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BTS도 쓴 수어, “표정이 완성합니다”
- 강주영
- 입력 2022.04.19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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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농아인협회 수어 영상 촬영장 가다
코로나 이후 한국수어 관심 ↑
‘수어온’ 어플 올해 초 첫 제작
“실제 농인 삶 변화로 이어지길”
최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코다(CODA)’는 수어를 주된 언어로 쓰는 농인가족의 이야기를 담아 3관왕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에서 열연한 농인 배우 트로이 코처에게 남우조연상을 전달한 윤여정 배우는 수어로 인사를 건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강릉 출신 김진유 감독의 영화‘나는보리’ 역시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 의 이야기를 담아 호평받았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해 발표한 싱글곡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에서 수어 활용 안무로 희망을 전했고, 농인 예술인이 세운 ‘핸드스피크’의 수어 뮤직비디오는 10만뷰를 기록했다. 그만큼 한국수어는 최근 미디어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수어 통역사도 뉴스에 필수로 등장한다. 소수가 아닌 다수가 공유하는 언어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는 20일 장애인의날을 앞두고 한국수어 활성화와 강원지역 농아인 정보 공유를 위해 활동 중인 도농아인협회의 수어영상 촬영 현장을 찾았다.
“읍! 파! 슉! 푸∼우”
카메라 앞에 선 한 구연가가 초록색 크로마키 배경 앞에서 내는 소리다. 들리는 것은 이것이 전부. 도농아인협회의 ‘톡톡수어’ 촬영 현장이다. 이곳에서 소리는 중요하지 않다. 영상에도 소리가 들어가지 않는다. 한국어는 자막일 뿐, 중요한 것은 한국수어다. 긴 대본에 NG 컷도 여러번 난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 수어를 더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논의도 뜨겁다. 역시 말소리는 없다. 모두 한국수어로 대화한다.
‘톡톡수어’는 5분짜리 수어교육영상이다.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수어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영상이다. 2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수어 문장을 배운다. 공모전을 통해서 선정된 농인이 직접 겪은 이야기들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각 에피소드마다 상황 묘사를 위한 수어 문장이 5개씩 들어간다. 최근 에피소드에서는 문장 ‘비슷한 대답을 듣다’, ‘차량 충돌 사고가 나다’, ‘허리를 삐끗하다’ 등의 문장을 가르쳤다. 상황 묘사에 필요한 문장들을 통해 수어를 익힌다. 영어 입문할 때 필요한 생활영어와 같은 방식이다. ‘한국수어’가 농인들만의 언어가 아닌 모두가 배울 수 있는 언어임을 알 수 있는 현장이다.
이날 구연가로 출연한 구윤호 씨(29)는 농인이다. 그는 올해로 2년째 수어뉴스와 교육 영상제작에 함께 하고 있다. 그의 풍부한 표정은 배우 못지 않다. 커지거나 찡그리는 눈, 들쑥날쑥이다 웅크리는 어깨, 입 모양과 움직임까지. 손을 이용하는 언어라서 ‘수어’라 불리지만 감정과 의사전달의 많은 부분은 표정에 담긴다. 때로는 손 없이 표정만으로도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수어에서 표정이 60∼70%를 차지한다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뉴스 속 수어 통역사들의 표정이 풍부한 이유다. 예를 들면 ‘진짜?’는 ‘눈썹을 치켜올리는 것’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일명 ‘비수지신호’다. 마스크로 얼굴이 가려진 최근 2년여간, 농인들이 소통에 더욱 어려움을 겪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어 속도와 흐름, 수향(수어방향), 분류사(손이 대상물의 의미 범주를 표시하는 것) 등도 중요하다. 구 구연가는 “수향은 2명의 인물이 등장할 경우 어떤 역할인지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수어교육은 올들어 더욱 체계화되고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수어교육 영상들을 한 곳에 모은 수어영상 어플리케이션 ‘수어온’이 올해 초 만들어졌다. 농인뿐 아닌 청인들도 한국수어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김유진 강원도수어문화원 선임연구원은 “톡톡수어나 강원수어뉴스는 이전에도 만들었지만 필요할 때마다 검색해야 했다. 한 곳에서 수어영상을 볼 수 있길 바라며 앱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수어온에는 기초수어를 배울 수 있는 ‘톡톡수어’부터 뉴스영상물 ‘강원수어뉴스’, 복지·경제·정보 콘텐츠 ‘톡톡정보’ 등이 있다. 한국수어와 자막으로 이뤄진 영상이 꾸준히 올라간다.
구윤호 씨는 최근 수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와 사회적 인식개선이 농인 삶의 질에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받을 때 마스크를 쓴 채로 소통해야 해서 난감했던 경험도 있다. 여전히 장애인을 고려하지 못한 ‘소통’ 방식이 기본이 되는 현실이다. 농인들에게는 한국수어가 제1의 언어, 한국어가 제2의 언어인만큼 장애인을 이해하기 위한 비장애인들의 경험 확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구 구연가는 “모든 언어공부는 그 언어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수어도 마찬가지”라며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소통하고 서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길 바란다. 인식개선은 교육단계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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