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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4일 목요일

독일서 열린 수요집회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

"하루에 수도 없이 상대... 결국은 수혈까지 시켰지"

15.09.24 20:47l최종 업데이트 15.09.24 20:4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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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동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그녀 바라보니 그녀 얼굴의 주름이 그동안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듯했습니다. 이제는 인권운동가로서 우리가 마음 한켠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얼굴입니다.
ⓒ 권은비

북에서부터 남까지, 강제노역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한반도 소년들을 여기저기로 데려가고 소녀들 또한 세계 곳곳의 전쟁터로 데려가 '위안소'라는 이름의 지옥으로 밀어 넣었던 일본이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대한민국이 '해방 70주년'을 맞은 해에 보란 듯이.

그리고 그즈음인 지난 22일(현지시각), 한 한국 인권운동가가 전 세계인들에게 평화를 호소하고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 잡기 위해 독일 베를린에 있는 한 강당에 섰다. 그는 15살 남짓한 나이에 집을 떠나 대만을 거쳐 중국 광둥으로 끌려가 성 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던 김복동 할머니다. 

강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 사이로 독일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가 서로 뒤엉켜 들려오던 중 무대 위로 김복동 할머니가 올라서자, 모두가 숨죽였다. 

전범 국가인 독일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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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동 할머니가 독일 학술관련 전문가와 함께 일본의 위안부 역사 대해 증언하는 모습.
ⓒ 권은비

첫 번째 발표자로 독일 함부르크재단 레기나 뮬호이저 박사(Dr. Regina Mühlhäuser, 문화·학술 연구 분야)가 나섰다. 

"저는 일본의 역사적 관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일본의 과거 역사에 대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본 정부의 침묵, 또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 분들의 심적·육체적·경제적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놀랍게도 그의 비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독일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독일은 마치 나치 시대의 역사를 사죄하고 과거사에 대해 청산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점령했던 국가들에도 성 노예 및 성폭행, 강간을 당한 여성들이 많습니다. 현재까지도 이들에 대한 국가적 배상은 미흡합니다. 독일 정부는 일본의 민주주의와 정부를 신뢰한다고 했는데, 아베와 같이 국수주의적이고 일본의 힘을 강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하는 부분은 용납되어선 안 됩니다." 

레기나 뮬호이저 박사의 발언이 끝난 뒤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무대 위로 올라선 김 할머니는 위안부로 사는 삶이 어떠했는지를 생생히 들려줬다.  

"하루에도 몇 명을... 수도 없이 상대해야 했어. 상처가 나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러다 하늘이 새카맣도록 비행기가 들어오더니 일본이 손들었다 했어... 철수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젊은 여자는 간호사로 훈련시키고 늙은 여자들은 주방으로 보냈지. 일본 군인이 수술을 해야 돼서 피가 모자라면 여자들 피검사를 해서 수혈을 시켰어..." 

김복동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동안 무대에 함께 올라와 있던 두 명의 독일 학자와 객석에 앉은 청중들은 번역 이어폰을 끼고 그의 끔찍했던 과거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는 독일 

이후엔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의 윤미향 상임대표와 일본 간토 가쿠인 대학의 하야시 히로후미 교수, 독일 EVZ 재단의 우타 겔란트 활동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각 나라별 연구와 대책마련활동에 대해 발제했다.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의 윤미향 상임대표는 이 자리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며 한국에서 오랫동안 진행해온 활동과 진행과정들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한편 하야시 히로후미 교수(Hayashi Hirofumi)는 "지금까지 일본 도처에 흩어진 위안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결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라며 "(일본 정부는) 위안소를 설치하면 점령국의 여성들에 대한 성범죄가 줄어들 거란 생각으로 추진했지만, 오히려 일본군의 성범죄를 더욱 유발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위안부 문제는 노예범죄이자 성차별이고 민족차별, 계급차별이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은 전쟁이 끝난 지 한참 후인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일본 정부의 과거사 청산과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보상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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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EVZ 재단의 우타 겔란트 활동가. 번역 이어폰을 낀 채 일본과 한국의 위안부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권은비

또 다른 독일 쪽 패널인 독일 EVZ 재단의 우타 겔란트(Uta Gerlant) 활동가는 "독일의 나치 강제 노동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은 독일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의 불매운동 및 미국 정부의 압박으로 급물살을 타며 진행되었다"라며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독일의 경우, 나치강제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은 2007년에 완료되었고 이후 그와 관련한 재단을 설립해 나치 과거사 청산 및 생존 피해자와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한 도의적 책임은 독일 의회가 도맡았고, 강제노동 피해자들이 법적소송은 벌이지 않았기 때문에 재계에서 50%, 정부에서 50%씩 지원하여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및 지원활동이 이루어졌다. 

우타 겔란트 활동가는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국가의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며 "독일 역시 여성 성노예 문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아주 인상 깊은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진행하는 위안부와 관련한 여러 투쟁과 사업들은 오히려 독일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몇 십 년 동안 이뤄지고 있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투쟁과 활동이 단순히 위안부 할머니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성 노예 피해를 입은 세계 곳곳의 여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는 듯했다.

발표가 다 끝난 후, 객석에 앉은 청중들과 토론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마침 이번 행사에 참석한 콩고 대사관 관계자는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나비'의 활동으로 자기 나라의 성 노예 피해 여성들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또 한 독일 여성은 한국의 분단 상황을 이야기하며 남과 북이 서로 연대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 질문을 했다. 윤미향 대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남북연대는 우리 단체에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분단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도 상당한 피해를 주었습니다. 고향은 남쪽인데, 중국 위안부에 있다가 이후 걸어서 북한에 도착, 북한에 정착한 분들도 계십니다. 저희는 정치적 이념을 넘어, 남북이 연대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지만, 2008년 남북 긴장 상태 돌입 후, 남북연대운동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고 북의 소식은 일본이나 중국의 언론을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도 계속된 수요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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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한 수요집회 모습
ⓒ 권은비

그리고 그 다음날인 23일 오후 2시, 베를린에 위치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독일인들을 비롯하여 일본인 그리고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이 참석했다. 

집회에 참석한 여러 일본인들 중 한 여성은 직접 만들어온 피켓을 펼쳐 보이며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일본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진상규명을 위해 NGO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라며 "일본 정부와 많은 국민들이 진정한 사과를 할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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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사에 대한 아베의 사과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가한 일본인의 모습.
ⓒ 권은비

집회에 참석한 독일인 안드레아스 칼레(Andreas Kahle)는 "베를린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위안부 관련 책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라며 "일본 정부가 하루 빨리 진정한 사과와 책임을 다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독일, 한국, 일본을 대표하는 5명은 베를린주 일본대사관 관계자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일본정부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면담을 진행하였다. 면담을 하고 나온 코리아페어반트의 한정화 국장은 "(정작 만나야 할) 김복동 할머니와의 면담을 거부한 이유를 물으니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고 전했다. 

대표자들은 "일본 대사관 관계자가 전달 받은 서한을 정부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미 전 세계의 일본대사관에서 이러한 서한을 비롯한 원자력문제에 대한 항의문서를 처리하는 데에 업무 과중이 심하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집회의 막바지, 김복동 할머니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일본대사관을 향해 외쳤다. 

"독일 국민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리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다. 나이가 90이 넘는 노인인 내가 무슨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겠는가.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사과 할 때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싸울 것이다."

김복동 할머니와 한국정신대 문제 대책협의회는 앞으로 독일 언론 <슈피겔>과의 인터뷰 및 독일 외무부 면담, 국회의원 면담을 진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잘 안 보이고 이제는 혼자서 걷기 힘든 김복동 할머니는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9월 한 달 동안 노르웨이 오슬로,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을 이동하며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에 호소하고 연대를 구하고 있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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