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⑧] 또 파견 확대 강조한 대통령이 알아야 할 현실
16.06.14 10:21 선대식 기자
파견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파견의 범위를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파견노동자가 처한 현실과 마주하기 위해, 기자 명함을 버리고 파견노동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지난 2, 3월에 걸쳐 한 달 동안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여러 공장에 취업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을 기획기사로 공개합니다. - 기자 말
- ▲ 지난 2월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에서 한 무리의 파견노동자들이 공장으로 향하고 있다. ⓒ 선대식
매일 오전 파견노동자들이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들머리인 안산역 앞에 모인다. 파견회사의 미니버스나 승합차들은 이들을 각 공장으로 실어나른다. 나도 매일 오전 위장취업이 들키지 않을까 하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파견회사를 찾았다.
어느날 갑자기 한 아주머니가 파견회사 문을 열었다. 그와 함께온 남자는 "이 아줌마, 오늘 파견으로 일할 데 없어요?"라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처분만 기다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곳 파견회사 관계자가 나이를 물었고, 아주머니를 데려온 그는 "마흔여덟 살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 관계자가 말했다.
"나이가 너무 많아요."
얼굴이 새빨개진 아주머니는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아직도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파견노동자가 가장 많은 이곳 산업단지에서 나이 많은 노동자는 환영받지 못한다.
이곳에는 전자회로기판 등을 생산하는 대형 전자회사가 여럿 있다. 일반 제조업 공장보다 파견노동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곳이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파견회사에 연락하면, 공통적으로 듣는 질문이 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남자 나이 35살까지만 면접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보다 나이가 많다면, 면접조차 볼 수 없다.
'파견 확대' 재차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
- ▲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개원 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제20대 국회의 역사적인 개원을 축하한다"며 "의원 여러분들의 초심이 임기 말까지 이어져서 대한민국 헌정사에 큰 족적을 남기는 의정활동을 펼쳐주실 것을 국민과 함께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 유성호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20대 국회 개원 연설에 나섰다. 20대 국회를 여소야대로 만든 국민은 정부·여당의 독선적인 정책 추진에 경고를 보낸 것은 아닐까. 파견법 개정 등 노동개혁에 대한 박 대통령의 생각도 바뀌지 않았을까.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무시무시한 말로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구조조정 성공을 위해서는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미루거나 회피한다면,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고, 국가경제는 파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을 노동자에 대한 대책으로 파견법 개정을 재차 언급하기도 했다.
"중장년 근로자, 뿌리산업 근로자 파견근로가 허용되어야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근로자가 재취업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회사는 젊은 노동자를 선호한다. 중장년층은 괜찮은 파견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 정부가 실업대책으로 다른 노력은 하지 않고 단순히 파견 확대에만 몰두할 경우,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
파견 확대의 실상은...
파견 확대가 현실화된다면, 썩 괜찮은 정규직 자리가 파견 일자리 몇 개로 바뀔 것이다. 고용률 숫자는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 산업재해 위험 등에 시달리는 파견노동자의 확산이다.
지난달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안전문)를 수리하다 목숨을 잃은 19살의 청년은 파견노동자와 비슷한 용역회사 소속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이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열심히 일한 대가는 죽음이었다. 하루 수백만 명이 지하철을 이용했지만, 누구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파견 확대로 늘어날 파견노동자는 김씨와 비슷한 처지에 빠질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반월·시화단지에서 일하고 있는 서른두 살의 김아무개씨는 이미 그런 세상이 오고 있다고 말한다.
"제가 다닌 회사는 인건비를 최대한 낮추기 위해 파견노동자를 뽑고, 각종 기계 안전장치에 투자하지 않는 곳이었어요. 제 오른쪽 손가락이 날카로운 철에 베여 피가 철철 났는데도, 관리자는 왼손으로 일하라고 했어요. 쉬겠다고 하니, '우리 회사랑 안 맞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아저씨는 프레스에 오른팔이 잘렸어요. 두 아들이 대학생이라, 이 위험한 공장에서 계속 일해야 했어요. 산업재해가 늘자, 회사는 안전장치에 투자하기는커녕 무당을 불러 굿을 했어요."
김씨가 겪은 이 회사의 모습이 사회 전반으로 퍼질지도 모른다. 파견노동자의 확산 속에 조선사와 해운사들이 되살아난다면, 우리는 이를 성공적인 구조조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 곡성이 끊이질 않는다면, 우리 경제는 위기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클릭]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 기획기사 보기
① 22개월 뒤 물러날 대통령께 보내는 '위장취업' 보고서
② "여자친구랑 놀고 싶다면 그 길로 퇴사하세요"
③ 아무도 안 알려준, 분무기의 '무서운' 문구
④ "여긴 정말 미쳐 날뛰는 무법지대"
⑤ 엄마도 젊은 관리자에게 "개또라이" 소리 들을까
⑥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을 해고합니다
⑦ 일당이 1만4000원... 회사 문 박차고 들어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