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57
‘쇄신 요구’ 당대표와 사실상 결별
거센 비판 여론은 ‘정치 공세’ 일축
관리·통합·대응 등 리더십 결여
임기단축개헌·탈당, 유일한 해법
- 수정 2024-10-27 08:49
- 등록 2024-10-27 07:30
윤석열 대통령은 1960년생입니다. 검사 시절부터 동갑내기 술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성품이 맑은 어느 술친구가 윤석열 검사에게 “너는 정치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윤석열 검사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술친구는 “너는 남의 말을 안 듣잖냐. 그런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윤석열 검사는 술친구의 충고를 듣지 않고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임기 절반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지금 잘하고 있나요? 10월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면담은 우리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결별을 시작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권이 친윤석열과 친한동훈으로 분열하기 시작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한동훈 대표가 요구한 대통령실 인적 쇄신, 김건희 여사 대외 활동 중단, 김건희 여사 각종 의혹에 대한 설명과 해명, 특별감찰관 임명 등은 뭐 그리 특별한 요구가 아닙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한 민심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 것뿐입니다.
10월18일 공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명품 가방 수수, 주가조작 등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응답자의 63%가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필요 없다”는 26%에 불과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공개 활동에 대해서는 67%가 “줄여야 한다”고 했고, “현재대로가 적당하다”는 응답은 겨우 19%였습니다.
10월24일 공개한 전국지표조사에서는 김건희 여사 대외 활동 중단에 대해 73%가 “동의한다”, 20%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바로 이런 여론을 ‘압도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민심과 싸우려는 대통령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 대표의 요구를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면담 다음날 아침 대통령실 관계자가 ‘백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자세히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의혹에 대해서는 대응을 제대로 하고 싶어도, 대통령실이 계속 싸우는 게 맞느냐. 대통령실에서 입장을 내면 당에서도 같이 싸워주면 좋겠다. 말이 안 되는 공격을 하면 당에서도 적극적으로 같이 공격을 해주면 좋겠다. 정치 공세에는 좀 대응을 해줘야 하지 않나.”
김건희 여사 관련 여러 의혹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어처구니없는 의혹’, ‘말이 안 되는 공격’, ‘정치 공세’라고 확신한다는 뜻입니다.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한동훈 대표가 면담 결과를 브리핑하지 못하고, 다음날 오전 일정을 취소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철저히 무시당한 한동훈 대표는 직접 대국민 호소에 나섰습니다. 10월23일 확대당직자회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범죄 혐의에 대한 재판 결과들이 11월15일부터 나온다.”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되겠는가.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국민들의 요구를 해소한 상태여야만 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김 여사 관련 이슈들이 모든 국민들이 모이면 얘기하는 불만의 1순위라면, 마치 오멜라스를 떠나듯이 더불어민주당을 떠나는 민심이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오멜라스는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로 ‘위선적 낙원’을 의미합니다. 민주당을 떠나는 사람들을 국민의힘이 붙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동훈 대표는 특별감찰관을 북한인권재단 이사와 연계하지 않고 추천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북한 인권 문제는 헌법적 가치이자 당의 정체성과 연결된 문제”라고 했습니다. 사실상 반대입니다. 특별감찰관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갈등은 이처럼 거의 내전 수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한동훈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거나, 윤석열 대통령 지시를 받은 의원들이 한동훈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사태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도대체 지금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골육상쟁하는 이유가 뭘까요? 골육상쟁의 결과는 공멸입니다. 그런데도 싸우는 이유가 뭘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부실한 정치적 리더십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마디로 자격이 없습니다. 대통령의 자격도 없고, 정치인의 자격도 없습니다. 정치인은 민심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제가 너무 심한가요?
외교·안보 이슈로 비켜 가려는 꼼수?
김영삼 대통령의 공보수석과 환경부 장관, 한나라당 의원을 지낸 윤여준 전 장관이 2011년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문제는 당선 이후의 통치력이다!’가 책의 부제입니다.
“이 책의 주제인 스테이트크래프트는 ‘국가를 다스리는 실천지’로서, 특히 ‘근대 국민국가’라는 특수 유형의 정치 공동체를 창설·유지·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집단적 결정’과 그 ‘실행’을 관리·감독하는 실천적 능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헌법적 기본 원리를 포함한 국가 제도의 관리, 국민적 일체감 형성 및 통합의 유지, 대내외 각종 현안에 대응할 수 있는 올바른 정책의 수립 및 실행, 여러 정치 세력 및 인물 관리 등 ‘국가라는 법인체의 행위자로서 요구되는 각종 능력’이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대통령의 자격’을 갖춘 사람일까요? 여러분이 한번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윤여준 전 장관은 특히 “(정치인들이) 자기편에 대해서는 선의라고 하는 관대한 심정윤리를 적용하고, 상대편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 규정을 들이댈 뿐 아니라 심지어 악의를 갖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보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래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툭하면 자신을 반대하는 국민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딱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한동훈 대표에 대해 “‘집권 여당 대표’라는 정체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러다가 머지않아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를 반국가 세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최근 여권 내분의 원인은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언제까지 김건희 여사 문제를 끌고 가려는 것일까요? 윤석열 대통령 머릿속에는 어떤 그림이 들어 있는 것일까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추경호 원내대표는 국회 국정감사를 마치고 의원총회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국정감사는 11월1일 끝납니다. 11월3일 이후 열리는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특별감찰관 추천 여부를 결정할 것입니다. 11월 초에는 제2부속실 윤곽도 드러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면담 때 정진석 비서실장이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11월10일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 반환점입니다. 기자회견이나 국정 설명회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유감 표명이나 사과로 민심을 달래려 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외교·안보에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11월에 외교·안보 분야의 대형 사건들이 불거지면서 김건희 여사 문제를 비켜 갈 수 있다고 기대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북한의 러시아 파병의 파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월24일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갖고 있었는데, 이 원칙을 더 유연하게 북한군 활동 여하에 따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무섭습니다.
11월5일(현지시각)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집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당분간 관련 뉴스가 쏟아질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게는 호재입니다. 11월15일과 25일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 1심 선고가 잇따라 내려집니다. 이재명 대표의 불행은 윤석열 대통령의 행복입니다.
자, 어떻습니까?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이처럼 ‘믿는 구석’이 따로 있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정국이 윤석열 대통령의 희망대로 흘러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김건희 특검’ 재의결 땐 탄핵도 가시권
마무리하겠습니다. 시간은 윤석열 대통령 편일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명태균씨의 입을 통해 쏟아진 김건희 여사 국정 농단 의혹이 하나씩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11월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세번째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의결할 예정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무기명투표로 진행되는 국회 재의결에서 이번에는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합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 재의결되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도 가시권에 들어온다고 봐야 합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단축 개헌을 제안하고 국민의힘을 탈당한 뒤 국정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하면 됩니다.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니 스스로 임기를 일부 반납하고 대통령직에서 일찍 내려오는 것입니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 것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이런 제안에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쫓겨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능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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