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4-10-18 06:30:30
御宅 お宅 おたく オタク
오덕후? 五德侯?
일본어 ‘오타쿠’가 우리나라에서 ‘오덕후’로 자리잡았다. 이 기발한 신조 한자어는 원어 발음에 근접하면서 새로운 의미까지 담아냈다. ‘창조적 오역’이란 개념이 있을 만큼 문명사에서 번역이란 늘 일정 부분 왜곡되고 더하거나 빠지기도 하는 역설과 파격의 드라마였다. 지구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면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오늘날 그런 현상이 줄었을 뿐이다.
일본에선 보통 오타쿠를 한자 없이 가타카나로 표기한다. 원래 ‘御宅’, 즉 ‘집’의 높임말이었다. 우리말 ‘댁’에 해당한다. 존칭 내지 미칭의 접두사 御는 뒤의 명사가 일본 토속어냐 한자어냐에 따라 각각 ‘오’ 내지 ‘고’로 읽힌다. 우리말에도 존칭 접두사 御가 있지만 ‘어명’ ‘어부인’ 정도다. 우리에겐 어부인보다 영(令)부인이 더 일반적인데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이라 해서 이마저 잘 안 쓰게 됐다.
‘오타쿠’라는 말은 1983년 일본의 칼럼니스트 나카모리 아키오(中森明夫·1960~)가 ‘코믹 마켓’에 모여든 SF·만화·애니메이션 등 애호가들이 서로를 ‘오타쿠’로 부르며 교류하는 모습을 전하면서 오타쿠족(族)으로 칭한 게 기원이다. 코믹마켓(일명 코미케)이란 1975년 12월 도쿄에서 만화 연구회·동아리 연합 행사로 출발해 오늘날 연 2회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관련 이벤트다. 이틀간 약 50만 명 이상이 모이며 만화작가의 등용문이기도 하다.
오타쿠 문화가 1980년대부터 매스컴을 타면서 청년 문화의 하나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나 시련도 있었다. 1989년 도쿄 연속 여아 유괴·살인범이 다량의 만화책·애니메이션 비디오테이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자 오타쿠=소시오패스처럼 인식된 것이다. 오타쿠가 한동안 사회성 결여·대인 소통능력 부재와 동의어처럼 여겨졌으나 인터넷 보급과 함께 점차 팬·매니어의 다른 표현으로 복권됐다. 산업 효과를 낳으면서 오타쿠 문화의 서브컬처(하급문화) 이미지 또한 옅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오타쿠는 특정 분야에 심취한 결과 나름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五德侯’가 됐다. 다섯 가지 미덕을 갖춘 귀족쯤 되겠다. ‘입덕’(오덕후로 입문), ‘밀덕’(military·군사학이나 무기 관련 덕후) 등의 표현이 널리 쓰인다. ‘시덕후’(시계 오덕후)도 있는데 또 어떤 게 있는지, 새롭게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다.
반면 중화권에서 오타쿠는 아동적 취미를 가진 어른을 가리키는 ‘단커쭈’(蛋殼族)로 옮겨졌다. 중국 염장음식에 계란·오리알을 삭힌 셴단(鹽蛋)이 있는데 여기에 ‘초인’(超人)을 붙인 게 일본 만화캐릭터 울트라맨이다. 알모양의 머리를 한 슈퍼맨, 그래서 셴단의 ‘단’과 오타쿠의 끝발음을 연상시키는 ‘커’의 조합 단커쭈가 됐다. 비하의 어감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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