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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9일 화요일

“넋이나마 훨훨 날아 고향 땅으로 가시길”···박희성 선생 추도식 거행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4/10/29 [23:34]

▲ 비전향 장기수 박희성 선생 빈소. © 김영란 기자

“우리가 선생님이 만들고 싶은 세상 만들어가는 데 같이하자. 선생님이 고향 땅의 가족을 못 보고 먼저 가신 것은 슬프지만 우리가 (선생님) 유해 송환이라도 꼭 이루어내도록 같이 노력하자.”

29일 오후 7시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거행된 비전향 장기수 박희성 선생 추도식에서 이정태 양심수후원회 부회장이 호상 인사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박희성 선생과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함께 생활한 김영식, 양희철, 양원진 선생을 비롯해 통일운동의 원로들, 양심수후원회 회원, 진보당 관악구위원회 당원들을 비롯해 1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참석했다.

© 김영란 기자

추도식은 약력 소개, 추도사, 추모시 낭송, 박희성 선생께 드리는 편지, 추모 공연 그리고 헌화 등으로 진행됐다.

상임 장례위원장인 김혜순 양심수후원회 회장은 추모사에서 “선생님 살아생전 평생 염원이던 비전향 장기수 2차 송환을 이뤄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박희성 선생님의 구십 평생 고난의 시간을 무어라 위로할 수 있겠는가. 분단의 형극이 온몸에 실려 참으로 고통스러우셨다”라며 “이제 고통과 아픔 다 잊으시고 그리운 북녘 고향 땅으로 훨훨 날으시라. 사모님과 아들 동철 씨, 손자 손녀들 다 함께 만날 수 있으시길”이라면서 “선생님이 우리 곁에 오셔서, 양심수후원회 회원이 되셔서 참 행복했다. 그 추억 오래오래 기억하겠다”라고 마음을 밝혔다.

▲ 김혜순 양심수후원회 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 김영란 기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추도사에서 “혁명은 신념과 의리로 실현된다고 하는데 평생을 흔들림 없이 살아오신 선생님의 한생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으로 우러러보게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혁명가 박희성 선생님 영전에서 다짐한다. 선생님께서 목숨 바쳐 지켜내신 그 자리에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싸워 당신이 못다 이룬 꿈, 우리가 쟁취해 내겠다”라며 “자주통일과 진보 민중의 새로운 시대를 실현해서 북녘땅에 계신 ‘동철’ 아드님께 아버님의 당당하고 고귀했던 한생을 온전히 전하겠다”라고 다짐을 밝혔다.

박희성 선생은 갓 돌을 넘긴 아들을 북에 두고 왔다. 고향으로 돌아가 아들을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소식하며 술은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고 매일 운동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 시간은 60여 년이 넘는다. 박희성 선생이 두고 온 아들 박동철 씨는 2021년 환갑이었다.

평양시민 김련희 씨는 “박희성 선생님의 한결같은 소원은 ‘나에겐 시간이 없다.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라는 것”이라면서 “2차 송환을 희망했던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 33명 중에 이제 5명이 남으셨다. 남녘 형제 여러분, 선생님들 고향으로 보내주면 안 되는가”라고 호소했다.

추도식에서는 세 편의 추모시 낭송이 있었다.

박희성 선생과 함께 생활했던 양희철 선생의 추모시 「참 좋으신 사람」을 이경원 양심수후원회 이사가 대독했으며, 김태철 씨는 박희성 선생의 삶을 기록한 추모시 「고향으로 가리라」를 낭송했다.

황선 평화이음 이사는 박희성 선생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담은 추모시 「사랑」을 낭송했다. (기사 하단에 전문 게재)

▲ 박희성 선생의 약력과 생의 삶을 기록한 추모시「고향으로 가리라」. © 김영란 기자

박희성 선생과 인연이 있었던 이수경 씨는 편지를 낭독했다.

이수경 씨는 편지에서 “선생님을 처음 뵌 게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선생님과의 인사는 항상 기억에 남았다. 힘 있게 두 손을 맞잡은 악수가 인상적이었다”라며 “조용조용 말씀하시고 많은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조국통일에 대한 의지는 누구보다 강고했다. 늘 말보다는 실천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라고 선생을 떠올렸다.

이어 “살아생전 조국 땅을 밟아 가족의 품으로 가시길 간절히 바랐다. 이제는 넋이나마 훨훨 날아 고향 땅으로 가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노래극단 ‘희망새’는 노래 「심장 속에 남는 사람」과 박희성 선생이 생전 가장 좋아했던 노래 「머나먼 고향」을 부르며 선생의 영면을 기원했다.

참가자들이 박희성 선생 영전에 헌화한 뒤에 추도식을 마쳤다.

발인은 30일 오전 8시 20분이며, 장지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있는 금선사이다.

© 김영란 기자

▲ 추도사를 하는 한충목 상임공동대표와 평양시민 김련희 씨. © 김영란 기자

▲ 추모시를 낭송하는 김태철 씨와 황선 이사. © 김영란 기자

▲ 노래극단 ‘희망새’의 추모 공연. ©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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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희철 선생이 생전 박희성 선생이 좋아했던 노래 「머나먼 고향」을 부르고 있다. ©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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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시] 사랑

-황선

첫 돌을 갓 지났을 때였다.

보고 돌아서도 또 보고픈 것이

부모의 마음이란 걸

아비는 너를 낳고야 알았다.

그렇게 강보에 쌓인 너를 두고

바다로 나설 때에 내 심장은

높뛰었다.

열 살 나이에 철모르게 뛰던 날에도

나라를 찾은 것이 그렇게 좋더라.

너에게도 그런 행복을 주고 싶었다.

분단된 나라가 아니라

외세에 신음하는 나라가 아니라

전쟁으로 고통받는 나라가 아니라

30년 감옥을 견디게 한 것은

아버지의 이름만으로는 줄 수 없는

참된 행복을 주고픈 그 마음이었다.

그 길이 이렇게 긴 이별일 줄 몰랐지만,

그 길이 영영 이별하는 길인 줄 알았어도

나는 떠났을 것이다.

그것이 너와 네 어머니를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우리의 방법이었다.

십대에 문을 나서 80년

아직도 돌아가지 못한 집

하루하루 그리워

사향가를 부른 나날

그러나 그리움은 사랑이다.

사랑은 책임이다.

죽는 날까지 진심으로 사랑했으니

아들아,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지금,

고마운 조국 고향하늘을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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