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형철 교수 "선거구 아닌 선거제 개혁하자... '의회제' 개헌 고민할 때"
▲ 김형철 성공회대 교수. | |
ⓒ 권우성 |
"선거구 바꾸면 조금은 좋아지겠죠. 하지만 그래봤자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정말 비례성을 높이고 다당제를 원한다면 선거제도 자체를 개혁해야 합니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국회에서 멈춰선 '기초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회의적이었다. 4년 전 지방선거 때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으로 '기초의원 2인 선거구 폐지'를 위해 노력한 그였지만, 승자독식 구조인 지금의 다수대표제 방식 하에선 선거구가 늘어난다고 해도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은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란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선거제도 분야 전문가인 그는 대안으로 기초의회 선거를 아예 비례대표제로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국민 모두가 대표되고 소수가 배제되지 않는 정치를 위해선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광역의회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또 이제 '의회제'로의 개헌을 고민할 때라고 진단했다. 그는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라는 혹평을 받은 이번 대선을 두고 "정당이 아닌 인물 중심의 대통령제가 이어지는 한, 지난 5년간 추진된 정책에 대한 생산적인 평가나 책임 있는 정치세력에 대한 심판은 이뤄지지 않는다"라며 "선거 때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 그리고 인물 흠집잡기에 가려 정당은 책임 소재에서 쏙 빠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이 과정에서 정치권은 진영을 동원하고, 진영간 네거티브 대립은 결국 법적인 문제까지 연결되고 있다"라며 "검찰의 정치화, 사법의 정치화 역시 대통령제 자체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도 짚었다. 김 교수를 11일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3인 이상 선거구? 다음 선거 당선에 빨간불... 과연 하려고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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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직전 기초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공약했지만 국회에서 관련 법 통과는 난망한 상황이다. 지난 4일부터 더불어민주당 의원 172명 중 74명이 기초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 도입을 촉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민주당이 대선 때 한 약속이 보여주기가 아니라 진솔한 것이었길 바란다. 하지만 법 통과는 아마 어려울 것이다."
- 이유는?
"다음 총선이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 구조를 보면 국회의원 선거구가 가장 크고, 그 아래 분할된 광역의원 선거구들이 있고, 그 아래 또다시 분할된 기초의원 선거구들이 있다. 국회의원 입장에선 기초의원들 자리를 확실히 보장해야만 다음 선거에서도 자신을 위해 지역에서 충성스럽게 선거운동을 펼칠 세력과 조직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지금처럼 거대양당 후보만 되면 당선이 확실시되는 2인 선거구들을 3인 이상 선거구로 바꾼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기초의원들 반발이 뻔하고 무소속 출마 등 지역구 내 조직 이탈이 발생할 것이다. 국회의원으로선 당선에 빨간불이 켜지는 거다. 그런 일을 하려고 들까?"
- 처음부터 민주당에 의지가 없었다는 건가.
"많은 국회의원들이 당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재선만을 생각한다. 선거 땐 일사불란하게 당론까지 가더니 대선 끝나고는 전혀 의지가 안 보이지 않나. 민주당은 현재 대구·경북을 제외하고 모든 시·도의회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다. 진짜 의지가 있다면 법을 바꾸지 않고도 기초의원 2인 선거구를 없애고 3인 이상 선거구로 획정할 수 있다(관련 기사 : "민주당, 정치개혁 의지 없다... 정말 진정성이 있다면" http://omn.kr/1y7k5 )."
- 결국 근본적으로 거대양당 모두 현재의 기초의원 2인 선거구를 없애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3인, 4인 선거구보단 2인 선거구가 거대정당에겐 좋다. 독점성을 주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유신 때도 국회의원 2인 선거구를 했다. 당시 서울이나 대도시는 야당세가 강했기 때문에 1인 선거구면 여당이 수도권 의석을 얻기가 힘들었다. 여당에게 유리한 방편으로 2인 선거구가 활용된 것이다. 또 권력 입장에선 2인 선거구를 통해 양당 구조가 공고해지면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관리가 용이해진다. 야당에게 통제할 수 있는 정도의 의석수를 허용하면서 새로운 정당들의 의회 진입은 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으로 활동했을 때였다. 대표성과 비례성, 표의 등가성을 높이기 위해 기초의원 4인 선거구를 35개 새로 만드는 초안을 짰다. 처음엔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거대 양당에서 이를 알게 된 후 각종 압력이 오더라. 하루는 일이 생겨 획정위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날이 있었는데, 그날을 기점으로 기류가 완전히 바뀐 일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획정위 안이 4인 선거구 7개를 추가하는 쪽으로 축소됐다. 그마저도 시의회에서 모두 2인 선거구로 쪼개졌다. 이토록 어렵다."
"선거구 아닌 선거제도를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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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철 성공회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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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8일부터 단식까지 돌입했다.
"기초의원 3인 이상 선거구가 도입된다면 지금보단 아주 조금 나아지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 경험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소수정당의 진입이나 다당제 안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보긴 어렵다. 2018년 지방선거를 보자. 4인 선거구로 치러진 호남 지역구에선 민주당이 대부분 4석을 모두 가져갔다. 거꾸로 영남은 국민의힘 계열이 싹쓸었다. 정당 시스템 차이는 있지만 일본에서도 3~5인 선거구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거대정당에 유리한 결과들만 계속 이어지지 않았나.
이론적으로도 선거구 크기가 커질수록 비례성이나 대표성이 높아지는 건 비례대표제 하에서만 해당되는 얘기다. 우리처럼 다수대표제, 즉 최다득표자를 선출하는 방식에서는 선거구 크기가 커진다 해도 비례성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지금 민주당이 그나마 기초의원 3인 이상 선거구 도입을 얘기라도 하고 있는 건, 그래도 이게 그들에게 심각하게 불리하진 않다는 계산이 있어서다. 그런데 정의당 같은 소수정당이 왜 똑같은 주장만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된다. 소수정당들 입장에선 보다 근본적인 정치개혁, 선거구 개편 정도가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선거제 개혁을 주장해야 자신들의 원내 진입을 늘리고 다당제를 현실화할 수 있다."
- 선거제 개혁이라면?
"기초의회의 경우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선거구만 조금 늘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역구를 없애고 모든 의석을 비례대표제로 뽑자는 것이다. 기초의회는 대개 적으면 7명, 많으면 30명의 기초의원들이 의회를 이룰 정도로 규모가 작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
그 작은 지역에서조차 선거구를 몇 개로 쪼개 양당이 의석을 나눠가질 게 아니라, 35%의 표를 받았으면 35%의 의석을, 10%의 표를 받았으면 10%의 의석을 할당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지금처럼 50% 득표도 안 되는데 90%를 장악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물론 거대양당의 반발은 훨씬 클 거다. 선거구 좀 바꾸는 것도 이렇게 힘들지 않나. 하지만 의회라는 건 국민의 대표기관이다. 어떤 집단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다양한 이해와 요구들이 잘 대표돼야 하는데 지금 양상은 의회가 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거대 양당이 과다대표 되고 있다. 소수라는 이유로 목소리가 묻히는 국민이 생겨선 안 된다."
- 광역의원선거나 국회의원선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마찬가지로 대표성과 비례성을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지역구의 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시키되, 전체 의석수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정해짐)로 가야 한다. 민주당은 이미 대선 때 국회의원 선거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지난번 2020년 총선 때처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꼼수, 속임수 같은 괴이한 선거제도를 만들지 말고 이번엔 제대로 해야 한다.
광역의원선거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게 맞다. 선거 단위마다 같은 선거제도를 채택해야 조응성이 높고 유권자들도 익숙해진다. 기초의원선거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기엔 의회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에 앞서 말했듯이 온전히 비례대표제로 가면 된다."
"의회제 개헌이 정치개혁… 책임정치 실종, 검찰의 정치화도 대통령제 탓"
▲ 김형철 성공회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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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은 대선 직전인 2월 24일, 기초의원 3인 이상 선거구제나 국회의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물론 ▲대통령 4년 중임제 권력구조 개헌 ▲책임총리제 ▲결선투표제 등도 약속했다. 이같은 '정치개혁안' 내용 자체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겠다는 건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호하다. 예컨대 책임총리를 하겠다면 총리의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도식적으로 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를 한다고도 하는데 과연 지금 같은 세계화 시대에 그 구분이 가능할까?
결국 대통령제 자체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분권이라는 건 하나의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젠 정말 헌법 개정을 통한 '의회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내각제'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보통 '내각제'라고 부르지만 일본식 표현이라 '의회제'라고 하겠다. 대통령제는 제도 자체가 태생적 한계가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간 마찰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비록 과반도 안 되는 적은 득표라도 당선만 되면 모든 권한을 다 전횡할 수 있는 승자독식 제도다.
무엇보다 대통령제는 인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정치가 특정 소수의 리더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불안정성이 매우 높다. 대통령 개인에게 힘이 집중되기 때문에 탄핵 같은 극단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견제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인물 중심 정치는 책임정치와도 배치된다. 역대 대선을 봐라. 선거 때만 되면 지난 5년간 집권에 책임을 져야 할 여당의 후보가 현직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하고 각을 세운다. 그러다 보면 유권자 입장에선 책임 있는 정치세력에 대해 심판하고 싶어도 마음껏 심판을 못하게 된다. 인물만 새로워 보이거나 좋게 포장되면 그 인물에게 또 표가 가니, 정당과 정치집단은 공동책임에서 쏙 빠진다. 책임 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다."
- 이번 대선은 어떻게 봤나.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 선거였다는 혹평 역시 대통령제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정당에 대해 책임을 묻는 선거가 아니라 인물에 의존하는 선거가 되니 지난 5년간 추진된 정책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경쟁은 사라지고 인물에 대한 흠집내기만 남는다. 네거티브가 강해질수록 인물을 향한 비호감은 극대화되고, 이 과정에서 정치권은 진영을 동원한다. 그 결과 진영은 똘똘 뭉치지만 진영간 갈등은 심화된다. 정치의 무책임이다."
- 진영 정치 역시 대통령제 자체의 문제라는 건가.
"안타깝게도 대통령제가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진영 정치는 더 강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대통령제가 지나치게 권력 집중적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이 돼버렸고 지면 모든 걸 잃는다. 요즘 검찰 문제로 시끄럽던데, 대통령제 하에서 벌어지는 인물 중심의 권력 쟁투는 사법의 정치화 현상이나 검찰의 비대화 문제와도 연결된다."
- 대통령제가 검찰 문제와도 연관되나.
"당연하다. 인물 중심의 정치판에선 그를 겨냥한 비리 제보나 투서가 계속되지 않겠나. 그 수사들을 누가 하나. 게다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은 검찰총장까지 임명한다. 검찰은 당연히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게 된다. 대통령제가 지속되는 한, 검찰의 중립성 역시 요원하다. 예를 들어 미국도 대통령제지만 각 주마다 검찰총장을 민선으로 뽑기 때문에 국민에게만 책임을 질 뿐, 대통령에겐 정치적 책임이 생기지 않는다.
또 막강한 권력을 잡은 쪽에선 정치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자꾸 검찰이나 사법부에 미뤘다. 그러니 검찰과 사법부의 정치화가 더 가속화된다. 지금 지적되는 검찰의 문제 중 상당부분이 정치권에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정상적인 정치와 사법을 위해서도 정부형태 변화가 필요하다. 민주당이 약속한 만큼, 지방선거가 끝나고 곧바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관련 기사]
[하승수 인터뷰] "민주당, 정치개혁 의지 없다... 정말 진정성이 있다면" http://omn.kr/1y7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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