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감시네트워크 “국정원 내부 승인 거치면 불법 아니냐, 법원 통해 위법성 확인받을 것”
- 남소연 기자 nsy@vop.co.kr
- 발행 2024-10-23 16:45:36
- 수정 2024-10-23 23:52:2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7개 단체가 구성한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23일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직원 이 모 씨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이 같은 소송에 나선다고 밝혔다. 원고는 국정원 직원이 집중 사찰한 주지은 씨와 그 가족들,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과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 김민웅 대표 등 12명이다.
이번 소송 대리인단 단장을 맡은 백민 변호사는 “국정원은 올해 4.10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에 자주 참가하는 원고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찰을 진행했다”며 “‘북한과 연계될 것’이라는 막연한 의심만으로 원고들의 사생활과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찰을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백 변호사는 “주지은 씨는 평범한 가정주부이고 라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근무를 하는 분인데, 국정원의 사찰 대상이 돼서 같이 근무하는 가게 동료들, 남편과 초등학생 딸까지 국정원의 감시를 받아왔다”며 “국정원은 주 씨의 집 주소지로 발송된 우편물을 개봉해 본 사실이 있고, 주 씨가 길을 걷다 휴대폰을 보는 모습에 대해 ‘지령 수수 중’이라고 보고하는 식이다. 황당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진연 회원 7명은 대학 선배였던 주 씨와 몇 번 만나고 차를 마셨다는 이유로 역시 사찰 대상이 돼서, 몰래 촬영 당했다”며 “대진연 학생들이 올해 3월에 ‘이토 히로부미’ 망언을 했던 성일종 의원 사퇴를 요구하기 위해 국민의힘 당사를 방문했던 일은 ‘북한이 배후조정했다’는 식으로 국정원에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김민웅 대표에 대해서도 “북한과의 연계가 의심된다는 막연한 이유로 출·입국하는 비행기에 관한 정보까지 수집됐다”고 전했다.
국정원 직원의 휴대전화 속에는 이 같은 증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피해자들은 우연히 자신들을 미행하는 국정원 직원을 발견하고 그의 휴대전화를 확인했는데, 그 속에서 민간인 다수를 불법 사찰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과 메시지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례로, 국정원 직원들은 주 씨와 후배들이 카페에서 만나 대화하는 모습을 몰래 촬영한 뒤 “사상학습일 수 있겠습니다”, “공개 장소에서 대놓고 하네”라고 몰아가거나, “그런 식으로 보고서를 써도 모양이 나올 듯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국정원 직원이 저장한 사진에는 피해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모습 등도 담겨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리인단에 소속된 민변 하주희 변호사는 국정원의 사찰 행위가 국정원법의 개정 취지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 변호사는 “개정 국정원법의 주요 내용은 정보 수집 목적에 적합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도 직무 외의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정당이나 정치 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 활동에 관여하는 행위에 대한 정보 수집 등을 일체 금지했다”며 “그럼에도 국정원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민간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정원의 사찰 대상이 된 주 씨는 왜 자신이 사찰을 당한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국정원이 이에 대해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불법사찰 논란이 일자, 구체적인 근거 없이 ‘북한 문화교류국과 연계 혐의가 의심된다’는 내용만 언론에 흘릴 뿐이었다. 주 씨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들은 주 씨가 20여년 전 대학생 시절 한 동아리 활동까지 문제 삼는 대화를 했다고 한다.
경찰 역시 국정원 직원을 고소한 사건을 불송치하며 “정보수집 활동을 했던 합리적인 근거, 사유가 확인된다”고 할 뿐, 어떤 근거인지는 제시하지 않았다. 아울러 “이러한 정보수집 활동은 국정원 내부 위원회의 심사, 의결 절차를 거쳐 승인을 득한 다음 착수한 것으로서, 미행, 촬영 행위의 심사, 착수, 실행에 있어 절차적인 하자는 없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장동엽 행정감시센터 선임간사는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국정원 내부에서 불법적인 행위를 결정하면, 절차적인 문제가 없으니까 불법행위의 위법성이 사라지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보수집 대상이라고 규정해 버리고 나면, 정보 수집 기간의 문제나 정보 수집 범위에 대해서도 전혀 제한 없이 지인의 지인까지 다 불법 사찰할 수 있도록 하는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이 사건의 경우 당사자들이 현장을 잡았기 때문에 불법 사찰의 사례가 드러난 것인데, 그러지 않을 경우 이 사찰의 정보들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해 피해 당사자들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피해자들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강력 대응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주 씨는 “경찰은 국정원의 불법사찰은 물론 사찰의 협조자였던 경찰에게 향응을 제공한 것까지 모두 ‘혐의없음’으로 처리했다”며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국가와 국정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해나갈 것이다. 더 이상 이런 국가 폭력에 의해 선량한 시민들의 일상이 파괴되는 경우가 없어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대진연 회원인 김수형 씨는 “윤석열 정권에 반대하는,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종북 세력으로 몰아 와해시키는 큰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국정원 직원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내용 중, ‘윗선에서 대진연 학생들이 선배(주 씨)와 접촉하는 것을 북한과의 연계성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는 내용이 발각된 바 있다”며 “이는 이번 불법사찰의 목적이 선배를 간첩으로 둔갑시켜 대진연을 북한과 연계시키려는 공안사건 조작 시도였다는 걸 증명한다”고 날을 세웠다.
특히 김 씨는 최근 진보단체를 대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강제수사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최근 민중민주당, 반일행동 압수수색, 진보단체 활동가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혐의의 압수수색, 촛불행동 회원 명단 압수수색, 그리고 어제 시판 중인 책과 100여편의 인터넷 기사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을 들먹이며 언론사 ‘자주시보’ 전현직 기자 4명에 대한 압수수색 등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며 “보수세력이 지난 역사 속에서 늘 그래왔듯, 이번 민간인 사찰도 현 정권이 자신들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속셈으로 공안기관을 앞세워 자신에 비판적이거나 진보적 활동을 하는 이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아서 위축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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