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시티즌포>의 한 장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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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활동비가) 투명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말
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기억 상실증이 하루 이틀 사이에 치료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되짚을 건 되짚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당 대표 시절이던 불과 10년 전, 국정원의 특수 활동비는 지금과 정반대 상황에 놓였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야당인 한나라당이 공개와 감시 강화를 요구했다.
이런 공방만 놓고 봐도, 쉽사리 예상 가능하지 않은가. 국정원이 그간 얼마나 정권에 충성(?)하고, 해외 공작이 아닌 국내 공작에 열을 올려 왔을지를.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비호와 공방이 난무할 순 없다.
이대로는 놔둘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목도하고, 반환점을 도는 사이 우리는 본의 아니게 국정원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너무나 잘 알게 돼버렸다. 댓글이나 달고, (국내 누리꾼을 겨냥해) 사이버 공작을 하고, 가짜 간첩을 생산하고, 국민을 상대로 해킹을 일삼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 국정원이 막대한 특수 활동비를 지급받아야 할 권리? '수틀리면 종북'과 같은 케케묵은 논리를 들이대는 그들이 해외 정보를 다루고 대북 첩보를 관리하는 등 본연의 임무만 충실했다면 어땠을까. 비밀리에 움직여야 마땅한 정보 조직(이라고 알고는 있는) 국정원을 두고, 10여 년 전과 정확히 여야만 바뀐 논란이 벌어질 일이 있었겠는가.
에드워드 스노든, 카메라 앞에 서다
▲ 영화 <시티즌포>의 에드워드 스노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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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스노든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스노든 시대'다. 독일 메르켈 총리를 감청한 NSA(미 국가 안보국)의 활약(?)상까지 폭로되며, 정보 윤리와 인권, 국가 이익 간의 상충이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된 지 벌써 2년 여가 흘렀다. 그 사이 미 정보 기관들의 개혁은 답보 상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리 국정원이 '쟤네도 저렇게 시민 감청 프로그램을 어마어마하게 돌렸잖느냐'라며 핑계를 댈까 무섭다.
이 와중에, '전 세계 1등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전을 벌였던 상황과 내막을 상세히 조명한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지난 8월 30일 폐막한 제12회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IDF 2015) 상영작인 <시티즌포>가 바로 그 작품이다.
실제 스노든이 카메라 앞에 선 '주연'작인 이 다큐는 미국 정부가 범죄자로 몰았던 그가 어떻게 전 세계를 들썩인 내부 고발자가 됐는지를 긴장감 있게 다룬다. 거기서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것은 미국 정보국이 왜 그토록 기록적이고 무차별적인 시민 감청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기본적인 전후 맥락이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라크 전을 다룬 <나의 조국, 나의 조국>을 찍었다는 이유로 미 정부로부터 감시를 당하고 억류와 심문을 당했던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 관타나모와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 <서약(The Oath)>으로 선댄스와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유수의 국제 영화제에 초청받았던 그에게 은밀한 익명 메일이 도착한다. 자신을 '정보 기관의 상급자'라고 소개한 '시티즌포'로부터.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가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기 한참 전, 스노든은 로라 포이트라스에게 먼저 익명의 이메일로 접촉을 시도했다. 이후 아주 조심스레 정보를 교환하는 동시에 영국 <가디언> 기자인 글렌 그린월드와 접선에 성공한다. 미 정보 기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자기 검열은 접촉을 더디게 만들었지만, 결국 세상을 뒤흔든 폭로는 스노든과 영화 감독, 그리고 기자, 세 사람이 만난 홍콩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바마 정부의 약속 불이행,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 영화 <시티즌포>의 한 장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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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책의 변화가 있어야지만 국가(의 불법 행위)를 제지하고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단순한 반대는 의미가 없어요. 아주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죠. 어떤 뛰어난 개인이나 집단이 가능한 수단과 능력을 동원해도 힘들어요. 그리고 드론 공격의 강화를 예로 들 수 있듯, 오바마 행정부가 처음의 약속을 배신하고 계속 이탈해 가는 걸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죠."
홍콩의 한 호텔에서 만난 스노든은 행동에 나선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NSA의 세계 최대의 통신 감청 시설 건설, NSA 국장의 청문회, NSA의 전설적인 암호 수학자의 윌리엄 비니의 강연, NSA의 통신사 AT&T 도청 관련 재판 등 미 정보 기관의 대 시민 감청과 관련한 정황들을 차곡차곡 설명하던 영화는 스노든의 일주일간의 인터뷰와 그 이후를 직접 카메라에 담으면서 전개에 급물살을 탄다.
이미 스노든의 책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가 2014년 출간된 마당이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그것도 감독이 직접 폭로 전에 연루된 작품으로 만나는 스노든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생생하다. 영화는 글렌의 기사가 CNN을 비롯해 전 세계에 타전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긴박한 상황과 스노든의 상황과 심리, 그리고 폭로 이후의 변화상을 냉정하고 묵직하게 담아낸다.
여기서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것은 냉철한 '이성'과 그럼에도 지켜야 할 '당위'다. 스노든의 미세한 심정적 떨림을 놓치지 않는 감독의 카메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냉정을 잃지 않는다. '스노든은 왜?'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가져가는 동시에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국제적인 스케일로 폭로 이후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오바마 정부의 모르쇠와 정보 기관의 좁혀오는 봉쇄망과 방해 공작은 이 다큐를 더욱 긴장감 넘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 같은 상황을 모두 예상하고 있던 스노든은 이렇게 말한다.
"투옥된다거나 다른 안 좋은 결과가 나올지라도, 저나 다른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자유, 지적인 자유가 위협받고 축소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다시 말하지만, 자기 희생이 아니에요. 선한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입니다."
홍콩 인권 단체에 정치적 난민 신청을 하고도, 추방을 걱정하며 국제 미아 신세를 거론하는 스노든. 위키리스크의 줄리안 어샌지가 그를 돕겠다고 나서지만, 잘 알려졌듯 그는 여전히 도망자 신세다. 며칠 전엔 러시아 망명설이 떠돌았다. 그를 범죄자 취급하고, 궁지에 내몰면 내몰수록, 9·11 테러 이후 국가 안보를 무기로 불법적인 정보 활동을 강화해온 미 정부는 정보 기관의 대시민 감청을 자임하는 꼴이 된다. 이것이 과연 미국만의 문제일까. 스노든과 미국 내 그의 지지자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에 '9·11'이 있다면 한국엔 '종북'이 있다
▲ 지난 16일 오후 대법원 대법정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관련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상고심 선고가 진행되고 있다. | |
ⓒ 권우성 |
지난 2010년 국무총리실의 김종익씨 불법 사찰이 드러났을 때만 해도 충격적이지만, 그 연원은 그저 구습을 답습하는 이명박 정부의 독단일 것으로 여길 수도 있었다. 틀렸다. 이번 국정원 해킹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독단이 아닌 국정원의 주요 임무일지 모른다는 심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미국에게 9·11 테러가 있다면, 우리에겐 '종북'이 있다. 그러나 정보가 곧 권력인 시대, 국정원 불법 감청 사건은 스노든의 폭로가 고도로 정보화된 미국의 사례일 수만은 없다는 선전 포고와 다를 바 없었다. 문제시 되면, "대북 활동을 위해 필요하고 정당하다"는 변명이면 그만이다.
이에 한 술 더 떠, 정권과 여당은 걸핏하면 '종북'을 핑계 삼는 그 국정원의 활동을 보장하는 특수 활동비를 인정하고 두둔하는 중이다. 애꿎은 실무자만 자살로 몰아간 불법 감청 논란에도 아랑곳없이 말이다. 이건 불법과 정치 개입을 반복해도 처벌받고 단죄받지 않아 생긴 국정원의 관성이 문제일까, 그도 아니면 거듭돼 온 국정원의 전횡에 지친 국민의 내성이 문제일까. <시티즌포>에 등장한 한 암호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이렇게 개탄한다.
"이전에 자유와 자유권이라 부르던 것들을 이제는 사생활이라고들 한다. 동일한 관점에서, 이제 그 사생활은 사라졌다. 작금의 세대에서 진짜 우려되는 건, 이제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솔직히, <시티즌포>를 보며 다시 한 번 놀랐다. 스노든과 그의 협력자, 지지자들이 그렇게 부르르 떠는 자유와 자유권 침해에 대해 우리가 너무 둔감한 건 아니었는지. 이 문제를 야당이나 진보 진영의 정권 흠집 내기 정도로만 인식하는 국민이 있다면,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게 맞다. 권력이 개인을 감시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인간성을 얼마나 훼손하고 말살할 수 있는지를. 경험한 뒤에야 깨닫는 건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는 걸. 예컨대, 박근혜 대통령의 '2014년 4월 16일의 7시간'이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라면, 국정원의 해킹 행위야말로 심각한 자유권 훼손 행위라는 것을.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도, 총선 준비에 여념이 없는 여당도 이 <시티즌포>를 거울삼아 다시 숙고하기를 바란다. 정권은 바뀔 수 있다. 그리고 5년 뒤엔 또 선거가 있다. 국민에게 인정받고 결과를 뒤집으면 된다. 그게 민주주의다. 국정원을 선거에 이용하는 짓은 이제 좀 그만하자.
심각히 훼손된 자유권과 이에 주력하는 정보 기관을 되돌리는 건 엄청난 사회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진리에 가깝다. 스노든의 경고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안기며 작품성을 인정 받은, 그리고 오는 10월 개봉을 준비 중인 영화 <시티즌포>가 주는 교훈이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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