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맛있는 우리말 [326] 적당히 좀 해!
강의를 지나치게 오래 하면 “적당히 좀 하지” “적당히 끝냅시다” 하고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끊어졌을 때 언론에 대문짝만 하게 나온 기사 제목이 있다. ‘한국의 적당주의가 낳은 참사!’라고 했다. 그 이후 ‘적당히’ 혹은 ‘적당주의’라고 하면 ‘대충대충’이라는 용어와 동일시하게 되었다.
적당히 했다면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는 무너지지 않았다. 적당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적당(適當)하다·들어맞거나 어울리도록 알맞다’이다. 그러므로 ‘적당하다’는 ‘정확하게 합당하다’는 의미가 핵심이다. 비슷한 말로는 ‘합당하다’ ‘적절하다’ ‘적합하다’ ‘알맞다’ ‘마땅하다’ 등이 있다. ‘이곳은 경관이 좋아 전원주택 용도로 적당하다’는 말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서울에 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적당하다’의 의미를 ‘대충 통할 수 있을 만큼만 요령이 있다’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사전에서는 ‘대충 요령있게’와 같은 의미로 쓴다고 했지만 바람직한 해석은 아니다. 한자를 보아도 적(適·당연하다)과 당(當·마땅히 ~~하여야 한다)이 만난 것으로 여기에 ‘대충’이라는 의미는 없다.
중부대 한국어학과 명예교수·한국어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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