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찬 (토지+자유연구소 통일북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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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련은 지난 7월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정·관·학·경제계 등 각계 인사 120여명이 모인 가운데 남북경제교류 세미나를 개최했다. [통일뉴스 자료사진] |
경제위기를 의식한 전경련, 새로운 대북 경협 원칙 발표
북한을 상생의 동반자로 대하려는 인식 전환이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으로부터 나왔다. 전경련은 지난 7월 15일 “남북경제협력의 뉴 패러다임과 경제교류 활성화 방안”이라는 큰 주제로 남북경제교류 세미나를 개최했다. 전경련이 20년 만에 남북경협 원칙을 수정한 것이라는 발표 및 보도가 이어졌다. 핵심 원칙은 ① 남북한 당국 간 대화의 진전과 조화, ② 남북 상호이익(신설), ③ 북한 주도 북한경제개발(신설), ④ 남북한 산업 장점 결합 산업구조 구축, ⑤ 동북아경제권 형성을 위한 주변국 참여와 지지 확보(신설) 등 5가지였다. 그동안의 경협 원칙이 ‘일방적 지원과 압박’이었다면, 새로운 원칙은 ‘북한의 시장 경제화에 입각한 자기주도적 경제개발’ 및 ‘남북한 산업의 장점 보완·발전’을 핵심으로 한다.
전경련이 20년 만에 남북경협 원칙을 수정했다고 하는데, 그 배경이 궁금하다. 전경련이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중국이 G2로 부상했고, 둘째, 북·중·러 접경지역 개발이 이뤄지고 있으며, 셋째, 북한에도 시장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전경련 보도자료, 2015.7.15). 이러한 외부적인 요인 외에도 남한 경제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 요인 또한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은 올해 4월에 “한국경제 3% 성장, 위기 징후”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한은의 경제전망치(2015년 4월)에 기초하여 한국의 경제성장률(3.1%)이 금융위기 이후에 세계성장률(3.4%)에도 미치는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았다. 심지어 ‘일본화Japanization’라는 용어까지 쓰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저성장・저물가(디플레이션), 생산・투자활동 위축, 저물가・저소비 등 20년 전 일본과 닮은꼴의 징후들이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경련이 남북 경협 원칙을 전환한 본래 목적은 새로운 시장 개척이지만, 남북 경협은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고 새로운 차원의 평화체제를 이끌어 내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를 준다. 인지 과학자이자 진화 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교수(하버드대)가 인류 문명사에 나타난 인간의 폭력성의 변화과정을 탐구한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의 결론에서, 인간 내면의 선한 본성을 이끌어 내어 폭력을 감소시킨 외생적인 힘 중의 하나로 ‘상업’을 제시했다. 교역 상대가 살아있어야만 자기의 이익도 유지 내지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 악마화 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이다(핑커, 2014). 핑커가 제시한 ‘상업의 폭력 감소 가설’(이하, 경협의 평화체제 추동 가설)은 전경련이 새롭게 발표한 경협 원칙이 더 높은 차원의 평화체제를 추동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지해준다.
그런데 핑커의 가설에서, 상대방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오늘날 미국과 중국 등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아프리카 등지에서 자원 확보 경쟁을 벌이고 시장을 개척하면서 해당 국민들의 상황이 더 악화되고 각종 국제 갈등이 유발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경협 그 자체가 평화체제를 추동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관건은 ‘어떻게’ 경협을 펼칠 것인가이다.
‘남북경협 신5대 원칙과 7대 전략과제’가 주는 우려
전경련이 발표한 신5대 원칙과 7대 전략과제는 북한을 경제성장의 동등한 파트너로 인식한다는 점, 그리고 북한의 주도적인 경제성장을 중요한 원칙으로 정했다는 점은 그 자체로도 큰 진전일 뿐만 아니라, 통일방안에 주는 의미 또한 크다. 전경련이 제시한 새로운 경협 패러다임이 급작스런 흡수통일이 아닌 점진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북경협 신5대 원칙과 7대 전략과제에 우려되는 점들은 없을까? 이번 세미나에서 처음 발표한 최수영(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북경협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4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중에서 두 가지는 북한의 자원 및 토지 활용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첫째 패러다임인 ‘북한경제의 자생력 강화’ 하위에 ‘지하자원 공동 개발 및 자원가공 산업 육성을 통한 산업화 자본 축적’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둘째 패러다임인 ‘북한경제발전을 위한 개발협력’ 하위에 경제특구 개발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한국의 성장 경험과 지식을 북한지역 개발협력에 접목시키려는 내용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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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에서 주제발표자로 나선 최수영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제시한 남북경협의 전략적 과제. [자료-최수영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두 번째 발표자인 곽강수(포스코경영연구원 글로벌연구센터장) 역시 같은 맥락에서 북한이 가진 잠재력으로 ‘원가 경쟁력’과 ‘풍부한 지하자원’에 주목하고 있다. 먼저 아시아 도시 생산직 근로자 연간 임금(실지급액)을 비교하며, 북한의 개성공단이 1,540달러로, 프놈펜(1,424달러)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수준임을 보였다. 그리고 경제특구 지정을 통해 우대조건을 제공받게 되면 기업소득세, 토지분양가 등에서 우위를 보인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북한 지하자원의 전체 잠재가치가 7000-9000조원으로 추정된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해, 세계 상위 수준의 광물자원 매장량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들을 볼 때, 동반성장을 겨냥하는 새로운 차원의 남북경협은 사실상 남한의 자본이 북한의 공유자원(토지, 지하자원 등)을 ‘어떻게’ 소유 및 사용하는지에 크게 의존한다.
본고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 및 기업 전략에 대한 한계와 문제점을 자세하게 다루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 그동안 전개된 자본에 의한 ‘공유자원 사유화’ 개발방식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정의하는 ‘공유자원 사유화 모델’이란 외생 자본이 토지와 자연자원, 광물자원 등 ‘천연’ 공유자원을 사유화(독점)하고, 해당 정부로부터 규제 완화, 조세 및 부담금 완화 등의 혜택을 제공받아, 지대추구(rent-seeking)를 통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개발방식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유화’는, 사유재산권을 설정하지 못하더라도 특권적인 위치를 활용하여 경제지대(economic rent)를 사유화하는 것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조성찬, 2015). 한 경제체가 공유자원 사유화 모델을 활용하려는 외생 자본에 의존하여 경제발전을 도모할 경우 그러한 경제체는 역설적으로 특권이익을 향유하는 계층과 소외되는 계층이 형성되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게 된다.
마찬가지로 남북한 동반성장 또는 상생이라는 철학에 기초한 신5대 원칙과 7대 전략과제가 ‘공유자원 사유화 모델’에 의존할 경우 ‘경협의 평화체제 추동 가설’은 역설적인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물론 전경련이 세미나를 통해 직접적으로 ‘공유자원 사유화 모델’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곽강수의 발표에서 보인 북한에 대한 관점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포스코그룹의 통일준비 사례로 제시한 중국 훈춘 물류산업단지나, 7대 전략과제 중 3째에 해당하는 개성공단에서도 엿보인다. 두 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은 저렴한 토지비용을 부담하며 장기 임차하고 있다. 그런데 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의 토지재산권 구조를 보면, 훈춘 물류산업단지는 중국의 경제여건상 추후에 토지사용권을 매각하고 큰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는 구조이다. 개성공단은 아직까지 시세차익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이지만, 지나치게 저렴한 부지이용료를 납부하고 있어 동반성장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경협 구조를 보이고 있다. 공단에 진출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자원개발에 진출하는 기업에 의해서도 광물자원의 투기적인 개발을 예상할 수 있다.
북한을 혁신적인 상생경제의 실험장으로 인식해야
저렴한 노동과 풍부한 자원 및 지경학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는 북한과, 기술 및 자본이 풍부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남한의 자본이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은 지하자원 개발권을 헐값에 넘기거나, 토지사용을 헐값에 허용하지 않으면서 남한 기업과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 대신 북한은 남측 기업이 요구하는 예측가능한 국제적인 수준의 투자관련 법률 체계 등을 구축해야 한다.
필자는 그동안 북한이 남한에게 남은 마지막 블루 오션(blue ocean)이라고 강조했었다. 이는 남북한 간 경협이 활성화되어 경협이라는 레버리지를 통해 군사적 긴장감이 해소되고 평화체제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전략적인 사고의 결과였다. 다행인지 아닌지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전경련의 발표는 북한을 블루 오션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만약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정작 북한에게는 블루 오션이 아니라면 어찌할까? 아직 그럴 여지는 높지 않지만, 북한에 투자하려는 남한의 자본이 내적 관성에 따라 ‘공유자원 사유화 모델’을 요구할 경우 북한에게 남한의 자본은 또 다른 경제적 침략자로 인식될 수 있다. 이제는 남한의 자본과 기업이 북한을 마지막 남은 블루 오션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뛰어 넘어, 북한을 혁신적인 상생경제의 실험장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핑커가 제시한 ‘경협의 평화체제 추동 가설’이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조성찬 (토지+자유 연구소 통일북한센터장)
중국인민대학교 공공관리학원 토지관리학과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공저인「중국의 토지개혁 경험(부제: 북한 토지개혁의 거울)」(한울, 2011.6.),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평사리, 2012.1.)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중국 토지연조제 실험이 북한 경제특구 공공토지임대제에 주는 시사점”, 『한중사회과학연구』(KCI, 2012년 1월, 통권 22호)와 “Introducing Property Tax in China as an Alternative Financing Source”, Land Use Planning(SSCI) 38(2014) 등이 있다.
현재 토지+자유연구소 통일북한센터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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