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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피스’ 스포일러 있습니다.
악마는 아름다운 가면을 쓰고 있다. ‘나는 악마요’하고 흉악한 얼굴을 한 채 무서운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어쩌면 천사에 더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악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더 큰 공포를 가져다준다. 일상에 스며든 악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에 대해 잘 나타낸 영화에 눈길이 간다.
영화 ‘오피스’에서는 착실한 직원 두 명이 등장한다. 대기업 영업부 김병국 과장(배성우 분)과 같은 부서 인턴 이미례(고아성 분)는 “열심히 일하고 착하긴 하지만”으로 시작하지만 “센스나 융통성이 없어 바보 같다”는 평가를 받는 직원들이다. 이들은 부서 내에서 왕따다. 부서원의 마음에 들지 못한 이들은 각각 해고, 정직원 채용 거부라는 현대판 살인을 당한다.
영화에서 이들의 해고와 정직원 채용 거부 사유는 “센스 없음”으로 모아진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시키는 대로 충실하게 교육받은 이들이며 다른 부서원들의 업무까지 떠맡아도 완벽하게 수행해내던 훌륭한 노동자였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갔던 것이다.
영화에서 김 과장은 6년째 과장이다. 4년이면 승진을 하는 회사 분위기를 고려해보면 회사는 김 과장에게 ‘나가라’고 말하고 있던 셈이었다. 인턴 이미례도 마찬가지다. 인턴 3개월이면 정규직 전환 결정이 나지만 그는 5개월째 인턴이고 영업부장은 고스펙의 얼굴까지 예쁜 새 인턴을 채용해 비교하기 시작했다.
성실하면 성공한다는 이들의 믿음은 배신당했다. 업무 능력보다 사내 정치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아니라 영화의 소재로 다뤄질 만큼 보편적인 진실이 됐다. 조직의 상층부로 갈수록 이 불편한 진실이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한국 사회에서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믿음을 배신당한 이들은 괴물이 됐다. 영화에서 김 과장은 “칼을 쥐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나에겐 묵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해고된 김 과장은 일가족을 살해하고 자신을 왕따 시킨데 가담했으며 자신의 해고 사실을 알고 있던 부하직원을 죽였다. 인턴 이미례는 사실상 자신에게 ‘나가라’고 했던 직장 상사를 죽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가장 약한 존재로 전락한 이들의 분노는 영화에서 칼로 표현됐다. 사회가 혼란스러워질 때 연쇄살인범이 출몰하는 것을 보면 연쇄살인이 과연 한 개인의 일탈인지, 사회 전반의 억압이 한 개인을 통해 표출된 것인지 고민해볼 문제다. 영화를 통해 이제 사무실은 분노와 한(恨)이 스며들 수 있는 공간임이 드러났다. 성실한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이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밤 노사정이 노동개혁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저성과자나 근무불량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관철되는 순간이다. 한국사회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능력 없으면 죽으라’는 원칙을 공식화한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을 내면화한 한국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고 체념하게 될까 우려된다.
한국 사회에서 이미 만들어진 노조를 깨거나 노조를 애초에 만들지도 못하게 하는 현상이 만연해있다. 저성과자나 근무불량자로 낙인찍히는 사람들은 과연 공정하게 결정될까? 노조를 만드는 것이 센스 없는 행동, 피곤한 행동으로 비춰지고 국가 기관 어디에서도 이를 구제받지 못할 때 이들이 부당함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없어 보인다.
정부의 노동개혁 밀어붙이기의 결과물을 ‘극적 타협’ 등의 용어를 사용해 찬양하는 언론을 보며 영화 ‘오피스’가 떠올랐다. 상사에게 아부할 줄 모르는 착실했던 직원이 승진에서 밀리고 회사에서 해고됐을 때 괴물이 된 장면 말이다.
지난해 가을 인기 있었던 드라마 ‘미생’을 보고 국민들은 그래도 희망을 얘기했다. 아직 미생이지만 곧 완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1년여 만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영화 ‘오피스’에서 희망은 없고 분노만이 가득했다. 노사정이 대타협을 이뤘다는 소식 이후 얼마나 더 많은 착실한 직원들이 ‘쓰다 버려질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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