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주시고 있습니다.
20일 신고받은 황조롱이 역시 이와 같은 경우였습니다. 아직 이소하기에 이른 감이 있었는지 둥지에서 그만 떨어지고 말았지요. 신고자는 주변에 있을지 모를 여러 위험으로부터 황조롱이의 안전을 확보한 후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10여m 높이의 은행나무 꼭대기에 있는 까치둥지에서 황조롱이가 번식을 했습니다. 신고자가 발견한 황조롱이는 이 둥지에서 떨어진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습니다.
» 오늘의 임무는 둥지에서 떨어진 황조롱이를 저 위에 올려주는 것입니다.
둥지에서 이탈한 조류의 경우 다시 본래 둥지로 올려주는 것이 가장 먼저 고려할 사항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때도 분명 있겠지요. 과연 어떤 경우가 그러할까요?
첫째, 떨어지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상처를 입었다든가 활동에 문제가 생긴 경우입니다. 대게 이런 새는 다리나 날개 등이 비대칭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움직임이 비정상적이며 혈흔 등이 관찰될 가능성이 큽니다.
» 둥지에서 추락하는 과정에서 다리가 부러진 황조롱이. 이런 경우 비대칭의 모습을 보이거나 움직임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둘째, 떨어질 당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 기아, 탈진 등으로 쇠약해진 경우입니다. 눈을 계속해서 감거나 힘없이 서 있고, 공격성과 경계 반응이 약해지는 것이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이런 새라면 둥지에 올려주기보다는 충분한 영양공급을 통해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것을 우선 고려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 둥지에서 떨어진 뒤 꽤 시간이 흘러 기아와 탈진 상태에 놓인 황조롱이입니다. 정도가 심할 경우 수액이나 먹이 주기 등을 통한 영양공급이 우선 이루어져야 합니다.
셋째, 서툴기는 하지만 신체적으로 큰 문제가 없고 기력이 좋아 정상적으로 이소하는 과정이라 판단되는 경우입니다. 주변에서 어미까지 관찰된다면 더욱 문제가 없겠지요. 이러한 경우 굳이 둥지까지 올려주지 않아도 포식자의 접근을 피할 수 있는 구조물이나 나무 위에 올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둥지에 새끼를 올려주는 과정에서 사람이 다치면 안 되겠지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최대한 안전대책을 강구한 상태에서 구조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 둥지에서 떨어진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이 친구야 조심 좀 하지…
이번 개체는 딱히 문제도 없었고 다시 둥지로 올려준다면 약간 더 시간이 지난 뒤 정상적으로 이소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개체로 판단되었습니다. 때문에 다시 둥지로 올려주기로 결정했죠. 하지만 둥지의 높이가 사다리를 이용해 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둥지까지 딛고 오를 나뭇가지가 약해 밟고 올라서기도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하던 중 나무 옆에 위치한 건물에 올라가보기로 했습니다. 옥상을 올라가 보니 둥지가 거의 5~6m 떨어진 수평 위치에 놓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에서 올라가기보다는 이곳에서 도구를 이용해 둥지까지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지요.
» 나무 꼭대기 부근에 위치한 둥지가 보이시나요? 황조롱이는 이렇게 까치의 둥지를 이용해 번식을 하곤 합니다.
긴 막대기에 새를 담아 둥지까지 뻗어주면 스스로 둥지로 돌아갈 것이라는 계획에 따라 막대기의 길이를 늘이는 작업을 했습니다. 재료가 충분치 않아 애를 먹었지만 가까스로 둥지까지 도달할 수 있는 막대기가 완성되었습니다.
» 건물 옥상에서 뻗어 황조롱이의 둥지까지 도달할 수 있는 막대기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있을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두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친 뒤 황조롱이 둥지 복귀 임무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황조롱이는 무사히 둥지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위기에 직면했지만, 다행히 그 상황을 외면하기보다는 자신과 다른 생명의 안전에 대해 걱정해 주고 구조센터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셨던 고마운 분들을 만났기 때문이죠.
하지만, 새끼 황조롱이에게 삶의 위기는 이것이 전부가 아닐 겁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겠지요.
그래도 오늘의 위기를 계단 삼아 천천히 오르고 또 오르면 언젠가 저 하늘 위에서 멋진 정지비행을 선보이는 야생의 주인공이 되어가겠지요? 그렇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 언젠가 야생의 주인공이 될 녀석의 미래를 응원해주세요!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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