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시작한 택배노동자 생활… 노동조합에 문외한이던 그가 대경지부장이 된 까닭은?
-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 발행 2022-04-03 16:15:50
- 수정 2022-04-03 16:58:47
‘택배’는 이제 단순한 ‘배달’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택배는 이제 마치 도로나 통신망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사회 기반시설처럼 여겨진다. 한국통합물류협회(KILA)가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21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택배 이용횟수는 70.3건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0년 1인당 25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1년 만에 2.8배나 증가한 것으로,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가구당 택배 서비스를 연간 281.2건이나 이용한 셈이다.
이렇게 해마다 택배 시장이 커지고, 사회에 꼭 필요한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았지만, 택배 현장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갑’인 원청 택배회사와 ‘을’인 택배대리점, 그리고 ‘병’인 택배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는 원청인 택배회사들이 택배 현장의 문제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가 되고 있다. 해마다 택배 단가는 하락하고, 택배노동자들이 과로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택배노동자들은 지난해 파업을 벌였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택배비 인상, 근로시간 제한 등을 합의했다. 하지만, 택배노동자가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올 3월 2일까지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또다시 파업을 벌였다. 택배노조와 대리점연합회가 표준계약서 작성 등에 합의하면서 파업은 중단됐지만, 이를 거부하는 대리점이 나오는 등 진통이 여전하다.
“합의한 뒤에 개별 대리점이 안 지켜도 되는 거면
애초에 단체 대 단체로서 협상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이행을 요구하면 아예 대리점연합회를
탈퇴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대리점도 있어요.”
택배노동자들이 싸움을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고, 택배노동자로 살아가며 느낀 애환은 과연 무엇일까? 택배노동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3월 25일 경북 경주 성건동에 있는 카페에서 택배노조 대구·경북 지부장인 김광석(46세)을 만났다. 약속한 시각보다 30여 분 일찍 도착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가 허겁지겁 카페로 들어온다. 그는 자신의 택배 차량을 카페 앞에 주차해놓고 배송업무를 하다 잠시 짬을 냈다고 했다. 지부장 역할과 함께 배송 기사 역할도 수행해야 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이기에 약속 장소도 그가 배송을 담당하는 경주 구도심 성건동에 있는 카페로 정했다.
그는 70일 넘게 이어왔던 파업은 끝났지만, 지역 택배노동자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갑·을·병, 다단계로 이뤄진 택배 산업의 구조는 노사간 합의로 파업이 끝나도 개별 노동자들의 투쟁은 마무리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한다.
“3월 2일 합의서를 작성하고 7일부터 현장에 복귀하는 것으로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와 택배노조가 공동으로 발표를 했어요. 그 뒤 15일부터 복귀를 시작해 지금은 대부분 복귀를 했지만, 일부 조합원들은 여전히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몇몇 대리점들이 합의서에 있는 표준계약서 작성을 거부했고, 해고 철회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민·형사상 고소 고발 취하가 안 되는 등 여러 이유로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대리점들의 대표인 대리점연합회와 합의를 했음에도 대리점 가운데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곳이 있어 혼란이 계속되는 겁니다. 합의한 뒤에 개별 대리점이 안 지켜도 되는 거면 애초에 단체 대 단체로서 협상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이행을 요구하면 아예 대리점연합회를 탈퇴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대리점도 있어요. 대리점연합회가 대리점을 상대로 장악력을 가지고, 원청인 CJ대한통운이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CJ대한통운은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계속 흔들면 노조를 죽이진 못해도
최소한 힘은 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협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이 원청으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CJ대한통운과의 협상을 요구하며 농성과 파업을 했지만, CJ대한통운 대신 대리점연합이 택배노조에 공식 대화를 제안했고, 택배노조가 수용하면서 협상을 진행했다. 협상에 합의하자 CJ대한통운은 “법이 인정하는 사용자인 대리점 측과 대화하겠다는 택배노조의 결정에 대해 환영한다”며 “회사는 대리점과 노조의 대화를 전폭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구나 대리점들은 원청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든 입장인 만큼 “전폭 지원할 것”이라는 CJ대한통운의 약속엔 힘이 실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개별 대리점이 합의 이행을 거부해도 CJ대한통운은 나서지 않고 있다. “CJ대한통운은 뒤로 빠지면서 이 대리점들이 결정할 일이라면서 물러서고 있어요. 자신들은 대리점 일에 개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요. 역할을 요구하면 대리점법, 공정거래법 등에 저촉된다고 말해요.”
그는 이런 일련의 사태들이 ‘노동조합 죽이기’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계속 흔들면 노조를 죽이진 못해도 최소한 힘은 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합의는 해줬어도 순순히 이행하지는 않겠다고 버티는 게 아닐까요.”
아버지가 간암으로 쓰러지고,
병원비 때문에 공장노동자에서
택배노동자가 되다
택배 물류 노동은 많은 이들이 ‘21세기 탄광’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 택배 노동은 집안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을 풀어낼 새로운 기회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대구에 있는 섬유회사 일하던 그는 회사가 어려워져서 그만두게 되고,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이곳 경주 구도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고깃집, 함바식당, 술집 등을 운영했지만 경주 구도심 지역 상권이 쇠락하면서 장사를 이어가기 힘들어졌다. 이후 시장 채소가게에서 납품차 운전하다가 주야 2교대로 일하는 자동차 부품 공장에 취업했다. 하지만, 6개월 수습을 거의 마칠 무렵에 아버지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면서 12년 전 택배 일에 뛰어들게 됐다.
“당시에 수습을 마치면 월급 25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당시 봉급으론 아버지 병원비를 감당하기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택배 일을 하던 친구한테 ‘택배하면 내가 지금 월급 받는 거보다 좀 더 벌 수 있냐’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몸은 힘들어도 네가 부지런히 일하면 월급 받는 것보다는 조금 더 벌어갈 수 있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12년 전쯤에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의 나이 삼십 대 중반이었고, 택배노동자 가운데선 젊은 축에 들었다. 아버지 병원비 압박도 컸던 만큼 젊음을 무기로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일만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택배산업이 활성화되기 전이었고, 더구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에 익지 않은 상황이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몸으로 부딪혔지만, 수입은 크게 늘지 않았다.
“지금은 스마트폰과 네비게이션이 잘 돼 있어서 수월한데, 당시엔 배달할 집을 찾는 게 쉽진 않았어요. 경력이 짧다 보니 길을 헤매기 일쑤였습니다. 물량도 많지 않았고, 특히 경주 외곽은 집들이 띄엄띄엄 있다 보니 이동시간도 만만치 않았어요. 첫 달에 매출이 160만 원 정도였는데, 기름값만 70만 원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1년 보험료가 150만 원, 타이어도 일 년에 두 번은 갈아야 하고, 박스 테이프 등 부자재 구입비, 식비 등을 빼고 나니 한 달에 80만 원 정도밖에 안 남더라구요.”
“상황이 점차 나아지면서 나중엔
월평균 수익이 300만 원 정도 됐어요.
근데 몸이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일하다간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계속 손해 보면서 일해야 하나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몇 개월이 지나면서 일은 조금씩 손에 익었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수입도 늘었다. 공장에서 받던 월급보다 많은 수입을 올렸지만, 노동시간을 생각하면 많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상황이 점차 나아지면서 나중엔 월평균 수익이 300만 원 정도 됐어요. 택배 일하기 전에 공장에서 약속했던 월급이 250만 원이었으니깐, 50만 원 정도 더 번 거죠. 근데 몸이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일하다간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침 6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밤 10시는 넘어야 집에 들어갔어요. 별 보고 출근해 별 보고 퇴근하는 일이 반복됐죠.”
일하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길어진 시간에 비례해 수입이 늘진 않았다. 택배 물량은 해마다 늘어났지만, 택배사들은 택배 물량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택배 단가를 낮췄기 때문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KILA)에 따르면 2012년 2,506원이던 택배 단가는 해마다 낮아져 2020년엔 2,221원으로 300원 정도 줄어들었다. 물가 상승률 등을 생각하면 하락 폭은 더욱 큰 셈이다. 택배 단가는 낮아지고, 물량은 늘어나면서 일한 만큼 가져가야 하는 택배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
2020년 기준 택배노동자 주당 노동시간 71.3시간
주간 최대 노동시간 52시간을 20시간 가까이 초과
2017년 기준 택배노동자 1일 평균 노동시간은 10시간 12분이었지만, 지난 2020년 9월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일 평균 노동시간은 11시간 53분으로 나타났다. 주당 노동시간 71.3시간으로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주간 최대 노동시간인 52시간을 20시간 가까이 초과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3707시간으로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장시간 노동 3위인 한국 노동자의 연간노동시간(1927시간, 2020년 기준)보다도 2배 가까이 많은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고객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관련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화를 보통 하루에 100통 가까이해요. 걸려 오는 전화 때문에 일을 못 할 지경일 때도 많아요.”
단순히 전화가 걸려 오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전화로 강요하는 고객을 만날 때면 스트레스는 더욱 커진다. “택배 업무는 순서를 정해서 해요. 관공서, 회사, 병원 등은 고객 퇴근 전 방문을 위해 먼저 돌아요. 그리고, 일반 주택은 퇴근 이후에 사람들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조금 늦게 돕니다. 그렇게 순위를 정해 돌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자기 택배를 빨리 받아야 한다고 당장 가지고 오라는 거예요. 택배 받는 분들 가운데 안 급한 분들은 없다고, 양해를 구해도 막무가내로 당장 가지고 오라는 거예요. 근데 물건을 순서대로 실어 놓은 거여서 뒤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면 수백 개나 되는 택배를 다시 꺼내고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시간이 상당히 걸리거든요. 그래도 고객 요청을 거부했다가 고객센터에 항의 전화라도 하면 벌점이 나오고, 벌점이 많이 쌓이면 택배 재계약할 때 탈락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무리하게 요구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해줄 수밖에 없어요. 결국, 그날은 12시를 넘어서 일이 끝났어요.”
장시간 노동과 스트레스로 죽어가는 택배노동자
2020년~2021년에만 택배노동자 22명이 과로사했다
이런 스트레스와 장시간 노동은 택배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택배노조의 집계에 따르면, 2020년~2021년에만 택배노동자 22명이 과로사했다. 지난해 택배노조가 파업했던 것도 바로 ‘과로사’ 때문이다. 택배노조는 과로의 가장 큰 원인으로 택배 분류작업을 꼽았다. 택배노동자들이 새벽부터 택배 분류작업을 하느라 배송이 늦어지고 노동시간이 길어지면서 과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택배노조는 분류작업을 전담하는 인력을 투입하는 등 과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택배노조·택배사·정부·더불어민주당이 참여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이하 사회적 합의기구)’가 꾸려졌다. 지난해 1월 말 택배 분류작업의 책임을 택배사가 지도록 하는 1차 사회적 합의문 발표했다.
하지만, 택배사들이 분류인력 충원을 미적거리면서 택배노동자들의 분류작업은 계속됐고, 결국 지난해 6월 파업을 벌이며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이런 택배노조의 투쟁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 기구는 지난해 6월 2차 사회적 합의문을 발표했다. 2차 합의문의 핵심은 분류인력 충원을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완료해 올 1월 1일부터는 택배노동자가 직접 분류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한 것이다. 설사 택배노동자가 분류작업을 해도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했다. 주당 70시간이 훌쩍 넘어가던 노동시간은 최대 하루 12시간·주 60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고, 택배사와 택배대리점, 택배노동자 등은 합의 정신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작성하는 표준계약서를 도입했다. 택배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고용보험·산재보험 가입을 추진하기로 했고, 이에 필요한 비용은 택배 요금을 건당 170원 인상해 마련키로 했다.
과로사 줄이기 위해 했던 택배파업으로
사회적 합의 이끌었지만,
CJ대한통운은 부속합의서를 요구했고,
올해 또다시 파업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을 CJ대한통운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올해 또 파업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문제가 됐던 건 표준계약서에 추가해 부속합의서를 CJ대한통운만 요구했다는 것이다. 부속합의서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된 쟁점은 당일 배송, 규격 외 택배 배송, 주 6일 근무 강요 등이다.
“당일 배송의 경우 택배 표준약관엔 엄연히 수탁일로부터 2일 내 배송이라고 규정돼 있는데, 이를 어기는 거예요. 대기업 택배사들이 경쟁에 나서면서 당일 배송을 택배노동자에게 강요하고 있어요. 당일 배송을 강요하게 되면 물류센터에서 서브터미널(영업점)로 오는 간선 화물차가 오후 몇 시에 도착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당일에 배송하라는 겁니다. 늦게 받아도 당일에 무조건 배송해야 되니깐, 밤 11시든, 12시든 일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점이 쌓이고 계약해지를 당할 수밖에 없어요. 이러다 보니 과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결국, 당일 배송은 과로사를 막기 위해 했던 사회적 합의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정책이에요.”
규격 외 택배 배송도 택배노동자들의 건강이 달린 중요한 문제다. 택배 표준약관엔 크기, 가액, 무게 등을 따져서 수탁을 거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CJ대한통운도 택배 크기를 가로, 세로, 높이 세변의 길이가 총 160cm를 넘지 않고, 무게는 최대 20kg 이내라고 규격과 관련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런 규격을 넘어가는 건 화물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규격 관련 규정이 무시된 채 규격외 택배 배송을 택배노동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보내는 그 마음은 알겠는데, 직접 배송하는 노동자 입장에선 나를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깐, 택배회사나 대리점에서 규정대로 접수를 막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요. 택배노동자들이 안 그래도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일이 많은데 몸이 많이 상합니다. 더구나 단순히 무게가 더 나가고, 크기가 크다는 문제를 넘어 배송에도 지장이 많아요. 배달 단가는 얼마 되지 않는데, 규격외 택배를 실으려면 다른 택배 수십 개 이상을 빼내야 해요. 그러면 결국 한 번에 싣고 배송할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들고, 한 번 실으면 될 걸 두 번 싣게 됩니다. 일하는 시간도 늘어나는 거지요.”
“주5일제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사회적으론 이미 주5일이 정착된 지 오래예요.
더 나아가 주4일제 도입 논의까지 되는 상황에서
주6일을 강요하는 건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겁니다.”
주6일 근무 강요도 심각하다. 지난해 6월 체결한 2차 사회적 합의서엔 ‘국토교통부는 금년부터 주 5일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2022년 상반기 중 생활물류서비스법 제21조에 따른 정책협의회에서 논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CJ대한통운이 부속합의서를 통해 택배노동자들에게 주6일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주5일제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사회적으론 이미 주5일이 정착된 지 오래예요. 더 나아가 주4일제 도입 논의까지 되는 상황에서 주6일을 강요하는 건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겁니다. 더구나 노조가 조직된 서브터미널(영업점)에선 수년간 투쟁을 통해 이미 5일제를 정착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6일제를 부속합의서에 명시해 강요하는 건 명백한 노동조건의 후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고자 도입했던 각종 조치가 부속합의서에 의해 무력화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와 처우 개선을 위해 쓰여야 할 택배요금 인상분 가운데 상당 금액이 CJ대한통운의 수익으로 들어갔다고 택배노조는 지적한다. 사회적 합의서엔 ‘분류인력 투입 등에 따른 원가 상승요인이 택배요금에 반영되도록 적극 노력한다’고 명시됐다. 이들은 ‘분류인력 투입 및 고용보험, 산재보험 가입을 위해 필요한 직접 원가 상승요인은 170원임’을 확인하고,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주체는 가항의 원가 상승요인을 포함하여 적정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10년 넘게 계속 내려가기만 하던 택배요금이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와 처우 개선을 명분으로 올라갔어요. 원가 상승 요인이 170원이라는 구체적 계산과 이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거쳐 택배요금을 올린 겁니다. 그런데 CJ대한통운은 그 170원을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와 택배노동자 처우 개선에 다 쓰지 않고, 적어도 50% 이상은 자기네들 영업이익으로 가져간 거예요. 택배노조는 그래서 택배요금 인상액 사용처를 분명히 밝히고, 요금 인상의 목적과 달리 그 돈을 회사의 이익이 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던 거에요.”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도 남은 금요일 배송분이랑,
토요일 배송분이 걱정이었어요. 장례를 마치고, 쉬지도 못하고
월요일에 바로 출근하니 쌓인 택배가 한가득이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몸이 아파도, 사정이 생겨도 쉴 수가 없어요.”
이런 불합리에 맞서 그를 비롯한 택배노동자들은 70일 넘게 싸웠고, 지금도 약속 이행을 거부하는 대리점과 원청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택배사 등을 상대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택배노동자들이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힘을 모아 맞서는 건 택배노조가 만들어지기 전까진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서럽디 서럽다’는 ‘을’보다도 밑에 있는 ‘병’이었던 택배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만 했다.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 택배노동자들이 당했던 처우는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가슴 짠한 사연투성이다.
“제가 아버지 병원비 때문에 택배를 시작했는데, 택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저녁 늦게 아내에게 연락이 왔어요. 배송이 아직 덜 끝났는데, 부랴부랴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어요. 장례를 치르면서도 남은 금요일 배송분이랑, 토요일 배송분이 걱정이었어요. 장례를 마치고, 쉬지도 못하고 월요일에 바로 출근하니 쌓인 택배가 한가득이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몸이 아파도, 사정이 생겨도 쉴 수가 없어요. 다른 동료 이야기를 들으니 아버지 장례를 치르느라고 일을 못 해서 수입이 줄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리점 소장이 ‘용차’(쉬는 택배노동자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를 비싸게 썼다더라구요. 택배노동자가 받는 돈보다 훨씬 큰 금액으로 용차를 쓰고 차액을 택배노동자에게 떠넘겨요. 결국, 하루 쉬면 수입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는 구조에요.”
그러다 보니 택배노동자들은 절대 아파서는 안 된다. 아파서 일을 못 하게 되면 비싼 돈을 들여 ‘용차’를 구해야 하고, 내가 못하면 주변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산재보험에 가입하고 싶었던 노동자가 가입을 요구하면 “왜 꼭 산재보험 들려고 하냐. 각자 보험 들어. 너희들이 개인사업자고, 사장인데 누구보고 들어달라고 하냐”면서 발뺌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아파도 누구 하나 선뜻 병원에 가지 못한다.
몸이 아파 쉬려는 택배노동자에게
대리점 소장은 “병신들만 다 모아놔서 안 되겠다.
젊고 싱싱한 걸로 갈아야 되겠다”고 말했다.
“제가 아는 택배노동자가 오전에 택배 분류작업을 해야 하는데, 몸이 아파서 병원에 좀 갔다 오려고 대리점 소장한테 부탁한 적이 있어요. 주변에 부탁하기가 미안해서 짐 좀 받아주면 안 되냐고 부탁한 거예요. 그런데 대리점 소장이 ‘병신들만 다 모아놔서 안 되겠다. 젊고 싱싱한 걸로 갈아야 되겠다’고 했다는 거에요.”
이뿐만이 아니다. 서브터미널에 간선차가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퇴근은 매일 10시를 훌쩍 넘겼고, 심지어 새벽 한 시까지 배송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택배산업이 성장하면서 서브터미널 공간이 좁아 지붕을 세워 공간을 확장하게 됐는데, 이 비용도 대리점 소장과 함께 노동자들이 각출해 부담했다. 터미널에 여자화장실은 아예 없었고, 남자 화장실도 두 칸에 불과했다. 청소비를 걷어갔지만, 청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화조가 넘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시설도 열악해 비가 오면 택배가 다 젖는다. 지난 2016년 큰 태풍이 왔을 땐 비바람이 너무 강해 택배 박스가 다 녹아내릴 정도였다.
“태풍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잠시 멈춰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런데, 짐이 젖든 말든 개의치 않고, 계속 짐을 내렸어요. 간선차가 대기하면 비용을 더 줘야 하니깐 그냥 내리는 거예요. 그리고, 일단 짐만 내리면 모든 책임을 택배노동자가 져야 하거든요. 우리가 회사관계자에게 거세게 항의하니 ‘내가 누구 한 사람 정도는 짜를 수 있다’면서 협박하기도 했어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는 저 사람들에게 돈 벌어주는 기계인가’하는 생각이요.”
2016년 ‘택배기사 권리찾기 전국모임’을
만나며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런 그에게 2016년은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네이버 밴드에 만들어진 ‘택배기사 권리찾기 전국모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임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밴드에 가입했고, 2016년 8월 ‘택배기사 권리찾기 전국모임’ 오프라인 행사가 서울 용산 철도회관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밴드에서 봤다.
“택배 일을 하는 친구랑 갈까 말까 고민을 했어요. ‘왜 모이는 거지?’, ‘모여서 다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거든요. 근데 막상 일주일에 딱 하루 쉬는데, 그날 서울에 간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그리고, 경주에서 용산까지 왕복 KTX 요금이 거의 10만 원이더라구요. 시간적 부담에, 금전적 부담도 커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참석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서울로 향했던 그의 발걸음이 택배노동조합 탄생으로 이어졌고, 그의 삶도 바꾸었다. 그날 모임에 참석하고 난 뒤 그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어요”라고 고백했다. 택배회사와 대리점의 요구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해왔던 그는 택배노동자들이 힘을 모으고, 함께 하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날 가서 보고 하나로 힘을 모아 움직이는 지역은 우리 경주보다 훨씬 상황이 낫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매번 서브터미널에 간선차가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늦어 배송이 늦게 시작되고, 이 때문에 별 보고 퇴근하는 게 경주에선 다반사였는데, 택배노동자들이 힘을 모은 광주지역 이야기를 들으니 사정이 다르더라구요. 우리는 빨라야 오후 1시에 배송을 시작하고, 2시나 3시에 배송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광주는 오전 11시면 배송을 시작한대요. 물류센터가 있는 대전에서 경주나 광주가 거리상으론 차이가 거의 없는데, 두세 시간 차이가 난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 보자”며 만든 노동조합
“택배노동자들이 힘을 모으다 보니
간선 차도 빨리 오고, 대리점 소장들의 갑질도
조금씩 줄어드는 등 변화가 느껴지더라구요.”
경주로 돌아온 그는 동료들과 함께 경주지역 서브터미널에서 택배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큰 바람은 ‘우리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 보자’는 것이었다. 택배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배송 시작 시간을 두세 시간 앞당길 수 있으면 가족과 저녁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배송을 두세 시간 빨리 나가면 밤늦게 일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아무래도 밝을 때 일을 하다 보니 배송 시간도 줄어들고, 고객들한테 택배가 오밤중에 온다고 욕도 덜 먹고, 우리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가족들하고 저녁도 같이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솔직히 택배 일을 하면서 가족들하고 저녁 먹어본 역사가 없거든요. 그런데, 택배노동자들이 힘을 모으다 보니 간선 차도 빨리 오고, 대리점 소장들의 갑질도 조금씩 줄어드는 등 변화가 느껴지더라구요.”
‘택배노동자 권리찾기 전국모임’은 2017년 1월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출범으로 이어졌다. 2월엔 또 다른 택배노동조합인 전국택배노조가 세워졌고, 이 두 노조는 2020년 12월 조직을 통합해 전국택배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지난해 1월 통합대의원대회와 지도부 선출 선거를 통해 새 지도부를 구성했다.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택배노동자들의 삶은 과거와 달라졌다.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배송 출발 시간이에요. 아직도 노조가 없는 터미널은 배송 출발이 한 시가 넘는 곳도 많은데, 경주는 오전 11시, 12시에 출발해요. 택배노동자 누구나 느끼는 거겠지만, 해가 떠 있을 때 한 시간 일을 빨리 시작하면 마치는 시간은 두 시간 빨라져요. 아무래도 어두우면 움직이기 힘들어서 시간이 더 걸리거든요. 이른 시간에 배달하니 고객들 원성도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노조가 조직된 지역에선 배송 출발 시간이 일정해요. 그렇지 않은 곳에선 그때그때 다르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도 많았고, 일정한 시간에 택배가 오지 않다 보니 몇 시에 오냐는 고객들의 전화에 시달리기도 해요.”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산재보험 가입도 2018년부터 조금씩 늘어나다 지난해 사회적 합의 이후 나머지 택배노동자들도 가입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 채 눈치를 보던 일도 줄어들었다. 그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전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노조를 만든 이후엔 아닌 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가 속해있는 경주 지역은 2017년 4월 7일 지회가 만들어졌다. 전국에서 광주에 이어 두 번째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지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지회가 만들어지면서 초대 경주지회장을 맡았다. 이후 그의 노력으로 대구에 2개 지회가 생겨났고, 경북 김천에도 지회가 만들어졌다. 전국에 지회들이 속속 건설되고 대구·경북지역 소속 지회들도 하나둘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지부 건설이 논의됐다. 한동안 경주지회장 겸 대구·경북지부장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9년 대구·경북지부 건설과 동시에 지부장을 맡았다. 학생운동도 한 적이 없고, 택배 일을 시작하기 전까진 노동조합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그로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처음에는 노조 중앙도 재정이 어려워서
활동비 지원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활동비도 사비로 충당했어요.
또 노조 활동을 하려다 보니 예전처럼
오랜 시간 일할 순 없어서 수입도 자연히 줄어들었죠.”
팔자에도 없던 노조 간부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노조 전임자는 물론 노조 활동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다 보니 일은 일대로 하고, 개인적으로 시간을 쪼개 노조 활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택배노동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시작한 노조 활동인데 역설적이게 그는 함께 일하는 동지들을 위해 자신의 휴일과 저녁 시간, 그리고 자신의 수입을 양보해야 했다.
“처음에는 노조 중앙도 재정이 어려워서 활동비 지원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활동비도 사비로 충당했어요. 또 노조 활동을 하려다 보니 예전처럼 오랜 시간 일할 순 없어서 수입도 자연히 줄어들었죠. 나가는 돈은 많아지고, 수입을 줄어들다 보니깐 솔직히 가정 경제가 많이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친구가 담당하는 지역에 아파트가 있어서 수입이 그래도 괜찮으니깐 그곳 물량을 받아 아르바이트를 뛰기도 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노조에서 동료 조합원들이 활동비를 보조해줘서 이전보다는 나아졌어요.”
상황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택배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건 원래 쉽지 않은 일이다. 택배 산업이 가진 구조 자체가 조직적인 활동을 어렵게 한다. 택배사-대리점-택배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다 보니 같은 택배 조합원이라고 해도 대리점에 따라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대리점에 작게는 3~4명 많으면 한 30~40명이 일하는 데도 있어요. 평균 대리점 한 곳당 10여 명 정도 되는 데, 각각 대리점 점장의 성향이나, 대리점 상황에 따라 한 가지 사안을 두고도 의견이 다를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요구조건을 조율하고,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더구나 택배는 구조 자체가 원래 자기 일만 잘하면 되기 때문에 잘 뭉치지 못해요. 사실 짐 실을 때 잠깐 보고 종일 혼자서 일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나만 잘하면 된다는 개별화된 인식이 수십 년 동안 현장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요.”
“대구·경북에선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요.
심지어 아직도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솔직히 우리 아내도
그렇게 생각하구요. 아내가 경주에서
국민의힘 당직자로 일하고 있거든요.”
이런 택배 산업 특유의 어려움뿐 아니라 보수적인 지역 분위기도 활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대구·경북은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지역이고, 그만큼 노조 활동에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잘못된 것을 바꾸자고 이야기해도 ‘회사가 있어야 우리가 먹고 산다’, ‘회사가 잘 돼야 우리도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아요. 그리고,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곳 대구·경북에선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요. 제가 노동조합 교육에서 박근혜 정부의 반 노동적 정책을 비판했더니, 뒤에 있는 조합원이 박근혜 대통령을 왜 그렇게 욕하냐고 항의를 하더라구요. 노동조합 입장에선 반 노동정책을 펼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든, 문재인 대통령이든 모두 비판할 수 있는 건데 그런 반응이 나오기도 해요. 노조 정치 사업을 통해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이야기해도 뒤에선 보수 유튜브 채널을 보는 조합원들이 있어요. 솔직히 이런 상황이 당황스럽죠. 심지어 아직도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솔직히 우리 아내도 그렇게 생각하구요. 아내가 경주에서 국민의힘 당직자로 일하고 있거든요.”
그의 아내는 학교 어머니회 활동을 했던 인연으로 선거운동을 도왔고, 그런 인연이 이어져 국민의힘 당직자로 활동해왔다고 한다.
“노동조합 활동에 나서는 거에 불만이 많았어요. 그나마 지금은 활동비를 보조받으면서 생활비가 줄어드는 상황은 아니어서 불만이 조금은 줄었어요. 우리 부부 모두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고, 가족들을 걱정한다는 면에선 차이가 없어요. 저는 제가 행복해지면 가족도 행복해질 수 있고, 내가 일하는 곳을 좋게 바꿔 즐겁게 일하면 가족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요. 또 인간으로서 노동자들이 존중받으며 살 수 있도록 사회를 바꾸는 게 우리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믿어요. 반면에 아내는 제가 노조 활동을 하는 게 저는 물론 아이들에게까지 피해가 간다고 우려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악의적인 기사를 자주 만나고,
포털 댓글을 통해 비난하는 목소리도 듣지만,
그렇지 않은 국민도 많아요.
배송하다 보면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구요.
그런 분들 보면서 희망을 품어요.”
부부간에 정치적 차이가 존재하는 건 흔한 일인 만큼 그도 아내의 활동에 대해 반대하진 않는다고 했다. 다만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빨갱이’라고 여기는 생각만이라도 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그의 아내와 지역 주민 등 많은 이들이 택배노동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지난 2년여 동안 파업을 하고, 투쟁을 이어가면서 그들의 상황을 제대로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조선일보 등 보수매체를 중심으로 택배노조를 공격하는 기사가 이어졌다. 택배노동자 파업을 공격하기 위해 택배가 고소득 직종이고, 택배사 임원들도 그만 두고 택배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황당한 보도까지 나왔다.
“택배노동자들이 택배 산업이 성장하면서 물량 늘어나면서 예전보다 수입이 늘어난 건 맞아요. 근데 회사가 뿌리는 보도자료를 보면 억대 연봉에 가까운 택배기사가 수두룩한 것처럼 말해요. 잘 번다고 말할 수 있는 택배노동자들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아요. 수도권에 대형거래처가 있거나, 회사들이 밀집해서 구역이 좋고, 배달 난이도가 쉬운 아주 일부 경우에요. 그리고, 그런 택배노동자들도 매출 기준으로만 이야기해요.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지, 부대비용은 얼마 나가는지는 알리지 않아요. 솔직히 지방은 사정이 많이 열악해요. 경주만해도 시 외곽을 담당하면 시골 동네여서 집들이 띄엄띄엄 있거든요. 하루 동안 배송을 하고 나면 달릴 거리가 160km가 넘어가기도 해요. 이런 사연들을 알리려고 해도 우리 이야기를 받아주는 언론사가 거의 없어요. 그래도 실망하진 않으려구요. 우리에게 악의적인 기사를 자주 만나고, 포털 댓글을 통해 비난하는 목소리도 듣지만, 그렇지 않은 국민도 많아요. 배송하다 보면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구요. 그런 분들 보면서 희망을 품어요. 지금은 조합원이 2천 명에 불과하지만, 조금씩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조직이 커지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어요.”
아울러 택배노조 파업 과정에선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갈등을 부각하려는 시도가 보수매체를 중심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택배노조 지도부가 학생운동권 출신이고, 종북세력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중앙 간부 몇 사람의 이력을 가지고 빨갱이 취급을 했어요. 그리고, 택배노조가 정치적이라고 비난도 했구요. 그런데, 정치적이라고 비난하더니, 오히려 대선 과정에선 비노조 택배연합 대표를 맡은 김 모 씨가 국민의힘 찬조연설에 나서는 등 더 정치적인 활동에 나섰어요. 그들이 하는 주장을 들으면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인 단결권, 교섭권, 파업권을 깡그리 무시해요.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버리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자신의 권리를 버리고, 회사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또 그 행복은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이들마저도 자신이 해고될 위기나 어려움을 당하면 노동조합을 찾는다. 자기에게 힘든 일이 닥치면 결국 나를 지켜줄 건 노동조합밖에 없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제가 택배 일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무렵에 일했던 대리점이 있어요. 그곳에 연세가 좀 많은 택배노동자가 계셨어요. 그분은 당시에 대리점 소장 오른팔이라고 불릴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분이 10년 만에 연락이 왔어요. 저에게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이야기해요. 그분 신변에 변화가 생겼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선 노조가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자기가 직접 나선 거예요.”
“임기 안에 제대로 회사와 교섭도 하고,
단협도 체결해보고 싶어요.
간부 생활하느라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못 가졌는데,
임기를 마치면 가족들과 시간도 가지고 싶어요.”
택배 시장은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KILA)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총 택배물량은 36억2천만 개라고 한다. 지난 2012년 총 택배물량이 14억 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2.6배나 성장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이제 택배는 삶의 일부가 됐다. 사회를 움직이고, 유지하는 필수서비스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택배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노동자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그는 택배사들도 수익과 함께 노동자들을 생각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노조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택배는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직업이에요. 대기업이 택배 시장에 들어오면서 작은 택배사들은 도태됐어요. 그리고, 단가를 낮춰가면서 과열 경쟁을 벌이고 있어요. 단가와 서비스를 두고 경쟁하면서 고객들 입장에선 편해진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것이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면 오래 이어지기 힘들어요. 희생만 강요당하며 힘들게 일하는데 고객을 웃으면서 대하고, 택배 물건을 안전하게 배송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기업들도 이런 부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명절이면, 대표이사나 관리자들이 ‘사랑하는 택배 가족 여러분’이라고 부르며 이런저런 좋은 말들을 해요. 그런데 정말 가족처럼 생각한다면 회사와 노동자가 함께 사는 정책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는 7일이면 그가 경주에 택배노조 지회를 세운 지 5년이 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보람도 컸다. 2년 뒤면 지부장 임기가 끝나는 그는 그때까지 회사와 교섭을 통해 단협을 체결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는 노조가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험난하다.
“임기 안에 제대로 회사와 교섭도 하고, 단협도 체결해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노조가 힘이 더 세져야 하는데 아직 부족해요. 남은 임기 2년 동안은 열심히 활동해서 힘을 키워야죠. 그 뒤엔 택배노동자로 일하면서 후배 조합원들과 택배노조를 도우면서 현장에서 일할 거예요. 간부 생활하느라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못 가졌는데, 이젠 함께하고 싶어요. 둘째인 아들이 열 살이에요. 그런데, 주말에도 밖에 나갈 일이 많아서 같이 놀아주지도 못했던 아빠였는데, 더 크기 전에 같이 많이 놀아주고 싶어요. 그렇게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이렇게 해마다 택배 시장이 커지고, 사회에 꼭 필요한 필수 서비스로 자리 잡았지만, 택배 현장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갑’인 원청 택배회사와 ‘을’인 택배대리점, 그리고 ‘병’인 택배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는 원청인 택배회사들이 택배 현장의 문제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가 되고 있다. 해마다 택배 단가는 하락하고, 택배노동자들이 과로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택배노동자들은 지난해 파업을 벌였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택배비 인상, 근로시간 제한 등을 합의했다. 하지만, 택배노동자가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올 3월 2일까지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또다시 파업을 벌였다. 택배노조와 대리점연합회가 표준계약서 작성 등에 합의하면서 파업은 중단됐지만, 이를 거부하는 대리점이 나오는 등 진통이 여전하다.
“합의한 뒤에 개별 대리점이 안 지켜도 되는 거면
애초에 단체 대 단체로서 협상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이행을 요구하면 아예 대리점연합회를
탈퇴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대리점도 있어요.”
택배노동자들이 싸움을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이고, 택배노동자로 살아가며 느낀 애환은 과연 무엇일까? 택배노동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3월 25일 경북 경주 성건동에 있는 카페에서 택배노조 대구·경북 지부장인 김광석(46세)을 만났다. 약속한 시각보다 30여 분 일찍 도착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가 허겁지겁 카페로 들어온다. 그는 자신의 택배 차량을 카페 앞에 주차해놓고 배송업무를 하다 잠시 짬을 냈다고 했다. 지부장 역할과 함께 배송 기사 역할도 수행해야 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이기에 약속 장소도 그가 배송을 담당하는 경주 구도심 성건동에 있는 카페로 정했다.
그는 70일 넘게 이어왔던 파업은 끝났지만, 지역 택배노동자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갑·을·병, 다단계로 이뤄진 택배 산업의 구조는 노사간 합의로 파업이 끝나도 개별 노동자들의 투쟁은 마무리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한다.
“3월 2일 합의서를 작성하고 7일부터 현장에 복귀하는 것으로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와 택배노조가 공동으로 발표를 했어요. 그 뒤 15일부터 복귀를 시작해 지금은 대부분 복귀를 했지만, 일부 조합원들은 여전히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몇몇 대리점들이 합의서에 있는 표준계약서 작성을 거부했고, 해고 철회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민·형사상 고소 고발 취하가 안 되는 등 여러 이유로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대리점들의 대표인 대리점연합회와 합의를 했음에도 대리점 가운데 합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곳이 있어 혼란이 계속되는 겁니다. 합의한 뒤에 개별 대리점이 안 지켜도 되는 거면 애초에 단체 대 단체로서 협상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이행을 요구하면 아예 대리점연합회를 탈퇴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대리점도 있어요. 대리점연합회가 대리점을 상대로 장악력을 가지고, 원청인 CJ대한통운이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CJ대한통운은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계속 흔들면 노조를 죽이진 못해도
최소한 힘은 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협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이 원청으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CJ대한통운과의 협상을 요구하며 농성과 파업을 했지만, CJ대한통운 대신 대리점연합이 택배노조에 공식 대화를 제안했고, 택배노조가 수용하면서 협상을 진행했다. 협상에 합의하자 CJ대한통운은 “법이 인정하는 사용자인 대리점 측과 대화하겠다는 택배노조의 결정에 대해 환영한다”며 “회사는 대리점과 노조의 대화를 전폭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구나 대리점들은 원청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든 입장인 만큼 “전폭 지원할 것”이라는 CJ대한통운의 약속엔 힘이 실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개별 대리점이 합의 이행을 거부해도 CJ대한통운은 나서지 않고 있다. “CJ대한통운은 뒤로 빠지면서 이 대리점들이 결정할 일이라면서 물러서고 있어요. 자신들은 대리점 일에 개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요. 역할을 요구하면 대리점법, 공정거래법 등에 저촉된다고 말해요.”
그는 이런 일련의 사태들이 ‘노동조합 죽이기’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계속 흔들면 노조를 죽이진 못해도 최소한 힘은 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합의는 해줬어도 순순히 이행하지는 않겠다고 버티는 게 아닐까요.”
아버지가 간암으로 쓰러지고,
병원비 때문에 공장노동자에서
택배노동자가 되다
택배 물류 노동은 많은 이들이 ‘21세기 탄광’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그에게 택배 노동은 집안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을 풀어낼 새로운 기회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대구에 있는 섬유회사 일하던 그는 회사가 어려워져서 그만두게 되고,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이곳 경주 구도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고깃집, 함바식당, 술집 등을 운영했지만 경주 구도심 지역 상권이 쇠락하면서 장사를 이어가기 힘들어졌다. 이후 시장 채소가게에서 납품차 운전하다가 주야 2교대로 일하는 자동차 부품 공장에 취업했다. 하지만, 6개월 수습을 거의 마칠 무렵에 아버지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면서 12년 전 택배 일에 뛰어들게 됐다.
“당시에 수습을 마치면 월급 25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당시 봉급으론 아버지 병원비를 감당하기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택배 일을 하던 친구한테 ‘택배하면 내가 지금 월급 받는 거보다 좀 더 벌 수 있냐’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몸은 힘들어도 네가 부지런히 일하면 월급 받는 것보다는 조금 더 벌어갈 수 있지 않겠냐’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12년 전쯤에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의 나이 삼십 대 중반이었고, 택배노동자 가운데선 젊은 축에 들었다. 아버지 병원비 압박도 컸던 만큼 젊음을 무기로 말 그대로 죽기 살기로 일만 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택배산업이 활성화되기 전이었고, 더구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에 익지 않은 상황이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몸으로 부딪혔지만, 수입은 크게 늘지 않았다.
“지금은 스마트폰과 네비게이션이 잘 돼 있어서 수월한데, 당시엔 배달할 집을 찾는 게 쉽진 않았어요. 경력이 짧다 보니 길을 헤매기 일쑤였습니다. 물량도 많지 않았고, 특히 경주 외곽은 집들이 띄엄띄엄 있다 보니 이동시간도 만만치 않았어요. 첫 달에 매출이 160만 원 정도였는데, 기름값만 70만 원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1년 보험료가 150만 원, 타이어도 일 년에 두 번은 갈아야 하고, 박스 테이프 등 부자재 구입비, 식비 등을 빼고 나니 한 달에 80만 원 정도밖에 안 남더라구요.”
“상황이 점차 나아지면서 나중엔
월평균 수익이 300만 원 정도 됐어요.
근데 몸이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일하다간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계속 손해 보면서 일해야 하나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몇 개월이 지나면서 일은 조금씩 손에 익었고, 속도가 빨라지면서 수입도 늘었다. 공장에서 받던 월급보다 많은 수입을 올렸지만, 노동시간을 생각하면 많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상황이 점차 나아지면서 나중엔 월평균 수익이 300만 원 정도 됐어요. 택배 일하기 전에 공장에서 약속했던 월급이 250만 원이었으니깐, 50만 원 정도 더 번 거죠. 근데 몸이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일하다간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침 6시 30분에 집에서 나와 밤 10시는 넘어야 집에 들어갔어요. 별 보고 출근해 별 보고 퇴근하는 일이 반복됐죠.”
일하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길어진 시간에 비례해 수입이 늘진 않았다. 택배 물량은 해마다 늘어났지만, 택배사들은 택배 물량이 늘어났다는 이유로 택배 단가를 낮췄기 때문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KILA)에 따르면 2012년 2,506원이던 택배 단가는 해마다 낮아져 2020년엔 2,221원으로 300원 정도 줄어들었다. 물가 상승률 등을 생각하면 하락 폭은 더욱 큰 셈이다. 택배 단가는 낮아지고, 물량은 늘어나면서 일한 만큼 가져가야 하는 택배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
2020년 기준 택배노동자 주당 노동시간 71.3시간
주간 최대 노동시간 52시간을 20시간 가까이 초과
2017년 기준 택배노동자 1일 평균 노동시간은 10시간 12분이었지만, 지난 2020년 9월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일 평균 노동시간은 11시간 53분으로 나타났다. 주당 노동시간 71.3시간으로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주간 최대 노동시간인 52시간을 20시간 가까이 초과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3707시간으로 이는 OECD 국가 가운데 장시간 노동 3위인 한국 노동자의 연간노동시간(1927시간, 2020년 기준)보다도 2배 가까이 많은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고객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관련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화를 보통 하루에 100통 가까이해요. 걸려 오는 전화 때문에 일을 못 할 지경일 때도 많아요.”
단순히 전화가 걸려 오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전화로 강요하는 고객을 만날 때면 스트레스는 더욱 커진다. “택배 업무는 순서를 정해서 해요. 관공서, 회사, 병원 등은 고객 퇴근 전 방문을 위해 먼저 돌아요. 그리고, 일반 주택은 퇴근 이후에 사람들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조금 늦게 돕니다. 그렇게 순위를 정해 돌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자기 택배를 빨리 받아야 한다고 당장 가지고 오라는 거예요. 택배 받는 분들 가운데 안 급한 분들은 없다고, 양해를 구해도 막무가내로 당장 가지고 오라는 거예요. 근데 물건을 순서대로 실어 놓은 거여서 뒤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면 수백 개나 되는 택배를 다시 꺼내고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시간이 상당히 걸리거든요. 그래도 고객 요청을 거부했다가 고객센터에 항의 전화라도 하면 벌점이 나오고, 벌점이 많이 쌓이면 택배 재계약할 때 탈락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무리하게 요구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해줄 수밖에 없어요. 결국, 그날은 12시를 넘어서 일이 끝났어요.”
장시간 노동과 스트레스로 죽어가는 택배노동자
2020년~2021년에만 택배노동자 22명이 과로사했다
이런 스트레스와 장시간 노동은 택배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택배노조의 집계에 따르면, 2020년~2021년에만 택배노동자 22명이 과로사했다. 지난해 택배노조가 파업했던 것도 바로 ‘과로사’ 때문이다. 택배노조는 과로의 가장 큰 원인으로 택배 분류작업을 꼽았다. 택배노동자들이 새벽부터 택배 분류작업을 하느라 배송이 늦어지고 노동시간이 길어지면서 과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택배노조는 분류작업을 전담하는 인력을 투입하는 등 과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택배노조·택배사·정부·더불어민주당이 참여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이하 사회적 합의기구)’가 꾸려졌다. 지난해 1월 말 택배 분류작업의 책임을 택배사가 지도록 하는 1차 사회적 합의문 발표했다.
하지만, 택배사들이 분류인력 충원을 미적거리면서 택배노동자들의 분류작업은 계속됐고, 결국 지난해 6월 파업을 벌이며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이런 택배노조의 투쟁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 기구는 지난해 6월 2차 사회적 합의문을 발표했다. 2차 합의문의 핵심은 분류인력 충원을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완료해 올 1월 1일부터는 택배노동자가 직접 분류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한 것이다. 설사 택배노동자가 분류작업을 해도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했다. 주당 70시간이 훌쩍 넘어가던 노동시간은 최대 하루 12시간·주 60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고, 택배사와 택배대리점, 택배노동자 등은 합의 정신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작성하는 표준계약서를 도입했다. 택배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고용보험·산재보험 가입을 추진하기로 했고, 이에 필요한 비용은 택배 요금을 건당 170원 인상해 마련키로 했다.
과로사 줄이기 위해 했던 택배파업으로
사회적 합의 이끌었지만,
CJ대한통운은 부속합의서를 요구했고,
올해 또다시 파업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을 CJ대한통운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올해 또 파업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문제가 됐던 건 표준계약서에 추가해 부속합의서를 CJ대한통운만 요구했다는 것이다. 부속합의서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된 쟁점은 당일 배송, 규격 외 택배 배송, 주 6일 근무 강요 등이다.
“당일 배송의 경우 택배 표준약관엔 엄연히 수탁일로부터 2일 내 배송이라고 규정돼 있는데, 이를 어기는 거예요. 대기업 택배사들이 경쟁에 나서면서 당일 배송을 택배노동자에게 강요하고 있어요. 당일 배송을 강요하게 되면 물류센터에서 서브터미널(영업점)로 오는 간선 화물차가 오후 몇 시에 도착하든 상관없이 무조건 당일에 배송하라는 겁니다. 늦게 받아도 당일에 무조건 배송해야 되니깐, 밤 11시든, 12시든 일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점이 쌓이고 계약해지를 당할 수밖에 없어요. 이러다 보니 과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결국, 당일 배송은 과로사를 막기 위해 했던 사회적 합의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정책이에요.”
규격 외 택배 배송도 택배노동자들의 건강이 달린 중요한 문제다. 택배 표준약관엔 크기, 가액, 무게 등을 따져서 수탁을 거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CJ대한통운도 택배 크기를 가로, 세로, 높이 세변의 길이가 총 160cm를 넘지 않고, 무게는 최대 20kg 이내라고 규격과 관련한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런 규격을 넘어가는 건 화물로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규격 관련 규정이 무시된 채 규격외 택배 배송을 택배노동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보내는 그 마음은 알겠는데, 직접 배송하는 노동자 입장에선 나를 수 있는 한계가 있으니깐, 택배회사나 대리점에서 규정대로 접수를 막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요. 택배노동자들이 안 그래도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일이 많은데 몸이 많이 상합니다. 더구나 단순히 무게가 더 나가고, 크기가 크다는 문제를 넘어 배송에도 지장이 많아요. 배달 단가는 얼마 되지 않는데, 규격외 택배를 실으려면 다른 택배 수십 개 이상을 빼내야 해요. 그러면 결국 한 번에 싣고 배송할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들고, 한 번 실으면 될 걸 두 번 싣게 됩니다. 일하는 시간도 늘어나는 거지요.”
“주5일제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사회적으론 이미 주5일이 정착된 지 오래예요.
더 나아가 주4일제 도입 논의까지 되는 상황에서
주6일을 강요하는 건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겁니다.”
주6일 근무 강요도 심각하다. 지난해 6월 체결한 2차 사회적 합의서엔 ‘국토교통부는 금년부터 주 5일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2022년 상반기 중 생활물류서비스법 제21조에 따른 정책협의회에서 논의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CJ대한통운이 부속합의서를 통해 택배노동자들에게 주6일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주5일제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사회적으론 이미 주5일이 정착된 지 오래예요. 더 나아가 주4일제 도입 논의까지 되는 상황에서 주6일을 강요하는 건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겁니다. 더구나 노조가 조직된 서브터미널(영업점)에선 수년간 투쟁을 통해 이미 5일제를 정착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6일제를 부속합의서에 명시해 강요하는 건 명백한 노동조건의 후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고자 도입했던 각종 조치가 부속합의서에 의해 무력화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와 처우 개선을 위해 쓰여야 할 택배요금 인상분 가운데 상당 금액이 CJ대한통운의 수익으로 들어갔다고 택배노조는 지적한다. 사회적 합의서엔 ‘분류인력 투입 등에 따른 원가 상승요인이 택배요금에 반영되도록 적극 노력한다’고 명시됐다. 이들은 ‘분류인력 투입 및 고용보험, 산재보험 가입을 위해 필요한 직접 원가 상승요인은 170원임’을 확인하고, ‘사회적 합의기구 참여주체는 가항의 원가 상승요인을 포함하여 적정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10년 넘게 계속 내려가기만 하던 택배요금이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와 처우 개선을 명분으로 올라갔어요. 원가 상승 요인이 170원이라는 구체적 계산과 이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거쳐 택배요금을 올린 겁니다. 그런데 CJ대한통운은 그 170원을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와 택배노동자 처우 개선에 다 쓰지 않고, 적어도 50% 이상은 자기네들 영업이익으로 가져간 거예요. 택배노조는 그래서 택배요금 인상액 사용처를 분명히 밝히고, 요금 인상의 목적과 달리 그 돈을 회사의 이익이 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던 거에요.”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도 남은 금요일 배송분이랑,
토요일 배송분이 걱정이었어요. 장례를 마치고, 쉬지도 못하고
월요일에 바로 출근하니 쌓인 택배가 한가득이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몸이 아파도, 사정이 생겨도 쉴 수가 없어요.”
이런 불합리에 맞서 그를 비롯한 택배노동자들은 70일 넘게 싸웠고, 지금도 약속 이행을 거부하는 대리점과 원청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택배사 등을 상대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택배노동자들이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힘을 모아 맞서는 건 택배노조가 만들어지기 전까진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서럽디 서럽다’는 ‘을’보다도 밑에 있는 ‘병’이었던 택배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만 했다.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 택배노동자들이 당했던 처우는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가슴 짠한 사연투성이다.
“제가 아버지 병원비 때문에 택배를 시작했는데, 택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저녁 늦게 아내에게 연락이 왔어요. 배송이 아직 덜 끝났는데, 부랴부랴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어요. 장례를 치르면서도 남은 금요일 배송분이랑, 토요일 배송분이 걱정이었어요. 장례를 마치고, 쉬지도 못하고 월요일에 바로 출근하니 쌓인 택배가 한가득이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몸이 아파도, 사정이 생겨도 쉴 수가 없어요. 다른 동료 이야기를 들으니 아버지 장례를 치르느라고 일을 못 해서 수입이 줄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리점 소장이 ‘용차’(쉬는 택배노동자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것)를 비싸게 썼다더라구요. 택배노동자가 받는 돈보다 훨씬 큰 금액으로 용차를 쓰고 차액을 택배노동자에게 떠넘겨요. 결국, 하루 쉬면 수입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는 구조에요.”
그러다 보니 택배노동자들은 절대 아파서는 안 된다. 아파서 일을 못 하게 되면 비싼 돈을 들여 ‘용차’를 구해야 하고, 내가 못하면 주변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산재보험에 가입하고 싶었던 노동자가 가입을 요구하면 “왜 꼭 산재보험 들려고 하냐. 각자 보험 들어. 너희들이 개인사업자고, 사장인데 누구보고 들어달라고 하냐”면서 발뺌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아파도 누구 하나 선뜻 병원에 가지 못한다.
몸이 아파 쉬려는 택배노동자에게
대리점 소장은 “병신들만 다 모아놔서 안 되겠다.
젊고 싱싱한 걸로 갈아야 되겠다”고 말했다.
“제가 아는 택배노동자가 오전에 택배 분류작업을 해야 하는데, 몸이 아파서 병원에 좀 갔다 오려고 대리점 소장한테 부탁한 적이 있어요. 주변에 부탁하기가 미안해서 짐 좀 받아주면 안 되냐고 부탁한 거예요. 그런데 대리점 소장이 ‘병신들만 다 모아놔서 안 되겠다. 젊고 싱싱한 걸로 갈아야 되겠다’고 했다는 거에요.”
이뿐만이 아니다. 서브터미널에 간선차가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퇴근은 매일 10시를 훌쩍 넘겼고, 심지어 새벽 한 시까지 배송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택배산업이 성장하면서 서브터미널 공간이 좁아 지붕을 세워 공간을 확장하게 됐는데, 이 비용도 대리점 소장과 함께 노동자들이 각출해 부담했다. 터미널에 여자화장실은 아예 없었고, 남자 화장실도 두 칸에 불과했다. 청소비를 걷어갔지만, 청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화조가 넘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시설도 열악해 비가 오면 택배가 다 젖는다. 지난 2016년 큰 태풍이 왔을 땐 비바람이 너무 강해 택배 박스가 다 녹아내릴 정도였다.
“태풍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잠시 멈춰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런데, 짐이 젖든 말든 개의치 않고, 계속 짐을 내렸어요. 간선차가 대기하면 비용을 더 줘야 하니깐 그냥 내리는 거예요. 그리고, 일단 짐만 내리면 모든 책임을 택배노동자가 져야 하거든요. 우리가 회사관계자에게 거세게 항의하니 ‘내가 누구 한 사람 정도는 짜를 수 있다’면서 협박하기도 했어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는 저 사람들에게 돈 벌어주는 기계인가’하는 생각이요.”
2016년 ‘택배기사 권리찾기 전국모임’을
만나며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런 그에게 2016년은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네이버 밴드에 만들어진 ‘택배기사 권리찾기 전국모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임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밴드에 가입했고, 2016년 8월 ‘택배기사 권리찾기 전국모임’ 오프라인 행사가 서울 용산 철도회관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밴드에서 봤다.
“택배 일을 하는 친구랑 갈까 말까 고민을 했어요. ‘왜 모이는 거지?’, ‘모여서 다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거든요. 근데 막상 일주일에 딱 하루 쉬는데, 그날 서울에 간다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그리고, 경주에서 용산까지 왕복 KTX 요금이 거의 10만 원이더라구요. 시간적 부담에, 금전적 부담도 커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참석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서울로 향했던 그의 발걸음이 택배노동조합 탄생으로 이어졌고, 그의 삶도 바꾸었다. 그날 모임에 참석하고 난 뒤 그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어요”라고 고백했다. 택배회사와 대리점의 요구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해왔던 그는 택배노동자들이 힘을 모으고, 함께 하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날 가서 보고 하나로 힘을 모아 움직이는 지역은 우리 경주보다 훨씬 상황이 낫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매번 서브터미널에 간선차가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늦어 배송이 늦게 시작되고, 이 때문에 별 보고 퇴근하는 게 경주에선 다반사였는데, 택배노동자들이 힘을 모은 광주지역 이야기를 들으니 사정이 다르더라구요. 우리는 빨라야 오후 1시에 배송을 시작하고, 2시나 3시에 배송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광주는 오전 11시면 배송을 시작한대요. 물류센터가 있는 대전에서 경주나 광주가 거리상으론 차이가 거의 없는데, 두세 시간 차이가 난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 보자”며 만든 노동조합
“택배노동자들이 힘을 모으다 보니
간선 차도 빨리 오고, 대리점 소장들의 갑질도
조금씩 줄어드는 등 변화가 느껴지더라구요.”
경주로 돌아온 그는 동료들과 함께 경주지역 서브터미널에서 택배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큰 바람은 ‘우리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 보자’는 것이었다. 택배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배송 시작 시간을 두세 시간 앞당길 수 있으면 가족과 저녁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배송을 두세 시간 빨리 나가면 밤늦게 일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리고, 아무래도 밝을 때 일을 하다 보니 배송 시간도 줄어들고, 고객들한테 택배가 오밤중에 온다고 욕도 덜 먹고, 우리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가족들하고 저녁도 같이 먹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솔직히 택배 일을 하면서 가족들하고 저녁 먹어본 역사가 없거든요. 그런데, 택배노동자들이 힘을 모으다 보니 간선 차도 빨리 오고, 대리점 소장들의 갑질도 조금씩 줄어드는 등 변화가 느껴지더라구요.”
‘택배노동자 권리찾기 전국모임’은 2017년 1월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출범으로 이어졌다. 2월엔 또 다른 택배노동조합인 전국택배노조가 세워졌고, 이 두 노조는 2020년 12월 조직을 통합해 전국택배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지난해 1월 통합대의원대회와 지도부 선출 선거를 통해 새 지도부를 구성했다.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택배노동자들의 삶은 과거와 달라졌다.
“피부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배송 출발 시간이에요. 아직도 노조가 없는 터미널은 배송 출발이 한 시가 넘는 곳도 많은데, 경주는 오전 11시, 12시에 출발해요. 택배노동자 누구나 느끼는 거겠지만, 해가 떠 있을 때 한 시간 일을 빨리 시작하면 마치는 시간은 두 시간 빨라져요. 아무래도 어두우면 움직이기 힘들어서 시간이 더 걸리거든요. 이른 시간에 배달하니 고객들 원성도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노조가 조직된 지역에선 배송 출발 시간이 일정해요. 그렇지 않은 곳에선 그때그때 다르다 보니 기다리는 시간도 많았고, 일정한 시간에 택배가 오지 않다 보니 몇 시에 오냐는 고객들의 전화에 시달리기도 해요.”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산재보험 가입도 2018년부터 조금씩 늘어나다 지난해 사회적 합의 이후 나머지 택배노동자들도 가입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한 채 눈치를 보던 일도 줄어들었다. 그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전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이 노조를 만든 이후엔 아닌 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가 속해있는 경주 지역은 2017년 4월 7일 지회가 만들어졌다. 전국에서 광주에 이어 두 번째로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지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지회가 만들어지면서 초대 경주지회장을 맡았다. 이후 그의 노력으로 대구에 2개 지회가 생겨났고, 경북 김천에도 지회가 만들어졌다. 전국에 지회들이 속속 건설되고 대구·경북지역 소속 지회들도 하나둘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지부 건설이 논의됐다. 한동안 경주지회장 겸 대구·경북지부장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9년 대구·경북지부 건설과 동시에 지부장을 맡았다. 학생운동도 한 적이 없고, 택배 일을 시작하기 전까진 노동조합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그로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처음에는 노조 중앙도 재정이 어려워서
활동비 지원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활동비도 사비로 충당했어요.
또 노조 활동을 하려다 보니 예전처럼
오랜 시간 일할 순 없어서 수입도 자연히 줄어들었죠.”
팔자에도 없던 노조 간부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노조 전임자는 물론 노조 활동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다 보니 일은 일대로 하고, 개인적으로 시간을 쪼개 노조 활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택배노동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시작한 노조 활동인데 역설적이게 그는 함께 일하는 동지들을 위해 자신의 휴일과 저녁 시간, 그리고 자신의 수입을 양보해야 했다.
“처음에는 노조 중앙도 재정이 어려워서 활동비 지원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활동비도 사비로 충당했어요. 또 노조 활동을 하려다 보니 예전처럼 오랜 시간 일할 순 없어서 수입도 자연히 줄어들었죠. 나가는 돈은 많아지고, 수입을 줄어들다 보니깐 솔직히 가정 경제가 많이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친구가 담당하는 지역에 아파트가 있어서 수입이 그래도 괜찮으니깐 그곳 물량을 받아 아르바이트를 뛰기도 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노조에서 동료 조합원들이 활동비를 보조해줘서 이전보다는 나아졌어요.”
상황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택배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건 원래 쉽지 않은 일이다. 택배 산업이 가진 구조 자체가 조직적인 활동을 어렵게 한다. 택배사-대리점-택배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다 보니 같은 택배 조합원이라고 해도 대리점에 따라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대리점에 작게는 3~4명 많으면 한 30~40명이 일하는 데도 있어요. 평균 대리점 한 곳당 10여 명 정도 되는 데, 각각 대리점 점장의 성향이나, 대리점 상황에 따라 한 가지 사안을 두고도 의견이 다를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요구조건을 조율하고,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더구나 택배는 구조 자체가 원래 자기 일만 잘하면 되기 때문에 잘 뭉치지 못해요. 사실 짐 실을 때 잠깐 보고 종일 혼자서 일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나만 잘하면 된다는 개별화된 인식이 수십 년 동안 현장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요.”
“대구·경북에선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요.
심지어 아직도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솔직히 우리 아내도
그렇게 생각하구요. 아내가 경주에서
국민의힘 당직자로 일하고 있거든요.”
이런 택배 산업 특유의 어려움뿐 아니라 보수적인 지역 분위기도 활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대구·경북은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지역이고, 그만큼 노조 활동에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잘못된 것을 바꾸자고 이야기해도 ‘회사가 있어야 우리가 먹고 산다’, ‘회사가 잘 돼야 우리도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아요. 그리고,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곳 대구·경북에선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아요. 제가 노동조합 교육에서 박근혜 정부의 반 노동적 정책을 비판했더니, 뒤에 있는 조합원이 박근혜 대통령을 왜 그렇게 욕하냐고 항의를 하더라구요. 노동조합 입장에선 반 노동정책을 펼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든, 문재인 대통령이든 모두 비판할 수 있는 건데 그런 반응이 나오기도 해요. 노조 정치 사업을 통해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이야기해도 뒤에선 보수 유튜브 채널을 보는 조합원들이 있어요. 솔직히 이런 상황이 당황스럽죠. 심지어 아직도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솔직히 우리 아내도 그렇게 생각하구요. 아내가 경주에서 국민의힘 당직자로 일하고 있거든요.”
그의 아내는 학교 어머니회 활동을 했던 인연으로 선거운동을 도왔고, 그런 인연이 이어져 국민의힘 당직자로 활동해왔다고 한다.
“노동조합 활동에 나서는 거에 불만이 많았어요. 그나마 지금은 활동비를 보조받으면서 생활비가 줄어드는 상황은 아니어서 불만이 조금은 줄었어요. 우리 부부 모두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고, 가족들을 걱정한다는 면에선 차이가 없어요. 저는 제가 행복해지면 가족도 행복해질 수 있고, 내가 일하는 곳을 좋게 바꿔 즐겁게 일하면 가족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요. 또 인간으로서 노동자들이 존중받으며 살 수 있도록 사회를 바꾸는 게 우리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믿어요. 반면에 아내는 제가 노조 활동을 하는 게 저는 물론 아이들에게까지 피해가 간다고 우려하는 거예요.”
“우리에게 악의적인 기사를 자주 만나고,
포털 댓글을 통해 비난하는 목소리도 듣지만,
그렇지 않은 국민도 많아요.
배송하다 보면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구요.
그런 분들 보면서 희망을 품어요.”
부부간에 정치적 차이가 존재하는 건 흔한 일인 만큼 그도 아내의 활동에 대해 반대하진 않는다고 했다. 다만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빨갱이’라고 여기는 생각만이라도 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그의 아내와 지역 주민 등 많은 이들이 택배노동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지난 2년여 동안 파업을 하고, 투쟁을 이어가면서 그들의 상황을 제대로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조선일보 등 보수매체를 중심으로 택배노조를 공격하는 기사가 이어졌다. 택배노동자 파업을 공격하기 위해 택배가 고소득 직종이고, 택배사 임원들도 그만 두고 택배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황당한 보도까지 나왔다.
“택배노동자들이 택배 산업이 성장하면서 물량 늘어나면서 예전보다 수입이 늘어난 건 맞아요. 근데 회사가 뿌리는 보도자료를 보면 억대 연봉에 가까운 택배기사가 수두룩한 것처럼 말해요. 잘 번다고 말할 수 있는 택배노동자들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아요. 수도권에 대형거래처가 있거나, 회사들이 밀집해서 구역이 좋고, 배달 난이도가 쉬운 아주 일부 경우에요. 그리고, 그런 택배노동자들도 매출 기준으로만 이야기해요.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지, 부대비용은 얼마 나가는지는 알리지 않아요. 솔직히 지방은 사정이 많이 열악해요. 경주만해도 시 외곽을 담당하면 시골 동네여서 집들이 띄엄띄엄 있거든요. 하루 동안 배송을 하고 나면 달릴 거리가 160km가 넘어가기도 해요. 이런 사연들을 알리려고 해도 우리 이야기를 받아주는 언론사가 거의 없어요. 그래도 실망하진 않으려구요. 우리에게 악의적인 기사를 자주 만나고, 포털 댓글을 통해 비난하는 목소리도 듣지만, 그렇지 않은 국민도 많아요. 배송하다 보면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구요. 그런 분들 보면서 희망을 품어요. 지금은 조합원이 2천 명에 불과하지만, 조금씩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조직이 커지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어요.”
아울러 택배노조 파업 과정에선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갈등을 부각하려는 시도가 보수매체를 중심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택배노조 지도부가 학생운동권 출신이고, 종북세력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중앙 간부 몇 사람의 이력을 가지고 빨갱이 취급을 했어요. 그리고, 택배노조가 정치적이라고 비난도 했구요. 그런데, 정치적이라고 비난하더니, 오히려 대선 과정에선 비노조 택배연합 대표를 맡은 김 모 씨가 국민의힘 찬조연설에 나서는 등 더 정치적인 활동에 나섰어요. 그들이 하는 주장을 들으면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인 단결권, 교섭권, 파업권을 깡그리 무시해요.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버리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자신의 권리를 버리고, 회사가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또 그 행복은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이들마저도 자신이 해고될 위기나 어려움을 당하면 노동조합을 찾는다. 자기에게 힘든 일이 닥치면 결국 나를 지켜줄 건 노동조합밖에 없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제가 택배 일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무렵에 일했던 대리점이 있어요. 그곳에 연세가 좀 많은 택배노동자가 계셨어요. 그분은 당시에 대리점 소장 오른팔이라고 불릴 정도였어요. 그런데 그분이 10년 만에 연락이 왔어요. 저에게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이야기해요. 그분 신변에 변화가 생겼고, 자기를 지키기 위해선 노조가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자기가 직접 나선 거예요.”
“임기 안에 제대로 회사와 교섭도 하고,
단협도 체결해보고 싶어요.
간부 생활하느라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못 가졌는데,
임기를 마치면 가족들과 시간도 가지고 싶어요.”
택배 시장은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KILA)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총 택배물량은 36억2천만 개라고 한다. 지난 2012년 총 택배물량이 14억 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2.6배나 성장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이제 택배는 삶의 일부가 됐다. 사회를 움직이고, 유지하는 필수서비스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택배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노동자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그는 택배사들도 수익과 함께 노동자들을 생각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노조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택배는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직업이에요. 대기업이 택배 시장에 들어오면서 작은 택배사들은 도태됐어요. 그리고, 단가를 낮춰가면서 과열 경쟁을 벌이고 있어요. 단가와 서비스를 두고 경쟁하면서 고객들 입장에선 편해진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것이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면 오래 이어지기 힘들어요. 희생만 강요당하며 힘들게 일하는데 고객을 웃으면서 대하고, 택배 물건을 안전하게 배송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기업들도 이런 부분을 생각해야 합니다. 명절이면, 대표이사나 관리자들이 ‘사랑하는 택배 가족 여러분’이라고 부르며 이런저런 좋은 말들을 해요. 그런데 정말 가족처럼 생각한다면 회사와 노동자가 함께 사는 정책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는 7일이면 그가 경주에 택배노조 지회를 세운 지 5년이 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보람도 컸다. 2년 뒤면 지부장 임기가 끝나는 그는 그때까지 회사와 교섭을 통해 단협을 체결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는 노조가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험난하다.
“임기 안에 제대로 회사와 교섭도 하고, 단협도 체결해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노조가 힘이 더 세져야 하는데 아직 부족해요. 남은 임기 2년 동안은 열심히 활동해서 힘을 키워야죠. 그 뒤엔 택배노동자로 일하면서 후배 조합원들과 택배노조를 도우면서 현장에서 일할 거예요. 간부 생활하느라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못 가졌는데, 이젠 함께하고 싶어요. 둘째인 아들이 열 살이에요. 그런데, 주말에도 밖에 나갈 일이 많아서 같이 놀아주지도 못했던 아빠였는데, 더 크기 전에 같이 많이 놀아주고 싶어요. 그렇게 가족과 함께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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